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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있는 불 앞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by 토마토쥔장 2021.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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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있는 불 앞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LIFE

금산 연리재


글·사진 정현구

월간토마토 vol. 173.


금산 제원면 용화리에는 연리재가 있다. 연리재는 오래된 한옥을 수리해 게스트하우스처럼 운영한다. 

팀 ‘유유자립’이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과 금산군, 금산군 마을만들기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운영한다. 청년에게 휴식과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알려 주겠다는 첫 취지대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주말에는 때때로 부동산, 양조 등의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은 해당 기간 연리재에 묵는 이용객에게 제공하는데, 한 번도 예약에 성공한 적이 없다. 

연리재를 찾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은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 마을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하려 찾았고 두 번째는 쉬고 싶어 도망치듯 찾았다. 이번에는 취재를 위해 찾았다. 이로써 연리재는 나에게 공부와 휴식, 일이 공존하는 장소가 됐다. 연리재의 주요 일정은 식사다. 예능 <삼시세끼>처럼 때가 되면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자신의 일정을 소화한다. 그러다 보면 뭘 했는지 모르게 어영부영 하루가 다 간다. 지금은 저녁 8시, 모닥불 앞에서 글을 쓴다. 불규칙적으로 타닥타닥 소리가 들린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젖은 장작이 매캐한 연기를 내며 타다 잦아들었다. 집에서 불을 피웠다면 민원이 들어왔을 테지만 이곳은 괜찮다. 

연리재는 금산 터미널에서 차를 타고 20분 거리에 있다. 10km 정도 떨어져 자기 차가 없다면 하루에 몇 대 없는 버스를 타야 한다. 이용객의 불편함을 줄여 주기 위해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픽업이 없었다면 들어갈 엄두도 못 내는 곳이다. 용화리는 금강의 상류가 굽이치며 감싸 돌고 있다. 강의 사방으로는 산이 솟아 마치 산에 둘러쌓인 모양새다. 마을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굽이친 산세 때문에 세상과 완벽히 단절된 느낌을 준다. 고독하고, 지루한 곳이다. 단절에서 오는 고독함과 지루함은 연리재를 찾는 이유다. 사람이 없으니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없고 지루하니 글도 쓰고 주변도 둘러본다. 컴퓨터와 TV가 없으니 시간도 남는다. 정말 구름이 떠가듯 유유자적한 생활이다. 

앞선 두 번의 방문은 1박 2일이었고 이번 일정은 3박 4일이다. 중간에 수업이 꼈지만, 비대면이었기에 괜찮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갈 일이 없어지며 한동안 창고에 밀어 넣은 연초록색 트렁크를 꺼냈다. 바퀴가 네 개나 달린 캐리어는 보름간 러시아 여행 짐이 들어갔을 만큼 크다. 즐겨 입는 맨투맨과 러닝용 체육복, 속옷, 토익 RC 책과 남는 시간 동안 읽을 책을 넣었다. 그 큰 트렁크의 지퍼가 간신히 닫혔다. 힘겹게 지퍼를 닫다 이전 방문에서 얻은 교훈이 떠올랐다. ‘시간이 남아도 평소 생활보다 알차게 보내진 않는다.’ 책 몇 권, 두터운 노트, 모자 등을 빼내니 트렁크가 홀쭉해졌다. 

11월 3일 오전 9시, 금산으로 출발했다. 금산으로 가는 길은 안개가 자욱했다. 점점 짧아지던 가시거리가 50m도 채 안 되었다. 10시, 해가 안개를 몰아낼 때 즈음 금산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운영진이 픽업을 나와 있었다. 구면인 터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연리재로 향했다. 저번 방문 때 넘실대던 벼는 모두 추수해 짧은 볏짚만 남았다. 벼를 수확하던 마을 주민들은 곧 있을 김장철을 맞아 배추를 수확하고 있었다. 짐을 들고 연리재로 올라가는 길에 저번 방문 때 안면을 텄던 옆집 주민을 만났다. 목소리가 우렁찬 분이었다. 대전에 있다가 김장하러 내려왔다고 한다. 배추는 미리 샀냐고 물으니, “텃밭이 있는데 뭣 하러 사다 먹어?”라고 답했다.

 

 

 

 

우리가 네 집을 뺏었니? 

늘 그랬듯 고양이가 방문객을 맞이했다. 연리재의 마스코트는 고양이다. 총 일곱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고 하는데 자주 보이는 고양이는 두 마리다. 밥을 먹을 때면 밥상 근처에서 야옹거리곤 한다. 

방문을 열어 두면 방 안에 들어온다. 집을 고치기 전에는 고양이가 이 집에 살았다고 한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우리가 집을 빼앗은 게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집은 사람이 쓰는 대신 운영진이 조그만 고양이 집을 만들었다. 안에는 이불로 채웠다. 

고양이가 살던 시절 연리재는 한참을 방치한 상태였다. 마을의 행사 공간으로 몇 년 쓰다 이내 시들해지며 방치되었다고 한다. 연리재는 고양이의 놀이터였고 서까래에는 크고 작은 벌집이 붙어 있어 소방관과 함께 제거했다고 한다. 마을 공간으로 쓰기 전엔 폐가였다고 한다. 사람마다 말이 달라 정확히 집의 역사를 알 수 없지만 어렸을 때 대청마루에서 놀곤 했다는 마을 주민의 말로 추측해 보면 폐가가 된 지 60년은 더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유리 샷시가 아니라 창호지가 붙어 있고 천장은 대들보와 서까래가 노출되어 있다. 현대식 보일러를 쓰고 전기레인지를 쓰는 모습과 대조돼 묘한 괴리감을 연출했다. 마치 스팀펑크 세계관처럼 익숙한 듯 새로운 느낌이었다. 

 

 

 

 

달리는 재미가 있는 곳 

짐 싸는데 제일 골칫거리는 체육복이었다. 빨래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넉넉히 챙겼더니 공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매일 천변을 뛰던 루틴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4일간 머물며 매일 마을을 뛰었다. 무선 이어폰을 끼고 디스코를 튼다. 몸을 풀고 무리가 가지 않을 속도로 천천히 뛰며 주변을 살폈다. 1997년 정부사업으로 지은 공용 창고와 태양광 패널이 달린 출하장, 굴곡과 햇살이 만든 과장된 명암이 눈을 즐겁게 했다. 코스도 다채롭다. 운동장처럼 한 바퀴를 도는 코스지만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장딴지 근육에 완력을 조절했다. 미세하게 긴장을 조절하니 달리기가 다채로웠다. 한 바퀴를 돌고 나니 1km다. 매일 컨디션에 맞춰 거리를 조절했다. 보통 오후 4시에서 5시 즈음 달렸다. 마주치는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를 이웃집 손자가 놀러 온 것으로 착각한 마을 주민에게 언덕 위 집에 놀러 왔다 설명했다. 주민은 이곳을 ‘널망 위에 있는 집’이라고 했다. 젊은 게 좋다고 웃어 보이고 재 미있게 놀다 가라는 말에 저녁 식사 맛있게 하라는 답을 하고 남은 코스를 뛰었다. 방으로 돌아와 찾아보니 널망은 언덕을 일컫는 전라도 방언이다. 

 

 

 

 

떠나야 합니다 

연리재는 11월 7일, 입동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문을 닫는다. 겨울이 매서워 운영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앉아 쉬던 마루도 당분간 다시 고양이의 차지다. 나는 6일 퇴실이기에 전날 짐을 쌌다. 김장을 준비하던 옆집 주민에게 내일 떠난다고 말했다. 내년에나 뵙겠다는 말에 송별회를 해야겠다고 했다.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에 가슴이 아렸다. 

운영진이 차로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일찍 움직여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출발하던 날처럼 안개가 자욱했다. 이불을 개고 바닥을 쓴 뒤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5분 정도 늦게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출발하니 영화처럼 안개가 물러갔다. 돌아갈 시간이다. 

불 앞에서 쓰던 원고를 근처 카페에서 마무리 짓는다. 카페의 난방의 훈훈한 온기 사이로 청량감 있는 찬 바람이 느껴진다. 어느새 겨울이다. 그동안 연리재를 운영하는 유유자립은 첫 운영의 시행착오와 방향에 관해 이야기한 뒤 더 나은 내년을 맞이할 것이다. 마치 올해 농사를 마친 용화리처럼 숨을 고른다.


글•사진 정현구

월간토마토 vol.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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