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이 아픈가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대광농약종묘사 이영기 씨
글·사진 염주희
어떤 이는 농약사라 하고, 어떤 이는 종묘사라고 하는 이곳 이름은 대관농약종묘사이다. 구암역 인근 부동산에 들러 삼십 년 넘게 영업한 상점을 찾았더니 일러준 곳이다. 이사를 가서 외관은 새것이지만, 부동산이 그 자리에 있던 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종묘사가 이 동네에 있었다고 한다.
상점 골목에 들어선다. 멀리서도 대광농약종묘사가 빨간 간판이 눈에 띈다. 출입구 양옆으로 모종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가게 내부를 둘러보며 세월의 흔적을 살피는데 한눈에 들어오는 게 없다. 물건을 사러 온 건 아니고 뭘 좀 여쭈러 왔다고 말하니, 앞치마를 걸친 직원은 간단한 건 본인에게, 어려운 건 사장님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나는 통화중인 사장님을 기다렸다.
<"내가 오래 하긴 했지.">
이영기 씨는 1972년도에 대전역 앞 종묘사에서 근무를 시작, 업계에 입문한 지 50년이 되어 간다. 수십 년 전 동료들과 함깨 유성으로 이전해 일하다가, 1994년에 단독으로 대관농약종묘사를 시작했다. 현재 위치로 이사한 것은 2년 전이다. 주 고객은 공주, 논산 세종의 농부들과 건물 옥상이나 텃밭에서 소규모로 작물을 키우는 도시농업인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6시에 문을 열어 저녁 8~9시까지 운영한다. 유성에 4·9 장이 서는 일요일에는 시장 방침에 발맞추어 문을 연다. 종묘사의 성수기는 4~5월이다. 이때는 하루 이백여 명의 손님이 찾아온다. 여섯 명의 직원이 하루종일 정신없이 일한다. 지금처럼 추운 계절에는 시간적 여유가 좀 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 길을 간 거지. 다른 길을 갔으면 돈도 더 많이 벌고 성공했을 건데. 잘못 붙들렸지. 발을 잘못 들였어···. 이 길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다른 거 했으면, 공무원으로 치면 서기관 이상은 했을 텐데, 자연과학이 제일 어려운 거야. 농사는 자연과학을 알아야 해."
처음 어떻게 종묘사를 시작했는지 물으니 덤덤하게 이야기를 꺼낸다. 온종일 상담하고 설명하는 이영기 씨답게 힘든 기억도 좋은 기억도 담백하게 풀어낸다.
"전혀 모르는 사람 도와줄 때. 농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잘 알려 줄 때 보람 있지. 목이 쉴 정도로 설명할 때가 많다고. 사람들이 수확하고 와서 나한테 자랑하면 마음이 뿌듯하지. 올해 농사 잘되었다고 할 때, 그럴 때."
<벌레들도 밀려난다>
이영기 씨 책상에는 컴퓨터, 전화기, 휴대폰, 계산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책상 한가운데에는 일기장이 있다. 수십 년째 쓰는 일일 기록 매출장부다. 1998년에 전산시스템을 도입한 이후로는 건별 수기 작성은 하지 않지만, 여전히 일부 자료는 일기장에 적는다. 모니터와 키보드 사이에 있는 이 장부가 디지털 기계의 아날로그식 백업 파일이다. 프린터기 앞에는 온습도계를 두었다. 상점 밖에도 수은 온도계를 걸었다. 농사는 날씨에 따라 유행하는 병해충이 바뀌기 때문에 늘 민감하게 온도를 살펴야 하는 까닭이다. 이영기 씨는 한국이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있어 식물의 병도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예전에는 벌레가 크고 굵직했는데, 요즘 그런 벌레는 잘 없고 미세해충이 많지. 전부 외국에서 온 것들이야. 종자도 국산 종자 말고 수입 종자가 많아졌는데, 씨앗만 그런 게 아니고 벌레도 외국산에 밀려났다고."
오십 년 세월 동안 종자도 벌레도 국산이 외국에 밀려나는 추세다.
<작물약국>
이영기 씨는 유무선 전화로, 대면으로 손님 질문에 답한다. 이곳에서 취급하는 물품은 종자, 비료, 농약, 농기계 다 합쳐 1만여 개가 넘는다. 이 많은 씨앗과 농약 중에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필요한 물건을 찾는지 궁금할 정도다.
"주로 내가 상담을 해 주지.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약을 써라'이렇게. 이야기를 들어 보고 필요한 약을 찾아 줘. 말하자면, 식물 약국인 셈이야. 농약, 농약 하지만, 요즘에는 작물보호제라는 말도 쓰지. 농부들이 증상을 설명하려고 잎사귀나 아픈 작물을 샘플로 가져오는 경우도 많아."
내부를 다시 보니 정말 약국을 닮았다. 이영기 씨 책상 뒤로 가지런히 놓은 플라스틱병은 색상별로 분류했다. 노란 뚜껑은 풀을 죽이는 제초제, 초록 뚜껑은 벌레를 죽이는 살충제, 분홍 뚜껑은 균을 죽이는 살균제다. 농부들은 몇 백 배로 희석해서 쓰는 병 제품을, 소규모 텃밭을 운영하는 사람은 명함 크기의 작은 포를 사간다. 농작물의 종류, 아픈 증상, 기후에 따라 필요한 약을 찾아 주는 게 이영기 씨의 주요 업무다.
<나라에서도 못 돕는데, 나라도 도와야지>
취재를 하는 동안 세 명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간다. 첫 번째 사람은 "고맙습니다. 외상으로 달아 주세요." 하면서 90도로 인사를 하고 떠난다. 두 번째 사람은 물건을 건네받고 아무렇지도 않게 "외상으로 할게요"라고 말한다. 세 번째 사람은 수리 맡긴 농기구를 찾아가며, 물건을 받고 바로 돌아선다. 부품값이 4,000원 나왔다고 하자, "돈 안 가져왔는데. 다음에 드릴게요"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외상 거래 고객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물음에 이영기 씨는 다 기억한다고, 컴퓨터에 기재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전부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손님들에게 외상을 자주 해 주면 사장님이 힘드시잖아요?"
"힘들지. 근데 농민이 다 힘들어서 외상으로 사 가는 사람이 많아. 먼저 물건 쓰고 나중에 돈 생기면 값지. 나라에서도 못 도와주는 걸 내가 도와주는 셈이라고. 아직 외상대금 못 받았는데 돌아가신 양반도 있는걸."
<노란색 팬지를 심어요>
이영기 씨는 대화 도중 상점 안쪽 사무실에서 하얀 씨앗 봉지를 꺼내 온다. 인근 교도소에서 주문한 팬지로 반드시 노란색으로 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가게 안에 사람들은 왜 꼭 노란색인지 궁금하다며, 저마다 추측을 한다. 한 사람은 아무래도 교도소니까 교화의 의미가 아닐까 하고, 다른 사람은 노란 리본이 달린 나무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형을 마치고 나온 사람이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을 용서한다면 나무에 노란 리본을 걸어 달라고 부탁하는, 팝송 가사다. 이 노래 때문에 교도소에서 노란색이 희망과 용서의 상징인 것 같다는 해석애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사장님, 이 한 봉지만 가지면 교도소를 노란 팬지로 뒤덮을 수 있나요?"
"한 봉지에 천 개가 들었어."
우문현답이다. 작게 시작해서 크게 되는 게 씨앗이지. 반짝반짝한 새 건물에서 오래된 자취를 발견하기란 숨은그림찾기 같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이야기 내내 눈앞에 있었다. 바로 농작물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 대답해 주는 살아 있는 역사, 이영기 씨였다.
[월간 토마토 161호 기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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