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어요. 이곳에서 또 저곳에서도
김진희 작가 인터뷰
글 양지연 사진 양지연, 김진희 제공
소제동 아트벨트에서 진행 중인 전시 ‘내 창가에 찾아 온 친구’를 관람한 이후에 <당신과 내가 손을 잡을 때>라는 작품으로 전시에 참여한 김진희 작가에게 개인적인 연락을 취했다. 관객으로서 김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로 나를 초대했고 얼마 뒤에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김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내 창가에 찾아 온 친구’ 전시의 후기 중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것을 김 작가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작가님, 보셨어요? 이번 전시 후기 중에 특히 팔남매집에서의 김진희 작가님 작품은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며 작가님을 콕 집어 언급한 후기가 있었어요.”
나는 처음 만난 김 작가에게 만나자마자 기분 좋은 이야기를 전달했고 김 작가는 나에게 따듯한 커피를 한 잔 내어주며, 우리는 작업실 한편에 널찍하게 자리한 테이블에서 마주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 작가를 마주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내 창가에 찾아 온 친구’ 전시 덕이었으니 그 이야기부터 해야 했다. 김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회에 속해 살아가는 개인이 맺게 되는 수많은 관계에 대해 표현하는데 이번 작품 <당신과 내가 손을 잡을 때>에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데믹 사회가 녹아 있다. 갑자기 등장해 전 세계를 마비시킨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 간의 직접적인 접촉은 감소하고 단절되었지만, 오히려 마음으로는 이전보다도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며 더 연대하고 있다는 것이 김 작가가 이번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었다.
“<당신과 내가 손을 잡을 때> 작품 속에 작가님의 실제 손이 등장해요. 지난 4월에 있었던 전시 <1000번의 손짓>에서도 작품 속에 작가님이 손이 등장하고요. 본인의 손을 작품으로 남기신 건 언제부터였나요?”
몇 년 전에 갑자기 손등에 한포진이라는 질환이 생겼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면역력이 낮아지면 생길 수 있다는데 손과 발에 수포가 올라오는 질환이에요. 이때부터 손이 콤플렉스로 여겨지면서 우리의 손이 외부로 얼마나 노출이 많이 되는 신체 부위인지 선명하게 다가오더라고요.
동시에 텔레비전 광고나 잡지에 등장하는 여성의 손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이질적인가를 생각하게 됐어요. 매체가 하얗고 고운 손 그리고 우아한 제스처가 여성의 전형적인 손이라는 인식을 자꾸 심어주고 있는 거예요. 내 손도 한 여성의 손인데 내 손과 저들의 손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예쁘게 등장하는 손을 찍은 사진 작품에 구멍을 뚫어 제 손을 침범시켜서 맞잡아 보기도 하고 함께 실뜨기하는 것 같은 연출도 해보고요. 그러면서 <손짓 훈련 : Finger play> 시리즈가 시작되었고, 이후로 계속 제 손이 작품에 등장하고 있어요.
“<당신과 내가 손을 잡을 때>를 보면 작가님이 개인이 타인과 그리고 나아가 사회와 맺는 관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붉은 실로 사람 간의 연대감을 표현하면서도 액자를 분리하는 것으로 단절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작가님은 어떤 관계 속에서 안온함을 느끼시는지 궁금해요.”
제가 손과 손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미지를 나타내는 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코로나가 시작됐어요. 거대한 사회적인 변화를 겪는 게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거든요. 제가 발이 넓어서 혹은, 사람을 너무나 좋아해서 사회와 개인이 맺는 관계를 계속해서 작품에 담아내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관계라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고 때로는 숙제 같아요. 많은 사람과 넓고 깊은 관계를 갖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태생적으로 타고나야만 가능한 일 같고요.
매정하고 차가운 사람은 또 아니지만, 소수의 아주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편안함을 느끼는 편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작품을 매개로 타인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하는 거죠. 실제로 하기는 어려운 것에 대한 바람을 작품에 녹인다고 할까요. 어쨌든 우리는 모두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니까요.
“사진 작가에게 사진이 주된 작업물인 건 당연하지만, 그 위에 바느질이라는 작업을 얹고 계세요. 사진만큼 찰나를 담아내는 행위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바느질이라는 아주 느리고 정교한 행위를 더해볼 아이디어를 내신 건가요?”
이야기가 길어질 텐데. 자수를 사진에 접목하게 된 이야기는 <Whisperring> 작품 시리즈부터가 시작이에요. <Whisperring>은 제가 20대 중반부터 4,5년 정도 한 작업인데 처음에 자수가 들어가지 않은 초상화였어요. 제 또래의 젊은 여성의 성에 관한 이야기를 숨길 것 없이 밖으로 표현하고자 시작한 작업이었어요. 지인부터 시작해서 여러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재구성하여 그에 맞는 인물 사진 작업을 마쳤는데 처음에 동의했던 친구들도 이후에 사진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하는 거예요. 스토리가 담기고 얼굴과 신체가 드러나는 사진이 공개되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 거죠. 각자 사정이 있기도 했고요, 애인이 바뀌었다든가.
그들을 작품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작업을 진행한 건 아닌지,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한 채로 시작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닌지 반성을 많이 했어요. 어쨌든 열심히 한 작업물을 작품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작가에게도 상처니까, 아쉬운 마음에 그 위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가위로 오려내기도 하고, 실과 바늘로 자수를 얹기도 하면서 막연하게 여러 시도를 했던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바느질이 천과 천을 연결하고 봉합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타인을 위로하고 함께 공감하려는 의도와 비슷하다고 여겨졌죠. 그렇게 시작해서 몇 년 후에 사진에 자수를 더해 작품으로 만든 첫 시도가 <She> 시리즈예요.
자신의 작품의 모델이 되어준 이들의 상처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뉘우쳤던 김 작가는 <She> 시리즈를 준비하며 다시 지인들에게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더 깊은 대화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여전히 내가 아닌 타인의 경험과 상처를 전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김 작가는 그들에게 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종이 위에 적어 주길 부탁했다. 그리고 배설하듯 쏟아져 나온 그녀들의 이야기에서 짤막한 단어와 받은 인상을 그들의 사진 위에 바느질로 얹었다.
눈에 보이는 텍스트가 우리에게 전하는 순간의 힘은 강력하지만 내면 깊숙하게 이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김 작가는 자신이 느꼈던 한계를 외국어로 자수를 넣으며 때로는 텍스트든 감정이든 그 의미가 제대로 온전하게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해냈다. <She> 시리즈 중, 단 한 작품에만 ‘싫어’라는 한글이 얹어졌는데 김 작가는 “한글은 외국인이 봤을 때 이해하기 어렵겠죠.”라며 웃었다.
“코로나 이전에도 사회적 배경과 이슈를 작품에 반영하신 적이 있었나요?”
<She> 시리즈를 작업하던 중에 세월호 사고가 있었어요. 처음 진도대교를 건너서 팽목항에 다다랐을 때는 도저히 오래 머무를 수가 없겠더라고요. 차에서 내리는데 그곳 기운에 압도된 건지 발이 땅속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었어요. 몇 개월이 지나고 다시 내려가서 팽목항을 제외한 진도의 곳곳을 사진으로 남겼어요. <April>이라는 작품인데 초반에는 사진 위에 알록달록한 동그라미들을 자수로 새겼어요. 아픔과 슬픈 느낌을 최대한 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 노력이 개인이 전할 수 있는 치유의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진도를 자주는 아니어도 종종 갔어요.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갈 때마다 그곳 느낌이 달라져 있었어요. 그래서 작품에 바느질한 자수 형태가 초반과 많이 달라졌죠, 이렇게. 바느질 면적이 넓어지고. 제 개인적인 삶에서 오는 감정도 많이 담겼고 또 세월호 사고가 점점 우리한테서 잊혀지는 것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어요. 원래 사회에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던지고 앞장서서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받은 상처들이 아물기를 바라고 함께 슬퍼하고 있다는 공감의 표현을 하는 것이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김 작가는 작업실 벽에 걸려 있는 <From the past> 작품을 가리키며 피부에 난 상처도 딱지가 앉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며 새살이 돋듯이 마음에 든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도 비슷하다고 보아 사진을 몇 겹의 레이어로 겹쳐 표현한 작품이라 설명했다.
LIFE GOES ON
대학 시절 스승이었던 백승우 작가의 곁에서 7년 동안 보조로 일했던 김 작가는 자신의 스승을 따라 해외로 여행을 나갈 때마다 모았던 빈티지 엽서가 시간이 흘러 자신의 작품이 되었다고 했다. 김 작가가 수집한 엽서에는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 시기의 엽서도 있었는데 뒷면에는 필기체로 당시 실제 엽서의 주인이 누군가에게 보낸 메시지들이 적혀 있었다. 수백 장의 엽서를 모은 김 작가는 어느 날 친구에게 필기체로 적혀 있는 메시지의 번역을 부탁했다. 어려운 말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적혀 있는 문장들은 “잘 지내? 여기는 날씨가 따뜻해.” 같은 쉬운 안부와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사랑 고백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감동과 위로를 받은 김 작가는 엽서의 앞면을 복사 촬영하여 뒷면에 적힌 메시지를 사진 위에 바느질로 새겼다. 한 엽서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보낸 자작시가 적혀 있었는데 과거 이 엽서에 자작시를 눌러쓴 마음과 현재 본인이 바느질하며 느끼는 감정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낸 엽서는 백 년이 흘러 <Letter to her>, <Labor of love>라는 작품이 되었다.
김 작가는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으로 올해 11월에 있을 개인전을 위한 신작 준비를 이야기했다. 이는 분당에 위치한 아트 스페이스 J에서 열릴 예정이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가 끝나면 김진희 작가가 그때는 또 어떤 사회 속에서의 연대를 작품으로써 이야기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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