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미오래'는 소중한 시민의 문화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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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테미오래'는 소중한 시민의 문화유산입니다

by 토마토쥔장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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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오래'는 소중한 시민의 문화유산입니다

편집장 편지


이용원

월간토마토 vol. 170.


   ‘공간’은 참 묘한 힘을 갖습니다. 필요 때문에 공간을 만들지만 그렇게 탄생한 공간은 그 안에 머무는 인류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끼칩니다.

   어쩌면 더 나은 도시를 만드는 일은 더 나은 공간을 조성해 시민에게 제공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무척 가까운 도서관, 놀고 싶은 놀이터, 일상적으로 편하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 단골로 정붙일 수 있는 식당이나 찻집, 수많은 동식물이 행복한 녹지 공간, 상상하지 못한 이벤트를 펼치는 광장, 마을 주민이 편하고 쉽게 모일 수 있는 공유 공간 등 욕망하는 공간이 참 많습니다. 

   이 수많은 공간을 기존 토건 개발 방식으로 조성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도시 조성과 확장 단계를 지나 재생이 필요한 단계에 접어든 만큼 새롭게 공간을 건축하는 건, 신중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담은 공간을 재해석해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작업에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주위에서 이런 시도와 성공적인 결과물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시도하는가에 따라 많이 다른 결과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같은 듯 다른 결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공에서 이런 공간에 주로 새롭게 부여하는 기능은 ‘예술’입니다. 대중에게 열어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보다 더 유용한 기능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삶을 구성하는 생태계에 턱없이 부족한 영역이기도 하고요.

   재생이 필요한 공간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 느낌은 바람과 햇볕 등 자연이 그 안에서 삶을 풀어낸 인간과 함께 만든 결과물입니다. 적절한 시간도 필수 요소입니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에 질려 버린 현대인이 이런 공간을 재생해 만든 문화예술 공간에 강한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성’ 때문입니다. 

   독창적인 느낌은 상상력을 자극하며 사유할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합니다. 이런 특성은 예술과 많이 닮았습니다. 문화예술과 재생 공간이 잘 어우러지는 이유는 둘 사이에 이런 유사성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도시에도 많지는 않아도 이런 공간이 남았습니다. 그중 한 곳이 옛 충남도지사 공관과 여러 채의 공무원 관사로 이루어진 관사촌입니다. 충청남도로부터 매입해 우리는 이곳에 ‘테미오래’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2018년에 제정한 ‘대전광역시 테미오래 설치 및 운영 조례’에서 테미오래를 정의했습니다. “대전광역시장이 근대건축문화유산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지역 문화예술 진흥을 통한 도시재생 및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옛 충청남도 도지사 공관 및 관사촌에 설치•운영하는 일체의 시설을 말한다.”

   이 공간을 매입하고 활용을 고민할 때 어떤 사유에 기반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조례를 제정한 후 지난 2018년 수탁 기관을 선정했습니다. 계약 기간은 2021년까지였습니다. 대전시에서 문화예술 시설을 전적으로 민간에 위탁한 사례는 처음이었기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지난 3년 가까이 테미오래를 들여다보며 수탁 기관의 애씀은 충분히 읽혔으나 근본적인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공간 해석’이었습니다. 테미오래를 구성하는 열 채의 관사는 주거 공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어떤 특정 시점의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공간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충실히 방문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획한 프로그램이 공간 맥락에서 벗어나고 온전한 감상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테미오래가 주거 공간이었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장르 예술가가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개인 작업이나 협업으로 생산한 작품을 일상적으로 시민과 공유하고 테미오래에 머무는 예술가끼리, 예술가와 시민이 일상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만남의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장르 예술가 레지던시 공간과 작품을 공개할 공간,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생이 필요합니다.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은 비교적 최근 건물은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휴식과 교류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예술가가 머무는 레지던시 공간 외에 시민과 여행자가 머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설치도 고려해 볼 만합니다. 모두 주거 공간이었으니까요. 

   마을 안에 다양한 카페나 공예품 가게 등 민간 자원과 테미예술창작센터와 같은 공공 자원을 적극적으로 연계할 필요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이곳을 거점으로 성장한 문화예술 역량이 주변으로 끊임없이 확장할 수 있도록 기획해야 합니다. 수탁 기관이 창의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행정 영역에서 법적 제한 등도 적극적으로 완화해 줘야 합니다. 

   대전시는 지난 8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동안 시설을 위탁할 운영 수탁기관 모집 공고를 발표했습니다. 9월 6일부터 9월 8일까지가 신청서 접수 기간입니다. 공고문에 명시한 신청 자격은 공고일 현재 신청기관 주 사무소(본사)가 대전광역시에 소재하고, 문화예술 사업을 수행하는 문화예술 관련 법인이나 단체입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짝이는 창의성을 가진 민간 법인이나 단체가 테미오래를 수탁해 시민과 함께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테미오래는 대전시가 가진 몇 안 되는 소중한 근대 문화유산입니다. 

 

2021년 8월 23일 

월간 토마토 편집장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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