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기술 집약된 특화거리가 유명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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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기술 집약된 특화거리가 유명무실

by 토마토쥔장 2021.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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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기술 집약된 특화거리가 유명무실

'목동 · 중촌동 맞춤패션 특화거리'

글·사진 하문희

 

목동·중촌동 맞춤패션거리는 자생적으로 형성된 특화 거리다. 포목점과 의상실 그리고 단추와 실까지 50여 개 전문 상가가 한 골목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기성복이 주류가 되기 시작하면서 맞춤옷의 인기는 시들해졌지만, 아직도 맞춤옷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맞춤패션거리가 30년 이상 경력을 갖춘 장인들의 기술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원하는 디자인을 가져가면 색깔은 물론 원단까지 직접 만져보고 결정한다. 입는 사람 체형에 따라 길이를 늘이거나 줄이기도 하고 콤플렉스를 보완해주는 천을 쓰는 등 말하는 대로 뚝딱이다. 가격은 원단과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가진 예산 범위 안에서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

 

 

1980년대 초 원단가게 ‘서울직물’ 주인이 자투리 원단을 유통하는 작은 상점을 운영하면서 동네가 형성됐다. 정착한 사람들은 기술 하나로 오랜 세월 굳게 버텨왔다. 그러자 하나둘 의상실이 생기기 시작했고 거리는 점차 활기를 띠었다. 한때 자투리 천을 팔던 곳은 어엿한 직물점이 됐다. 전성기에는 대규모 가게가 100개 넘게 있었고 손님도 자주 왕래했다. 일거리가 한 보따리씩 쌓이고 재봉틀 앞에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거리에는 온종일 발걸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처럼 노동법이 갖춰진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휴일도 없이 일해야 했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려갈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약 반세기가 지났다. 세월과 함께 사람도 떠나고 동네도 쇠해졌다. 고단하게 살아온 어른들은 자식들이 편하게 살기 바랐다. 그래서 의상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만 다음 세대에게 가게를 물려주고 싶어도, 후임자가 없어 그럴 수 없다. 100개가 넘던 점포는 이제 50곳이 체 남지 않았다. 수십 년간 타인의 몸 치수를 재고 옷감을 재단하던 장인들도 사라졌고 그들이 있던 곳에는 빈 가게만이 남았다.

 

 

‘특화 거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쇠락한 대전 원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였다. 대전시 특화 거리 실태에 따르면 동구 6곳, 중구 7곳, 대덕구 4곳, 유성구 2곳에 음식, 맞춤 패션, 문화예술, 자동차, 한의약, 인쇄, 건어물, 한복, 가구 등 다양한 특화 거리가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거의 없다. 맞춤패션특화 거리는 최근 의류 수요 패턴이 변화한 탓도 있지만, 지원에 관한 조례나 행정적인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특화 거리로 지정은 했지만, 후속 지원이 없어 사실상 방치된 거나 다름없다. 주된 수요층도 50대 이상 고연령으로 한정되면서 매출이 감소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처음 특화 거리로 지정됐을 때는 지자체마다 의욕적으로 행사 및 세미나를 만드는 등 관심을 가졌지만 투자한 만큼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지금은 지원이 끊긴 상태다.

 

 

맞춤패션특화거리에서 맞춤 의상실 ‘샬롬’을 운영하는 김옥희 씨는 장인들의 명맥이 끊겨가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김옥희 씨는 21살에 대전에서 개업했는데, 간판도 없이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맞춤패션거리에서 가장 큰 의상실을 운영한다. 현재 동네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어 목동·중촌동 상인회장을 겸하고 있다. 김옥희 씨는 치열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맞춤패션거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꽃다운 19살, 앞으로는 여성들도 일하는 시대가 올 거라며, 너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의상을 하기로 했다.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구로 일을 배우러 갔는데,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몇 달을 고생했다. 이 길이 정말 맞는 건지 달성공원 벤치에 앉아 고민했던 그 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됐다. 그래도 김옥희 씨는 돌아보지 않았다. 모두가 퇴근하면 공장에 홀로 남아 바느질을 연습했다. 쓰레기 수거하는 아저씨들에게 팔토시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재단대와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버텼다. 그렇게 배우고 연마한 기술로 21살에 직접 의상실을 차렸다. 결혼하면서 대전으로 와 13일 만에 다시 개업했다. 교복부터 연주복, 댄스복, 퓨전 한복, 웨딩드레스, 각국 전통의상까지 어떤 주문이든 척척 해냈다. 모르면 배우고 연구하면서 옷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여성복 맞춤 가게 사이에서 드레스를 만드는 사람은 김옥희 씨가 유일했다. 15년 전 맞춤패션거리에서 열린 패션쇼를 시작으로 김옥희 씨가 제작한 드레스는 이제 다양한 곳에서 사랑받고 있다. 때로는 음악만 듣거나 사진만 보고 의상을 만들기도 했다. 말 그대로 창조해낸 것이다.

 

 

맞춤복은 배우는 과정에 비해서 수입이 적기 때문에 전공자들에게 외면 받는다. 김옥희 씨는 앞으로 맞춤복을 이렇게 싼값에 입을 수 없게 될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아무리 기성복이 유행한다고 해도, 맞춤복이 사라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신체 모양이 다르거나 특이한 체형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맞춤복이 꼭 필요하다. 무대의상과 특별한 직위에 필요한 옷도 맞춤으로 만든다. 김옥희 씨는 이런 것 때문이라도 맞춤패션거리가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때 맞춤패션거리 상인들은 함께 전문상점가를 만들고자 했으나 몇몇 상인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간판을 새로 달고 축제를 크게 열어도 그때일 뿐, 장기적인 계획 없이 특화 거리를 활성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김옥희 씨는 직접 나서기로 했다. 직접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지원했다. 후계구조가 없는 상태에서 은퇴를 고민하는 상인들이 후진을 양성하고, 기술을 전수할 수 있는 공동 작업장 겸 아카데미를 만들자는 것이다. 열심히 목소리를 낸 결과 뉴딜사업에 선정됐고, 공간은 올해 12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공간은 샬롬 근처 대형 주차장과 인근 주택 두 채를 합친 300평 정도 규모다.

 

 

1층에는 동네 상인회 사무실과 공동 작업장을, 2층에는 바느질과 의상을 배울 수 있는 아카데미와 북카페를 운영할 예정이다. 북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의상 관련 책을 빌리거나 읽을 수 있다. 핵심 공간은 커뮤니티 공간이다. 청년, 주민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어 전시와 패션쇼를 할 수 있다. 길을 가다가 단추가 떨어지면 아무 때나 들어와 달아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한 공간이 되는 게 최종 목표다. 출입국관리소가 근처에 있어 다문화가정 대상으로도 아카데미를 열 계획이다.

 

 

일명 “노잼도시” 대전에는 하나하나 뜯어보면 굉장히 다양한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 중에서 맞춤패션거리가 특색있게 발전하길 바란다.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창업의 기회를, 장인들에게는 후계자 양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명소로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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