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게 하는 음악 - 최지윤 보컬 트레이너
글 김예인 사진 김예인, 최지윤 제공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의 소리를 듣기 위해 모여 조용히 집중하는 그 광경은 지금 생각해 봐도 아주 신기하다. 음악이 가진 힘이 얼마나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지 알려 주는 순간이 아닐까. 나는 어릴 때부터 가수를 동경해왔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기분은 어떨지, 저렇게 잘 부르는 건 무슨 느낌일지, 내 소리를 집중하여 듣는 관객이 앞에 있다면 어떨지가 궁금했다. 가 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 호기심 그 사이 어딘가를 헤매다 보컬 학원을 등록했다. 복식 호흡과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하는지, 소리와 가성을 내는 방법, 바이브레이션 등 기본적인 부분을 배웠다. 나를 가르친 보컬 선생님은 내가 노래할 때 어디가 부족하고 어떤 연습을 해야 하는지 집어서 설명해 줬다. 수강생의 노래를 듣고 알맞은 조언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전문적 지식이 있어야 하는지 가늠되지 않는다. 노래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이 독특한 직업 이야기가 듣고 싶어 11년째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 중인 최지윤 씨를 만났다.
‘보컬 트레이너’는 음악적인 요소와 함께 목소리를 훈련시키는 사람으로, 목이 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돕는다. 발성적으로 깊게 나아가면 발성 교정사, 음악적으로 깊게 나가면 음악 선생님이 되는데 음악과 발성 교정, 두 가지를 합쳐놓은 직업이 보컬 트레이너다. 보컬 트레이너는 크게 음악 대학, 대학원 학위 수여자, 보컬 트레이닝 관련 자격증 취득자, 그리고 프로 생활을 하며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 그녀의 답, ‘노래’ 》
장구 연주자였던 외할머니, 가수와 함께 공연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까이하며 자란 최지윤 씨. 그녀는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합창단, 중창단, 아코디언 부 등 음악 관련 활동을 많이 하며 자연스레 음악이 취미가 되었다. 쉽게 접한 음악 활동 영향으로 ‘나는 음악을 배우고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중학생 때다. 내가 무얼 잘하고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진로 고민 속에서 그녀가 내린 답은 ‘노래’였다.
“제일 잘했던 게 노래인 것 같아요. 친구끼리 있으면 그중에 노래 제일 잘하는 아이였어요.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내가 정말 노래를 잘하나 보다’라고 생각했고 노래하며 살면 행복하고 재미있을 것 같았죠.”
노래에 대한 관심은 중학생 때부터 깊어졌고 고등학교를 가며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더 세분화 된 음악의 범위로 들어갔고 스무 살에 대전 중부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대학원 실용음악 교육학을 전공했다.
보컬 트레이너 일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했고 지금까지 고등학교와 어린이 소방동요대회, 학원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세종에 있는 학원과 대전산업정보고등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개인레슨도 한다. 트레이너 일과는 별개로 로컬42협동조합에서 공연, 문화예술 콘텐츠 기획자 일도 하고 있다.
《 참된 보컬 트레이너 》
십 년 넘게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초등학교 5학년부터 60대 이상의 수강생과 수업했다.
“숨 쉬는 방법과 소리 뱉는 것, 올바른 자세 등, 배우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이 과정으로 노래에 더 관심을 가져서 음악으로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음악을 편하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음악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수강생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는 선생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녀는 처음부터 보컬 트레이너가 되고 싶었던 걸까?
“처음에는 가수와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직업으로써 트레이너라는 직업이 더 많은 보람을 느끼게 했죠. 학생을 가르치고, 가르친 학생이 노래를 잘하는 게 좋았거든요. 그래서 선택했어요.”
수강생이 발전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보람차다는 최지윤 씨. 그녀에게서 참된 보컬 트레이너의 모습을 보았다.
《 내려놓음 》
“속에 쌓아 놓지 않고 숨과 같이 내보내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담는 음악을 하고 싶죠. 음악은 내가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대신해줄 수 있고 은유적으로 사용되는 매력이 있으니까요.”
글과 음악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은 그녀는 곡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고 밴드 ‘새벽틈’의 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음악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언제일까? 한, 두 개의 특별한 순간을 얘기할 거라 예상했는데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다. 그녀는 공연하던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관객과 눈 마주치며 음악으로 교류하던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감동적이었나 보다.
“관객들이 내가 부르는 노래를 함께 즐길 때의 눈빛과 공연이 끝나고 잘 들었다는 말을 들을 때, 그때가 제일 좋아요.”
음악 하길 참 잘했다는 최지윤 씨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내가 가진 재주로 생활에 필요한 자본도 벌며 살 수 있음에 만족한다.
“눈 뜨고 감을 때까지 문화와 음악에 연결되어 있다는 게 행복해요. 엄청 넓은 음악 가운데 내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 행복감이 엄청나요. 지금 하는 기획 일도 같이하며 학생을 가르치니 만족도가 더 높아졌어요.”
그런 그녀도 음악을 그만두고 싶은 시기가 있었다. 학원 원장으로 있을 때 레슨과 학원 경영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기 음악을 할 여력이 없었다. 많이 지쳐 에너지가 채워지지 않고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던 그 때, 음악을 그만두고 싶었다. 그 힘든 상황 속에서 도움이 된 지혜는 ‘내려놓음’이었다. 너무 잘하려 해서 만족하지 못했고 너무 몰아붙이느라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원하는 목표에 다가가지 못하는 본인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내려놓음’으로 본인을 지키기 시작했다. 이제 최지윤 씨는 음악 하는 이들에게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길 권한다.
“모든 창작은 제 살 깎아 먹기인데 그 과정 가운데서도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까지 하는 나는 왜 안 되고, 왜 이렇게 못 하는지와 같은 물음이 아닌, 자기를 꼭 지키면서 행복하게 음악 했으면 좋겠어요. 저를 지키기 시작하니까 행복해지더라고요. 엄청나게 잘하지 않아도 돼요. 조금 내려놓으세요.”
지금은 공연과 레슨, 기획일의 밸런스를 찾아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 이제는 음악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없다.
《 나를 살게 하는 음악 》
“음악은 나를 혼내요. 열심히 하지 않으면 바로 티가 나거든요. 하지만 혼나도 좋아요. 또 음악은 나를 품어 주죠.”
음악이 없었으면 팍팍하게 살았을 것 같다고 했다. 순탄하지 않는 일상에 지치고 힘들 때 음악을 듣고 노래하면 한결 나아진다. 음악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도 한다. 그녀에게 음악은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수호신 같은 존재다.
“음악에는 모든 게 다 들어있어요. 음악으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과 상황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음악이 좋아요. 이 음악이 저를 살게 해요.”
그녀의 목표는 사그라지지 않는 애정으로 음악을 평생 사랑하는 것이다. 음악과 함께 세월을 보내고 싶은 그녀는 음악과 사랑하고 있다.
《 당신은 달라지지 않는다 》
음악 활동으로 삶을 영위하기란 쉽지 않다. 해서 음악을 관두는 사람도 많고 풀리지 않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그녀는 음악이 업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했다. 음악으로 돈을 벌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음악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그건 절대 포기가 아니다. 단지 직업으로써 선택하지 않는 것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즐거운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무조건 이 일로 경제력을 얻어야 하고, 이 활동은 취미로만 할 것이라는 흑백 논리는 잠시 내려놓는 게 어떨까?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아도 인생은 끝나지 않고, 당신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그 부담을 조금 내려놓았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마음이 고민하는 이에게 닿기를 바란다.
음악이 세상을 좀 더 부드럽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속상한 일로 내 마음이 바닥을 칠 때 음악으로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다. 내 옆에 와 가만히 있어 주던 음악에 기대어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 음악은 사람을 살게끔 돕는다. 평생을 음악과 동행하길 원하는 그녀의 삶이 음악으로 풍요롭길 바란다.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룸비니에 지은 작은 대피소 (21) | 2021.06.30 |
---|---|
우리는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어요. 이곳에서 또 저곳에서도 (21) | 2021.06.11 |
4차원 탐구생활 (32) | 2021.05.24 |
생활 속 다름 (6) | 2021.05.18 |
문제는 죽일 놈의 외로움 - 세 원루머(one-roomer)가 말하다 (12) | 2021.05.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