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떠나자. 태양과 바다가 뒤섞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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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인터뷰

영원히 떠나자. 태양과 바다가 뒤섞인

by 토마토쥔장 2021.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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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으로 떠나자. 태양과 바다가 뒤섞인

3인 인터뷰

글 사진 황훈주

 

 

“넌 어쩌다가 이렇게 됐어?”
“왜 시비냐.”
“아니 별 뜻 있던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친구들보다 운이 좋은 편이다. 친구들은 거의 일주일에 세 번 회사 때려치우겠다 말 할 때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말하니까. 어쩌면 삶의 만족도가 친구들보다 세 배 좋은 건 아닐까? 이런 삶. 나쁘지 않을지도?

원하는 대로 이뤄진 삶은 얼마나 있으려나. 가끔 카톡에 ‘생일인 친구’로 뜨는 예전에 친했던 친구들에게 연락해 보면 뜬금없는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뜬금없는 경우는 역시 공무원 하겠다고 국사학과 들어가서 카센터 일을 하는 이 친구이려나.

“야. 공부 다 필요 없어. 예전에 우리 고등학교 영재반에 있던 애 알지? 걔 지금 대학교 중퇴하고 그냥 경찰 하잖아. 사건 현장 가서 토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더라.”
고등학교 동창인 이 친구 말처럼 정말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20대. 모든 것이 노력하면 될 줄 알았던 10대를 지나 불확실 세계에 뛰어든 청춘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래. 마음대로 되는 게 세상에 몇 개나 있을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겠다는 그 작은 계획마저도 밤에 날아든 모기와 싸우다 보면 어느새 새벽 4시를 넘겨 버린다. 또 예상치 못한 일은 또 얼마나 많던가. 적어도 내 예상 속엔 처음 만난 지 1시간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엎어치기를 당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 물론 어느 상호 동의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진짜 사람을 넘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야. 해 봐. 해 봐!’ 내가 그 말을 왜 했을까. 

홈 파티 때 친구가 초대한 친구, 경찰학과 출신. 사람 넘길 때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민정 씨. 이 친구는 지금 대안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다.

 

“그래서 어쩌다 대안학교 교사까지 했어?”
“글쎄. 잘 몰라. 아마 센터장님도 내 이력서가 신기해서 뽑았을지도?”

 

민정이는 오늘 엄마가 새로운 파마 기계를 샀다며 자신이 마루타라고 한다. 미용실을 새로 오픈했단다. 오, 그럼 파마하면서 인터뷰할까? 장난으로 물었는데 좋다고 냉큼 승낙하는 민정. 역시 범상치 않은 친구야. 혹시 모르지. 어쩌면 나도 앞머리 파마를 부탁할 수 있을지도. 두근거리며 미용실에 들어갔지만, 아직 전선 공사가 한창이다. 각자 미용실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아무래도 파마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거 같다.

 

“순천향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다녔는데 2학년까지 다니고 경찰 시험 준비를 2년 동안 했거든. 근데 인생은 답이 없는데 경찰 시험 합격해서 조직에 들어가도 지금처럼 갑갑할 거 같더라. 지금까지 빡빡하게 살아 왔는데 또 이런 삶을 살면 억울하잖아.”

“그래서 이것저것 일을 해 본 거야?”
“키즈 카페 알바도 했고 그다음엔 영어 학원에서 선생님도 했어. 근데 키즈 카페에선 아이들에게 ‘이거 하지마, 저거 하지마’ 식으로 통제만 하게 되더라. 그래서 좀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학원 선생님 한 거야. 아! 그 후에 잠깐 한의원에서도 일했다.”

“보통 알바는 그냥 돈 벌려고 하는데 뭔가 알바를 구할 때도 생각이 달랐네.”

“다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난 하고 싶은 일에 원칙이 있어. 지속 가능한 일인지, 공동체 의식이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지. 이렇게 세 개야. 돈이야 언제든 벌 수 있다 생각하거든. 정말 내가 할 게 없다면 공사판이라도 갈 자신이 있다고!”

 

정말 해 본 일이 다양하다. 그래 돈을 준다면 뭐든 해야지. 근데 그렇게 아무런 연관성 없는 알바를 하면 나중에 불안하지 않나 싶지만 알고 보면 민정 씨, 생각보다 치밀한 편이다.

정민정(29세)

 

“엄청 분석적인 편이야! 자소서 쓸 때도 나는 매일 일기를 쓰는데 내 대학 시절 일기 다 찾아봐서 내 성장 흐름을 파악해서 핵심을 뽑아 쓸 정도로. 그리고 대학 졸업할 때 교수님께 찾아가 이렇게 말했지. 나에게 학교는 너무 좁았다고. 지금까지 나에겐 한계가 없다는 걸 많이 느꼈어. 어떤 상황 속에 있어도 죽지만 않으면 된다고.”

 

내 길은 내가 경험해 보고 가겠다는 생각. 흔히 청춘은 흔들리는 거라 하던데 민정이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매번 했던 일을 통해 앞의 길이 보였단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했던 명연설로 ‘Connecting the dots’이란 말을 했는데 그거랑 좀 비슷하네.”
“그치.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도 연관성을 찾아 이어갈 수 있거든. 문제 푸는 걸 좋아해. 재밌어.”

 

예전에 스티브 잡스 강연을 보곤 그냥 ‘아. 어떤 일을 하든 간에 교차점이 있겠구나’ 싶었는데 민정이 이야기를 들으니 그 교차점을 찾기 위해선 내 안에 확실한 목표, 방향성이 있어야 가능하겠단 생각이 든다. 삶의 목표가 진정한 자유라는 민정 씨. 내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있는 자유를 원한다고 한다. 시간이 늦었다. 이제 막 파마 기계 셋팅 다 된 것 같은데… 그래, 파마는 다음에 오도록 하지 뭐. 역시 기대대로 되는 건 없다.

그래서 이번 년도, 저는 잘 풀릴까요

기대대로 되는 건 없지만 그래도 기대가 없으면 좀 삶이 퍽퍽하지 않나. 타로를 봤다. 올해 한 번쯤은 보고 싶었다. 선생님. 삶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이번 년도는 좀 어떠려나요. 제가 올해 아홉수여서요.

 

“9월까지 견디다 보면 그 후엔 좋은 일이 찾아올 거 같아요. 이렇게 카드가 나오는 건 쉽진 않은데요. 조금만 버티고 또 아직 놓지 않고 잡은 것들이 있는데 조금 풀어주는 것도 좋을 거 같네요.”

이번 년도 운은 나쁘지 않다고 한다

 

SKT 별별 방송국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건희. 잠깐 스타벅스로 불러내어 대뜸 타로를 봐달라 하니 보자기를 깔고 쓱쓱 카드를 꺼내며 설명해준다. 타로는 신이 허락한 경우의 수라고 해요. 인생도 인과관계가 있듯이 타로 카드를 읽는 것도 카드끼리 관계를 집는 거죠. 타로요? 예전 타로 카페에서 알바했는데 몇 번 잡아봤죠. 근데 잘한다고 하길래 돈도 더 받으면서 하다가 자격증까지 딴 거죠 뭐.

 

“원래는 예술을 했었지?”

“그렇죠.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 한국에 다시 왔죠. 미술을 하고 싶었고, 음악을 하고 싶었죠.”
“그런데 못 하게 된 건….”

“집안 반대죠, 뭐. 그래서 수도권 대학 갈 수 있는데 대전으로 내려왔죠. 아버지 반대가 심했었요. 고등학교 때 야구부였고 또 음악도 좋아하셨던 거 같은데 아마 해 봤기에 더 예술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매번 생각했죠. 나는 예술가인가, 내가 하는 건 예술인가. 그리고 이제는 알겠어요. 예술이 꼭 어렵고 진지할 필요는 없다는 걸 말이죠. 나는 내가 돈 벌어서 내 예술을 살 거예요.”

“내가 돈 벌어서 내 예술을 산다는 건 진짜 작품을 산다는 것만 말하는 것 같진 않은데?”
“맞아요. 제 작품을 누군가 사지 않는다고 그게 예술적 가치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예술은 그저 표현하고 싶은 걸 하는 거라 생각해요. 그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냐는 다음 문제고요. 내 작품 아무도 안 산다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기 위해 돈을 벌겠다는 거죠.”

 

건희는 대전에서 아티스트를 모아 팀을 결성하기도 했고 음악을 만들며 소속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글을 써 단편 모음집에 작품을 올리기도 했다. 돈을 벌며 체력을 비축할 때가 있고 돈을 쓰고 몸을 쓰며 작품 활동을 할 때가 있다. 실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 20kg가 빠지기도 한다. 안 먹고, 안 자고. 그러면 나는 죽는 줄 알았는데 그러면 작품이 나온다. 1년 전부터 준비해서 음반도 하나 나올 계획이다. 예술인의 정형적인 삶. 아침엔 일을 하고 밤에는 작업을 하는 삶이다.

 

“그런 삶이 체력적으로 많이 지치진 않아?”
“그렇긴 하죠. 하지만 내 삶에 무엇이 주류고 무엇이 보조적인 것이냐 묻는다면 저는 SKT 매니저가 보조적인 것이고 작품 활동이 주류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걸 잊지 않죠.”

“정말 쉽진 않은 삶이네. 그럼 너는 올해 어떤 운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타로 볼 수 있어?”

“타로를 볼 때 꼭 뭔가를 받거든요. 타로는 내 운을 사용해서 내 미래를 점치는 거예요. 그런데 운을 쓸 순 없으니 대신 복채를 받는 거죠. 그래서 내 운을 스스로 점 치면 내 운을 내가 써 버리는 거래요. 노력 10을 들여 이룰 수 있는 걸 내 운을 씀으로 노력 20을 쓰는 거죠.”

이건희(26세)

 

이 남자의 올해 행방은 어찌 될 지가 내 아홉수보다 더 흥미진진해지던 터라 아쉽다. 타로를 스스로 보지 않는 건 불문율 같은 거란다. 내 운을 사용해서 내 운명을 점친다는 것. 어쩌면 행운도 개인마다 할당량이 있는 걸까? 그래서 예술가들은 그렇게 불운한 삶을 사는 걸지도 모른다. 좋은 작품이 터지는 데에 인생의 행운을 다 걸어버린 거지. 건희도 이미 그런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선생님. 그럼 저는 이번 년도 큰 거 하나 기다려도 되는 겁니까? 예? 타로는 그냥 신이 보여주는 최고의 결과일 뿐이라고요? 아하… 일단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가자. 바다가 나올 때까지 달리자.

좋아하는 카페에서 만나자 하니 정부청사역 근처에 있는 브런치 카페를 소개해줬다. 약속 시간 보다 조금 일찍 가서 파니니 하나를 시켰다. 그래. 삶이 나를 속일진 몰라도 빵 맛은 나를 속이지 못하는구나. 맛있다. 상철 씨는 카페서 자주 공부하는 편이다. 28살. 대학교 동기들은 대부분 취업하는 시기에 현재 관세사 준비를 위해 시험을 보고 있다.

 

“원래는 법학과를 다녔다고 들었는데 로스쿨 생각은 없었어?”
“꿈은 원래 계속 변하니까요. 예전 자주 가던 카페 사장님이 그러더라고요. 지금은 한 직업으로만 사는 시대는 아니니 내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부가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요. 법 공부할 때 상법도 재밌었고 해외 나가는 것도 좋아해서 관세사를 준비하게 되었죠.”
“어떻게 보면 아직 관세사를 직접 경험해 본 것도 아니고 이 일이 안 맞을 수도 있을 텐데 남들 취업하고 하는 거 보면 조급한 마음 들고 그러진 않아?”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는 남으니까요. 그 후회할 것을 생각하는 순간 문제밖에 안 보이잖아요. 포커스를 어디에 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알 수 없는 게 미래다. 계획대로 되는 게 어디 있나. 어쩌면 스티브 잡스가 서로 연결점을 맞추라고 말한 것도 어차피 일은 내 마음대로 안 되니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그림을 그려보라는 현실적인 조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상철 씨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해외 가고 싶다 말한 그 다음날 비행기 표 예매해서 한 달 만에 단돈 20만 원 들고 떠났다.

이상철(28세)

 

“돈은 떨어지고 직장은 없으니 하루 종일 이력서를 돌리면서 다녔어요. 가게 들어가기 전에 10분 동안 무슨 말 할지 생각하고 들어가고 했죠. 그렇게 하루에 20 군대 씩 돌아다니는데 잘 안 됐죠. 그렇게 풀 죽어 여행자 숙소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있는 대만 친구가 너무 표정이 안 좋다며 무슨 일이냐고 묻더라고요. 상황을 이야기해 주니까 잠시 기다리라 하고 공장 하나를 소개해 주더라고요. 운이 좋았죠.”

“진짜 운이 좋았네.”
“그렇게 1년 정도 호주에서 지냈어요. 그곳에서 삶이 좋았지.”
“그곳에서 삶이 여유롭진 않았을 거 같은데 어떤 게 좋았어?”
“호주는 의지할 곳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러니 더 부딪치며 진취적으로 살았던 거 같아요. 오히려 힘든 상황 속에서 내가 나아갈 길을 만들어나갔던 거죠.”

“자신이 나아갈 길이라. 결국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진 모르겠지만 계속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중요한 거네.”
“그렇죠. 결국은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내가 흔들리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도 흔들리니까.”

 

요즘도 일주일에 5일 정도는 가볍게 러닝을 뛴다. 내 삶에 루틴을 만드는 거다. 걱정이야 언제나 많다. 하지만 그걸 끊임없이 생각하며 힘들어하기보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러면서 나는 좀 더 앞으로 나아갈 힘과 믿음을 얻는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그들을 생각하듯 그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 나오는 대사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그들을 생각하듯 그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친구들을 만나며 그들이 이야기한 것 중 동일하게 말한 것이 있다. 자유.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완전한 자유, 정신적인 자유. 그래. 삶이 나를 속이면 어때. 어차피 삶이 나를 속인다면 나도 삶이 빼앗지 못하는 영원으로 떠날 거다. 한없이 자유롭기 위해 한없이 치열해지면서 말이다.

 

월간토마토 vol.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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