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상가에서 사주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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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지하상가에서 사주를 보았다

by 토마토쥔장 2021.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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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상가에서 사주를 보았다

‘천천히 성장할 것’이라는 그 말, 무턱대고 믿고 싶다

  글 사진 이용원

 

출입문은 미닫이문이었다. 철제 골조에 유리를 끼워 만든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한 명은 상담 중이고 여섯 명은 대기 중이었다. 공간 안에 남자라고는 타로 카드를 앞에 펼쳐 놓은 주인뿐이었다. 번호표를 뽑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리번거렸지만, 그런 건 없었다.

출입문을 마주본 정면 쪽에 어두운 천을 덮은 테이블 한 개가 놓였다. 공간 좌우 벽면에 붙여 빈틈없이 의자를 놓았다. 오른쪽에 붙은 의자 중 빈 자리가 보였다. 대기 장소에 낯 선 사람이 모이면 의자에 여백을 만들어 적절한 거리를 두고 듬성듬성 앉기 마련이다. 첫 만남에 지켜야 할 물리적 거리라는 것이 있다. 필요한 여백을 포기한 채 차곡차곡 당겨 앉은 것으로 보아 그 자리가 상담 순서라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맞은 편 의자에 물병 하나가 있을 뿐이었는데, 잠시 후 사람이 들어와 그걸 치우고 앉았다. 화장실에라도 다녀오느라 물병으로 자리를 맡아 둔 모양이다.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보따리가 대신 줄을 서는 것처럼 말이다. 앉은 자리가 순서라는 추정은 확신으로 변했고 대기자는 일곱 명으로 늘었다.

혼자 온 사람은 핸드폰에 집중했고 둘이 온 사람은 소곤소곤 수다를 떨었다. 공간은 한없이 무미건조했다. 대기자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더했다. 낮은 조도와 함께 기다림을 더욱 지루하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인데도 상담사와 상담자가 나누는 이야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주식...'이라는 낱말을 언뜻 들었을 뿐이다. 아무래도 주식 투자 부문에 관한 상담인 듯싶었다. 자리에 앉아 기다린 지 어느덧 삼십 분이 훌쩍 넘어갔지만, 상담은 끝날 줄 몰랐다. 계산을 해 보았다. 삼십 분 곱하기 일곱 명은 210분, 3시간 30분이었다. 지금 앞에서 상담을 받는 중년 여성이 특별한 케이스라고 해도 2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내 뒤로 더는 손님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만일 내 좌측에 누구라도 앉아 있었다면 그냥 일어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간은 내게 틈을 보였다. 일어나서 미닫이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타로와 사주명리를 내건 간판이 주변에도 여럿 보였다. 이곳에 왜 이렇게도 많은 타로와 사주명리를 가지고 운명을 상담하는 가게가 많이 들어선 건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장삿속에 장사된다.'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결정적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대전중앙로지하상가 601개 점포 중에 입점허가 내지는 협의를 거쳐야 할 업종이 몇 개 있었다. 타로와 사주명리 같은 성격의 점포는 '내가 원한다'고 아무 곳에나 차릴 수 없는 업종이다. 관리법인 측에서는 이런 업종을 옛 충남도청 아래쪽(C구역)에 몰았다. 나름 존(zone)을 형성한 이유다. 이외에 종교색이 무척 강한 업종도 허가 내지 협의가 필요하다. 이 구역에 있다. 음료와 음식을 파는 곳은 좀 다른 이유에서 협의가 필요하다. 수도를 비롯해 필요한 시설이 있기 때문에 부대시설을 이미 갖춘 점포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대전중앙로지하상가 중 옛 충남도청 아래에 많은 타로와 사주명리 관련 업소가 모였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ㅂ'이다. 최근에 한 번 자리를 옮겼지만 내둥 같은 섹터 안이다. 간접광고 제한을 하지도 않는데, 왜 이름 전체를 쓰지 않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러면 안 될 듯하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다 나온 곳도 바로 'ㅂ'이다. 평일 오후 2시 즈음이었다. 어디든 붐빌 시간은 아니었다. 밖에 나와서 둘러본 다른 곳은 무척 한가했다. 손님이 없거나 심지어 주인도 자리를 비운 공간이 많았다.

  

  

천천히 거닐며 둘러보다가 'ㄹ'로 시작하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많은 곳 중 그곳을 선택해 들어간 것 또한 내 운명이라 여겼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마스크를 챙겨 쓰고 노트를 하나 꺼내고는 물었다.

"무얼 보고 싶으세요?"

"사주명리와 타로를 모두 보는 종합 상담을 하고 싶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가게 앞에 놓아 둔 광고판을 통해 상품을 확인한 터라 망설임은 없었다. 사주명리 1만원, 타로 1만원, 종합 2만원이었다.

"어떤 분야가 궁금하세요?"

"지금 사업과 제 미래가 궁금합니다."

"생년월일과 시를 말씀해주세요"

생년월일과 시를 받아 적고는 새로운 숫자를 만들어냈다. 제시한 숫자를 더하는지 빼는지 곱했는지는 모르겠다. 태블릿을 톡톡 두드리자 작은 숫자와 큰 한자가 네모 칸 안에 들어찬다. 각 네모 칸은 노란색과 붉은색, 초록색, 흰색 등으로 채웠다.

"운은 10년마다 바뀌어요. 자 이 다섯 가지 색은 각각 물과 불, 흙, 나무, 금을 나타내는 거예요. 여기 보셔야지요."

태블릿을 보지 않고 수첩만 바라보고 열심히 받아 적는 내게 상담사는 태블릿에 집중해줄 것을 요구했다. 상담자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렇게 색을 적용한 것이라 했다. 그리 애를 쓰는데, 바라보지 않으니 부애가 난 모양이다. 태블릿에 나타난 내 사주에는 네 가지 색깔이 있었다. 금이 한 개, 나무 두 개, 흙이 한 개, 물이 네 개였다. 그중에 내 본성은 금(金)이란다. 금 옆에 물이 네 개나 있어서 이 물이 제대로 흐르지 않았다면 안 좋았을 텐데, 그 옆에 나무와 흙이 이 물을 적절하게 빼내니 큰 문제는 없단다.

"몸을 쓰며 먹고 살 팔자는 아니에요. 책을 만드니, 그건 괜찮은 거 같아요. 운은 전반적으로 좋은 편이에요. 문제는 그 운을 제대로 거머쥐려면 건강이 중요해요. 계속 주변을 챙겨야 하는 사주라서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면 힘들어지거든요. 그 스트레스를 견디는 건 결국 건강이지요. 산이 좋아요. 높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매일 갈 수 있는 야트막한 산을 골라서 오르세요. 올해가 조금 그런데, 벌써 8월이니 잘 보내신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내년은 괜찮아요. 올해와 내년에 몸이 바닥일 거 같아서 걱정이니까, 운동하면서 짱짱하게 몸 상태를 만들어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사업은 빠르게 성장하지는 못해요. 천천히 갈 거예요. 조급해 하지 마시고요."

대략 30분 정도 이야기를 들었다. 할 얘기를 모두 해주었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번에는 타로를 볼까요?"

"근데, 사주 풀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기는 다 해주었는데, 굳이 타로를 봐야 하겠어요?"

상담사는 타로는 굳이 볼 필요가 없을 듯하다고 나를 설득했다. 상담 시간이 길었으니, 여기서 끝내고 종합상담료를 받으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 가격을 물었다. 1만원을 요구했다. 그냥 사주명리 상담 비용이었다. 잠깐 의심한 마음이 부끄러웠다.

"이곳에 땅 기운이 좋나요? 왜 이렇게 많은 타로 가게와 사주명리 보시는 분들이 이곳에 모였을까요?"

"하하하, 땅 기운이 좋은지는 잘 몰라요. 근데 요 주변에 빈 점포가 생기면 타로 가게가 거의 들어오더라고요. 저는 본래 다른 사주 카페 같은 곳에서 일하다가 이곳으로 왔어요. 아무래도 지하상가가 일상적으로 오가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간혹 오는 손님 중에 강원도나 경기도에서 오시는 분도 있어요. 타로나 사주명리 보려고 오시는 분들이라고 하더라고요. 대전에서도 지하상가 이곳에 타로나 사주를 보는 곳이 많다고, 전국에 제법 알려진 모양이에요.“

상담료를 치르고 ‘ㄹ’을 나섰다. 사주를 보면서 ‘담배 끊고 운동하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강하게 들을 줄은 몰랐다.

 

 

월간토마토 vol.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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