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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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

by 토마토쥔장 2021.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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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으로의

회귀

국내 최초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


글•사진 김서현

월간토마토 vol. 146.


   잠실나루역에 도착했다. 1번 출구로 나가 왼편을 바라보니 납작하고 긴 서울책보고가 보인다. 평일 낮임에도 많은 사람이 왕래한다. 개관 소식을 접한 당시의 설렘을 그대로 안고 입구로 향했다. 서울책보고는 지난 3월 27일 개관했다. 서울시 소유 신천유휴지 내 기업 창고로 쓰던 공간을 시민들을 위한 문화복합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1,465m² 규모의 국내 최초 초대형 공공 헌책방이다. 서울책보고는 서울시에서 기획하고 서울도서관이 운영한다. 

 

 

 

거리의 헌책을 한 데로 모아 

   처음 시작은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중심으로 한 25개 책방, 약 13만 권의 책이었다. 현재는 30개 책방, 약 17만 권이다(취재 날짜 전날인 5월 20일 기준). 이곳에 책을 채우기 위해 서울에 있는 모든 헌책방에 협조 요청을 보냈다. 겨우겨우 25개 책방을 채웠다. 오랜 세월 헌책방을 지켜 온 당신들의 전 재산을 함부로 맡길 수 없었을 거란 이해와 이해하는 만큼 쌓이는 아쉬움이 섞인 채 서울책보고가 개관했다. 

   이곳 서가의 책을 훑으며 외면하던 헌책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책 좋아하는 이들이 헌책을 매개로 모인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 속닥거리는 대화 소리가 들린다. 책장 넘기는 소리와 커피머신 소리, 방문한 이들의 책 찾는 소리가 들린다. 헌책방을 찾아 어르신들이, 아이의 손을 잡은 어른들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길고 납작한 공간을 책벌레 형상으로 조성하기 위해 둥글게 싸듯 책을 채웠다. 곳곳에 비는 책장이 아쉬웠는데, 방문한 이들의 양손 가득한 책을 보고 회전율이 높구나, 했다. 

   헌책과 기부도서, 기획전시 공간, 독립출판 전시 공간과 각종 문화행사를 할 수 있는 무대, 카페가 함께 있다. 카페 이용으로 인한 책 훼손은 이미 여러 곳에서 문제 된 적이 있어 관리 방법에 관해 물었다. 시민들에게 가급적 음료는 책 구매 후에 마시길 권하고 있다는 관계자는 방문자들의 이용 에티켓이 좋아, 높아진 시민의식을 체감 중이라 했다. 

 

 

 

헌책방다운 공간으로서, 그리고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서울책보고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에 책 처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어떻게 진단해 줄까 궁금해 사전예약제인 책 처방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총 다섯 권의 책을 처방받았다. 의사 가운을 입은 북 레시피 닥터는 상담자가 작성한 자료로 대화하며 정성스레 책을 처방한다. 서울책보고는 책 관련 문화 콘텐츠를 시민들에게 공급하고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영세한 헌책방지기들과의 상생을 부가적으로 수행한다. 한 시간가량의 책 처방 프로그램에서 책을 처방받고 나오다 계산대에서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허허 웃으며 한가득 올려놓은 책을 계산해 달라는 할아버지와 웃으며 죄송하다 하는 직원.

   “이거 계산해 줘요. 내가 50년 동안 책을 봤어. 여기 한곳에 다 모여 있고, 다 좋은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단골이고 해서 책방 사장님들이 좀 깎아 주구 그랬는데, 여기는 그게 없어. 그래서 재미가 없어.” 

   아쉬움 뚝뚝 묻어나는 할아버지의 불평이 헌책방의 모습을 불러온다. 오고 가는 대화에서 헌책방의 냄새가 난다. 

 

 

 

불편하고 느리지만 

   서울책보고는 ‘불편한 서점’으로 기획했다. 대형서점, 대형 중고서점이 익숙한 우리에게 책이 분류되어 있지 않은 곳은 어색하다. 전반적인 운영 방식이나 책 찾기가 어려워 화를 내는 이가 많다. 실제로 굉장히 불편하다. 간 김에 한 권 안고 오려던 야심 찬 계획은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어떤 책이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인지, 갖고 싶던 책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 한참을 헤매다 빈손으로 나오는 것으로 끝이 났다. 

   원래 헌책방은 책이 분류되어 있지 않다. 옛날 헌책방을 아는 이들이라면 떠올릴 수 있는 책방지기들의 모습,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담배를 입에 물곤 책을 읽으며 손님이 들어오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는 책방지기들. “아저씨, 여기 000책 있어요?” 하면 “저기 가 봐, 거기에 없으면 없어” 하는 곳. 그곳을 그대로 이곳에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현재 30개 헌책방이 서가별로 배치되어 있다. 도서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분류되어 있지 않아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지 관계자들도 찾기 힘들다. 최소한의 편의를 위한 도서검색대가 있으나, 운이 좋지 않은 날에는 원하는 책을 결코 찾을 수 없다. 각 헌책방 대표들이 자주 방문해 본래 운영하던 당신들의 방식으로 배치하는 중이라 초반과 비교해 찾기가 수월해지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불편하다. 

   분류가 되어 있지 않은 탓에 샅샅이 책등을 훑을 수밖에 없다. 책을 고르는 데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천천히, 꼼꼼하게 살펴야 어떤 책들이 있는지 보인다. 집중하여 천천히 훑다 보면 금방 시간이 흐르고 공간에 온전히 녹아든다. 

   이날 내게 올 운명 같은 책이 없을까 기대하며 훑었지만, 아쉽게도 내 운명의 책은 찾지 못했다. 

 

 

 

헌책과 책 냄새, 책과 어울리는 사람들 

   한 시간가량 책 처방을 받고 나와 화려한 빨간 꽃무늬 셔츠의 할아버지를 또 만났다. 분명 책 처방받기 전에 봤던 분이다. 포스가 남달라 기억하고 있던 분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다. 머릿속엔 각 헌책방 대표들이 와서 자주 책을 살핀다는 관계자의 첨언이 맴돌고 있었고, 무조건 한 책방의 대표겠다 생각했다. 소개하고 정체를 물었다. “안녕하세요? 그*북스 사장님이신가요? 한 시간 전에도 뵀던 것 같아서요.” 바로 그*북스 서가 앞에서였다. 

   아니라고, 그냥 책 사러 왔다는 할아버지는 작은 수레 위에 얹은 종이박스 속에 책을 쌓고 있었다. 아까 봤을 땐 사다리를 사용해 아주 위쪽의 책을 보고 있었다. 마음으로 확신하고 던진 질문에 경계하며 수줍게 답했다. 궁금한 마음에 자주 오는지 물었다. 미소 지으며 “종종 와요”라고 했다. 동양 의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할아버지에게 책 쌓은 수레를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얼마 고르지 못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곳 헌책방 책을 전부 훑고 있었다. 

 

 

 

분류되어 있다면 알 수 없는 기쁨 

   서가에 꽂힌 책들을 훑다 보면 어느 책장은 나름으로 분류가 되어 있기도, 또 다른 책장은 어떤 방식으로 꽂은 건지 전혀 확인이 안 되기도 한다. 공공 헌책방인 이곳에서도 ISBN이 없는 책이 유통된다. 30년 된 잡지의 부록이든 절판된 책이든. 느리고 불편한 그 과정에서 찾은 보물은 값지다. 

   책이 들어오긴 하느냐고 불평하는 이들도, 책이 너무 빨리 들어와 이미 훑어본 서가를 또 가서 봐야 하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이들도 있다. 서울책보고는 이용자의 의견을 통해 수정 보완을 하고 있으나 녹록지 않다. 현대인들이 아날로그적 공간의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곳에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모인다. 모든 세대가 어우러지는 공간. 필연적으로 지금이 쌓인다. 이곳에서 헌책을 마주한 뒤 우리 세대가 옛 헌책방을 기억하는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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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서현

월간토마토 vol.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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