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만들 줄 알아야 고칠 수도 있지
본문 바로가기
토마토 인터뷰

옷 만들 줄 알아야 고칠 수도 있지

by 토마토쥔장 2021. 7. 23.
728x90
반응형

옷 만들 줄 알아야 고칠 수도 있지.

중앙로지하상가 맵시나 수선 김동성, 김제일 씨

글 사진 황훈주

“옷 수선집은 어디로 가면 될까요?”

“수선집은 지하상가 내 한 7개 정도가 있어. 대부분 여기서 가까워. 뭐? 가장 오래 한 곳 찾는다고? 대부분이 지하상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있던 곳이야. 정확히 어디가 맨 처음인지는 모르겠네.”

중앙로지하상가 분수대 경비 아저씨는 맵시나 수선집을 소개해줬다. 여기서 제일 가깝고, 또 오래 한 곳이라 했다.

과거 티브이 토크쇼에서 “패션의 메카는 대전 지하상가”라고 말할 만큼 중앙로지하상가 내 옷집이 많다. 중구청 홈페이지에서 의류 상점이 약 61%가 있다고 확인 할 수 있다. 수많은 옷집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드문드문 수선집이 보인다. 가게 앞엔 대부분 “구형자켓을 신형으로, 떠블을 싱글로”라는 문구를 썼다. 어디나 같은 말을 쓰니, 마치 수선집의 캐치프레이즈 같다.

“구형 양복도 충분히 수선하면 요즘 스타일로 맞춰 입을 수 있거든. 아버지 양복을 수선해 입고 싶다고? 그럼 한번 가져와 봐. 옷은 입어봐야 그 사람에 맞게 수선할 수 있거든.”

맵시나 수선집. 작업대는 지하상가 통로를 향했다. 작업대 가운데에 놓인 작은 티브이에서 고교야구대회가 한창이다. 티브이를 중심으로 양옆에 재봉틀을 각 한 대씩 놓고 김동성 씨와 김제일 씨가 앉았다. 지하상가 안에 남성 둘이서 함께 운영하는 수선집은 이곳이 유일하다. 30년 전, Envy백화점 안에 수선집에서부터 함께 일하기 시작해 지하상가에는 1995년에 들어왔다.

“처음 시작했을 땐 옷집에서 수선하는 일이 많았어. 여기 주변에서 옷을 사면 대부분 수선집에 와서 기장을 맞춰갔어. 일이 많으니까 옷 가게 별로 한 달에 한 번 몰아서 계산했지. 초창기에 여기 주변에 청바지집이랑 남성복집이 많았거든. 손님이 많았지. 중앙로지하상가 생겼을 때부터 냉난방이 다 되어 쇼핑하기 좋았지. 덥거나 추울 일은 없었어.”

처음 지하상가가 생겼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아 지상에 있던 상인들이 질투할 정도였다. 지하상가에서 파는 물건은 다른 곳보다 비싸게 판다는 거짓 소문을 만들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주변엔 동양백화점(현 NC백화점),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도 있었으니 이곳이 쇼핑의 중심지였다. 둔산동이 신시가지로 발전하기 전 이야기다.

8월은 비수기다. 여름옷은 가볍게 입고 오래 안 입으니 수선할 일이 없다. 그래도 일이 없진 않다. 간단하게 옷 기장을 줄이러 온 손님부터 오랜 단골 까지 찾아온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1-2년에 한 번씩 옷을 가지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고 한다.

“옷 수선은 그냥 조금 기계 만진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옷을 만들 줄 모르면 옷을 수선할 수도 없지. 간단하게 기장을 줄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고객이 원하는 요구를 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수선해 주고 몸에 맞는 옷을 만들어 주려면 옷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지.”

청바지로 청치마를 만들고 있는 김제일 씨는 예전 양복점에서 일했다. 40년 전부터 양복 사업이 사양길에 들어서자 옷 수선 일을 시작했다. 당시 모든 일이 그랬지만 옷 만드는 기술을 배우려면 도시락 싸 들고 가서 월급은 생각도 못 한 채 일을 배워야 했다. 처음 일하고 받은 돈이 500원이다. 대전에서 가장 크게 운영했던 미조사 양복점에서 일을 배웠다. 국제, 기신, 화신, 삼호, 미조사 양복점은 당시 유명한 양복점이다. 지금은 기신 양복점 하나만 남았다.

“한 25년 전인가. 한 손님이 서울에서 청바지로 청치마를 만드는 걸 봤다는 거야. 그래서 한번 만들어줬어.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에 청치마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진 거야. 그때 한동안 청바지를 쌓아 놓고 치마로 만들어줬어. 그냥 바지를 뜯어 만들면 무조건 허리 뒤쪽에 주름이 생기거든. 하지만 우리가 만들면 절대 그럴 일이 없지. 손님이 입었을 때 편하게 옷을 수선하지.”

일이 많던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나름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낸다. 세월이 지나며 지난날을 뒤돌아보기도 한다. 여유 있어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어찌어찌 돈을 모아 지하상가에 자리를 잡았고 열심히 살다 보니 자식들도 다 키웠다. 김동성 씨는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도 안 하니, 그것이 보람이라고 한다.

30년을 함께 일해서, 별말 안 해도 서로 호흡이 착착 맞는다. 둘 다 김 씨고 나이도 비슷하니 영혼의 단짝처럼 보인다고 말하니 김제일 씨가 한마디 거든다.

“그래도 내가 더 양반이야. 나는 경주 김씨거든.”

그러자 김동성 씨는 돌아보며 웃으며 말한다.

“자네. 아버지께 한번 물어봐. 광산 김씨가 양반인지, 경주 김씨가 양반인지.”

“아니. 원조가 경주라니까. 광산 김씨에 왕 있어?’

“왕이 이 사람아. 경순왕 때 신라가 망했다니까. 그 당시에 왜 망했겄어.”

서로 툭툭 장난치며 말을 주고받다가도 손님이 오면 아무 일 없단 듯이 손님을 맞는다.

“바지 기장을 줄인다고? 그래. 요즘 유행하는 바지네. 한번 입고 나와 봐.”

손님은 말없이 탈의실에 들어간다.

 

 

월간토마토 vol.158

728x90
반응형

댓글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