"비건끼리 모임을 이루고, 지역 내에서 활동을 키우는 곳은 대전뿐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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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끼리 모임을 이루고, 지역 내에서 활동을 키우는 곳은 대전뿐일 거예요."

by 토마토쥔장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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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끼리 모임을 이루고, 

지역 내에서 활동을 키우는 곳은 

대전뿐일 거예요."

아삭아삭 안경선 대표


글•사진 양지연

월간토마토 vol. 170.


   인터뷰를 위해 한 시간 반을 달려 충주에 도착했다. 매번 인터뷰하러 가는 길은 설렘과 약간의 긴장감이 동행한다.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달려, 도착한 곳에서 안경선 씨를 만났다. 

   대전에서 약 5년을 살았던 경선 씨가 충주로 거처를 옮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본래 경선 씨는 대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었는데 대전과의 사이는 무척 끈끈하다. 대전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다는 경선 씨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스무 살에 처음 대전에 와서 비슷한 기간을 보냈던 나의 경우를 잠시 돌아볼 수 있었다.

   경기도 안산 출신인 경선 씨는 여러 번 삶터를 옮겼다. 대학 생활과 첫 직장 생활은 전라북도에서, 이후에는 경기도 평택에 있는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며 충남 당진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냈다. 이 시기에 경선 씨는 함께 하던 반려견의 죽음, 가족과의 갈등 등 극복하기 힘든 일을 복합적으로 겪었다. 우울감을 이겨 보고자 등산이나 운동도 해 보고 병원에 다니며 약물치료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가진 돈을 다 쓰고 죽겠다’라는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도시를 찾았다. 그 도시가 바로 대전이었다. 당시 대전은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지인도 없었다.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지만, 옆에 누군가 있다면 과한 의존성을 보이게 될 거라는 걸 스스로 알았다. 또한 마음먹은 대로라면 가진 돈을 다 쓰고 죽어야 했기에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죽고 싶은 마음 앞에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공존하는 기분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대전은 경선 씨가 다니던 회사와 일상을 천천히 정리하며 다양한 곳으로 캠핑하러 다니던 어느 날 만났다. 우연히 대전에 있는 갑천 앞까지 오게 된 날, 경선 씨는 대전이 마음에 들었다. 그 지점이 딱 본인이 찾던 도시의 요건을 모두 갖춘 곳이었다. 경선 씨는 전철역이 있어서 교통이 편하고, 물이 흐르는 장면을 매일 볼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타슈를 타고 엑스포 광장을 오갈 수 있는 월평동 일대가 좋았다. 하지만, 그곳은 아파트 단지가 많아 혼자 지낼 집을 구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경선 씨는 갈마역 근처에 원룸을 구하고 2017년 봄부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본인을 우울하게 했던 사람과 공간에서 벗어난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혼자 나와 살면 나아질 것 같던 우울감이 가족에게 상처를 남기고 내려왔다는 죄책감 때문에 더 커지더라고요. 끼니도 제대로 챙길 리 없었던 그때가 지금껏 살면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것 같아요.”

   스스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필요하다고 여긴 경선 씨는 당시 갈마동에 있던 ‘30인의 서점’을 자주 방문하며 그곳 사장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리고 유기견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이 경험이 동물권에 관한 생각을 깊게 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체온을 가진 ‘비인간동물’ 

   경선 씨는 현재 완전한 비건의 삶을 살고 있다. 비건들은 인간이 아닌 동물을 ‘비인간동물’이라 칭한다고 했다. 2019년도부터 비건의 삶을 시작한 경선 씨는 본인도 처음 6개월은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초반에는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는 고기를 먹지 않았지만, 사람들과 함께 메뉴를 골라야 하거나 여행을 가면 식사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했다. 유연한 비거니즘으로 시작해서 완전한 비건이 되기까지 평범한 선택이 아닌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며 혼란을 겪었던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럴 때마다 봉사 활동을 하던 유기견 센터에서 비인간동물이 전해 오는 눈빛과 그들의 체온에서 비거니즘에 대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우연히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을 담은 『묻다』라는 책을 만나면서 ‘가둬져서 길러지는 그 무엇도 먹지 않겠다’라는 결심은 더욱더 단단해졌다. 경선 씨는 점점 우리 일상의 모든 부분에 숨겨져 있는 동물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고 알면 알수록 그 세계는 깊고 넓었다. 

 

 

 

아삭아삭 

   2019년,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충청&대전 고 비건 무브먼트’ 모임에 가입했다. 경선 씨가 모임에 처음 가입했을 당시에 모임 원은 약 50명이었는데 이들의 삶은 경선 씨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모임 안에서 성별, 나이, 직업 등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끝까지 서로의 이름과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단지 본인이 알고 있는 채식 요리의 레시피를 공유하고, 새로운 정보를 나누며 가끔 비건의 길을 가며 혼란을 겪을 때 그곳에 털어놓고 서로 공감해주는 것이면 충분했다. 세상에는 이미 채식주의자로서 길을 닦아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어쩌면 이제 막 시작한 초보 비건들이 조금이나마 자신의 가치관을 고집할 수 있는 것은 선배 비건들의 앞선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다. 경선 씨는 단체 안에서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서로가 무조건적인 이해를 해 주고 친절을 베푸는 것에 마음을 열어 꾸준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한밭레츠’의 오민우 대표를 만났고 10년 넘게 비건의 삶을 사는 그를 통해 비건으로서의 태도와 가치관을 배우며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충청&대전 고 비건 무브먼트’에서 팀명이 ‘아삭아삭'으로 바뀌는 데에는 경선 씨의 공이 컸다. ‘아삭아삭’ 팀명 제안을 경선 씨가 했다. 그리고 비건 페스티벌이나 비건에 대한 강의 등 아삭아삭 내 대부분의 활동을 오민우 대표와 함께 기획했던 경선 씨는 팀원들의 권유로 현재는 아삭아삭의 대표를 맡고 있다. 결혼 이후, 충주로 이사하게 되면서 아삭아삭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까 우려도 했지만, 더 넓은 지역으로 활동을 넓혀보자는 팀원들의 격려와 의지로 해 보기로 했다. 경선 씨 말에 의하면 현재 아삭아삭 팀원 중에는 동물권에 대한 가치관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이 절반이라고 했고, 나머지는 본인의 건강상 이유나 환경과 기후 위기에 대한 의식 때문에 참여하고 있다. 어쨌든 저마다의 이유로 비건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과연 세상에 깨끗한 남아있기는 한가?’

   경선 씨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으로 비거니즘을 시작했지만, 비건으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환경이나 기후 위기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우리가 사서 입는 이 옷들은 세탁만 해도 미세 플라스틱이 쏟아져요. GMO 농산물을 기르기 위해 농약을 뿌리다가 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목숨값과 농약과 재배 방식 때문에 죽어가는 다른 동물들, 토양 오염에까지 기여하는 소비를 하는 건 옳지 않아요.”

   경선 씨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채 사서 입고 먹는 것을 거부하며 건강한 채식과 함께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충주로 이주하고부터는 택배 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직접 가서 구매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뿐더러, 택배 노동자에 대한 처우 문제와 더불어 택배사를 구매자가 선택할 수 없는 시스템은 용납할 수 없다며 신혼살림까지 모두 직접 가서 사 올 수 있는 선에서만 구매했다고 말했다. 

   경선 씨는 현재 아삭아삭의 대표뿐만 아니라 충주•제천한살림의 모임원으로서 환경 소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청소년의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청소년자치배움터 ‘*모모학교’에서 청소년 환경 동아리 학생들과 플로깅을 하는 등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한다.

   * 모모학교: ‘모두가 모두에게 서로 배우는’이라는 뜻의 충주 내 청소년 교육을 돕는 협동조합

   대덕구 에너지전환 기업 ‘**해유’에서 디자인과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것 말고도 탄소 잡는 채식 생활(탄잡채)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단을 꾸려 비건 생활과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다.

   ** 해유: 대전 충남 녹색연합과 (주)신성이엔에스가 만든 사회적 기업

   “제가 비건이 되고 아삭아삭 일원이 되면서 무조건적인 친절과 배려의 대상으로 존재해 보니까 그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나도 여기에 나오길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힘을 줄 수 있는 구성원이 되고 싶은 거예요.”

   경선 씨에게서 이제는 건강한 에너지만이 뿜어져 나왔다. 매사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을 만한 확신이 있는 것 그리고 그보다 주변에 그의 모든 선택을 지지해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경선 씨를 정말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여기 동물이 있다.
대지는 삼킨 죽음을 토해내고 싶어 한다.
독한 술이라도 삼킨 것처럼 온몸이 확 달아올랐다.

   - 『묻다』 , (문선희, 책공장더불어, 2019) 중에서


글•사진 양지연

월간토마토 vol.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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