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길을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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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새벽에 길을 나서다

by 토마토쥔장 2021.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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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길을 나서다

LIFE

2021 대전스토리투어


글·사진 이용원

월간토마토 vol. 173.


새벽 5시 30분, 시청역 1번 출구에 도착했을 때 사위는 여전히 어두웠다. 어둠 속에 노란색 버스가 보였다. 노란색은 새벽과 무척 잘 어울리는 색이었다. 대전체험 여행협동조합이 진행한 2021 대전스토리투어 중 ‘새벽투어’에 동행했다. 대청호를 찾아 ‘막 떠오르는 오늘의 태양’을 보는 여행이다.

차량이 출발하고 진행을 맡은 안여종 대표는 자주 건너던 다리, 매일 지나던 도로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입혔다. 이야기를 가진 공간은 전과는 다른 존재로 다가온다. 이야기가 갖는 힘이다. 얼마쯤 가다가 버스가 멈췄다. 대청호에 도착하기 한참 전이었다. 차는 절대로 다닐 수 없는 작은 다리 앞이었다.


대동천을 건너는 다리 앞에는 요즘 보기 어려운 형태로 푯돌 두 개가 섰다. 오른쪽 푯돌에는 다리 이름 동광교(東光橋)를 적었다. 왼쪽 푯돌에는 다리를 세운 시기를 적었는데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다. 바람과 햇볕에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일부러 쪼아 낸 흔적이 역력했다. 그곳에 새긴 글자는 昭和三年十月(소화 3년 10월)이다. 광복 후 ‘소화’라는 일본 연호를 파내고 싶었던 마음이다. 이런 역사를 기억한 푯돌이 100년 가까운 시간을 견디며 그곳에 있었다. 동구문화원 자료를 찾아보니, 이 다리는 옥천에서 판암동을 거쳐 회덕원 서원진 나루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단다. 

다리를 건너 대동 돌장승을 만났다. 석장승 주변을 한옥 느낌의 담장으로 두르고 앞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상석도 두었다. 주변에 소나무도 정성껏 심었다. 일제 강점기에 지은 다리와 우리 전통문화를 간직한 석장승이 한 공간에 있다. 

대청호로 향했다. 목적지는 황새바위 전망대다. 대청호수로 옆에 내린 시간은 오전 6시 30분이었다. 산 위로 해는 올라오지 않았지만, 이제 주변은 밝다. 발 밑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고 옆 사람 얼굴도 확인할 수 있다. 가을에 접어들며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지 대청호 수위가 높다. 처음 잡았던 길은 자박자박 물이 차올랐다. 안여종 대표는 다른 길로 일행을 안내했다. 

하늘과 구름, 나무와 물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다양한 색으로 물든 나뭇잎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낙하했다. 떠오르는 해를 보지 못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을 길이다. 사진도 찍고 풍광도 보며 걷는 사이에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 재촉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참가자 대부분은 그다지 급해 보이지 않았다. 멀리 경기도에서 참여했다는 배꼽 친구들은 해를 맞으러 가는 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황새바위 전망대에 도착하니 따뜻한 차와 예쁘게 담은 견과류, 과일과 떡을 준비해 놓은 진행팀이 참가자를 맞이한다. 다양한 빛깔을 내는 차를 한 잔씩 받아 간이 의자에 앉아 해를 기다렸다. 그곳에서 대청호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물 밑에 가라앉은 마을과 삶을 이야기했다. 

편의에 따라 대청호를 만들며 우리는 너무 많은 삶의 흔적을 없앴다.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잊기에는 절대 가볍지 않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기억하고 이야기 나누는 일이다.


글•사진 이용원

월간토마토 vol.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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