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이주, 이동한 경계,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
《광주비엔날레 커미션전》
글·사진 이용원
1.
제법 큰 거울은 하사관 몇이 돈을 추렴해 기증한 모양이다. 거울에 남은 흔적이 이런 사실을 전한다. 거울을 기증한 날짜는 1980년 3월 15일이었다. 우리가 보낸 여러 날 중 하루다. 다만, 옛 국군광주병원에 걸렸던 거울이라는 사실이 특별하다. 1980년, 국군광주병원에 저 거울을 걸어두고 즐거웠을, 얼굴 모를 그들도 불과 두 달여가 지난 후에 닥칠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글자와 숫자, 두발 규정 등 다양한 메시지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을 문신처럼 몸에 새긴 거울 50여 개를 40년이 지나 옛 국군광주병원 부속 시설인 옛 국광교회 천장에 매달았다. 모두 옛 국군광주병원에서 떼어낸 거울이다. 거울은 다양한 높이와 각도에서 주변을 반영하며 정지한 것과 움직이는 모든 걸 투영했다. 한 공간 안에서 거울을 통해 겹치고 퍼지며 소란스럽게 얽힌 이미지는 오히려 진실에 다가가는 구체적인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듯하다. 옛 국광교회에 걸린 거울은 1980년 그날들의 일은 물론이고 그 뒤로 벌어진 모든 일을 기억한다. 많은 예술 작품에서 거울이 특별한 ‘장치’로 구실을 하는 이유도 이런 속성 때문일지 모르겠다. 편견 없이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물건이어서, 그 앞에 서면 어떤 거짓말도 다 들켜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간질거린다.
천장에 매단 거울은 영국 출신 설치 작가인 마이크 넬슨의 <거울의 울림(장소의 맹점, 다른 이를 위한 표식)>이다. 이 작품은 2018년 제12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처음 전시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전시 기획을 위해 옛 국군광주병원 공간을 배회하던 작가는 미국에서 왔을 법한 경첩이나 철물 부속, 문, 전등 스위치와 ‘Made in japan’이 선명하게 찍힌 세면대 등 다양한 병원 건물 자재를 통해 한국사를 대면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거울을 발견했다. 마이크 넬슨은 거울을 시간의 증인이자, 기록이 쌓인 봉인된 역사로 보았다. 이 거울을 떼는 행위는 봉인을 해제하는 행위였고 한때 예배 공간으로 사용한 옛 국광교회 안에 설치하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의미 있는 공간이나 사건을 해석하고 기록하며,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무척 유용한 방식 중 하나가 예술적 접근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 측면에서 2021년 광주비엔날레 커미션전이 열린 옛 국군광주병원이 주는 인상은 강렬했다. 여운이 길다. 쉬 가실 것 같지 않다.
2.
옛 국군광주병원은 1964년 광주시 서구 화정동에 건립한 5∙18 사적지 23호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을 연행한 계엄사는 시민을 고문하고 폭행했다. 당시 다친 시민 을 이곳 국군광주병원으로 보내 치료했다. 그 과정에서 계엄사는 수사관을 보내 치료 과정에 있는 시민을 취조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 2007년 함평으로 국군병원을 이전하면서 기존 건물은 방치했다. 이제 5∙18 사적지 중에 원상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이 많이 남지 않아 광주국군병원은 더 중요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광주비엔날레재단이 광주비엔날레커미션전을 열었다.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 개최하지 못한 광주비엔날레를 올해 4월 1일부터 5월 9일까지 열었다. 광주비엔날레커미션전은 본 전시 이외에 부대 전시 성격으로 기획해 진행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광주비엔날레커미션은 일회성 단기행사에서 벗어나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비평적인 질문과 비엔날레를 통한 지속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2018년부터 시작했다.”라며 “광주의 역사, 기억, 트라우마, 전통, 건축 및 정신적 유산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을 통해 광주 정신과 동시대 다양한 이슈 및 담론을 조명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커미션은 옛 광주국군병원을 비롯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 5관과 광주문화재단에서 열었다.
광주비엔날레커미션 주요 전시 공간 중 하나인 옛 국군광주병원에서는 메이투데이(MaytoDay) 프로젝트 전시도 함께 열었다. 메이투데이는 202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선보인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작품을 연구하고 전시로 재조명하고자 기획한 프로젝트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5월의 일상성을 얘기하고 그 시점을 현재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다른 나라, 다른 지역 민주화 운동과 연결하고자 서울과 타이베이를 시작으로 쾰른, 부에노스아이레스와도 연대를 도모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올해 광주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기획했다.
2021년,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이라는 주제로 열린 13회 광주비엔날레 기간에 옛 국군광주병원을 채운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더욱 풍성했다.
3.
옛 육군광주병원에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위병소다. 코로나19 상황이 아니었다면 활짝 열렸을 문은 예약을 통해 제한한 인원에게 개방했다. 덕분에 위병소는 과거 그 시절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 중이었다. 위장복을 입고 총을 든 군인 대신 도슨트가 그 공간을 차지했다는 것만 차이가 있었다.
위병소 앞에 옹기종기 모인 관람객은 흡사 육군광주병원에 입원한 소중한 사람을 면회라도 온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10여 년 넘게 텅 비었던 건물 앞에 등장한 소규모 군중을 멀뚱히 바라보는 건물 정면부 낯빛은 한없이 공허했다.
옛 국군광주병원은 2층 건물이었다. 푸른 숲에 둘러싸인 흰색 건물은 그리 규모가 크지 않아 보였다. 위병소에서 임수영 큐레이터를 만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나뭇가지처럼 중심 줄기를 두고 양옆으로 건물을 달아냈다. 생각보다 제법 규모가 컸다. 볼 수 없었던 공간은 건물 정면부 뒤쪽으로 숨어 있었다.
건물 우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바라본 건물 외벽은 온통 담쟁이 넝쿨이 덮었다. 가지처럼 뻗은 건물과 건물 사이 공터에는나무와 각종 식물이 무성하게 자랐다. 본관 건물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들어선 조그만 회색빛 부속건물은 이미 푸른 넝쿨 식물이 온통 감싸며 형태를 무너뜨리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파괴 행위로 보이지는 않았다. 상처와 슬픔을 치열하게 온몸으로 감싸 안으려는 처절함이 엿보였다. 10년이 넘은 시간, 버려진 건물을 감싸 안은 건 결국 위대한 자연이었다. 감흥과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 예술이 지닌 본령이라고 할 때, 옛 육군광주병원과 부속 건물에 인간의 간섭없이 자연이 가하는 일련의 행위는 그 자체로 작품이었다.
임수영 큐레이터를 따라 마침내 옛 국군광주병원 공간으로 들어섰다. 체온을 체크하고 방문자 명부를 작성하는 공간에는 건물을 ‘병원’으로 사용하던 당시 사용했던 철제 책상이 고스란히 남았다. 공간 한쪽에 녹물이 묻은 채 삐딱하게 남은 세면대조차도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첫 공간은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한 일종의 게이트 구실을 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 시간이 얽히며 더는 흐르지 않는 ‘점’으로 멈춘 시간으로 들어가기 위한 공간이다.
10여 년, 우리가 방치한 역사 현장은 자연과 콜라보하며 인류에게 강렬한 영감을 주는 공간으로 진화 중이었다.
4.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는 게이트처럼 느낀 공간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일행이 없었다면 게이트 안에 붙들려 한참을 더 헤맬 참이었다.
짧은 복도를 지나 만난 첫 번째 작품은 <신의 언어>였다. 조그만 성당이었던 공간이다. 이곳에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을 설치했다. 공간 안에 실을 연결해 또 다른 공간을 만들었다. 실 구조물은 낱장으로 뜯긴 성경을 붙잡아 둔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라인이 횡으로 종으로 얽혀 만들어낸 공간 아래 들어서면 고해성사실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성경 낱장은 그 자체로 해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듯 부유한다.
작가는 “우리 마음과 정신과 감정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고 우리의 신념과 결정의 원천이 된다. 몰래 기독교를 믿었던 교인들은 자신들이 믿을 만하도록 기독교를 변형시켜야 했다. 이는 정신적 이주다.”라고 말한다.
한동안 다급한 발소리로 가득했을 병원 복도에 창문을 넘어 들어온 개나리 가지가 흔들린다. 심지어 초봄에는 노란색 꽃을 활짝 피었더란다. 온통 회색빛 공간에 노란색 개나리라니. 개나리 가지가 넘어온 복도를 지나 마주한, 무채색 공간에는 의자를 놓았다. 그 위에 앉은 의족은 그래서 더욱더 강렬했다. 작가가 의도한 것처럼 삶과 죽음,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공간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이 모호함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치유’를 사유하는 작가, 카데르 아티아 작품 <이동하는 경계들>이다. 개인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치유할 수 없는 상흔이나 트라우마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작품 설명 중 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경계는 물질계와 무형의 세계,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실제와 환상 세계 간의 경계다. 작가가 말하듯 집단적 트라우마는 모든 근대성의 환영이다. 어쩌면 근대를 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대성의 환영은 새로운 트라우마를 끊임없이 재생산 하며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지도 모르겠다. 경계를 계속 이동하면서 말이다.
전시 관람 동선은 한 섹터를 마무리하면 반드시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반복하도록 만들었다. 공간 전체가 풍기는 느낌과 분위기를 완전하게 이해하기에 좋은 방식이었다. 공간 밖으로 나왔을 때 주변을 충분히 인지하고 다시 내부에서 작품과 함께 창문을 통해 눈에 들어오는 바깥 풍경을 접하면서 작품이 담은 메시지를 더욱 풍성하게 받아들인다. 갈라진 틈을 따라 공간 안으로 넘어온 담쟁이 넝쿨이나 햇살을 가득 받으며 찬란하게 생명력을 뽐내는 나뭇잎이 그런 요소다. 공간이 만들어낸 마법이었다.
5.
넓은 홀에는 흡사 먼 우주에서 날아온 듯한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설치 작품 <오바드Ⅴ>를 만났다. 주최 측 설명을 보면, 우주선이 아니라 타틀린 타워와 에펠탑 같은 모더니스트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한다. 2019년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전시할 때는 탑 형태였지만 천정 높이 때문에 상단부를 분리해 별도로 설치했다. 전시 공간 때문에 하나의 작품을 두 개로 분리한 셈이다.
이 작품은 2018년 철거한 비무장지대 감시초소에서 나온 철조망 등을 활용해 만들었다. 필요에 따라 녹여 새로운 부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작품을 둘러 계속 반짝이는 LED 불빛은 모스 부호다. 해석이 어렵다. 작가도 굳이 해석을 요구한 것은 아닌 듯하다. 모스 부호는 오래 전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지만 범용적인 안전성을 보장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문명이나 문화에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할 만하다. 작가는 모스 부호를 통해 소통을 희망한다는 간절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작품에 설치한 LED 조명 판에 “For the next 1million years, the cycle will carry the obliquity between 22도13분44초 and 24도 20분 50초”라는 문장이 흐른다. 이 문장은 2012년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한 18차 기후협약당사국총회에서 나온 문장이다.
향후 100만 년 사이에 지구 기울기를 대략 예측했을 때 저렇다는 이야기다. 인류가 직면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내포한 예측이다. 탑의 형태를 띤 작품은 어쩌면 인류가 저지른 다양한 분쟁과 기후변화 등이 초래할 지구와 인류의 미래에 관한 경고 메시지를 담은 채 먼 미래에서 날아온 우주선일 수도 있다. 그 우주선이 5∙18광주민주화운동 사적지인 옛 국군광주병원 홀에 있다는 건, 분명 우연은 아니다.
임민욱 작가의 <채의진과 천 개의 지팡이>라는 작품도 넓은 공간에 가득 찼다. 지팡이는 한국전쟁 직전 국군에 의한 민간학살에서 어머니와 누이 등 가족 9명을 잃고 살아남은 고 채의진 작가가 만든 작품이다. 평생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산에 오르며 나무로 깎았던 지팡이다. 고 채의진 작가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 고독감은 구불구불한 지팡이에 영혼으로 담겼다.
마치 유해처럼 단 위에 뉘어 전시한 지팡이와 좁은 공간에 무더기로 쌓거나 세워 둔 지팡이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현재에 이른 상처와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각기 다른 형태를 지닌 지팡이가 모두 다른 분노와 좌절, 고독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 지팡이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너무 많다. 그 앞에서 느끼는 먹먹함은 묵직한 돌덩어리처럼 가슴에 박힌다.
6.
넓은 홀에 기둥을 끼고 하얀 진흙을 두툼하게 칠했다. 공간 내부 온도와 습도에 따라 진흙은 변화한다. 벗겨지거나 말려 일어나거나 갈라진다. 그 사이사이 필요 없어서 버린 물건을 오브제로 배치했다. 오브제가 놓인 공간의 진흙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단단하게 바닥에 붙어 어떤 움직임도 없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놓인 오브제는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 그렇다고 쉬 떠나지도 않는다. 겉으로는 무기력해 보이지만 옹골찬 기운으로 단단하게 그곳에 남은 다양한 물성의 사물이 흡사 굴곡진 역사를 살아낸 우리 민중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연숙 작가의 <아무도 모르는 일 0518>이었다. 이 작가 작품을 설치한 공간은 넓은 홀이다. 그 한쪽 벽면에 흡사 수납 창구가 아니었을까 싶은 넓은 창은 이제 틀만 남았다.
유리가 없는 창틀은 임남진 작가 작품 <환영>의 프레임으로 다시 태어났다. 위태로워 보이는 종이배 위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일 0518>에서 본 오브제와 겹치며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 프레임 바깥을 보면 이 작가 작품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실 프레임 안팎을 구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정정주 작가가 흰색 폼 보드로 제작한 (구)국군광주병원 건축 모형은 공간 곳곳을 이주하며 흐트러진 공간 지각의 혼란스러움을 한 번에 잡아준다. 평면을 이동하며 좁은 틀에 갇혔던 인식은 모형 앞에서 비로소 구체성을 띠며 입체적인 형태를 갖춘다. 작품은 단순한 모형은 아니었다. 건축 모형 안에 설치한 카메라로 관람객을 촬영해 벽면에 설치한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다. 관람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동시에 작품에 피사체로도 존재한다. 카메라와 스크린은 건축 모형을 실체화하는 도구다. 이 과정은 ‘메이투데이’ 기획 의도를 잘 보여 준다.
관람객은 5월에서 현재로 이동하며 문선희 작가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목소리>를 만난다. 중환자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경사로는 한때 삶과 죽음이 오갔던 상징적 공간이다. 그 경사로를 데이지꽃으로 가득 채웠다. 마치 숲속 오솔길처럼 위로가 가득한 꽃길을 걸어가면 스피커를 통해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선희 작가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시민을 만나 인터뷰를 통해 당시 기억을 들춰내고 이를 오늘을 사는 광주 지역 초등학생의 목소리를 통해 구술로 풀어냈다. 꽃과 아이들의 순수한 목소리는 치유다.
공간을 휘돌아 다시 건물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푸르른 녹음과 맑은 하늘, 공터를 돌며 운동하는 사람들, 소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눈앞에 풍광을 즐기는 시민, 모든 풍광이 새롭다.
[2021년 5월호 월간 토마토 전시리뷰 中]
전시 일정 : 2021. 4. 1 ~ 2021. 5. 9
10:00 ~ 18:00
매주 월요일 휴관
www.gwangjubiennale.org/gb/eventCH/exhibitio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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