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한때는 따뜻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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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르포

너도 한때는 따뜻했구나

by 토마토쥔장 2021.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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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한때는 따뜻했구나

정덕재(시인, 르포작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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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짜장면 먹을까?”

 

아흐레 만에 집에 들어온 나한테 아들이 던진 첫마디였다. 희미하게 웃어 주었다. 녀석도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일주일의 금식과 이틀간의 미음을 끝내고 돌아온 사람에게 내뱉는 첫마디 치고는 경쾌한 농담이었다.

 

  지난해 12월 13일 새벽, 화장실 변기에는 중국집 춘장 색깔을 띤 흑변이 가득했다. 잠이 덜깼나 싶어 유심히 살펴봤다. 역시 짙은 어둠이었다. 속 쓰린 배를 쓰다듬으며 소파에 누웠다. 식은땀이 흘렀다. 잠시 후 다시 화장실로 직행, 역시 변기는 먹다 남은 짜장면 그릇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것은 아침 7시, 혈압을 재고 심전도 검사를 하고 피를 뽑고 링거를 맞았다. 매번 다른 간호사와 의사가 다가와 반복된 질문을 했다. 똑 같은 답을 한 것은 네 번이었다,

 

“배가 아픈가요” “언제부터 증상이 나타났나요?” “아침은 먹었나요” 환자를 놓고 의료진이 공부하는 분위기였다.

 

 

  아침 8시 30분 내시경실에 누웠다. 십이지장 출혈의 범위는 예상보다 매우 넓었다. 의사는 특정한 부분에서 피가 나오면 처치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했다. 내 경우엔 동전만한 크기의 궤양 주변에서 스멀스멀 피가 새어나와 지혈을 하면 바로 옆에서 또 피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출혈을 멈추기 위해 레이저로 처치를 했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지진다고 한다. 여러 번 레이저로 지졌다. 처치를 끝내고 난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양팔에는 여러 개의 수액과 지혈제, 그리고 누군가의 피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수혈을 받는 느낌은 묘했다. 피의 주인이 누구일까 잠시 상상을 했다. 전날 술을 많이 마신 공무원이 자원봉사 점수가 부족해 마지못해 헌혈차에 누워 피를 뺀 것은 아닐까. 혹시 육중한 몸매를 보유한 아줌마가 피라도 뽑으면 몸무게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헌혈을 했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 소보로 빵이 먹고 싶어 친구들과 함께 헌혈차에 올랐던 나의 헌혈 첫 경험도 떠올랐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오전에는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반나절 동안 몇 사람이 또 들어와 십여 개의 침대는 금세 찼다. 얼굴이 노란 남성은 두 팔이 묶여 있었다. 묶여 있다고 해서 죄수처럼 단단히 묶은 것이 아니라 양팔을 함부로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내는 상체를 들어 입으로 묶은 끈을 풀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지쳐 쓰러졌다. 두 세 번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손으로 주사바늘을 빼려고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대각선 방향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는 멀리서 봐도 곱게 늙은 모습이었다.

 

“내가 죽을라고 소주 한 병 하고 약을 먹었는디 아직 안 죽었네”

 

“그런 소리 마셔요. 죽긴 왜 죽어요”

 

할머니는 긴 한숨을 내쉬었고 간호사는 손녀처럼 살갑게 반응을 받아주었다.

 

“소주 마시고 취해서 쓰러졌나?”

“네, 앞으로는 술 드시지 마세요”

“안주도 없이 먹어서 그런가”

 

할머니의 입에서 안주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몇 시간 후 할머니는 딸과 아들의 잔소리를 들으며 병실에서 나갔다.

 

“엄니는 소주 마시지 말라니까…”

“얼마 안 마셨는디”

“얼마 안 마시기는, 한 병이나 드셨더만”

“너는 한번 마시면 세병도 더 먹잖아여”

“여기서 왜 내가 먹는 술이 나온댜. 참 나 원”

 

 금식을 하는 내내 팔뚝으로 수액과 지혈제가 들어왔다. 이틀 뒤 다시 내시경 검사를 했다,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지졌다. 사흘 뒤 다시 내시경으로 관찰을 했다. 그제서야 피는 멈추었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세 번의 내시경 검사를 하며 처치를 했다. 나는 겁이 많아 수면 내시경은 하지 않고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치료를 받았다. 수면내시경을 하다가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위와 십이지장 검사는 늘 새파란 정신으로 한다.

 

입원에 있는 동안 아들 녀석이 하룻밤을 잤다. 다행히 2인 병실에 나머지 침대가 비어있던 날이었다.

 

 “아빠, 솔직히 말해 봐, 술 많이 마셔서 그렇지”

 “아니, 술 마셔서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술 때문에 그렇잖아”

 “술이 무슨 죄가 있다고”

 “지금 피똥 싸면서도 술을 옹호하는 거야.”

 

 녀석의 잔소리는 모처럼 승기를 잡은 병사의 기관총처럼 쏟아졌다. 병실에 간호사가 수시로 드나드는 바람에 잔소리는 자주 맥이 끊겼다. 2인 병실에서 아들과 지낸 하룻밤은 훌쩍 지나갔다.

 

 

 의사는 출혈의 원인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어떤 명의가 와도 원인을 정확히 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짐작 가능한 이유는 있지만 꼭 집어 말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식생활, 음주, 스트레스, 운동부족, 생활습관, 주변환경 등 적당한 비중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지난해 이맘 때 심장 스텐트 시술 이후 매일 먹기 시작한 혈전용해제도 십이지장 출혈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니 원인을 한 두 가지로 설명하기란 곤란하다. 용해와 응고의 차이를 보면서 삶과 죽음이 서로 붙어 있는 한 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십이지장 출혈을 막기 위해서는 혈액 응고가 빨리되는 약을 써야 할 테고, 반면에 혈액이 응고돼 혈전이 생기면 심장혈관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어, 호흡기내과와 심장내과는 서로 상충될 수 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심장약을 끊었다. 호흡기내과 의사는 심장에 이상이 오는 게 걱정된다고 말했다. 나도 걱정은 되긴 했지만 출혈을 멈추는 처방이 먼저라는데 동의했다. 간호사는 하루에 한 번씩 피를 뽑아갔다. 피수치를 보면서 출혈여부를 관찰한다는 것인데, 이 또한 신기한 일이었다. 피 한 모금으로 여러 질병을 가늠할 수 있는 의학기술은 놀라운 일이다.

 

 

  2인 병실에 있는 아흐레 동안 세 사람이 옆 침대를 거쳐갔다. 보수 논조의 한 신문을 들고 온 오십대 후반의 남자는 대장 정밀검사를 받으려고 입원을 했다. 그는 종편 케이블 뉴스를 볼 때마다 작은 목소리로 코멘트를 했다. 북한에 세금을 퍼준다느니, 기업을 살려야 한다느니, 푸념과 비판을 함께 뱉었다.

 

 

 이후엔 간단한 눈 수술을 한 70대 노인이 들어왔다. 보호자인 30대 딸이 리모컨을 들자, 노인은 “6시 내고향” 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한쪽 눈으로도 시골 마을의 사람살이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 노인이 2인실에 머문 것은 2시간 남짓, 이후 6인실로 옮겼다.

 

“어르신, 다른 곳으로 가시나봐요?”

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비싸서”

 

 

 마지막으로 침대를 차지한 이는 내 또래다. 그는 채널을 돌리다가 ‘나는 자연인이다’에 한참동안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면서 연말 납품이 밀렸다는 걱정을 했다.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도 납품 관련한 내용이었다. 전화통화를 요약하면, 남편이 없는 자리에서 부인은 용감하게 납품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가 들릴 듯 말 듯 나직하게 한마디 했다

 

“먹고 사는 게 쉽지 않네”

 

 12월 21일, 병원에 들어간 지 9일 만에 처음으로 바깥 공기를 마셨다. 미세먼지라도 반가웠다. 차창을 열고 심호흡을 했다. 새로 포장하는 아스팔트 냄새가 가득 밀려왔다. 아스콘에서 피어오르는 열 기운과 검은 아스팔트 도로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너도 한때는 따뜻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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