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쓰기는 계속된다
글 정덕재(시인,르포작가)
‘글을 왜 쓰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때 자주 언급되는 작가가 있다. 소설 동물농장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조지오웰은 에세이를 통해 글을 쓰는 네 가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첫째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둘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열정, 셋째 역사에 무엇인가를 남기려는 충동, 마지막으로 정치적 목적을 글 쓰는 이유로 꼽았다.
작가를 포함해 글을 쓰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조지오웰이 꼽은 범주 안에 대부분 들어갈 것으로 짐작한다. 지난해 나는 개인 시집 한 권과 여러 프로젝트에 공동으로 참여한 몇 권의 책을 펴냈다. 문학적 성격의 글이든 취재를 바탕으로 한 르포형식의 글이든 글은 쓸수록 문장의 근육이 붙는 경우가 많다.
쓰고 또 쓰던 시절
국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수업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해준 한 마디가 문학의 출발이었다.
“책을 참 잘 읽는구나”
지금도 잊지 못하던 이 칭찬은 시와 소설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중학교 졸업 무렵 나는 막연하게 글쓰기를 동경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이 문예부였다. 1980년대 만 해도 대전의 여러 고등학교에서 문예부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남녀고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모이는 연합 문학동아리도 몇 군데가 있었다. 우리는 토요일마다 시와 산문을 내놓고 합평을 했다. 또래들의 합평과 대학생 선배들의 지도는 일종의 문학수업이었다.
대학에 가서도 시를 열심히 썼다. 이십 대 후반 등단이라는 절차를 거쳐 시인으로 불리기 시작했지만 정작 시를 멀리 했다. 등단 이후 바로 방송사에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오가며 다큐멘터리와 시사프로그램 원고를 쓰다 보니 문학적 문장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방송원고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방송이 끝난 이후에 쓸모없이 버려지는 것 또한 방송원고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집에서 신문을 다섯 개씩 보던 시절도 있었다. 시사적인 흐름과 정보를 얻는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가 신문읽기였다. 손으로 쓴 원고를 팩스로 보내던 때도 까마득한 옛 추억이 되었다. 컴퓨터의 등장과 인터넷 세상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쓰고 지우기가 자유자재로 되다 보니 원고쓰기가 매우 수월해졌다.
방송사 작가실에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어떤 때는 4중창, 어떤 날은 떼로 부르는 합창으로 울려 퍼졌다. 여전히 독수리 타법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가장 힘겨운 것은 새벽방송 원고였다. 쓰레기통을 옆에 두고 원고를 쓴 날도 많았다. 술이 깨지 않아 지난 밤에 먹은 음식을 반납하는 사태도 종종 있었으니, 주인을 잘못 만난 쓰레기통은 아마도 술이 깨지 않은 나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등단 이후 이십 여 년 가까이 되다 보니 문득 시가 그리워졌다. 뒤늦게 첫시집을 냈다. 지금도 제목 만큼은 잘 지었다고 자평하는 ‘비데의 꿈은 분수다’ 이후 부지런히 시집을 펴냈다. 개인적인 문학 작업 이외에 맘에 맞는 작가들이 모여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을 만든 것도 글쓰기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협동조합에서 진행한 글쓰기는 주로 사람을 만나 취재하고 인터뷰 과정을 거치는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사람에게서 배운다는 말을 실감했다.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60년을 넘게 부부의 연을 맺어온 노부부에게서는 배려와 존경의 마음을 배웠다. 자식 잃은 슬픔을 견디는 이에게서는 희생과 숭고함을 깨달았다. 그동안의 경험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걷는 이에게서는 아름다운 도전을 느꼈다.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에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 대사 하나가 있다. 나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이 대사를 인용해 말을 하기도 했다, “아들아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송강호의 이 말은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계획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계획을 세웠는데 잘못된 계획인, 여러 형태의 계획을 떠올리게 한다.
2020년을 맞으면서 어떤 글을 쓸 것인지 계획을 세웠다. 물론 계획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를 다지는 측면에서 여기에 증거를 남겨놓는다. 올해 상반기에는 두 세 명이 함께 6.25 한국전쟁 70년을 기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대전에는 전쟁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도처에 있다. 민간인이 학살된 대전형무소와 산내 골령골, 전쟁 중 대통령의 임시집무실로 사용된 옛충남도청사 등 전쟁과 관련한 이야기를 픽션과 논픽션을 섞어 한 권의 책으로 펴낼 것이다. 다른 장르와의 융복합 작업도 병행한다. 출간은 전쟁이 일어났던 때에 맞춰 6월 중에 할 예정이다. 아직 글의 형태가 정확하게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나 또한 기대되는 작업이다.
또 하나의 작업은 하반기에 작은 산문집 한 권을 펴내는 것이다. 농막을 짓고 살아 온 건달 같은 시골살이와 일상르포의 자잘한 이야기를 묶어 삶의 다양한 풍경을 펼쳐 보일 생각이다. 지난해 이 작업을 할 계획을 세웠지만 게으른 탓에 원고를 정리하지 못했다.
“아빠는 글 쓰는 일이 재밌어?”
나의 계획을 아들에게 들려주자 첫마디 반응이었다.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써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있다고 답변했다. 누군가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사회적 책무 같은 게 무거운 짐처럼 어깨에 앉은 지 오래다. 어쩌면 그것은 20대에 활동하던 단체에서 익힌 습성인지 모른다. 잠시 지역의 문화운동단체에 몸을 담고 있을 때 나는 대전역 광장 집회에서 낭송할 선전선동시를 수시로 썼다. 트럭 위에 올라 직접 읽기도 했고 누군가 대신 읽기도 했다. 이런 글쓰기는 조지오웰이 말한 정치적 목적과 뜻을 같이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큰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50대 중년의 나이로 늙어가면서 자잘한 것에 흥분하고 감동하는 데 익숙해졌다. 글도 그러하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왕성한 에너지를 내뿜는 이도 간간이 있지만 상당수는 동어반복의 글쓰기를 이어간다. 나도 그 범위 안에 포함되는 작가라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 수시로 자문한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때, 더 이상 깊게 파지 못할 때. 더 이상 세상살이의 빈틈을 발견하지 못할 때, 아무도 모르게 자판에서 손을 떼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시점이 10년 정도는 늦어지길 바랄 뿐이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좀 식상해요“
”앞에는 재밌는데 뒤에는 좀 그래요“
”지난번 시집이 더 좋은 거 같아요“
솔직한 독자를 만나면 긴장된다. 새해에는 벼락같이 뒤통수를 때려줄 독자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모두가 글 쓰는 사회
지하철을 타면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읽거나 보거나 쓴다. 문학적인 글쓰기가 아닌 비문의 문장이라도 무언가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다. 쓰기의 진화를 이룬다면 반복되는 “ㅋㅋㅋ” “ㅎㅎㅎ”를 넘어서는 문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퇴근 무렵 지하철 안에서 하루의 생활을 휴대폰 메모장에 길게 기록하는 직장인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가게 문을 닫을 때쯤 기억에 남는 손님의 사연을 공책에 쓰는 자영업자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학교에서 나누었던 친구들과의 대화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을 수 있는 학생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아파트 가격 인상에 대한 관심보다는 옆집에 혼자 사는 노인의 삶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쓰는 일은 지나간 시간을, 떠나온 공간을, 헤어진 사람을, 오늘과 다른 내일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 속에 아픔과 슬픔 기쁨과 만족이 스며있기에 우리의 가슴은 젖는다.
월간토마토 vol.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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