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걸어야 한다, 삶에 녹색이 부족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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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우리는 걸어야 한다, 삶에 녹색이 부족하기 때문에

by 토마토쥔장 2021.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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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걸어야 한다

삶에 녹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LIFE

신도안 옛길 답사

사진 정현구

월간토마토 vol. 172.


2020, 콘솔 게임 <동물의 > 유행했다. 시골 마을에서 낚시도 하고 농사도 지으며 전원생활을 즐기는 콘텐츠다. 조금씩 입소문이 나던 게임은 어느새 웃돈을 줘도 구하지 못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게임이 유행하며 커뮤니티에 게임 관련 소식이 올라왔다. 유유자적 귀농 생활을 표방하는 게임의 테마가 무색하게 한국인들은 효율적으로 게임을 했다. 마을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기보단 빠르게 돈을 벌었다. 스타크래프트로 다져진 최적의 게임 운용법을 십분 발휘했다. 역시 한국인은 게임의 민족이다. 

퇴근 , 게임으로 출근한다는 밈이 돌았다. 게임을 대하는 모습에서 과열된 사회의 모습이 보였다. 과열된 기계는 쉬이 고장 난다. 사람도 그렇다. ‘번아웃무기력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지친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잠을 제대로 지도 달이다. 쉬라는 권유에 주변 사람들에겐 일시적인 슬럼프라고 떠들고 다녔다. 하는 것을 그만둬야 하나 점집도 봤다. 쉬는 초조해진 됐다. 10월호 마감이 끝나갈 즈음 신도안 옛길 답사 프로그램 포스터가 월간토마토 기자 단체 채팅방에 올라왔다. 동행 취재할 사람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관광버스를 타고 관광하듯 코스를 따라 버스를 타고 도는 여행일 것으로 생각했다. 유유자적 기회인가 하고 손을 들었다. 미리 말하자면 3시간을 내리 걸었다. 

 

 

 

출발

10 2 참여한 프로그램은 (사)문화유산울림에서 진행한 마흔 번째 대전문화유산답사였다. 신도안 옛길을 둘러보는 코스로 교촌동에서 시작해 성북동, 세동을 거쳐 송정동에서 마무리했다. 이날 답사는 문화 유산울림 이주진 상임이사가 안내자로 나섰다. 

이날 일정은 시청역 1 출구에 9시에 모이면서 시작했다. 10 도착해 사진도 찍고 여유롭게 출발하려는 마음과 다르게 촉박하게 도착했다. 전날 잠을 설친 탓에 거실에 앉아 졸다 지하철 시간을 놓쳤다. 스쿨버스가 연상되는 노란색 중형 버스 앞에서 안내자가 명단을 체크했다. 2 정도 남기고 아슬아슬하게 버스 안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20 남짓 되어 보였다.

버스를 타고 30 정도 굽이굽이 들어갔다. 익숙한 대전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더니 끝내 흔적을 감췄다. 1990년대 정부 지원을 받아 지은 농기계 창고와 두꺼운 비닐로 덮인 비닐하우스가 창밖으로 지나갔다. 어김없는 시골이다. 안내자가 말하길 학교의 역할을 하던 기관인 향교가 있었기 때문에 교촌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차는 농업기술센터 근처 주차장에 섰다. 주차장 뒤편으로 이어진 산길을 탔다. 성북동으로 향하는 산길이다.

교촌동에서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산길은 생각보다 험하다. 계단을 오르고 나무뿌리가 드러난 길을 건너고 보니 선두그룹과 후발 그룹 사이 간격이 벌어졌다.

 

 

 

 

동네 사이엔 경계가 없다

안내자는 오늘 코스의 유일한 오르막이라며 사람들을 독려했다. 성북동 산성을 향해 걸으며 스치는 마른 냄새가 깃든 바람이 완연한 가을이었다. 성북동 산성은 거의 무너져 흔적만 남았다. 수풀이 우거지고, 접근로가 수해를 입어 접근이 힘들다. 멀찍이서 안내를 듣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안내자가 지금 우리는 성북동에 있다고 했다. 성의 북쪽이라는 뜻의 성북동. 금도, 안내문도 없이 지금껏 올라온 언덕을 기준으로 교촌동과 성북동이 나뉜다. 안내자의 말에 기울이지 않으면 동네가 바뀌는 것을 모를 것이다. 사람이 사는 일이 아날로그인 것처럼 사람이 사는 공간도 아날로그다. 

산을 넘으니 마을이 나왔다. 바닥에는 콘크리트로 도로가 깔려 있고 벼가 익어 가는 논과 수확 시기를 넘긴 엽채가 누렇게 말라 가는 텃밭 사이에 집이 듬성듬성 있다. 영락없는 시골이다.

 

 

 

 

시골의 모습은 나름 나름으로 다양하다 

시간여 걸었을까, 눈에 보이는 풍경이 비슷해 보이기 시작한다.

누렇게 익어 가는 , 뛰어들 짖는 , 집마다 심은 과실수와 띄엄띄엄한 . 신선했던 풍경이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도시의 비슷한 건물은 잘만 구별하면서 시골은 이리 비슷한지. 수확을 앞둔 논을 보며 안내자가 말을 꺼냈다. “옛날에는 이렇게 피를 내버려 두면 농사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제때 뽑아 주면 씨앗이 떨어져서 내년에 많이 나거든요라고 하며 누렇게 익은 사이사이 검게 익은 피를 가리켰다. 요즘은 정미 기술이 발달해 돌부터 저런 피까지 골라낼 있다고 한다. 굳이 손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조금 가다 보니 피가 없이 깔끔한 논이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비에 누운 벼가 방치된 , 누운 벼를 묶어 세운 논이 눈에 들어왔다. 논의 주인을 상상하며 길을 걸었다. 누렇게 익어 가는 벼에서는 냄비 냄새가 났다. 

소소한 차이가 눈에 들어올 즈음 이번 여정에서 제일 인상 깊은 순간과 마주쳤다. 성북동 느티나무 길이 보였다. 산자락을 원경으로, 넓은 논을 근경으로 채로 마치 <라이언킹>에나 나올 듯한 아름드리나무가 길에 주욱 나열되어 있다. 시간이 남긴 생채기를 치료한 흔적과 주름살처럼 깊게 파인 주름이 느티나무의 나이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했다. 인근 안내문에 따르면 200 정도 나무다. 풍성한 잎이 만든 어두운 그늘이 장관이었다. 안내자는 잠시 쉬어 가며 사료 성북동의 이야기를 주었다. “성북동은 조선 시대에 질그릇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사기터도 찾을 있어요.” 한참 걸었던 탓일까.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가만히 느티나무를 보고 있자 안내자가 넌지시 옛이야기를 건넨다. 느티나무 길을 따라 개울이 흘렀고, 많은 나무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없는 모습에 어렴풋이 그곳에 서린 시간을 짐작해 봤다.

 

 

 

 

내가 사는 도시도 낯선 곳이 있다 

잠시 숨을 돌리고 계속 걸었다. 무지개색 남선초등학교를 지나 계속 걸었다. 송정동이다. 휴대폰이 하루 목표 걸음 수를 채웠다며 울렸다. 건강 관리 앱을 켜보니 할증이 붙은 택시 미터기처럼 걸음 수가 올라갔다. 가을을 만끽하며 걸었다. 안내자는 끝이 가깝다며 조금만 힘을 내자고 했다. 우리는 송정동의 끝자락으로 향했다. 애견 카페가 있고 멀리 아파트의 끝자락이 보였다. 계룡시의 아파트다. 냄새가 가시고 도시의 냄새가 났다. 대전과 계룡의 경계까지 걸었다. 

여수, 통영, 서울, 차를 타고 시간씩 걸리는 곳은 그렇게 가면서 대전의 끝자락은 처음이다. 낯선 풍경에 눈이 적응할 즈음 어느덧 마지막 장소에 도착했다. 송정 1 새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 옆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그루가 그늘을 만들었다. 오래 걸었던 탓에 일행은 그늘 평상과 벤치에 앉아 쉬었다. 이곳은 소쟁이 마을이다. 지도에 찾아도 나오지 않는 이름이지만 인근 주민은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새마을회관 옆엔 독특한 설화가 전해지는 나무가 있다. 마치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가늘고 주변 나무보다 상대적으로 왜소한 말채나무다. 조선 초기 정도전이 말의 채찍을 꽂아두고 갔는데 채찍이 자라 나무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설화 나무는 죽었는데, 나무의 자식이 자라 이렇게 컸다고 한다. 나무의 한쪽 가지는 금속 받침대로 고정되어 있는데, 이는 정도전의 후손들이 만들어 고정한 것이라고 한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저녁 무렵 집에 들어왔다. 분명 고된 일정이었는데 출발 전보다 한결 가벼웠다.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해 봤다.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좋아한다 

지하철은 빠르다. 신호도, 끼어들기도, 복잡한 교차로도 없다. 정시성과 신속성이 지하철의 장점이다. 빠르게 가기 위해 까만 터널 속으로 간다. 목적을 위해 빛을 잃었다. 지하철이 빠르지만 나는 시간이 두세 걸리더라도 버스를 탄다. 그중에서 운전석 맞은편 앞자리를 좋아한다. 버스에서 제일 넓은 창문이 보이기 때문이다. 앞을 바라보며 신호를 기다리고, 끼어드는 차에 겁먹기도 한다. 때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본다. 기운이 오르지도 않았건만 이르게 자리를 붕어빵 가판을 보고 말라가는 잎을 본다. 하늘을 본다. 버스를 타려고 일부러 일찍 나와야 하지만 기분이 좋다. 옛길 탐방의 걸음에도 고됨보다 즐거움이 컸던 이유는 걸으며 마주친 색과 계절 덕분이다.

한참을 걸으며 요즘 버겁게 느껴지는 시간을 되새겨 봤다. 주변의 성공과 흐르는 시간에 초조해 급하게 뛰며 살았다. 마치 터널 같았다. 조금 천천히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느리게 가는 버스는 녹색 불에 간다. 우리는 걸어야 한다. 삶에 녹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진 정현구

월간토마토 vol.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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