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유, 여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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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르포

어디유, 여기유

by 토마토쥔장 202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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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유여기유

정덕재

 

내가 종종 머무는 농막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남짓 나가면 면사무소가 있다대개의 면소재지가 그렇듯 관청 근처는 번화가다규모가 있는 군청 정도라면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겠지만 면사무소 주변은 그렇지 않다새마을 운동 때 개량한 이후 한 번도 손을 보지 않은 것 같은 가게 지붕은 이곳이 늙어 가는 작은 시골마을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약국 두 개슈퍼마켓 두 개와 구멍가게 한 개농약을 파는 철물점 두 개꽈배기와 찐빵을 파는 분식집그리고 고만고만한 식당 몇 개가 네거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면사무소 근처를 가는 주된 이유는 짜장면이나 속풀이 짬뽕을 먹기 위해서다그곳에는 간판을 단 중국음식점이 세 개가 있다한 군데는 문을 닫는 경우가 빈번해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곳은 두 군데다처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중국집은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배달을 한다. 50대 후반의 부인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며 손님을 받는다창틀에 켜켜이 쌓인 먼지와 어디선가 쥐들이 바닥에 떨어진 탕수육을 먹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이 집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지난해 후반부터 드나들기 시작한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인사를 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최근에 겪은 상황이다

 

손님에게 말 안 하는 중국집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둥근 팬을 덜그럭거리며 요리를 하는 주방 아줌마가 눈에 들어온다그녀는 나를 슬쩍 쳐다본 뒤 다시 국자를 놀린다방안에는 두 팀이 자리에 앉아 있다젊은 남자 둘은 짜장면 곱배기를 먹고 있다네 명이 앉아 있는 자리에는 부부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할머니 둘은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고 있다천정만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 하나가 한마디 던진다.

뭐더러 그런 얘길 헌댜.

뭐 못할 얘길 혔슈?

그려두 다 지난 얘긴디 쓸데없이 뭐더러 꺼내는 겨.

세월 지났다구 그 얘기가 읎어진대유.

자칫 신경질적인 대화가 길어질 찰나에 짜장면 네 그릇이 나왔다주방 아줌마가 짜장면을 놓고 나오며 그제서야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물병을 놓았다별다른 말도 없다나는 간짜장 곱빼기를 주문했다전화벨이 울린다주방에 들어가서 면을 솥에 넣은 다음에야 전화를 받는다전화벨 소리가 열 번가량은 울렸다.

거기 지금 배달 못 가는디다른 데서 시켜 드시면 안 되유?

수화기를 놓고 나자 배달통을 든 남편이 들어왔다배달통에 다시 그릇 세 개를 담으며 한마디 한다부인의 답을 기다리는 눈치는 아닌 듯했다.

다음부터는 거기 못 가겄네너무 불어 터져.

배달통을 들고 나가던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통을 내려놓고 다시 주방에 들어갔다김치와 단무지를 들고 나와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다시 배달을 나갔다.

짜장면을 먹고 계산을 하고 나올 때 까지 나는 주인과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아니 한마디의 말도 듣지 못했다계산할 때 짜장면이 6천 원이라는 말도 듣지 못했다잘 먹었다는 인사를 크게 하고 나왔지만 등 뒤로 들려온 건 달그락거리는 프라이팬 소리뿐이었다.

주방장이 배달하는 중국집   

일명 무뚝뚝 중국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절한 가게는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운영을 하고 있다개업을 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다고 한다지난 7월에 갔을 때는 어린아이 하나가 테이블 위에 화첩을 올려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한번 가 보긴 했어도 별다른 특징을 발견하지 못한 집이다깨끗하게 정돈된 조용한 집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8월 중순에 이 집을 다시 찾았다짬뽕을 주문했다주방은 조용했다.

아줌마는 연신 식당문을 열고 좌우를 살핀다주문한 뒤 2~3분쯤 지났을까 아줌마가 테이블 가까이 다가왔다.

배달 나가서 그러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그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주방이 조용한 이유가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통을 든 아저씨가 성급히 들어왔다남편이 주방과 배달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부인은 주문을 받고 식당 안에 음식을 나르는 일을 주로 하는 모양이었다

배달과 주방을 함께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남편이 배달을 갈 때는 부인이 주방에서 짜장면이나 짬뽕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기본양념과 재료들을 매뉴얼대로 하면 될 텐데고개를 갸웃거리며 짬뽕을 먹었다먹는 도중에 남편은 주방에서 나와 또 배달통을 들고 나갔다인근지역만 배달을 한다고 해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짬뽕 국물로 전날의 숙취를 해소하며 상상을 했다첫째는 주방은 주방장의 몫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남편의 소신이 강하기 때문에 부인이 주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둘째는 부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게 자칫 위험할 수도 있어 배려하는 마음에서 자신이 배달을 한다결국 요리사의 자존심과 아내를 향한 남편의 마음을 동시에 보여 주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혹시나결혼을 약속할 때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 주겠다고 다짐한 남편이 끝없는 인내심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배달의 종착지

시골에서 배달이라는 게 쉽지 않다도시의 배달이 자동차의 위험이나 아파트 현관문을 누르고 대답이 없으면 다시 전화를 하는 번거로운 상황이 가끔 발생하기는 해도 배달 거리가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반면에 시골의 배달은 그 범위가 상당하다특히 농촌 일손이 바쁜 철에는 논과 밭으로 배달을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논둑길을 따라 가는 배달 오토바이를 심심찮게 볼 수도 있다문제는 위치를 찾는 일이다.

거기 보건소 앞으로 가면 보인다구요?

혹시 지난번 새로 진 집 뒤에 있는 밭 아닌가유?

정자나무 가기 전 길로 들어가면 될라나.

무뚝뚝 중국집에서 전화를 받는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시골에서는 배달 장소를 정확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중국집 아저씨가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그렇다 보니 오랜 경험으로 익힌 마을의 지형을 염두에 두고 배달통을 들고 나가는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농막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밖에서 크랙션이 길게 울렸다다소 짜증이 묻어나는 소리였다문을 열고 나가보니 바로 그 무뚝뚝 중국집 아저씨였다면사무소 앞에서 자동차로 10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오토바이로 타고 오자면 꽤 먼 거리다왕복 30분 이상은 소요되는 지역이다아저씨가 크랙션을 계속 누르자 뒷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유.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아침부터 예초기 돌리는 소리가 계속해 들리더니 밤나무 아래 풀을 깎는 동네 사람들인 듯했다중국집 아저씨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

여기가 어디유?

여기유올라오셔유.

거기가 어디라고 올라가유내려오슈.

뒷산에서는 여기유여기가 어디여” 하는 메아리가 여러 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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