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이 어렵다면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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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미술작품이 어렵다면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어

by 토마토쥔장 20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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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이 어렵다면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어

《상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

 

글·사진 황훈주

 

전시실 전경

 

시가 미술이 될 수 있을까. 미술관 옆 카페에 앉아 나지막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똑같은 전시를 두 번 보러 가는 일은 흔치 않았다. 대림미술관은 한번 입장권을 구매하면 같은 전시를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지만 아직 같은 전시를 두 번 본적은 없었다. 대부분 바쁘거나 시간이 안 맞았다. 그런데 이번 대전시립미술관 기획전은 두 번 보러 갔다. 그것도 일주일 동안에 말이다. 한 번은 전시를 보러 갔고 또 한 번은 관객 반응을 보러 갔다. 혹시 남들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궁금해서 말이다. 미술관 옆 카페에 앉아 아이스티를 쪽쪽 빨며 나는 상실감을 느꼈다. 이번 대전시립미술관 기획전 제목은 《상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다. 혹시,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 또한 전시 의도인 걸까. 전시 관람 후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코로나 시대에 나는 무엇을 빼앗겼는가.


 

편혜영의 소설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상실을 좋아한다

요즘 편혜영 소설이 좋다. 처음 그녀의 소설을 본 것은 저녁의 구애였는데 불안과 고독을 느끼는 주인공이 장례식장에 가는 길에 전화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을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삶과 죽음. 그사이에 사랑이 있는 걸까. 사랑은 벚꽃잎이 흩날리는 대학 캠퍼스가 아니라 붐비는 출근길 버스 안에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사랑과 상실은 삶 속에서 계속해서 피어나고 지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것이 편혜영 소설이다. 이번 대전시립미술관 기획전이 상실을 주제로 한 만큼 전시와 분위기를 맞추려 편해영 신작 소설 한 권을 들고 미술관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삶을 살아가며 겪는 유·무형의 소멸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전시실을 각 <애도일기>, <사물일기>, <외면일기>, <전쟁일기>로 나눴는데 특이한 점은 각 섹션 제목을 책 제목 또는 과거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섹션 주제를 정했다는 것이다. 상실감이 개인적인 감정인 만큼 개인적인 사유를 담은 일기 형식을 가져와 누구나 경험했던 보편적인 이야기를 풀어 보려 한 것이 기획 의도다. 책 제목에서 힌트를 얻고 전시실을 구성한 접근은 매우 흥미로웠지만 정말 접근만 좋았다. 개인 일기장 읽는 것이 재밌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을 읽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번 전시에선 참여 작가 생각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섹션 1. <애도일기>는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자 쓴 책 제목에서 따 왔다고 한다. 상실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자 한 의도다. 하지만 전시장 내부에서 작가의 상실의 태도를 관객의 입장에서 확인하긴 어려웠다. 롤랑 바르트의 상실감마저 느낄 수 없었다. ‘애도일기란 단어를 가져와 상실의 감정을 관객이 함께 느끼게 하기 위해선 전시된 작품과 롤 어떻게 연결되는지 힌트가 있어야 했다. 그것을 책을 통해 풀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전시장엔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의 원고가 조금 놓였지만 그보다 더 많은 내용을 관객에게 제공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했다면 관객은 작품을 바라볼 때 각자의 다양한 상실을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관객이 상실의 태도를 느끼기 어려웠던 건 작품과 관객 사이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애도일기>(롤랑 바르트) 원고를 보다 많이 볼 수 있게 했다면 좋았을 거다

 

작품은 작가 개인적 감정을 보편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다. 상실에 대한 주제를 전시할 땐, 관객이 작가 개인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고선 작품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섹션 1에서 만날 수 있는 김두진 작가의 <피에타> 작품은 기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을 사슴 뼈로 재구성한 디지털 페이팅 작품이다. 작품 설명엔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 처형 후 죽은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모습을 담은 <피에타>는 현재까지 상실의 원형으로 기능하며 재해석된다라고 나왔다. 하지만 적어도 왜 작가가 사슴 뼈로 작품을 진행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추가적으로 이뤄졌어야 했다. 애도하는 작품을 사슴 뼈로 변형하여 풀어냈다면 왜 그 소재를 썼는지에 대한 단서가 전시실 어딘가엔 있어야 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현장 큐레이팅을 대신해서 유튜브에 작가들의 전시 해설 인터뷰를 올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김두진 작가의 영상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나중에 유튜브 채널 중 여행가자라는 채널 중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감상하는 상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통해서 작품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작가 작품 속 등장하는 조각상들은 성서나 신화 속 인물들로 남성적이고 권력을 가진 단단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작가는 이 작품들을 가장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사슴 뼈로 바꿨다고 한다. 이 작가 의도를 듣게 되었을 때 비로소 관객은 작품을 통해 각자 생각을 펼칠 수 있다. 과연 작가가 개인적으로 느낀 사슴 뼈의 의미를 작품만 바라보고 관객이 느낄 수 있을까.

 

전시실 전경

 

물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물론 작가가 자기 작품을 다 설명할 필요는 없다. 또 관객도 작가 의도를 다 이해할 필요도 없다. 미술 작가의 언어는 작품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미 작품에 다 이야기했기에 그것을 다시 말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술 작가가 작품 만든 후 작가 노트 쓰기 위해 고통받다가 그대로 정말 작가가 되었다는 작가들의 불평 아닌 불평도 있지 않던가. 관객이 작품에서 느끼는 다양한 느낌 모두가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다. 또 작품과 작가는 별개로 작품 자체를 감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관객이 작품과 소통할 수 있는 광장에 있다는 전재 하에 이뤄지는 논의다. 미술관은 작가와 관객이 만나는 광장이 되어야 한다.

 

감정은 서사를 가진다. 재미없는 영화는 왜 재미가 없을까. 아무리 심오하고 스토리가 탄탄해도 배우의 감정을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면 영상과 관객의 거리는 멀어진다. (그래서 대부분 작품상 받은 작품이 재미가 없다. 보편적 감정을 다루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감정은 그 연속성을 이해할 때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다. 이처럼 이번 미술 작품도 상실을 주제로 기획전을 준비했다면 그 작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들을 놓았어야 했다. 작품을 감상할 땐 관객이 어떤 감정을 준비해야 할지 말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각자 느끼는 상실감이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더욱 관객이 작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무력감이 들때 우린 상실감을 느끼지 않던가.

 

미술관의 역할은 작가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게 중간에서 도와주는 번역가와 같. 미술 작가는 자신들의 예술 언어로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고 미술관 큐레이터는 그것을 다시 일상 언어로 바꿔 관객에게 전달한다. 큐레이터가 코로나19로 큐레이터가 관객 앞에 나설 수 없는 시대다. 이제는 미술관은 작가와 관객을 어떻게 만나게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개념 미술과 안규철 작가의 <그 남자의 가방>

이번 전시가 그래도 의미 있었던, 안규철 작가의 <그 남자의 가방> 작품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1993년 작, <그 남자의 가방>은 그 자체로 안규철 작가를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는 개념 미술의 전통을 계승하는 작가로 개념 미술이란 개념 자체가 중심에 선 미술이다.

 

현대 미술은 왜 어려울까. 미술은 사실 간단하다.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는 것이 미술이다. 물론 작가마다 아름답다는 기준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이미 사진기 발명과 함께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미술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 길을 떠나며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이때 등장하는 개념 미술은 아름다움이란 사물 표면이 아니라 그 내면의 가치에 있다 생각하며 사물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마르셀 뒤샹의 <>이다. 남성 소변기지만 미술관에 작품으로 올리게 되면 그 소변기는 새로운 가치를 가지게 된다. 마치 시에서 단어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안규철 작가는 상실을 말하는 작가다. 상실에 대한 감정을 일찍부터 느꼈다 말하는 그의 작업은 부재한 것,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는 2015<64개의 방>이란 작품을 보이며 <인문예술콘서트 오늘>이란 프로그램에서 그가 생각하는 예술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상실은 우리 곁에 있는 운명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술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운명에 대한 응답 또는 복수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모든 것은 우리 앞에 계속 있지 않고 사라지기에 그것으로 예술을 한다 생각합니다.”

 

안규철 작가의 <그 남자의 가방>은 낯선 남자가 자신의 날개가 들어있다고 말하는 날개 모양의 가방을 건네주는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절대 가방을 열지 않겠다고 하였기에 정말 날개 모양의 가방 안엔 날개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가방을 바라보며 관객은 보이지 않는 것도 진실이라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상실을 주제로 한 전시에 그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남자의 가방> 안규철

 

시가 미술이 될 수 있을까

안규철 작가 작품에는 텍스트가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남자의 가방>에서도 작품에 담긴 이야기가 짧은 우화로 함께 전시되어 있다. 20151210. 그는 인문360 주관으로  <사물의 인문학>이란 강의에서 작가와 관객 소통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이 있었다.

 

“예전에는 지금과 다른 태로도 전시하고 작업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작가가 생산자이고 관객은 작품의 소비자라는 생각이죠. 작가는 뭔가 소비자에게 좋다 생각하는 내용을 담아 작품을 잘 만드는 것 이것이 작가가 할 일이라 생각했었죠. 물론 맞는 말이지만 이것이 잘못하면 일방적으로 작가가 소비자에게 가르치는 입장이 되기 쉽다 느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소통이 이뤄지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턴 관객에게 여지는 주는 것, 관객이 작품을 통해 생각하게 하고 각자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규철 작가는 보이지 않는 생각, 사고를 보이는 그림으로, 텍스트로 만드는 것. 그것은 번역의 일과 같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한 사고를 텍스트로, 또는 관객 참여를 통해 함께 생각할 수 있게 했다. 그가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이 코로나19 이후 작가가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대화의 풍경> 양정욱

 

이번 전시엔 텍스트와 함께 병렬된 작품이 눈에 띄었다. 양정욱, 고정원 작가다. 양정욱 작가는 작품과 함께 짧은 이야기로 작품 설명을 대신했다. 작품과 함께 놓인 작품은 작가 의도를 여러 방면에서 상상할 수 있게 했다. 고정원 작가는 낡고 오래된 간판을 소유한 영업장에 찾아가 새 간판을 달아주고 헌 간판을 가져오는 프로젝트를 전시했다. 그 중 <희망슈퍼> 작품은 간판과 그 앞에 짧은 소설이 담긴 책이 함께 배치했다. 간판으로만 읽을 수 없는 감정의 서사를 소설을 통해 관객이 따라올 수 있게 했다. 작품에 대해 작가가 말을 아끼는 건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유가 관객과 진정한 소통을 하기 위해 의도를 감추는 것이라면 소통을 위해 작가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광장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게 서로 소외되지 않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할 방법이 되지 않을까.

 

<희망 수퍼> 고정원

 

개인적으로 코로나19 이후 미술 전시는 미술 작가와 글 작가가 함께 콜라보로 진행해도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미술 작가는 미술의 언어로 글 작가가는 시 언어로 작품을 함께 완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관객도 더욱 작가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안규철 작가의 <기억의 벽>이라는 작품을 설명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그는 8,600장의 메모지를 걸 수 있는 못을 벽에 박고 관객들에게 메모지에 단어 하나씩 써 달라고 했다. 이때 주제는 제일 그리워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게 관객과 함께 모은 단어를 벽에 모아 전시한 작품이 <기억의 벽>이다. 이 작품을 통해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특별히 다른 사람이 아니란 것을, 8,600여개의 단어를 보며 알게 된다. 다 비슷한 것을 그리워하고, 비슷한 걸 아쉬워한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안규철 작가는 말했다. 일찍이 상실을 느꼈다는 그가 그리움을 함께 나누는 방식이다. 나에게, 우리에게 일어난 상실에 관해 이야기할 땐 이처럼 서로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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