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런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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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르포

혹시, 이런 된장

by 토마토쥔장 2021.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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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런 된장

정덕재의 일상르포

정덕재(시인, 르포작가)

 

출처 : 픽사베이

 

된장녀와 된장남이라는 유행어가 나오면서 된장이라는 말이 다소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된장이 있는 밥상은 여전히 정겹다. 직장인들은 점심때마다 ‘오늘은 뭘 먹지’ 이런 고민을 반복해도 정작 메뉴는 그동안 먹었던 음식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색다르게 파스타를 먹자는 만년 과장의 제안에 직원들은 무리수를 두지 말라며

 

된장찌개 드시죠”, “김치찌개 어떤가요? 이런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혼밥 문화가 확산되고 있어도 어머니가 끓여 주는 된장찌개는 다양하게 등장하는 신메뉴를 한방에 정리하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길든 음식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입맛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은 맛의 보수성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간혹 아들 녀석과 외식을 할 때 파스타를 먹는다. 물론 입맛에 딱 맞는 것은 아니다. 한번은 크림파스타를 주문했는데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잠시 주춤하더니 물었다.

 

“아버님, 좀 느끼한데 괜찮으시겠어요?”

 

내가 어째서 네 아버지냐고 따질 뻔했다. 오기가 발동해 먹었다.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에서 시원한 김치 한 조각을 먹는 것으로 입안을 정리한 게 흠이라면 흠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오랫동안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게 김치와 된장이다.

 

 

나는 지금도 김치와 된장은 팔순 넘은 어머니 집에서 공수해 먹는다. 김치는 형제들이 모여 한꺼번에 김장을 하기 때문에 김치 담그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지만 된장은 그렇지 않다. 언제 담그는지조차 알 수 없어도 시골집 뒷마당 항아리에는 언제나 된장과 고추장이 가득하다. 올해 초 문득 된장 담그기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언제까지 된장을 가져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된장 만들기 도전

메주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기엔 공정이 복잡하고 여건이 좋지 않아 포기를 했다. 아파트에서 콩을 삶고 메주를 말리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메주를 사기로 했다. 먼저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메주 파는 곳이 의외로 많았다. 주로 한 말 기준으로 판매를 했다. 메주 4~5개 덩어리를 한 말로 표기를 했다. 지금의 도량형 기준으로 ‘말’이라는 단위를 잘 쓰지 않아서 그런지 ‘말’이라는 단위가 반가웠다. 막걸리 한 말, 쌀 한 말을 쓰던 때가 떠올라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페이스북 친구 중에 된장을 생업으로 만드는 이가 있어 이곳에서 메주 세 덩어리를 주문했다. 상자 안에는 잘 포장된 메주와 함께 붉은 고추, 숯이 들어 있었다. 된장 담그는 레시피도 친절하게 놓여 있었다. 잘 마른 메주 냄새는 구수했다.

 

그다음 중요한 게 소금이다. 어떤 소금을 쓸지 고민하며 자료를 찾아보니 소금의 종류도 다양했다. 가장 일반적인 게 천일염이다. 천일염은 장판염과 토판염으로 나뉜다. 바닥에 장판 같은 것을 깔아 소금을 얻는 게 장판염이고 토판염은 갯벌 흙바닥을 다져서 평평하게 만든 뒤 그 위에서 소금을 생산한다.

 

그 밖에 죽염자염이 있는데 죽염은 대나무 통에 천일염을 넣어 구워 만든 소금이다. 몇 번 굽느냐에 따라 3회 죽염, 9회 죽염 등으로 나눈다. 죽염은 제조 공정에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가격이 비싼 편이다. 나는 태안에서 나는 자염을 골랐다. 자염은 염도를 높인 소금물을 끓여 만든 것이다. 자염은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먹던 소금인데 일제강점기에 널리 보급된 천일염에 밀려 오래 전에 잊힌 우리의 전통소금이다. 처음에는 건강에 이롭다고 알려진 죽염을 쓰려고 했지만 9회 죽염으로 소금물을 만들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자염을 선택했다.

 

메주가 온 다음 소금이 배달됐고 마지막은 물이다. 동네 약수터에서 물을 뜨려고 잠시 생각했지만 게으른 탓에 생수를 선택했다. 대형마트에 가면 생수 브랜드는 10여 가지, 제주도에서 왔다는 물부터 강원도 심산유곡의 물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모두 좋은 물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신뢰감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왔다.

 

아빠, 그렇게 해서 된장이 제대로 될까? 그러지 말고 할머니 집에서 가져오지

언제까지 할머니한테서 된장을 가져다 먹을 수 있겠냐?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드네.

 

메주 세 덩어리로 된장을 담근다면서 호들갑을 떠는 나를 보며 아들은 할머니 된장을 떠올렸다. 김치 된장 고추장 모두 아들은 할머니 브랜드에 길들어 있다. 그렇다 보니 내가 만든다는 된장에 다소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이다. 어설픈 된장 담그기 도전을 하는 나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된장 담그는 날

된장은 정월에 담근 장이 가장 맛있다고 해서 많은 이들이 ‘정월장’을 담근다. 추운 정월에는 짜게 담지 않아도 상하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아 장 담그기에 알맞은 때라는 것이다. 정월 중에서도 말날을 선호한다. 말날에 된장을 담그는 설은 여러 가지로 전해 오지만, 직장인들에게 택일은 쉬는 날이 제일 좋다. 나는 토요일을 된장 담그는 날로 잡았다.

 

천일염의 경우 소금을 물에 녹여 하루를 재운 뒤 불순물을 걸러 내 담그지만, 끓여서 만든 자염은 곧바로 소금물을 만들어 메주를 넣을 수 있다. 오래 전에 쌀독으로 쓰던 항아리를 잘 닦은 뒤 소금물을 담았다. 염도는 달걀로 맞췄다. 달걀을 소금물이 들어 있는 항아리에 띄워 5백 원짜리 동전만큼 표면이 떠오르면 염도가 맞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아파트는 햇볕을 길게 받지 못하기 때문에 염도를 조금 더 높였다.

 

아빠, 바닷물을 떠오지 그랬어? 지금이라도 내가 갔다 올까?

 

어설픈 동작 하나하나가 우습게 보였던지 아들은 슬쩍 농담을 던졌다. 몇 번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첫 번째 시도라는 점에서 나에겐 이렇다 할 대응도 부재했다.

 

샘표 된장 맛있는데, 아니면 종갓집 된장 사 먹든지.

 

농담은 하나둘 늘어났다.

 

맛없으면 상처 났을 때 된장 바르면 되겠네.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던 듯, 된장과 얽혀 있는 얘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빠, 어릴 적에 고기 잡을 때 어항에 된장 넣었어?

 

된장을 다 담그기도 전에, 아들의 눈에는 실패한 된장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소금물에 메주를 넣고 고추와 대추 다시마 두 장 그리고 숯을 넣었다. 광목천을 덮어 벌레가 들어가지 않도록 고무줄을 두르는 것으로 작업은 모두 마무리됐다.

 

된장을 담근 지 이제 열흘 남짓, 수시로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았다. 아직은 상태를 알 수 없다. 볕이 좋은 날엔 수시로 항아리 뚜껑을 열어 놓고 있지만 일조량이 많지 않아 걱정을 놓기엔 아직 이르다.

 


 

이런 된장

된장을 담근 지 50일가량 지나면 된장 가르기를 한다. 된장과 간장을 분리해 본격적인 숙성에 들어가는 것이다. 요즘은 베란다를 바라보는 횟수가 점차 늘어난다. 항아리 안의 변화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오묘한 변화는 계속 진행 중일 것이다. 집집마다 된장 맛이 다른 것은 그 집안의 특성이나 각각의 재료에서 기인한다. 바람의 세기가 다르고 햇볕이 내려앉는 시간이 저마다 다르고 재료도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된장은 모두 유일한 맛을 갖는다.

 

사월 초쯤에 된장을 가르면서 된장모독을 하는 이런 말만 나오지를 않기 바랄 뿐이다.

 

이런 된장…

 

 

낙심한 아빠의 표정을 보며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은 혹시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이 앞선다.

 

 

할머니 집에서 가져다 드시라니까, 아실 만한 분이 참 말을 안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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