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커다란 순박한 청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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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덩치 커다란 순박한 청년, '대전'

by 토마토쥔장 2021.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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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커다란 순박한 청년, '대전'

[월간토마토 162호 편집장 편지 中]

 

 2021년인 올해는 '대전'이라는 도시가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는 출발지점이기를 희망합니다. 왠지 21세기가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한 느낌입니다. 지난 20년이 준비 기간이었다면, 이제 앞으로 60년 동안 역동적인 21세기를 보내고 2081년부터는 22세기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때 까지 살지도 못하면서 누구 맘대로 계획을 수립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경험하지 못할 미래라서 말하기 편합니다.

 

 지난 해 우리 도시와 관련해 많이 나왔던 말 중 하나는 '노잼 도시 대전'이었습니다. 도시 안에 잔잔하게 흐르던 이야기를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유명 MC가 언급하면서 '노잼 도시 대전'이 파도처럼 일렁였습니다. 그동안 우리 도시에서 장시간 끊임없이 제기했던 '문화 불모지'라는 말이 팝콘처럼 튀겨져 가볍게 변모한 느낌입니다.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난관을 위트있게 승화시키며 극복하는, 고유의 우리 민족 정서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문화 불모지'라고 말하면 진지한 테이블에 앉아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자화자찬하며 흩어지는 토론회가 떠오릅니다. '노잼 도시 대전'이라고 하면 왠지 술집이나 찻집에서 모여 깔깔거리며 가볍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문화 불모지'라는 어휘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도시'라는 낱말이 '노잼 도시'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노잼'이라는 말도 영어와 한글 줄임말의 묘한 결합입니다. 작명에서 요즘 세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노잼'에서 '문화'를 대치하는 '재미'라는 말은 무척 많은 걸 내포합니다. '재미'는 경제 성장을 지상 최고 가치로 여기며 달려왔던 지난 세월에 대한 강한 저항이며 삶에 다른 측면을 들여다보는 전환이기도 합니다. '도시'를 향해 구체적으로 원하는 걸 요구하고 충족시켜 줄 것을 주장하는 거지요. 우리가 대상으로 삼은 '도시'는 그 실체가 구체적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모호합니다. 우리는 도시에 요구할 권리가 있으면서 동시에도시 구성원으로서 그 요구를 충족해 줘야 할 책임도 갖습니다. '재미있는 도시'는 결국 도시 구성원의 재미있는 삶의 총합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개인이 최대한 재미있어야 비로소 재미있는 도시는 가능합니다.

 

 이런 '도시'는 우리가 사는 지금, 현대 사회를 특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문화인류학자나 사회학자, 도시공학자 등 많은 부류의 전문가가 도시를 연구하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도시'라는 공간은 우리 삶의 양식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도시에서 태어난 우리는 도시가 규정한 질서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도시를 읽어 정의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건 끊임없이 해야 할 일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우리 도시 대전'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왜인지 모르겠으나 저는 덩치만 커다란 순박한 청년이 떠오릅니다. 추운 겨울이면 콧무을 훌쩍거리는 그런 청년이요. 동네 꼬마들이 놀려도 빙그레 웃기만 할 뿐, 손찌검 한번 안하는 착한 성정을 지닌 청년입니다. 재밋거리가 많지 않고 독특한 무엇도 잘 느껴지지 않는 도시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경제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겼던 지금까지는 이런 도시 특성이 치명적 단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시대에는 도시 경쟁력일 수도 있습니다. '노잼', '유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기에 2020년 '코로나19' 상황을 맞이하며 삶의 가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대전이 재미있는 도시인가, 재미없는 도시인가'를 토론하기 전에 새로운 가치로 등장한 '재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정의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단 한번도 '돈 버는 재미' 말고는 '삶의 재미'를 도시 전체 담론으로 꺼내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얘기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만들어 낸 콘텐츠를 학습하거나 따라가지 말고, 그냥 우리 도시 대전 안에서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 우리 독자 여러분 모두, 우리 도시 안에서 신나고 재미있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월간토마토 편집장 이용원 - 

 

 

[2021년 162호 편집장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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