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식당 찾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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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르포

반가운 식당 찾기가 어렵습니다

by 토마토쥔장 2021.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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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식당 찾기가 어렵습니다

 

정덕재(시인, 르포작가)

 

일주일에 이틀가량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다. 오전 11시만 되면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이런 짧은 고민도 번거로울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구내식당에 가는 것이 편하기는 하지만 사람의 입맛이라는 게 변덕스러워 맛있는 식당을 찾아 나서는 날이 종종 있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맛있는 음식을 만났을 때의 만족감은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골 농막에 가는 주말에는 점심을 읍내에서 자주 먹는다. 농막에 점심시간 무렵에 가는 이유도 있지만 좁은 농막에서 밥을 차려 먹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최소한의 살림만 있기 때문에 삼첩반상을 차리기도 쉽지 않다.

 

참으로 밥 먹기 어려운 식당 찾기

지난 7월 하순 비 내리는 토요일이었다. 비가 오면 국수가 땡긴다. 흐린 날에는 평소보다 더 많이 몸에서 요구하는 신경물질이 있다는 의학적 분석도 있지만 한 온라인쇼핑사이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비 오는 날에 밀가루 음식 판매가 늘어나는 건 분명하다. 이 사이트에서 비 온 날과 맑은 날의 가공식품 판매량을 비교한 결과, 비가 온 날에 면 판매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칼국수와 수제비 판매는 비 오는 날이 맑은 날보다 81% 증가했다는 조사도 있다.

그날도 칼국수와 짬뽕을 고민하다 칼국수 집을 찾았다. 00칼국수라고 쓴 잘 만든 간판이 식욕을 부추겼다. 식당에 들어가 신발을 벗고 올라 방석을 당겨 앉으며 칼국수를 주문했다.

“당분간 칼국수 안 하는데요. 비빔국수 드세요.”

주인인 듯한 여자의 답변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칼국수 집에서 칼국수를 안 팔다니, 마치 이것은 고깃집에서 고기를 팔지 않는다는 것과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팔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잠시 식당을 둘러보았다. 점심시간인데도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식당 안은 푹푹 쪘다. 여자는 부채질을 하며 나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주인의 부채질이 오히려 짜증을 불러왔다. 에어컨은 있지만 가동하지 않고 있었다. 습도가 높은 날씨에 에어컨까지 가동하지 않아서 그런지 불쾌감이 높아졌다. 아마도 에어컨은 고장이 났던지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 보였다. 주인이 당분간 칼국수 메뉴를 접은 것은 더위 때문인 것으로 짐작됐다.

“제가 비빔국수를 먹고 싶었으면 비빔국수를 주문하지 왜 칼국수를 주문했겠어요.”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주인의 표정을 애써 외면했다. 신발을 신으며 칼국수를 시작하면 그때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한 뒤 조용히 식당을 나왔다. 간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명색이 00칼국수라고 간판을 걸어 놓고 당분간 대표 메뉴를 안 한다니.

다소 허탈한 마음에 발걸음을 옮겼다. 20미터쯤 옆에 또 다른 칼국수 집이 있었다. 식당 유리창에는 김밥과 칼국수를 대표메뉴로 적어 놓았다. 식당 문을 열자 홀에는 10여 명의 남자들이 찌개를 끓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매운 냄새와 열기가 확 밀려왔다. 불과 몇 초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냄새로 보아 닭볶음탕이 아닌가 짐작되었다. 시골식당에서는 메뉴에 없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대부분 단골들이 재료를 가져와 주문하거나 주인이 임의로 만들어 내는 경우가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칼국수를 기대하면서 문을 열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냄새 때문에 곧바로 식당 문을 닫았다.

“안에 방 있어요!”

주인이 문을 열고 크게 외쳤다.

“아니에요. 다음에 올게요.”

형식적인 응대로 식당을 벗어났다. 첫 단추가 잘 끼워지지 않을 때, 일진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한다. 바로 오늘이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짜장 하나 짬뽕 하나가 이렇게 힘든 일인가

두 군데의 식당 선택에 실패해서 그런지 허기는 더욱 깊어졌다. 다른 골목에 있는 이전에 서너 번 갔던 중국집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볶음밥 하나, 울면 하나요.”

“그렇게는 안 되는데요, 볶음밥 두 개나 울면 두 개로 통일시켜 주세요. 바빠서요.”

데자뷔인가. 갑자기 첫 번째 칼국수 집에서 겪었던 일이 스쳤다. 오늘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나.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스쳤다. 주변을 살펴보았다. 두 명이 볶음밥을 먹는 자리, 세 명이 짬뽕을 먹는 자리, 모두가 한결같이 같은 걸 먹고 있었다. 네 명이 있는 자리는 메뉴가 섞여 있기는 했지만 두 명이 각각 다른 메뉴를 먹는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가벼운 충격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어 다시 주문을 했다.

“그럼 짜장 하나, 짬뽕 하나 주세요.”

“짜장이나 짬뽕 하나로 통일해 주세요. 바빠서요.”

중국집에 들어설 때 늘 고민되는 것이 짜장을 먹을 것이냐, 짬뽕을 먹을 것이냐. 바로 이 문제다. 햄릿의 존재적 고민만큼이나 커다란 갈등이 짜장과 짬뽕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중국집 문 앞까지 짬뽕을 먹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문을 들어선 뒤 짜장으로 바꾼 날들도 허다하다. 중국집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짜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오면 걸어오면서 결정했던 짬뽕은 순식간에 뒤집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둘이 가서 각각 다른 메뉴를 시켜 조금씩 맛을 보는 게 중국집의 매력이다. 이런 매력을 통일이라는 말로 희석시키는 주인의 압력은 거의 슈퍼 갑의 수준처럼 보였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차에 같이 간 일행이 그냥 같은 걸 시키자고 말하는 바람에 화를 참고 눌러앉았다.

“울면 두 개 주세요.”

“네.”

주문을 받는 사장의 목소리가 경쾌해졌다. 공급과 수요의 원칙을 무시하는 행위는 시장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굳이 갑을 관계를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손님이 원하는 걸 맞춰 주는 게 장사의 기본이 아닌가. 울면을 먹는 동안에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남북통일도 아닌 메뉴통일의 상황을 분석하고 따지는 일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내내 주인의 똑같은 주문은 이어졌다. 손님들은 별다른 항의 없이 주인의 주문에 따랐다. 주문자가 바뀌었는데 불구하고 손님들은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불편한 마음으로 식사를 한 뒤 나는 계산을 하며 친절하게 한마디 건넸다.

“사장님, 그렇게 바쁘시면 문 닫고 쉬세요.”

가고 싶은 식당

내가 자주 가는 식당 주인은 음식을 내오면서 이런 말을 한마디 한다.

“싱겁게 하노라고 했는데….”

음식을 싱겁게 먹는 나의 식성을 고려한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얼마 전 장맛비가 내리던 날에는 친구와 이 식당을 찾았다.

소주 한 병과 두부두루치기를 주문하면서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

“이런 날에는 파전 같은 거 먹으면 딱인데.”

“잠깐만 기다려 봐.”

주방을 흘낏 보니 주인이 밀가루를 서둘러 반죽하고 있었다.

“호박 하나 있어서 했는데 맛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접시에 담긴 호박전은 먹음직스러웠다. 허름한 식당이지만 이곳에 가면 주인의 마음이 읽힌다. 계절에 따라 딸기 몇 알 주고 참외 하나를 깎아 내오기도 한다. 밭에서 키웠다는 말과 함께.

외식문화가 발달할수록, 거미줄처럼 퍼지는 프랜차이즈의 이름이 커질수록, 이른바 먹방의 유행이 지속되면서,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정겨운 마음이 아닐까. 식당은 많지만 갈 만한 식당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를 곰곰이 살펴볼 일이다.

 

월간토마토 vol.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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