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계속 기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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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계속 기록해야 한다

by 토마토쥔장 2021.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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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계속 기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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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동 동네기록관 ‘홀린사진센터’


글·사진 선가혜

간토마토 vol. 173.


청주대학교 버스정류장에서 느리게 걸어도 3분 거리. 낮은 건물이 모여 만든, 차 한 대 지나다니기에 꼭 맞는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목적지에 다다른다. 절임 배추 손질하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가족이 사는 집 앞, 빨간색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우암동 동네기록관 ‘홀린사진센터’(이하 ‘홀린’)이자 ‘청주사진아카이브도서관’이다. 

 

 

 

 

동네기록관 

청주시는 ‘기록문화 창의도시’를 비전으로 2019년 대한민국 첫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되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문화도시조성사업을 통해 ‘청주형 문화도시’로 도약한다. 청주시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은 시민 문화력을 키우고,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며, 문화 경제력을 높인다는 목표로 문화도시조성사업을 진행한다. 

문화도시조성사업의 한 갈래인 동네기록관은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사업이다. 주민 스스로 동네의 살아온 이야기, 사는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의 기록문화를 만드는 커뮤니티 공간 역할을 한다. 2020년 동네기록관 열 곳이 문을 열었고, 2021년 다섯 곳이 추가로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과 상생협약을 맺어, 현재 총 열다섯 곳이 운영 중이다. 

동네기록관은 가지각색의 주제를 가지고 동네를 기록한다. 기록이라고 하면 ‘글’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들은 형태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지역의 인물, 전설 등을 소재로 공연을 제작한 ‘온몸뮤지컬 컴퍼니’, 좋아하는 책 속 등장인물로 변신하고 가을동화잔치를 열었던 ‘초롱이네도서관’, 전통방식 한지 제작 워크숍을 통해 닥나무의 생태, 종이 만드는 기술과 재료, 한지 만들던 장소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는 ‘복합문화공간 1377’ 등이 그 예시이다. ‘홀린’은 사진을 택했다.

 

 

 

 

청주 토박이, 사진도서관을 차리다 

시작은 2013년도였다. 서울에서 대학교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청주를 떠난 적 없다는 이재복 대표는 우암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대학에서는 사진을 전공했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책 만드는 일을 했다. 잡지사, 출판사에서 일했고, 서점에서도 일한 적도 있다. 그런 경험을 이정표 삼아 고향인 청주에 자리 잡았다. 

이재복 대표

“원래는 독립출판서점을 했어요. 한창 유행처럼 번졌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러다 커피를 팔면 괜찮다길래 그것도 해 보고, 사진 교육도 했어요.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죠. ‘홀린’은 사진 기반 문화예술단체예요. 우암동의 작은 동네 사진센터 같은 공간을 만들고,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생성하고자 했어요.” 

처음에는 사진 그 자체에 집중했다. 스터디 모임을 꾸리거나, 유명한 사진작가를 초빙해서 비평을 받아 보기도 했다. 이재복 대표는 사진에도 문법이 있다고 말했다. 문법을 알아야 사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보통 사진은 ‘보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보다’라는 행위는 조형적, 형식적인 것에만 집중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사진에 담긴 내용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2017년에는 사진 읽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사진 독서회’도 진행했다. 사진 문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겉핥기식으로 사진을 찍게 된다. 결국 단순히 예쁜 것들이나 관광 자원 위주로, 또는 기술적인 부분만 드러나게 찍게 된다. 그러면 사진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홀린’은 2020년, 동네기록관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 속에 도시 에너지를 담았다. 사진의 물성 그 자체를 넘어서 속에 담긴 동네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 의미를 읽어 가며 공공기관 영역에서는 불가능한 실험적인 것들을 시도했다. 작은 동네의 작은 이슈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이재복 대표는 시민기록활동가와 ‘우암-콜렉티브’를 구성하여 우암동을 기록했다. 우암동은 1960~1970년대 부흥했던 동네지만 이제는 구도심이라고 불린다. 재개발 이슈도 몇 번 있었지만 시행되지는 않았다. 이재복 대표는 ‘늙은 우암동’에 집중했다. 개인적인 시각이자 일종의 분노가 이유였다.

“우암동은 고령화가 심한 동네예요. 이 동네에서는 저희 부모님 세대가 청년에 속할 정도니까요. 아파트를 짓거나 재개발을 기다리거나… 시한부 같은 마을이에요. 기운이 빠지는 일이죠. 계속 이런 식으로 가면 몇 명만 남고 다 부서지고 없어질 거예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그런 개인의 분노가 담겨 있어요. ‘늙은 우암동’은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굳이 동네를 방문해 보지 않고, 수치상으로만 봐도 고령화가 심한 동네임을 알 수 있다. 청주시청에서 제공한 2021년 9월 청주시 인구통계를 보면 우암동의 65세 이상 노령 인구 비율은 23.4%이다. 청주시 평균인 13.9%보다 거의 10% 가까이 웃돈다. 

사진집 『DongBuChangKo』, 『봉명주공아파트』 

이재복 대표는 옛 연초제조창의 담뱃잎 보관 창고로 사용하던 동부창고에도 관심을 가졌다. 동부창고는 ‘홀린’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이다. 동부창고는 주민의 손에 닿는 일상적인 공간이었다. 구도심이고, 변화가 원체 없던 동네였다. 그런데 갑자기 큰 도로를 낸다느니, 아파트를 세운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변화가 생기는구나 싶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동부창고의 변화를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집『DongBuChangKo』를 엮어 내고 전시회도 했다. 

이재복 대표는 앞으로도 개인 프로젝트 기록을 책으로 출판하는 것도 이어 가고 싶다. 그 첫 시작인 『봉명주공아파트』를 꺼내 보여 주며 이야기했다. 

“사진집 총서를 만드는 거예요. 『봉명주공아파트』 가 그 시작인 거죠. 기록한 사진들을 편집해서 그 해에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묶어서 프로젝트 단위로 출판하고 싶어요. 일 년에 한 번 정도를 목표로 계속해 나가고 싶어요.”

‘홀린’은 디지털 자료 데이터베이스 플랫폼 구축에 힘썼다. 2020년, 기본적인 틀을 완성했다. 웹페이지를 구축하고 채집한 기본적인 데이터를 업로드했다.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우암동은 디지털과 거리감 있는 동네이다. 컴퓨터 없는 집도 많고, 스마트폰을 가지고는 있지만, 활용이 어려운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재복 대표는 우암동 동네 사람들에게는 좋은 매체가 아닐 수 있지만,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 특히 젊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하나의 길이 된다는 가능성을 바라봤다.

 

 

 

 

물성이 필요 없는 것 취급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재복 대표는 청주시의 현재 상황에 아쉬움을 표했다. ‘직지의 고장’이라고 칭하지만, 캐치프레이즈처럼만 사용하는 느낌이 강하다. 직지 축제를 열고 문화예술 전문가들을 초빙하지만, 관련 연구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청주시 안에서 지역 출판사나 북 디자이너, 사진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기록 형태도 바뀌고 있다. 카메라는 휴대폰이, 사진 앨범은 SNS가 대체했다. 태블릿의 자리가 늘어나고, 종이책과 음반의 자리가 좁아진다. 음반 가게는 물론이고, 사진 현상소도 찾아보기 힘들다. 구석구석 자리 잡았던 독립서점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물성을 필요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 탓에 우리는 기록 주권을 잃어가고 있다. 아주 쉬운 예로, 사진 앨범과 SNS를 비교해 볼 수 있다. 단순하게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즉, 매체 속성의 차이가 있다. 아날로그는 현상소에 사진을 맡기고, 값을 지불한다. 디지털은 대부분 무료이다. 휴대폰으로 찍고 SNS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가장 큰 문제는 소유권에 있다. 사진 앨범은 나의 소유, 나의 기록이다.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다. 그러나 SNS, 즉, 서비스는 기업 소유이다. 

“SNS는 소위 가성비가 좋은 거죠. 그러다 보니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만약에 기업이 소유권 주장에 대해서 기업 위주로 판단하면 결국 권력화되는 거거든요.”

이재복 대표는 이를 계속 이야기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록 주권이 이해되지 않았다면 싸이월드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사용하고 있는 SNS가 서비스를 종료한다면 이제까지의 기록 대부분이 사라진다.

 

 

 

 

지속 가능한 기록의 이상향은 어디일까? 

“아카이브라는 것은 단기사업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십수 년은 지나야 그 가치가 드러난다.” 2020년 동네기록관 아카이빙 북에 실린 이재복 대표의 말이다. 다시 말하면 기록은 장기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한 해 잠깐 아카이브 해서는 피상적인 것밖에 알아내기 어렵다. 

“인터뷰 질문 속에 ‘지속 가능’이라는 의미가 많이 담겨 있다고 느꼈어요. 이런 고민이 중요하고, 평소에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문화도시’라는 것도 언젠가 끝나는 거잖아요. 대부분 사업비 사용에 관한 이야기만 하려고 하고, 커뮤니티나 네트워크 구축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경향이 있어요. 심지어는 모은 자료의 저작권, 출처, 보관에 관한 이야기도 찾아보기 어려워요.” 

이재복 대표는 여러 번의 인터뷰 경험을 언급하며 인터뷰하러 오는 사람은 계속 달라지는데 비슷하고 피상적인 질문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런 식의 인터뷰는 사실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아카이빙하는 자료의 참, 거짓을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 현장에서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업적을 과대 포장하거나, 안 한 걸 했다고 하거나, 기억이 잘못돼서 기록이 왜곡되기도 한다. 

이재복 대표는 결국 이상적인 방향은 이 활동을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사람이 의식을 가지고 연구를 이어가면서 기록하고, 축적해 나가야 의미 있을 거라고 말했다. 사업 형태로 만들어서 금전적인 지원이 있으면 유연하게 진행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직업적인 형태가 되다 보니 좋아서보다는 일처럼 하는 경향이 나타날 거라고 덧붙였다. 

이런 면에서 민간단체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동네기록관이 현재를 기록하는 것들이 역사성, 인문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지만, 인문학자나 역사전문가가 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공공기관은 편집 권한에 많은 사람이 관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양적 자료 축적은 가능할지 몰라도 질적 자료 축적은 불가능한 단어라는 점에서 동네기록관이 상당히 고무적이라는 게 이재복 대표의 견해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매일 한 명씩 맡아 돌려썼던 ‘야자일지’를 찾았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쓰는 일지’를 줄여 우리끼리 ‘야자일지’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공책 한 장을 찢어 휘갈겨 쓰고는 게시판에 아무렇게나 붙여 놨다.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그걸 보시고는 스프링 제본해서 주신 노트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책장 정리하다 말고 자리 잡고 앉아 한 장씩 읽어 보았다. 역시 정리의 꽃말은 추억 여행인가. 어느새 정리는 뒷전으로 미루고 ‘이거 봐’하며 보낸 야자일지 사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도 추억 여행에 동참했다. 

친구들과 한참을 이야기한 후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며 이재복 대표가 제시한 이상향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우리는 야자일지를 작성하는 게 재밌었고, 좋았다. 노트와 볼펜만 있으면 야간 자율학습 시간 내내 쓸 수 있으니 여건도 됐다. 노트가 다 차면 담임 선생님께 새로운 노트를 받아 다시 이어 갔다. 우리는 고등학교 다니는 3년 내내 야자일지를 썼다. 우리는 고등학생 시절을 직접 담은 기록이 있는 것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계속 기록해야 한다.


글•사진 선가혜

월간토마토 vol.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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