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우리가 감탄하는 꽃에는 그녀의 손길이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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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우리가 감탄하는 꽃에는 그녀의 손길이 닿아 있다

by 토마토쥔장 2021.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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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우리가 감탄하는 꽃에는 그녀의 손길이 닿아 있다

홍명 식물원 남궁순화 씨

글·사진 양지연

남궁순화 씨

 

[백 여 개의 화원 ; 유성 노은 화훼 단지]

유성구 노은동에는 현재 약 100여 개가 넘는 화원이 화훼 단지를 이루고 있다. 유성 나들목과 대전 월드컵경기장 부근 13만8000㎡ 터에 2003년부터 화훼 단지가 입주하기 시작했다. 2000년 두 개의 화원으로 시작해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 유성 노은 화훼 단지는 중부권에 있는 화훼 단지 중 규모가 제법 큰 편이다. 인근에 바로 유성IC가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며, 화원이 한데 모여 있어 눈에 잘 띈다.

 

화원 수만 보아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이곳에서 가꾸는 식물 품종 또한 어마어마하다. 동양란, 서양란 등 생화부터 관엽수, 선인장 등 품종만 해도 수백 가지다.

 

100여 개 화원 중에서 ‘홍명 식물원’을 찾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는 여러모로 몸과 마음이 힘든 상황이다. 민감한 사회 분위기 속에 진행하는 인터뷰라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화원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소파에 앉은 남궁순화 씨를 마주하고는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남궁순화 씨는 통화를 마무리하고는 필요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말투가 한없이 따뜻하다.

 

 

[이 일의 시작]

남궁순화 씨는 IMF 금융위기 상황을 지나올 때 5살 큰 아이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둘째 아이를 데리고 원예사업을 시작했다. 15년을 대전 중구 석교동에서 꽃가게를 했다. 유성 노은 화훼 단지로 넘어온 지는 이제 5년 정도다. 석교동에서는 ‘고은플라워’라는 꽃집을 운영했다. ‘고은’은 남궁순화 씨 딸 이름이다. 상호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며 웃는 모습이 다정하다. 남궁순화 씨가 개업한 ‘고은플라워’는 당시 주변에서 손재주가 좋다고 소문난 문방구 사장이 인수했다. 하지만, 2년 정도 지나서 고은플라워는 문을 닫았다. 가게를 인수한 문방구 사장의 건강문제였다. 15년을 함께 한, 그리고 자녀의 이름을 따서 만든 가게가 문을 닫을 때의 헛헛함을 과연 내가 상상할 수 있을까?

 

남궁순화 씨 남편도 목척교 부근에 있던 홍명상가 옆 꽃시장에서 화원을 했다. 2009년 홍명상가를 철거하기 전에는 건물 옆으로 큰 꽃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홍명상가를 철거하고 대전천을 덮은 콘크리트를 걷어내면서 대부분 꽃가게가 문화동, 세이백화점 뒤편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남궁순화 씨 남편도 그때 유성 화훼 단지 지금 자리로 화원을 옮겼다. 그래서 여전히 이름도 ‘홍명 식물원’이다.

 

 

[“경쟁, 그런 걸 할 시간은 없어요.”]

이곳 노은 화훼 단지에는 보통 도매 가게가 많다. 겉에서 보면 비슷한 업종의 가게가 모여 있어 경쟁이 심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식물을 기르고 화원을 가꾸는 일이 손이 많이 가고, 바쁘기 때문에 서로 경쟁은커녕 신경도 잘 쓰지 못해요.”

 

게다가 각자 가게마다가 취급하는 주된 상품도 다르다고 한다. 야자수를 특히 좋아하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가게부터 생화를 주로 취급하는 가게까지 생각보다 더 다양한 듯하다. 홍명 식물원에서 가꾸는 식물의 스펙트럼은 넓었다. 그래서 다른 가게에서 원하는 품종을 찾지 못한 손님이 홍명 식물원에 와서 사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남궁순화 씨 부부 손길이 닿은 수많은 품종 중에서 남궁순화 씨의 취향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차분하고 단조로운 색의 꽃다발을 많이들 선물하던데, 나는 이런 강렬한 색의 생화를 좋아해요. 조금은 촌스러울 수 있지만 화려한 색에서 주는 멋이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손님 중에는 어머니들이 많지, 주부층. 단골로 오시는 어머니들이 많아요.”

 

 

 

남궁순화 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앉아 있던 주위를 둘러보니 홍명 식물원에는 정말 눈을 사로잡는 강한 색의 생화가 많았다. 생화는 아니지만 비누장미 또한 남궁순화 씨가 개인적으로 애정이 가는 상품이라고 했다. 물만 닿지 않으면 오래도록 두고 볼 수 있으니 선물용으로 좋다고 설명한다. 홍명 식물원에서 상자로도, 다발로도 잘 나가는 상품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꽃 선물 할 일 없었던 한 해]

“올해는 아무래도 대다수의 학교에서 코로나19로 졸업식을 진행하지 않은 것이 꽃집에도 큰 피해로 다가왔죠. 개업집이나 동네에서 볼 수 있는 꽃집에도 납품을 하지만, 졸업식 같은 학교 행사가 있을 때 개인적으로 들러서 꽃을 사가는 손님 발걸음도 무시하지 못하거든요.”

 

꽃을 선물할 일이 여느 때보다 적었던 한 해였다. 졸업식은 물론이고 꽃을 주제로 한 축제도 취소되었다. 남궁순화 대표는 김영란법을 처음 시행했을 때 꽃을 선물하는 일이 줄었고 무엇보다 잘 나가던 큰 화환이 잘 안 나가서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 이후로 올해 코로나19 상황이 화원에 닥친 두 번째 위기였다.

 

“꽃집이 제일 잘 될 때는 2월에 있는 졸업식을 지나서 3월에서 6월까지예요. 그때가 제일 바빠. 보통 5월까지가 한창이라고들 하는데, 현충일 지나고 철쭉은 6월 말까지도 피기 때문에 보통 많게는 1년 수입의 70퍼센트는 그때, 3월에서 6월 사이에 나온다고 봐야 해요. 가을에 하는 국화 축제 지나면 겨울은 행사도 거의 없으니까 상반기보다는 훨씬 수입이 덜 해요.”

 

그러고 보니 시민 발걸음이 많았던 유성 국화 축제도 올해에는 그 규모가 축소되었다. 국화 축제를 예년처럼 진행할 수 없으니 길에서라도 국화를 볼 수 있게끔 시에서는 길가에 국화를 많이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꽃 축제를 즐기지 못하는 건 꽃가게를 운영하는 대표 입장에서도, 시민 입장에서도 아쉬울 따름이다.

 

 

[관심만한 게 없어요]

남궁순화씨와 함께 화원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품종이 이렇게 많아서 하나하나 가꾸기가 정말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저는 제 방에서 기르는 화분 하나도 쉽지 않던데요.”

 

“식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이 답이에요. 우리 남편은 아침 7시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와서 가게 문을 열 때도 있어요. 아침 일찍 문을 다 열고 환기시키고 물을 줘요. 환기랑 물을 주는 작업이 우선이에요. 또 떡잎들 다듬어주고, 얘네가 잘 자라는 것만큼이나, 상품성이 떨어지지 않게끔 다듬어주는 것도 중요해요. 또 이제 포장하고 배달 업체 불러서 배달 보내고 나면 그렇게 하루가 가지요."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화원 식물 배치에도 다 이유가 있어요. 선인장은 조금만 추워져도 금방 얼어 죽어서 벌써부터 안으로 들여놓아야 하고, 생화는 아직까지 문 앞에 있어도 괜찮아요. 관엽은 지금 시즌이 되면 온도 조절이 필요해서 난로를 써야 해요. 15도에서 18도가 가장 좋지만 적어도 10도 이상으로는 유지를 해주어야만 살아요.”

 

어쩐지 금전수부터 야자, 뱅갈고무나무 등 관엽이 한데 모인 곳은 비닐로 바람을 막아두고 난로를 켜두었다. 저렴한데다가 단순하고 대중성이 좋아 항상 인기가 많은 품종이지만 그만큼 남궁순화 씨의 세심한 손길이 닿아야만 하는 식물들이었다.

 

 

[꽃을 꼭 닮은 그녀의 미소]

남궁순화씨의 손가락들은 잘 굽어지지 않았다. 이 일을 하며 가위질을 하도 많이 한 탓이었다. 봄에 피는 개나리, 수선화 등 야생화부터 가을의 국화, 앞으로 겨울이 되면 볼 수 있을 동백꽃까지 매년 우리가 보는 모든 꽃이 남궁순화 씨의 손을 거친다.

 

“나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굵어지고 멋들어지면서 값어치가 올라갈 수 있어요. 하지만 생화들은 철이 지나면 팔수가 없으니까 문제예요. 내가 잘 가꿔야 해요.”

 

20년 째 해오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에는 충분히 힘이 느껴졌다.

“꽃집을 운영하다 보면, 그래도 사람을 만나고 상대해야 하는 때가 와요. 근데 난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걱정이에요. 내가 사람도 좋아하는데 목소리를 크게 내보려고 하면 오히려 화가 난 것 같은 목소리로 나와요. 아직도 손님이 서서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꽃다발 포장을 하려면 마음처럼 잘 안 돼요. 차라리 전화로 주문하시고 찾으러 오시면 잘 하는데.”

 

남궁순화 씨는 수줍음 잘 타는 성격은 일을 오래해도 어디 가지 않는다며 웃는다. 수 년 간 꽃다발을 만들고 셀 수 없이 많은 식물에 남궁순화 씨 손길이 닿았을 것이다. 남궁순화 씨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서는 나를 멀어질 때까지 배웅해주었다. 홍명 식물원에서 본 꽃과 남궁순화 씨의 아름다운 미소가 닮아 있었다.

[2020년 월간 토마토 161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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