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비니에 지은 작은 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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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에 지은 작은 대피소

by 토마토쥔장 202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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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에 지은 작은 대피소

네팔 음식점 룸비니 사르마 데벤드라 씨

 

글 사진 황훈주

 

 

#1. 일 년에 한 번씩, 가을에 연차를 몰아 쓰는 형이 있었다.

“네팔에 갈 거야.”

형은 네팔이 좋다고 했다. 산 중턱에 숙소를 잡으면 일주일 동안 가만히 쉰다고 했다. 그게 좋다고 했다. 히말라야. 만년설. 그 중간에 숙소를 잡는 형에겐 그곳이 삶의 대피소였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곳에 있으면 한없이 마음이 여유롭다 했다. 다른 나라도 많지만 꼭 일 년에 한번씩 네팔로 여행 가는 형이 있었다. 

 

 

#2. “형. 셀파가 뭐에요?”

형은 카톡 이름 앞에 ‘셀파’라는 낱말을 썼다.

“히말라야에 오를 땐 옆에서 도와주는 안내자가 필요하대. 셀파. 셰르파라고도 하는데 네팔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사람이야. 그들은 등반객의 짐을 지고 산길을 안내하지. 내가 하는 일도 남을 도와주고 꿈에 다가갈 수 있게 하니까 붙였어. 사실 내가 지은 건 아니고 우리 회사 대표가.”

나중 티브이에서 셰르파에 대해 잠깐 볼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돈보다는 진리에 다다르기 위해 수행하는 목적으로 오른다고 했다.

네팔음식점 룸비니 입구

익숙한 건물 사이에 틈이 있다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몰라 천천히 밥을 먹었다. 흘깃 옆 테이블을 보니 아까 주인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던 사내는 손으로 카레를 비벼 먹는다. 나보다 조금 늦게 들어 온 외국인 세 명은 밥을 기다리는 동안 유튜브로 낯선 노래를 틀었다. 아마 고향 땅에서 듣던 음악인 듯하다. 가게 안엔 한국어가 써 있지만 내게 들리는 소리는 알 수 없는 말뿐이다. 나는 그저 그 말이 네팔어겠구나 추측한다. 가게 문엔 룸비니란 가게 이름과 함께 ‘슈와거떰’이라 적혀있다. 슈와거떰은 네팔어로 ‘어서 오세요’란 뜻이다. 은행동 골목에 위치한 룸비니는 2층에 있다. 좁은 계단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곳. 익숙한 건물 사이에 작은 틈이 있다. 그 틈을 지나면 펼쳐지는 낯선 세상. 미리 준비한 인터뷰 질문이 어리석었다 생각하며 카레를 떠먹는다. 역시 어떤 질문을 할지 고민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쉬운 말로 질문할지 고민하는 게 나았으려나. 아니면 혹시 모르니까 영어로도 준비하는게 나았을지도.

밥을 한 30분은 먹은 것 같다. 과연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 긴장되는 가운데 또 밥은 맛있어서 싹싹 긁어먹었다. 배가 부르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기회는 한 번뿐. 밥값을 계산하며 인터뷰를 요청할 생각이다. 나름 인터뷰 요청 대사도 준비했다. 첫째, 카드를 건네 계산한다. 둘째, 영수증을 받는 동안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를 표한다. 셋째, 명함을 건네며 인터뷰를 요청한다. 코트는 입지 않고 일어났다. 

“만삼천 원입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콩 수프가 맛있더라고요.”

“감사합니다.”

“그 콩 수프, 저도 집에서 만들어 먹고 싶은데 그 콩은 어디서 구해요?”

“저기 식자재 코너에 있는 콩 몇 개 섞어 볶은 후 카레 가루 넣고 끓이는 거에요.”

추천해주는 콩은 처음 보는 콩이다. 상품 설명 라벨을 보니 이집트콩이라 써 있다.

“네팔 음식에 관심 있나 봐요?”
아까 손으로 밥을 먹던 사내와 함께 앉아 있던 여자가 웃으며 물어본다. 예상치 못한 유창한 한국어에 놀랐다.

“콩은 조금 물에 불려야 돼요. 그리고 기름에 볶고 카레 가루는 조금씩.”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조언에 함께 앉아 있던 사내도 유창한 한국말로 거든다.

“유튜브에 요리법 쳐봐요. 보고 따라 해보면 돼요.”

그들은 재밌다는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지만 이번 인터뷰는 왠지 느낌이 좋다. 미리 빼둔 명함은 잠시 집어 넣고 콩 수프 요리법을 전수 받기로 한다.

 

룸비니에 지은 작은 대피소

“원래는 NGO에 대해 공부하러 한국에 왔어요. 2013년. 수원 아주대학교로요.”

룸비니 식당 주인아저씨 이름은 사르마 데벤드라. 올해로 41세다. 인드라는 인도에 나오는 신 이름이다. 인드라가 가뭄의 신 비트라를 물리친 후 데벤드라로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아저씨도 자신 이름을 소개하며 데벤드라를 신들의 왕이라 했다. 아저씨는 한국 유학 생활 덕분인지 한국어를 잘했지만 가끔 잘 알아듣지 못 하는 말도 있었다. 그럴 땐 옆에서 수시라 씨가 네팔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가며 인터뷰를 도와줬다. 아까 콩 수프 레시피를 알려준 그녀는 2011년에 네팔에서 한국으로 시집 왔다고 한다. 한국 이름은 이수민. 인터뷰가 시작되자 자연스럽게 주인 아저씨 옆에 앉은 그녀는 가끔 나의 질문에 주인아저씨가 답하기 전에 먼저 답해주기도 했다. 자주 놀러 와 아저씨 사정을 잘 안다 했다.

아저씨는 네팔에 있는 아이들을 돕고 싶어 NGO에 관심을 가졌다. 인터뷰 전, 계산할 때 카운터 옆에 있는 모금함을 봤다. 모금함엔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천 원을 기부하려 했지만 무슨 일인지 모금함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NGO는 포기했어요. 어려워요. 하지만 요리는 잘 해요. 여기서 2017년부터 장사를 시작했어요.”

포기했다는 그의 말에 나는 어떤 질문을 더 해야 할지 몰라 묻지 않았다. 꿈을 위해 멀리서 날아왔는데 그 꿈을 포기했다면 이유가 가볍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수원에서 다시 대전까지 온 이유는 대전엔 네팔 음식점이 없었기 때문이라 했다.

“대전엔 800명 이상 네팔인이 살아요. 가게가 있어 좋아요. 고향 음식도 먹고 또 이렇게 모일 공간도 있으니까요.”

이수민 씨는 웃었다. 타국에서 결혼 생활하다 잠시 고향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어쩌면 그녀에게 하나의 대피소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이지만 모두의 공간

그는 한국에 오기 전 유럽에서 4년 정도 요리를 배웠다. 요리 하는 건 재밌다. 평상시엔 홀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 떨다가도 음식 주문이 들어오면 손을 씻고 모자를 눌러 쓴다. 한국인 대부분은 치킨 난 커리를 시킨다. 탄두리 치킨도 잘 나간다. 한국 사람이 많이 찾는 만큼 이 두 음식은 한국식으로 조리법을 바꿨다. 네팔에서 온 고향 사람은 달리 세트를 시킨다. 이 메뉴만큼은 고향 요리 방식 그대로 만든다. 달리는 쟁반이란 뜻이다. 놋 쟁반 가운데 밥을 놓고 그 주위에 콩가루로 만든 얇은 난 같이 생긴 ‘파파드’, 시금치류를 향신료와 볶은 ‘싸그’ 그리고 네팔 김치인 ‘어짜르’를 둘러 놓는다. 카레와 ‘달’이라 부르는 콩 수프도 함께 나온다. 바로 내가 맛있게 먹은 콩 수프다. 가게 안엔 작은 세면대가 있다. 네팔 사람들은 가게에 들어오면 손부터 씻는다. 네팔 사람들이 많이 온다. 대전 근교에서도 찾아온다. 대전 근교에 아직 네팔 식당이 없는 곳이 많다. 타국에서 장사하는 게 쉽진 않다. 그래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니 계속한다.

“코로나로 힘들어요. 최근 새로운 식자재를 수입했어요. 하지만 아직 받아보지 못했어요. 인천공항 창고에 있어요.”

네팔은 바다가 없다. 그래서 현지 식자재를 가져 오려면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아저씨는 최근에 수수를 수입했다. 고향에선 쌀처럼 먹는 건데 코로나가 문제였다. 별문제 없이 들여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식자재는 코로나로 까다로워진 검사 탓에 아직 인천공항 창고에 있다. 창고 보관료만 계속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식자재 값보다 훨씬 많은 돈이 창고 보관료로 나갔다. 마음 같아선 그냥 받지 않고 버리고 싶다. 요즘은 이집트콩도 카레 가루도 다 비싸다. 가게 한편에 마련한 식자게 코너는 그만할까 싶지만 그래도 고향 음식을 먹고 싶어 찾는 손님이 있다. 이곳에서 식자재를 사 간다. 지친 표정으로 아직 받지 못한 식자재 이야기 하는 아저씨 두 눈은 약간 붉게 충혈되어 있다. 그렇게 힘들고 장사도 어려운데 계속 하는 이유가 궁금해 아저씨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저 열심히 좋은 음식 만드는 것. 그게 아저씨가 할 수 있는 하루의 최선이다.

아까 수시라 씨와 밥을 먹던 사내도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함께 했다. 그의 이름은 어누저. 네팔어로 막내란 뜻이다. 다니는 공장은 금산에 있다고 한다. 오늘 하루 연차 내고 고향 음식 먹으러 왔다는 그는 28살. 나와 동갑이다.

“내일 이곳에서 ‘띠하르’를 지낼 예정이에요. 원래는 16일인데 그날은 월요일이고 다들 일 나가야 하니까 14일 토요일로 옮겼어요. 저도 오늘 대전 구경하고 내일 참석할 거예요.”

띠하르는 힌두교 축제다. 원래 5일 동안 열리는 축제인데 그 중 토요일인 14일에 ‘바이 티카’를 지낼 계획이다. 서로 이마에 작고 반짝이는 ‘티카’를 찍어주며 장수와 번영을 빌어주는 날이다. 노래도 하고 음식도 서로 나눠 먹을 예정이다.

“준비는 하는데 많이 올지 모르겠어요. 코로나19 때문에 타지로 이동하는 걸 싫어하는 공장 사장님이 많다고 해요.”

주인아저씨는 사람이 많이 못 모일까 봐 걱정했다. 아저씨가 힘들다 하면서도 장사를 계속하는 건 어쩌면 이 공간이 이미 많은 사람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일 거다.

 

다시 산을 오르는 이에게 건네는 안부

“저기 벽에 있는 사진도 아저씨 사진이에요?”

벽 한쪽에 만년설 위에 선 아저씨 사진이 있다. 네팔은 히말라야 트레킹으로 유명하다. 저 사진도 그 높은 산 중 하나일 거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아무렇게 나있는 아저씨 모습은 강해 보였다. 아저씨는 고향 이야기에 웃었다. 좋은 곳이라 했다. 나는 일년에  한 번씩 네팔로 여행가는 아는 형 이야기를 했다. “네팔로 여행 가는 형이 있는데 그렇게 네팔이 좋다는 거예요. 일 년에 한 번씩. 꼭 네팔을 간대요.” 고향 이야기 할 때 아저씨는 벌써 그 높은 산을 바라보는 듯 했다. 아저씨의 고향은 룸비니.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이라 했다. 좋은 곳. 아저씨는 그렇게 고향을 추억했다. 사진 속 아저씨는 예전 티브이서 봤던 셰르파 모습과 비슷하다. 강한 눈, 듬직한 모습. 아저씨는 어쩌면 셰르파였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아저씨 이름인 인드라는 천둥과 번개를 지휘하고 비를 관장하는 신이라고 한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어누저 씨와 아저씨 대화가 시작됐다. 간간히 아저씨는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려줬다. 어누저 씨 공장 사장 이야기다. 공장에선 어누저란 이름이 어려워 안주라고 부른다 했다. 그도 그 호칭이 싫은 건 아니지만 공장 일은 힘들다 했다. 그런 그에게 아저씨는 사장 마음도 이해해보라고 한다.

“사장도 사장의 사정이 있어요. 나쁘다고만 할 순 없어요. 저도 일을 하면 예민해지죠.”

아저씨는 그를 달래주고 조언도 해준다. 그들의 대화를 다 이해하진 못하지만 아저씨는 진심으로 그를 위로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대화에 낄 수 없어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게를 찬찬히 본다. 들어올 땐 몰랐는데 가게 안은 꽉 차 보인다. 아저씨 가족사진도 보인다. 이곳은 네팔 가정집을 그대로 옮겨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향 사람들이 드나들고 편하게 하루를 추억하며 또는 불평하며 잠시 쉬어가는 곳. 은행동에 자리 잡은 작은 대피소. 나는 그들의 대피소에 나만의 방식으로 쉬었다 간다. 아까 노래를 들으며 밥을 먹던 3명의 남자가 나간다. 그들에게 손짓하며 배웅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다시 산을 오르는 탐험가에게 안부를 건네는 듯 했다. 

 

월간토마토 vol.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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