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거 다 마찬가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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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인터뷰

사람 사는 거 다 마찬가지예요~

by 토마토쥔장 2021.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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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지하상가 청송슈퍼 성문금 씨

사람 사는 거 다 마찬가지예요~

글 사진 이용원

 

 

손수레를 빨간색 천으로 감싸 눈에 확 들어온다. 빨간색 천에 흰색 글씨로 냉커피, 냉식혜, 냉매실 등이 적혔다. 눈에 정확하게 들어와 꽂힌다. 아주 멀리서도 잘 보인다. 시인성이 아주 좋은 디자인이다. 그 손수레를 천천히 밀며 걷는 모습이 흡사 대전천 옆이라도 걷는 듯하다. 그 익숙함이 얼마나 오랫동안 성문금 씨가 그 길을 오갔을지 짐작케 한다.

“선희 엄마~”

얼마간 걸었을 때 한 숙녀복 매장에서 주인이 나와 성 씨를 부른다. 역전지하도상가에서 그는 본명대신 선희 엄마로 통했다. 막내딸 이름이란다. 가게에 따라 들어가자 서랍을 열고 돈을 꺼내 건넨다. 낮에 마셨던 음료 값을 치르는 중이다. 성 씨는 특별히 배달이 있어서 수레를 끌고 나온 것이 아니라 낮에 판매한 음료 값을 수금하러 다니는 중이었다. 주문을 하면 바로 내줄 수 있도록 음료 수레를 밀 뿐이다. 보통은 그렇게 하루 판매한 금액을 퇴근 무렵에 받는다.

역전지하도상가 중간 즈음에는 좌우로 가장 작은 점포가 각 한 개씩 있다. 외부로 오가는 출구를 활용해 점포를 들였다. 점포는 계단이 꺾이는 한쪽 면에 접했다. 알뜰한 공간 활용이다. 한 곳은 사진관이고 다른 곳은 슈퍼다. 일반적으로 슈퍼라고 하면 이런저런 다양한 물품이 빼곡하지만, ‘청송슈퍼’는 그렇지 않다. 그럴만한 공간도 아니다. 커피와 과일주스, 식혜 등 다양한 음료가 주요 품목이다. 청송슈퍼 좁은 공간 진열대를 채운 건, 컵라면이다. 가게 앞에 아주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가게로 찾아와 음료를 마시거나 컵라면을 먹는 손님도 있지만 주력 품목은 배달 음료다. 음료를 만들 수 있는 각종 재료와 용기를 가장 경제적으로 수납할 수 있도록 만든 작은 손수레를 끌고 성문금 씨는 역전지하도 상가 구석구석을 누빈다.

 

“한때는 나처럼 장사하는 곳이 일곱 군데나 있었어요. 이렇게 장사를 하려면 지하상가에 매장이 있어야 해요. 지금은 나 혼자 남았어요. 신지하상가에는 없고요. 자식 셋 다 키워서 결혼 시키고 걱정할 것이 없으니까, 그냥 나와서 하는 거지요. 옛날만큼 장사는 안 돼요. 겨우 유지하는 거지.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안 오더니 장마가 길어지니까 더하네요.”

성문금 씨가 장사를 시작한 것은 서른 살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역전지하도상가 위에서 노점을 했다. 액세서리와 장난감 등 안 팔아본 것이 없다. 먹고 살아야 해서 했던 일이다. 지하에 내려와 백반집도 하고 옷가게도 했다. 옷가게는 맞은편 사진관 자리에서 했다. 지금처럼 음료를 주로 파는 청송슈퍼를 운영한 건 이제 20년이 조금 넘는다. 3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도 이곳 역전지하도상가에서 경비 일을 했다. 역전지하도상가에 가게를 알아봐 준 것도 남편이었다.

“지금은 별로 없어도 옛날에는 배달이 많았어요. 가게 주인도 마시고 단골손님이라도 오면 대접하려고 음료 배달을 시켰어요. 지금이야 손님이 안 오니까 배달도 거의 없지요. 저녁 7시만 되면 가게 문 닫고 가는 사람이 많아요. 아침에도 좀 늦게 열고요. 그만큼 장사가 안 되니까요. 저야 장사할 준비를 해야 하니까 아침에는 9시 전에 일찍 나오는 편이에요.”

손수레를 밀며 천천히 오가는 성문금 씨를 따라 걷는 길이 한없이 편하다. 역전지하도상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에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큰 걸 알 수 있다. 한창때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지하상가를 누비며 손수레를 밀고 다녔을 7명을 상상해 보았다. 너른 갯벌을 부지런히 기어 다니며 자국을 남겨, 정적인 풍경에 변화를 일으키는 갯지렁이가 떠올랐다. 이제는 혼자 남은 성문금 씨가 남겨놓은 흔적이 걷는 속도만큼이나 천천히 지워진다. 그마저 없었더라면 역전지하도상가는 더 쓸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참을 귀찮게 따라다닌 낯선 이에게 그는 보냉병에서 아직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식혜를 꺼내 컵에 따라 건넨다. 현금이 없어 난감했는데, 괜찮다면서 막무가내다. 성문금 씨가 집에서 직접 만든 식혜라는데 꿀맛이었다.

“사람 사는 게 다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살았으면 됐지요. 그럼 잘 산 거예요. 사람 욕심은 한이 없어요. 자식 셋도 다 결혼 시키고, 남편도 떠나고, 이제 병만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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