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계, 시간이 흘러도 이곳에서 당연하지 않은 존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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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사람과 기계, 시간이 흘러도 이곳에서 당연하지 않은 존재는 없었다

by 토마토쥔장 2021.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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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기계, 시간이 흘러도 이곳에서 당연하지 않은 존재는 없었다

대광지공사

 

글 사진 이주연

 

검은색 스쿠터 하나가 세워진 2층짜리 건물은 보기에도 나이 지긋하다. 형형색색 필름을 붙인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둡고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싼다. 오래 묵은 매캐한 담배 향은 꼭 이 건물이 지어진 날부터 풍겼던 것처럼 곳곳에 배어 있다.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 역시 이 공간에 당연히 존재해야 할 것처럼 머무른다. 육중한 기계와 그에 걸맞은 커다란 기계 소리가 울려 퍼지는 대광지공사는 도무송(톰슨) 가공을 전문으로 한다.

표시된 선대로 접어주세요

낯선 공간만큼이나 도무송이라는 단어도 익숙지 않다. 도무송은 영어로 톰슨(thompson)이라고 하는데, 톰슨 가공법이 일본으로 넘어오며 일본식 발음으로 도무송이라 변화했다. 우리나라 말로는 따내기라고 하지만, 흔히 도무송이라 부른다. 《타이포그래피 사전》(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지음, 안그라픽스)를 보면 도무송을 따내기라 표기하며 이를 ‘인쇄물을 제작할 때 종이의 일부를 필요한 모양대로 자르거나 따는 가공법’이라고 설명한다. 곡선이나 특별한 형태의 재단을 할 때 그에 맞는 금속 칼을 제작해 프레스기로 찍어 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주로 장식적인 요소로 사용하는데, 상자에 보이는 접힌 선이 도무송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로 생각하면 이해가 조금 더 쉬울 것이다. 직선의 칼을 장착한 재단기가 해내지 못하는 곡선이나 원형의 재단 역시 도무송 가공을 통해 만들어진다. 다양한 형태로 제작하는 스티커가 가장 대표적인 예다. 도무송이 다양한 모양으로 재단, 가공이 가능한 것은 필요한 부분을 목형으로 제작한 뒤 이를 가지고 프레스기로 찍어가며 작업하기 때문이다. 목형은 박스나 화장품 종이 패키지, 스티커와 같이 접은 선이나 재단 작업을 위해 제작하는 ‘틀’이나 ‘뼈대’인 것이다. 재단이나 접는 선이 필요한 부분을 도면 제작 후, 도면에 맞춰 합판 위에 칼을 꽂아 만든다. 목형 제작은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 작업물이 출력과 인쇄를 거쳐 인쇄물로 나오면, 이를 보고 도면으로 그린 뒤에 이를 토대로 목형을 제작한다. 목형을 인쇄물이 나온 뒤 제작하는 것은 실제 인쇄물과 다르게 제작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도무송 공장으로 넘어온 목형은 기계의 압력을 통해 인쇄물에 겹쳐지며 인쇄물 특정 부분에 칼선이나 접는 선을 새긴다.

도무송에서의 공정은 주로 기계가 다 해낸다. 기계 자체가 자동화 시스템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사람의 손을 거쳤던 일들이 이제는 기계의 몫이다. 과거를 추억하던 전백현 씨의 말에 따르면 자동화 이전에는 도무송 작업 하나에 다섯 명이 일을 분업해 한 몸처럼 움직여야만 했다고 한다. 전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사람의 손을 거쳐야 했기에 지금은 하루면 끝날 작업이 그때 당시에는 한 달도 더 걸렸다.

“이 기계 하나에 족히 다섯 명은 매달려 일했지. 판 짜는 사람, 판 푸는 사람, 종이 밀어주는 사람, 받는 사람. 인쇄소야 돌아가며 할 수나 있지, 도무송은 일을 멈출 새가 별로 없었어. 한 사람처럼 일해야 했으니까. 초짜는 잘못하면 기계에 손을 다치는 일도 많았고.”

 

이런 때일수록 파이팅하자고!

대광지공사 대표이자 40년 넘게 도무송 작업을 이어온 전백현 씨는 이제 막 들어온 작업을 진행하기 위한 준비로 바쁘게 움직인다. 평소 음악을 틀어놓고 일하는 그는 오늘의 노동요를 김광석과 조용필 노래로 고른 듯하다. 두 사람의 노래가 번갈아 가며 도무송 기계음과 섞여든다. 공간에는 여전히 찬 기운이 머물지만, 한껏 집중해 일에 매진한 그의 이마에는 금세 땀방울이 맺힌다.

“도무송에서 제일 중요한 건 ‘조시’야. 목형에 종이를 대고 누르면 종이가 잘려 나가는데, 이 힘이 모두 일정한 게 아니야. 그래서 조금씩 수정을 하면서 오류가 없도록 하는 거지. 내가 조금 편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럼 뒤에 포장하는 사람들이 힘들잖아. 내가 조금 번거로운 게 낫지.”

완성된 목형에 맞춰 종이가 올바르게 잘리지 않거나 접은 선이 약하면, 그에 맞춰 하나하나 목형을 수정해 나간다. 너무 깊게 선이 들어간다 싶으면 나무망치로 목형에 박힌 칼을 두드려 조정하거나, 종잇조각이 걸리는 부분은 칼로 조금씩 도려낸다. 기계가 뚝딱 해낼 것 같지만, 여전히 그의 눈과 손을 거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완벽한 작업물을 만들기 위해 전백현 씨는 계속해서 수정 작업을 거치며 기계 앞을 떠나지 않는다.

그의 뒤를 쫓아 작업을 지켜보다가 이내 공간 곳곳을 둘러봤다. 전백현 씨의 동선을 따라 작업에 필요한 공구와 기계가 놓였다.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는지 손때 가득 묻은 이들은 전백현 씨의 부름을 잠자코 기다린다.

대광지공사의 터줏대감은 아무래도 육중한 몸을 지닌 도무송 기계 세 대일 듯싶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를 달리해 탄생한 기계는 작업물의 종류에 따라 여전히 제 할 일을 해낸다. 공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기계는 대광지공사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자동화 계기로,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인 전백현 씨가 4년 전에 중고로 사 왔다. 그 옆으로는 독일제 기계와 국산 기계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독일제 기계는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봤을 법한 형태를 지녔다. ‘오리지널 하이델베르크 실린더’라 적힌 기계는 본래 독일제 활판 인쇄 기계를 도무송 작업이 가능하도록 개조한 제품이다. 과거 전백현 씨가 서울 인쇄 거리를 돌아다니다 이 기계로 스티커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전문적인 스티커 작업을 위해 20여 년 전에 들여왔다. 지금은 스티커 작업 의뢰가 잘 들어오지 않아 예전처럼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특수재질 가공 시에 종종 쓰인다.

청록색을 지닌 국산 기계는 그에게 가장 익숙한 제품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으로 이사 온 그는 열일곱 어린 나이에 인쇄업에 뛰어들며 접한 기계가 바로 이 기계다. 처음 도무송 공장에서 직원으로 일을 배우던 시절, 다른 이들과는 달리, 굉음을 내며 무섭게 종이를 찍어 내는 기계가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가 지금까지 도무송 가공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계기일지도 모른다.

자동화 기계가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나이 많은 두 기계는 움직이는 시간보다 멈춰있는 시간이 더 많다. 사람 손이 필요한 영역 역시 줄어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이치다. 한때는 미국 수출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목형까지 함께 제작하던 대광지공사는 시대를 거치며 기술 발전과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일감과 인력이 줄어들며 불가피하게 조금씩 공장 규모를 축소했다. 몇 해 전에는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직원 한 명도 손이 필요치 않아 그만두었다. 이제 대광지공사를 지키는 건 전백현 씨 혼자뿐이다. 매년 일감은 줄어든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일이 줄어들다 못해 작업이 아예 없는 날도 있다. 욕심을 내서 일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침체한 인쇄업은 좀처럼 그의 마음을 따르지 않는다.

인쇄거리 일대에서 그의 경력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긴 시간이 흘렀다. 같은 업종에 있는 후배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와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인쇄업에 뛰어들고는 있지만 도무송을 배우려는 이는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 배운다고 하면 기꺼이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사람도 없고, 월급을 쥐여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지. 욕심을 부려 일을 더 받으면 받을 수는 있는데, 그냥 나 혼자 할 수 있을 만큼만 받아 일하는 거야. 문 닫고 집에만 있어봤자 할 것도 없고 하니까, 아무 때고 나와서 조금씩 일하는 거지. 몇 년을 더하고 그럴 것도 없어.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 계속 그냥 일하면서 산 거야.”

작업이 끝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전백현 씨는 중국으로 장난감을 수출하던 거래처에 연락을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잘 살고 있느냐고, 우리 업이나 당신의 업 역시 현재 상황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며. 걱정 섞인 안부가 오간 뒤 그는 전화 통화를 끝내며 거래처 사장에게 짧지만 단단하고 따뜻한 말을 건넸다.

“이런 때일 수록 파이팅하자고!”

 

 

월간토마토 vol.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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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월간토마토는 직접 책을 짓습니다. 월간토마토는 사람과 공간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글을 쓰고 디자인하는 것뿐 아니라 인쇄부터 포장까지도 손으로 진행하는 수제 콘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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