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읽는 동화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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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어른들이 읽는 동화 - [기타]

by 토마토쥔장 202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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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이선희


기타가 헤어지자고 했다. 만난 지 이제 3개월이 되었다. 막 좋을 때였다. 더 좋아질 때였다. 그런데 기타는 왜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는 거지?

 

“갑갑해.”

 


기타가 말했다. 

 


안다. 너무도 잘 안다. 기타는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을. 그를 이 좁은 세계에 가둬둘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때?"

 


“기다리는 건 부담스러워.”

 


기타는 자신의 육체뿐만이 아니라 영혼조차도 옭아매지 말아달라고 했다. 숨이 막힌다고 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거야.”

 


기타 줄이 파들파들 떨렸다. 진정시켜주려고 손을 갖다 대자 기타는 매정하게 내 손을 퉁겨냈다. 

나는 비참한 마음으로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제까지, 기타가 애칭으로 부르던 손가락들이었다. 

집게손가락은 ice cream, 가운뎃손가락은 monkey, 엄지손가락은 pig, 약손가락은 apple. 

"처음 두 손가락에 당신이 애칭을 붙여주었을 때, 우리가 불렀던 노래를 기억해 봐.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그만, 그만! 지긋지긋해!”

 


우리는 고작 3개월을 만났다. 새끼손가락에는 아직 애칭이 없었다. 우리에게는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이 이별은 느닷없다. 

"혹시 다른 사람이 생긴 거야?"

 


“…….”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짐작 가는 사람이 있다. 기타 학원 강사. 그 사람은 처음부터 기타를 탐냈다. 

 

“소리가 좋은 기타네요.” 

 

입에 발린 말도 잘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그 사람은 곧잘 나에게서 기타를 가져가 시범을 보여주었다.

 기타는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난 얼굴이었다. 내 앞에서보다 그 사람 앞에서 훨씬 행복해 보였다. 기타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때론 수다스럽기까지 했다. 

 

 

그래,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했다. 기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나는 밤낮 원숭이 꼬리로 아이스크림을 받고 돼지 코로 사과를 던지는 쇼를 연습했다. 이제는 아무 소용없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기타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기타를 마주 보았다. 

기타 줄은 좀 전의 떨림이 멈추고 이제는 아무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정말 떠나는구나. 

 


“갈게.”

 


그런데 너 없이 나는 살 수 있을까?

 


“잘 지내.”

 


기타가 떠났다. 

 


나는 당장에 기타를 뒤쫓아 갈 수도 있었다. 

커다란 가위로 기타의 줄을 몽땅 끊어버리면 핑! 팽! 기타가 지르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듣겠지. 

 

무릎으로 내리쳐서 기타의 목을 부러뜨리면 기타의 숨이 단번에 뚝, 끊어지는 것을 보겠지.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다면 기타의 몸통을 바위로 내던져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거야.

 

 


언젠가 나는 피아노의 몸통이 부서지는 것을, 플루트의 목이 부러지는 것을, 바이올린의 줄이 끊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기타를 보내고 나는 남았다. 아이스크림도 원숭이도 돼지도 사과도 없었다. 

더 이상 쇼를 위해 연습하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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