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손 마사지 안태준 씨
인생 별거 없어요. 진짜예요.
글·사진 하문희
안태준 씨 하루는 항상 손님과 함께 시작한다. 보통 오전 9시에 영업을 시작해서 11시쯤 끝나지만, 손님 상황에 따라 더 일찍 열기도 하고 늦게 끝나기도 한다.
"그럼 내일 아침 8시는 어떠세요?"
안태준 씨는 휴대전화 너머 상대방에게 물었다. 전화기에서는 중년쯤 돼 보이는 여성 목소리가 들렸다.
"예, 그럼 내일 아침에 오세요."
대전 약손 마사지는 대전우체국 옆 중앙프라자 6층에 있다. 일반 마사지 숍과는 다르게 경혈마사지를 하는 이곳은 간판을 보고 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방문하기 전에는 예약이 필수라는데, 입소문을 타고 찾아 와서 단골이 되는 사람도 많고, 타지에서 일부러 오는 사람도 꽤 많기 때문이다.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도착하면 안태준 씨가 쿠폰을 준다. 사우나를 3,0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이다. 30분이나 한 시간 정도 일찍 와서 따뜻한 물에 몸을 풀어주면 효과가 더 좋으니 가서 풀고 오라고 제안한다. 경락 마사지도 해야 하니까 얼굴을 씻으라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남자 사우나로 내려가는 계단 오른쪽에 식당이 있고, 그 오른쪽에 경락실이라고 적힌 공간이 있다. 식당은 현재 안태준 씨 아내가 운영 중이다. 예전에는 두 사람이 함께 경락실을 일을 했다.
"아내도 공부를 엄청 많이 한 사람이에요. 저 사람은 침도 놓을 줄 알아요."
경락실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침대 두 개가 보인다. 두 침대 사이에는 분홍색 커튼이 공간을 분리한다. 문 정면으로 가로로 긴 창문이 서너 개 있는데, 햇볕이 잘 들어서 따뜻한 느낌을 준다. 왼쪽에는 안태준 씨 책상이 있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두꺼운 공책이 한 권 있었다. 이 공책이 장부를 대신하는 듯 했다. 책상 오른쪽 벽에는 안태준 씨 경력을 증명하는 각종 자격증과 근육을 설명하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마사지를 받기 전애 안태준 씨가 묻는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평소 등과 어깨가 자주 아프다고 말했다. 오른쪽에 놓인 침대에 엎드려서 누우라고 한다. 침대는 숨쉬기 편하도록 얼굴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 일을 한 지는 20년 정도 됐어요. 처음부터 이 일을 한 건 아니고, 젊었을 때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어요. 근데 어떤 일을 해도 잘 맞지가 않아서 이 일을 해야겠다고,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마사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으니 등을 꾹꾹 누르며 이야기한다.
"저는 서봉경혈 지압학회 출신이에요. 초대 학회장이 고광석 박사인데, 경혈지압법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에요. 저는 그분한테는 아니고 그다음 세대인 한세영 회장에게 배웠어요. 서울에서 배우고 그곳에서 일하다가 가족도 대전에 있고 해서 여기로 오게 됐어요."
마사지를 직접 받아 보니 이곳에 손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안태준 씨는 어디를 어떻게 눌러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쪽이 위고 이쪽은 간이에요. 여기가 뭉쳐 있으면 잠을 잘 못자요. 평소에 소화가 잘 안되는 편이죠?"
안태준 씨는 등을 몇 번 눌러 보더니 평소 앓던 크고 작은 질환을 귀신같이 알아맞혔다. 이내 팔과 팔꿈치 등 온몸을 이용해 근육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뼈처럼 단단하게 뭉친 근육들이 으드득 소리를 내며 풀어졌다.
약손 마사지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이 찾아온다. 주로 50대에서 60대의 중장년 층에게 인기가 많지만, 10대나 30대, 젊은 손님도 한번 오기 시작하면 계속 받으러 온다고 한다.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손님을 만났을 그에게 기억에 남는 손님에 대해 물었다. 서울에서 일할 당시, 하루는 안면 마비가 있는 손님이 온 적이 있다고 한다.
"되게 과묵하신 분이었어요. 끝날 때 어땠냐고 물어봐도 그냥 시원하다고만 하고 별다른 말을 안 하셔서 다시 안 오실 줄 알았어요. 근데 계속 오시더라고요."
그 손님은 안태준 씨에게 안면 마비를 치료하고 갔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마라톤 선수의 다리를 고치기도 하고, 병원 치료로도 소용이 없었던 통증을 잡은 적도 있다고 한다.
"혈자리를 찾아서 손 근육까지 풀어 주니까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병이 생기는 이유는 근육이 뭉쳐서 그런 거거든요. 처음 받을 때는 아프지만 한번 받은 분들은 나중에 꼭 다시 와요. 의외로 스님들도 많이 오세요."
안태준 씨는 그렇게 손님 몸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내 몸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 진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안태준 씨는 일을 할 때 마음이 제일 편하다고 했다. 이 일이 적성에 맞기도 하고, 손님의 아픈 곳을 풀어 준다는 사실이 좋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운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한 사람이라도 더 긴장을 풀고 갔으면 하는 마음에 이용료를 상시 40% 할인한다.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처음에는 아파서 방문했던 손님이 나중에는 덕분에 훨씬 나아졌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직업 특성상 손님 개인적인 정보는 물어보지 않도록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근육을 풀다 보면 그 사람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어렴풋이 짐작된다.
"사는 거 별거 없어요. 진짜예요."
안태준 씨는 그렇게 말하며 넌지시 위로를 건넸다.
모든 과정을 다 끝내고 노곤한 몸을 일으켰다.
"어떠셨어요?"
"엄청 시원해요."
책이 가득 든 책가방을 메고 있다가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목이랑 어깨가 안 좋아서 더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음에 오면 내가 서비스로 그냥 해 줄게요."
안태준 씨는 책상 아래 서랍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주었다.
"궁금한게 있거나 시간이 날 때 언제든지 찾아와요. 가기 전에 소금방에서 땀을 빼고 가면 효과가 더 좋아요. 마사지를 처음 받아 보았으면, 몸살에 걸릴 수도 있으니 저기 약국에서 청심환을 사 먹는 것도 좋아요."
감사 인사를 건넨 후 경락실 밖으로 나왔다. 경락실 문 바로 앞에는 다음 손님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사우나에서 나온 것인지 옷과 머리가 땀으로 젖었다. 분주히 움직이는 안태준 씨를 뒤로하고 소금방으로 향한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2020년 월간 토마토 161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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