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읽는 동화 - [유통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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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어른들이 읽는 동화 - [유통기한]

by 토마토쥔장 2021.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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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읽는 동화 - 《유통기한

이선희(동화작가)

 

출처 : pixabay

 

“계십니까?”


그가 찾아온 것은 정오가 막 지난 무렵이었다. 나는 자다가 화들짝 깨어 문을 열었다. 문 밖에 그가 서 있었다. 분홍색 하트 무늬 잠옷 바람으로 나간 것이 부끄러워 나는 얼굴을 붉혔다. 1월의 찬바람이 휭 불어왔다. 그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 뒤 얼른 문을 닫았다.

 


“오실 거면 미리 연락이라도 주시지…….”

 


“점검은 불시에 이뤄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의 말투는 칼날처럼 날카롭다. 나는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정신 위생 점검 기간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후회, 미련, 집착 등은 없는지 방부제가 과도하게 처리된 불안, 걱정, 근심 등은 없는지 쓸데없는 잡념이나 허황된 공상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점검하는 것이다. 그는 정신 위생 점검 감독관 중에서도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필시 감독관은 랜덤으로 선정된다고 하였는데 어쩐 일인지 3년 째 그는 나를 찾아왔다.   

 


“자, 열어보십시오.”

 


나는 바짝 긴장한 채로 머릿속을 열어보였다. 전날 잠 못 들고 뒤척이며 한 생각들이 영 마음에 걸렸다. 새벽에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들이란 쓸데없거나 허황되기 마련이니까.

 


“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 여기 이것 좀 보십시오.”

 


그가 내 머릿속에서 꺼내어 보인 것은 자꾸만 불어가는 뱃살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이가 드니(어쩌면 술 때문, 혹은 야식 때문이라 할지라도) 한번 찐 뱃살을 빼는 것은 무척 힘이 들었다. 1년 전에 너끈히 들어가던 바지가 도저히 잠기질 않아 바지를 입는 대신 원피스를 입는 서러움을 감독관이 알 리가 없다.   

 


“도대체 이런 쓸데없는 것을 왜 머릿속에 담아두는 겁니까?”

 


점검표에 상세히 기록한 뒤 그는 위생장갑을 낀 손으로 고민을 집어 들어 하얀색 수거 봉투에 담았다. 나는 다시 그의 앞에 다소곳이 머리를 내밀었다. 

 


“히익—!”

 


그가 이토 준지 만화에나 나올법한 소리를 내질렀다. 위생장갑을 하나 더 끼는 그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엄지와 집게손가락 끝으로 간신히 그가 집어 올린 것은 오래 전에 헤어진 사람의 이름이었다. 

 


“여기 써져 있는 유통기한을 보십시오. 무려 3년이나 지난 것입니다!”

 


나는 그게 그렇게 오래된 것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출처 : pixabay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있으면 건강한 생각들도 쉽게 부패한다는 것을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의 말이 회초리처럼 따가웠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상책이겠거니 싶었다. 
점검표에는 위반 사항이 줄줄이 적혀갔다. 무려 백일곱 가지나 되었다. 하얀색 수거 봉투가 열 세 봉지나 나왔다. 

 


“제 감독관 경력 중 당신이 최곱니다. 

당신의 머릿속은 온통 썩은 생각과 불필요한 것들로 가득 차 있군요. 

 

그런 당신의 머리를 회전시키느라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낭비되는지 아십니까? 

 

탄소 배출은 어떻고요! 앞으로 100일간 영업 금지, 벌금은 추후 고지서로 확인하십시오. 분납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일시불로 결제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출처 : pixabay

 


그가 쌩— 하니 가버렸다. 

 


머리가 텅 비니 배가 고파졌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와 쉬어빠진 김치, 변색된 버섯과 말라버린 사과.

 나는 냉장고 문을 도로 닫았다. 엄마는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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