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인 세상 속에 필요한건, 문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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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엉망진창인 세상 속에 필요한건, 문해력이다

by 토마토쥔장 2021.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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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인 세상 속에 필요한건, 문해력이다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올해 시간을 지켜 꼬박꼬박 챙겨 본 드라마는 JTBC <괴물>이었다. 드라마 속 대부분 상황과 캐릭 터를 극대화한 경향이 있었다. 이런 판단은 좀 오래전 경험의 평균을 기반으로 할 뿐이다. 요 즘 세상에서 보면, 드라마<괴물>이 그리는 세 상은 현실감이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세상을 살아 내느라 애쓰는 우리니 말이다.

 이 드라마 등장인물 중 이창진은 핵심 빌런이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전체 이야기가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연료같은 역할이다. 드라마속에서 그가 종종 쓰던 말이 있다. "아주 엉망진창이구만."

 수 많은 주옥같은 대사 중 여전히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다. 다만, '엉망진창'을 내뱉으며 짓던 이창진 표정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상황과 대사가 딱 맞아 떨어졌다. 이미지와 언어가 함께 반응하며 더 깊은 자국을 남겼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고 더 많은 어휘를 익히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화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엉망진창' 이라는 말을 내뱉어야 무척 적절한 상황에서 이 말을 몰라, 그냥 쌍욕을 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말을 내뱉거나 침묵한다면 답답한 가슴 을어찌 풀 수 있단 말인가. 가슴 속에 감정이나 생각이 점점 차오르고 풀어내지 않으면 미칠 지경에 다다른 상황이 인류가 '말' 을 만들어 낸 원 동력이었다고 추정해 본다.

 드라마<괴물>이 종영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 요즘 '엉망진창'이라는 말이 자주 떠오른다. 간혹 입 밖으로도 되뇐다. '이거' 엉망진창이구만'이라고. '진'을 발음할 때 좀 길게 끌다가 한계에 달했을 때, 그 차오른 힘으로'창'을 발음한다. 앞에 '엉망'도 좀 삼키듯이 이를 앙다 물고 발음한다. 비슷한 어조와 똑같은 속도로 네 음절을 발음할 수도 있다. 뉘앙스가 다르다. 말이 지닌 신비다. 마음이나 생각과 말은 정말 밀접하다. 마음과 생각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 겠다. 같은 건지, 다른 건지, 마음이 동해 생각이 생기는 건지. 생각하면 마음이 동하는 건지. 좀더생각해 볼 참이다. 여하튼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해 줄 정확한 어휘를 아는 것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가기 전 준비과정에서 학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대목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이 영역에 관한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

 '엉망'은 사전을 찾아보면, '일이나 사물이 헝클어져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결딴이 나거나 어수선한 상태'다. 또는 '말이 아닐 정도 로 수준이 뒤떨어져 한심한 상태', '술 따위에 흠뻑 취하여 제정신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뒤에 붙는'진창'은 '엉망'을 더 강조하기 위해 붙이는 말이다. 그냥 '엉망'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진창'이라는 말을 붙이면 '엉망'인 상황을 해결하면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딱 '엉망진창'이다. 곳곳이 그렇다. 긍정적으로 보면, 더 나은 세계로 질적 전환을 하기에 앞서 마땅히 겪어야 할 혼란이다. 강건했던 기존 질서가 조금씩 무너지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엉키며 상황이 '엉망진창' 이 된것일 수도 있다. 이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 운 미래를 얼마나 잘 그릴 수 있는가가 중요한 시점이다. 몇몇 권력을 쥔자들 몫이 아닌 시민의몫이다.시민 전체 소통 역량을 높여야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어휘'는 반드시 필요한 도구다. 더 많은 어휘는 좀 더 섬세하고 치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엉성하게 퉁치고 넘어가며 수많은 오해와 곡해 여지를 남겨두는 소통방식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내재한다. 정확하기로 소문났던 스위스 아날로그 시계처럼 지극히 치밀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다.

 과거보다 더 복잡한 세상이 요구하는 '소통 수준'도 높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왜곡 없이 정확하게 이해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오해 없도록 전달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어휘로 상징할 수 있는'문해력'은 곧 '사회경 쟁력'인 세상이다.

 사회를 향한 발언은 이제 특정 계층이나 계급에 주어진 전유물이 아니다. 수많은 플랫폼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민 대부분이 원한다면 주장을 펼치고 논평을 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주변에서 떠도는 수많은 메시지를 제대로 해석하고 비평해야 한다. 과거 언론 환경에서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보여 준 조국일보 이강희 주필 몇몇이 여론을 좌지우지했다면, 지금은 이강희 주필이 수천수만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엉망진창인 상황의 끝이 무척 처절할 수도 있다.

이런 환경은 다양한 방면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겪는 세상에 묘한 보수성을 불러일으킨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와 통제가 더욱 강하게 일어나면서 과한 자기 통제가 이루어진다. 다양한 욕망은 분출하고 갈등이 일어나는 건, 물이 흘러야 썩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갈등을 해소할 소통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다.

 

2021년 6월 24일 월간 토마토 편집장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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