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수칙 첫 번째: 내 삶에서 나를 잃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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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수칙 첫 번째: 내 삶에서 나를 잃지 말기

by 토마토쥔장 2021.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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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수칙 첫 번째:

내 삶에서 나를 잃지 말기

버찌책방


글•사진 황훈주

월간토마토 vol. 171.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다. 이게 요즘 좀 심각해지는지 건망증이 햄버거 사이드 메뉴 감자튀김처럼 따라온다. 덕분에 가 봤던 곳도, 먹었던 음식도 언제나 새롭다. 오히려 좋은 건가? 매일 새롭게 여행하는 기분이다. 이번에 찾아가는 책방은 지족역과 반석역 사이에 있다. 지도 앱을 켜고 찾아가는 길, 예전에 방문한 화덕피자 맛집 근처라고 하는데 지금 걷는 길이 너무 낯설다. 이렇게 나는 익숙한 거리를 새롭게 여행하듯 찾아간다. 

   버찌책방. 여행 작가가 운영하는 곳이다. 여행 작가가 운영하는 책방이라... 뭔가 새롭다. 서퍼가 운영하는 서핑 카페는 바다 앞에 있기 마련이다. 언제든 자유롭게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니 말이다. 계속 새로운 탐험을 꿈꿀 것 같은 여행 작가와 한 자리를 오래 지켜야 하는 책방지기는 새로운 조합이다. 이에 대해 책방지기 조예은 씨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가 쓴 책을 한 번 펼쳐보자. 

“그렇다면 관점을 뒤집어 보면 어떨까? 여행에서 삶을 읽어 내던 사고의 방향을 바꿔 삶을 여행으로 읽어보는 것이다. 바로 내가 사는 도시가 새로운 여행 대상이다.”

-『여자에게 여행이 필요할 때』중에서- 

   꼭 멀리 떠나는 것만 여행이 아니다. 어쩌면 난 이미 삶을 여행으로 살고 있나 보다. 이런 게 얼리버드인가. 

꿈을 잡아 엮어 만들면 뭐가 나올까 

   역시 여행가의 책방은 다르다. 책방을 가로지르는 끈에 예쁜 일러스트 포스터를 달았다. 여행 지도에 관광지 사진을 붙이는 것처럼 말이다. 책방은 이제 이 주년이 된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시작한 책방. 책방이 나이 먹는 만큼 아이도 자란다. 

   “엄마로서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없더라고요. 아이도 책방에 나와 꼬마 책방지기를 맡기도 해요. 그럼 아이 친구들이 놀러 오죠. 엄마와 아들이 같이 하는 책방이에요. 그러다 보니 조금 색다른 책방이 된 거 같아요.” 

   원래는 증권사에서 일했고 1년 만에 해고됐다. 조예은 씨 문제가 아니다. 직속 상사가 해고되면서 함께 해고됐다. 지금 들어도 잘 나가는 곳, 골드만삭스에서다. 그때 삶을 돌아봤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완전한 안전은 없다는 것. 그것이 설령 남들이 부러워하고 원하는 직장이라도 말이다. 이 모든 걸 깨닫고 26살부터 30살까지 세계로 여행을 다녔다. 어쩌면 나만의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을 거다. 여행하며 느낀 점을 묶어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했고 책이 나왔다. 강연을 다녔고 독서 모임에서 지금 남편을 만나 대전에 자리를 잡았다. 대전엔 연고가 없었고 아이가 생겼다. 강연은 전국을 누벼야 했고 아이는 어렸다. 

   “한번은 아이 6개월 되었을 때일 거예요. 아이를 업고 오산에 있는 도서관으로 강의를 하러 갔죠. 강연이 한창인데 옆방에 있던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때 이건 아니다 싶었죠.” 

   조예은 씨는 강연을 줄이고 책을 읽었다. 연고가 없던 곳에선 나와 책만이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함께 나누고 싶었다. 책 읽기 모임을 시작했고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버찌책방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버찌책방은 책도 출판한다. 버찌책방 첫 출간 책은 『출근길에 썼습니다』. 과연 하루 중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언제일지 고민에서 시작한 에세이다. 출근길, 그 짧은 10분이라는 순간이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 조예은 씨의 남편 돌고래 씨(필명) 글이다. 책방 소식을 담은 책방 소식지도 만들고 최근 엔 포토 에세이 『서른살 차이, 열흘의 여행』도 출간했다. 아이와 조예은 씨의 나이 차이가 서른 살이다. 그 둘이 열흘간 제주도에 살며 느낀 점을 담은 에세이다. 역시 여행 작가는 작가였다. 

『서른살 차이, 열흘의 여행』을 소개하는 조예은 씨

   “삶이 완전할 순 없어요. 불완전한 걸 인정하는 거죠.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야 할 때도 있고 가끔 쉬는 시간도 필요하겠죠. 그렇게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 좋아하는 걸 계속해 나가려고 해요. 그게 책방의 아이덴티티기도 하고요.” 

책방의 이유 

   “책방에서 만나는 책은 온라인에서도 쉽게 살 수 있어요. 그러니 책방은 물건을 파는 것 이상의 문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힘이 많이 들긴 하겠지만 책방 주인과 손님이 아닌 책을 좋아하는 친구 사이가 되고 싶어요.” 

책방 손님에게 책을 추천하는 조예은 씨

   조예은 씨는 닮고 싶은 책방으로 ‘시부야 퍼블리싱 앤드 북 셀러즈’를 뽑았다. 출판과 판매를 함께 하는 책방이다. 통유리로 된 책방은 다양한 장르의 책이 진열되어 있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출판사 편집 공간이 함께 있다. 책뿐만 아니라 옷, 쥬얼리, 문구까지 판매한다. 젊은 층에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곳이다. 조예은 씨가 버찌책방에서 가족 이야기를 기록하고 책으로 묶는 것은 단순히 책을 상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삶의 모습을 제안하고 싶은 마음일 거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다고 할지라도 사람만이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즐길 수 있는 물리적 형태는 사라지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인터넷으로도 책을 볼 순 있지만, 책을 직접 살 때만 느낄 수 있는 그 순간 사람과 마주치는 눈과 분위기가 있죠. 관계를 맺는 것들이 소중하다고 믿어요.” 

   버찌책방은 일종의 바다다. 조예은 씨는 책 바다 위를 멋지게 항해한다. 수많은 책 중에 손님이 좋아할 것 같은 책을 속속 낚아 추천한다. 인터뷰 도중에도 몇몇 손님이 다녀갔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많이 울었었어요. 이거 보시고 이 작가에 대해 더 궁금하면 오세요. 추천해드릴게요.” 

   “이 책은 작가님이 책을 출간하기까지 10년이나 걸렸다고 해요. 엄청 신경을 쓴 책이에요. 각 장 마다 채도도 다르게 했고요. 글 밥 내용도 좋죠. 작가님이 45세에 아이를 낳으면서 얼마나 마음을 쏟아 책을 만들었을지 생각하면 입고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향 출판사도 좋아요. 거기서 이번에 나온 책이 『개울개울 징검다리』예요.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되었죠.” 

   책방엔 그림책부터, 인문학 서적, 소설, 시까지 다양한 장르가 모여있다. 작은 공간에 알차게 구성했다. 그렇기에 책방에선 나도 몰랐던 내 취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저도 제가 세계사를 싫어한다 생각했거든요. 근데 지금 와서 보니 세계사가 결국 인문학이더라고요. 조금씩 공부하다 보니 너무 재밌어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역사 내용이 조금씩 연결되더라고요.” 

   한 책방 손님은 책을 읽다가 가보지 않은 나라 역사에 호기심을 가지기도 한다. 책은 연결되어 있다. 그건 관심이다. 수많은 것 중 누군가를 발견하고 그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알고 싶은 것이 관심이다. 책이 서로를 연결해준다는 것은 관심사를 따라 걷다 보면 같은 길을 걷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아닐까. 

일상에서 꿈을 잃지 않기, 나를 잃지 말기 

   버찌책방의 슬로건은 ‘Read your dream’이다. 꿈을 현실화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날이 가면 갈수록 어려운 것이 꿈을 잡는 것이다. 요즘 꿈은 자린고비의 천장에 달린 굴비처럼, 못 먹는 감처럼 내게 다가오기가 감감무소식이다. 조예은 책방지기에게 꿈은 지키며 일과 삶에 균형을 맞추는 방법은 무엇일지 물어보았다. 

   “책과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책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을 때 자기 철학을 정리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니까요. 그렇게 책이 나를 찾는 것이라면 그렇게 찾은 나 자신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사람과의 만남이라 생각해요. 내 생각을 지지해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함께 좋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참 중요하다고 느껴요.” 

   독립적인 사람은 다양한 사회 집단에서 존재를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 꿈을 잃지 않고 끝까지 나 아갈 방법. 그것은 나 자신을 채우고 내 생각을 끊임없이 사회와 소통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조예은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작가는 프랑수아즈 사강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로 유명한 작가다. 그녀는 자신이 걸어간 길을 작품에 녹여 대중과 소통했던 작가다. 조예은 책방지기도 그런 삶을 닮고 싶다고 한다. 내가 걸어간 삶의 궤적이 모두에게 와 닿진 않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이로움이 되는, 그런 삶과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여행 작가의 책방. 어쩌면 그녀의 여행은 지금도 매우 분주하게 진행 중이다. 


글•사진 황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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