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손님 모두가 고마워 웃을 수밖에
본문 바로가기
토마토 인터뷰

오는 손님 모두가 고마워 웃을 수밖에

by 토마토쥔장 2021. 7. 9.
728x90
반응형

오는 손님 모두가 고마워 웃을 수밖에

중앙로지하상가 바로그집 신순금 씨

글 사진 황훈주

 

 

백종원도 말했다. 입으로 느끼는 맛은 30%라고. 나머지 70%는 몸으로 느끼는 맛이라 했다. 맛집에 간다는 건 때로는 그 집에서 느낀 기억들이 그립기 때문이다. 대학교 신입생 때 선배들과 처음 간 술집, 비 오는 날 포장마차, 하굣길에 들리던 분식집 등. 그러니 좋아하는 맛집이 오래 그 자리를 지켜주면 그것만으로 너무 고맙다.

‘바로그집’. 중앙로지하상가에 가면 한 번쯤 꼭 들르게 되는 분식집이다. ‘자려고 누우면 딱 생각난다’는 떡볶이로 유명하다. 전국에서는 아이스크림 떡볶이로 유명하다. 중앙로지하상가가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카운터 앞엔 시종일관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바로그집 대표, 신순금 씨가 있다.

“예전에 하굣길에 교복 입고 온 학생들이 이제는 아기들 데리고 오는 걸 보면 재밌어. 여기서 이렇게 장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청춘이 다 갔네.”

처음 중앙로지하상가에 들어왔을 땐 주변에 음식점이 많이 있었다. 지금은 타로집이 많지만 당시엔 다 음식점이었다. 지금 남은 음식점이 별로 없다. 초창기에 시작한 식당 중엔 바로그집만 남았다. 가게엔 손님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찾는 손님도 다양하다. 지하상가와 같은 시간을 보낸 가게 안, 손님들은 모두 각자의 추억을 덧칠할 거다. 

“아이스크림 떡볶이란 말은 내가 지었어. 예전에 KBS에서 스펀지라는 방송을 했잖아. 거기에 떡볶이로 방송 나간 적이 있거든. 제작진이 이 떡볶이의 특색을 말하라 하는데 그때 손님이 소스가 살살 녹는다고 말한 게 생각난 거야. 그 자리서 아이스크림 떡볶이라고 이름 붙였지. 그때 반응이 좋아 네이버 검색어 1위도 했었다고.”

 

소스에 들어가는 재료는 수십 가지다. 그중에 아이스크림에 들어가는 재료도 넣는다. 아이스크림 떡볶이라는 말이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닌 거다. 그래서 떡볶이 소스 맛은 맵지 않고 달다. 이런 특이한 소스를 어떻게 만들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니 전수 받은 레시피라고 한다.

“지하상가에 오기 전엔 은행동 애견골목 쪽에서 장사를 시작했어. 남편 사업이 실패해서 시작한 일이야. 어떻게든 다른 일을 해야 했어. 마침 메이커 있는 떡볶이집이 가게를 내놨다길래 인수했지. 그게 ‘바로그집’이야. 소스도 그때 전수받은 그대로야.”

지금이야 워낙 대전에서 유명한 떡볶이집이라 별다른 고생이 없었을 것 같지만 신순금 씨는 처음 가게를 시작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인수한 가게는 상권이 좋지 않아 지나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남편 사업 실패로 빛도 많았다. 이 장사 아니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지나는 손님 붙잡으러 가게 밖에 스피커를  달았다. 주방에서 마이크를 차고 떡볶이 만들며 가게를 홍보했다. 수줍음이 많아 떡볶이 먹고 가라 말하곤 눈 마주치기 전에 얼른 떡볶이 판을 바라보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겨울날, 추위 속에 쿠폰을 나눠주고 다녔거든. 그때 한 가게 사장님이 나를 쳐다보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나. 가엽게 보는 눈빛이었어. 그때 나는 정말 밑바닥이었지. 이자는 말도 못 하게 불어나고. 손님 한 명 한 명이 너무 귀한 거야. 손님이 나를 살려준다는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일했지. 집에서 남편이랑 싸우고 와도 가게서 손님을 맞을 땐 꼭 웃으면서 맞이하고. 손님에겐 화낸 적이 없어. 힘들어서 운 적은 있어도.”

지하상가엔 주변 음식점도 많아 장사는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남들보다 나아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음식 맛에 최선을 다했다. 떡볶이 하나 맛있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생각했기에 지금도 메뉴판에 있는 모든 음식은 직접 만든다. 제육볶음, 소고기뭇국 같은 건 완제품을 시장에서 살 수도 있지만 그러면 맛이 떨어진다며 모든 재료는 직접 손질한다. 예전에는 튀김도 직접 만들었고 만두도 빚었다. 떡볶이가 2,500원 할 때 탕수육은 4,000원에 팔았다. 반응은 좋았지만 직원들이 너무 고생해 지금은 맛볼 수 없는 메뉴다. 떡볶이 떡은 신경을 많이 쓴다. 바로그집 떡볶이 떡은 쌀떡으로 가운데에 구멍을 뚫었다. 예전엔 일반 떡도 썼지만 빠르게 떡을 익히려면 구멍 있는 떡이 훨씬 좋았다.

“뭐든지 노력하는 만큼이야. 장사는 정말 원 없이 했어. 떡볶이집만 한 줄 알지만 커피집도 두 개 운영했었고 고깃집도 했었지. 커피집은 NC백화점 맞은편에 하나 있었고, 또 하나는 이안경원 건물 3층에 있었어. ‘필소우굿’이라고 이테리 풍 카페로 15년 전에 했었어. 여기서 떡볶이를 사면 커피 무료 쿠폰을 주곤 했지. 다 빛 값으려 했던 일이야. IMF 때 빛이 4억 정도였거든. 백만 원을 벌면 그 돈으로 다른 데 다시 투자해서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했어. 원래 꿈은 현모양처로 집에서 자식 잘 돌보고 사는 거였는데 정반대로 살아왔지. 그래도 내가 장사 기질이 좀 있나 봐.”

이제 와 뒤를 돌아보며 자식들 생각하면 미안한 게 많다. 새벽 2시에 일 마치고 들어와 조금 눈 붙인 후 새벽 6시에 다시 장사하러 나갔다. 첫째 아들에겐 고3 때 아침밥도 제대로 못 챙겨주고 점심 도시락도 못 해줬다. 둘째는 중학교 졸업식에도 못 가봤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예전엔 눈물도 났지만 이제는 괜찮다. 사람은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데 그 행복이 참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돌아보면 참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며 신순금 씨는 웃는다. 그렇게 청춘이 이 가게서 다 지났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