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을 담아 너를 비추다 - 박종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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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담아 너를 비추다 - 박종욱 작가

by 토마토쥔장 2021.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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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을 담아 너를 비추다 - 박종욱 작가

글·사진 황훈주

 

 작업실은 3층에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갈수록 새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겨울날 생생히 들리는 새소리가 낯설다. 새소리를 따라 들어간 작업실은 넓다. 인터뷰 전 대전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에서 <넥스트코드 2020 온라인 개막식을>을 봤다. 참여 작가들의 짧은 소개가 담긴 영상에서 박종욱 씨 작업실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업실 모습은 영상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다.  

박종욱 작가 작업실

 

" 새를 키우시나 봐요."

 

"네. 지금은 추워서 안에 들여놨어요. 사랑앵무예요."

 

 넓은 케이지 안에 새들이 푸득인다. 새끼 때부터 먹이를 직접 먹여 키웠다고 한다. 앵무새는 새끼 때부터 손으로 밥을 먹이며 길들인다. 하지만 그의 새들은 정말 배고플 때 빼고는 손에 잘 앉지 않는다.

 

 "한번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아버지에게 통제받았던 만큼 나도 저 새들을 통제하는 건 아닐까. 내가 아버지고 저 새가 나라면, 저 새는 자유롭게 날고 싶을까. 아니면 안전한 철장 속에 있고 싶을까."

 

 그의 작품 키워드는 '수집'과 '통제'다. 

<통제의 방 시리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처음 박종욱 씨 작품을 만난 건 중동에 있는 '미술관 담다'에서다. 하얀 벽에 걸린 액자 속 박제된 나비가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 모형이 나비 날개에 붙어 있었다. 묘했다. 박제는 힘의 비대칭이 명확하다. 잡은 자와 잡힌 자. 산 자와 죽은 자. 그가 이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박종욱 작가

"어렸을 때부터 골동품을 좋아했죠. 부모님 영향도 있을 거예요. 부모님도 좋아하시거든요. 인사동에 가서 우표를 수집하기도 했고요. 그런 관심사가 2019년엔 곤충 표본 박제로 이어졌어요. 자연사 박물관에 가는 걸 좋아해요. 박제된 동물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은 뭐랄까. 낯설지만 싫진 않은 느낌이죠. 유리막을 경계로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주 보게 돼요.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거죠. 그게 시작이 되어 곤충 표본 박제를 모으게 되었어요."

 

 

 작가 개인의 취향이 잔뜩 들어간 작품을 보는 건 기분이 좋다. 좋아하는 게 명확할수록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게 된다. 박종욱 씨 작품도 처음엔 개인 관심사로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점차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해 이것저것 만들어 보기도 했고 심지어 전생 체험도 했다. 전생 체험은 실패로 끝났다. 최면에 쉽게 빠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 상담을 받으며 자신의 가정사, 개인의 상처에 대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장교 출신의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유로운 미술을 하시는 어머니. 통제와 자유 사이에서 자란 그는 점차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을 작품 속에 함께 녹이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설명에는 이렇게 나온다. 

 

"보고 있으면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마음 한 켠 답답함이 차지한다. 떨어져 나간 더듬이, 다리. 온전치 않은 곤충들. 위치도 맘에 들지 않는다. '통제'가 필요하다."

작품 설치 스케치

 

 <새장 안에서도 새는 노래한다>

 박제의 가치는 무엇을 수집하고 어떻게 통제했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오브제의 의미가 중요해진다. 박종욱 씨는 서양화 전공이다. 평면 작업이 많은 서양화 전공을 하면서도 그는 학부 시절에 교내 소각장에서 남이 버린 작품, 쓰레기를 가져오는 일이 많았다. 그것은 일종의 재창조였다. 누군가 버린 쓸모 없는 것에 다시 의미를 넣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이번엔 나비 박제에 사람 모형을 붙임으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했다. 일종의 의인화다. 이곳에 수집된, 통제된 박제가 나와 또 우리일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통제하고 통제받는다. 관객은 액자 속 박제된 사람을 닮은 나비를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통제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지도를 액자 속에 함께 넣은 건 일종의 아이러니예요. 지도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상징하잖아요. 자유와 통제. 이 두가지를 함께 배치함으로 박제된 나비의 모습을 극대화하고 싶었어요."

 

그는 통제를 말하지만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맡겼다. 작품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 

 

"무언갈 의도하진 않았어요. 그저 저의 관심사, 저에 대해 알아가면서 진행한 작업이에요. 통제란 것도 꼭 나쁘게만 볼 순 없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도 아직 무엇이 좋다고 결정하진 못해요. 틀 안에 가두는 것, 저 새도 지금 틀 안에 가둔 거잖아요. 하지만 저 새를 풀어 놓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아버지도 그 당시에 나를 통제한 것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해요."

 그의 작품은 그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 작품이지만 어쩌면 지금의 젊은 세대가 어떻게 흘러 왔고 또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자유를 선택한 삶>

 "저도 졸업 후 서울로 갈까 고민도 했었죠. 하지만 서울은 집값이 비싸잖아요. 또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살 경우엔 제가 할 수 있는 작업물의 크기, 방법도 제한되게 되고요. 그럴 바에 대전에 남아 크게 작업실을 쓰고 싶었어요."

 지역에서 예술을 한다고 해도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 자기 작품 활동을 포트폴리오에 정리해 메일로 보내면 되는 세상이니 공간에 제약받을 일은 적다. 자기 생각을 공간의 제약 없이 다양하게 표현하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작업실 한 켠엔 목공용 장비가 놓여 있다. 평면 그림과 입체 조형물이 함께 작업실을 채운다.

 

 박종욱 씨 사진은 그의 작업실에서 찍었다. 그의 뒤에 보이는 작품은 사람 얼굴을 한 짐승이 창에 찔려 있다. 이와 비슷한 작품을 넥스트코드전에서도 봤다. 작품 이름은 <짐승>.

<짐승>

 

"짐승은 자유롭잖아요. 그림을 보시면 짐승 모습 피사체는 틀에 갇혀 있어요. 이 짐승은 사람이기도 해요. 자유를 갈망하는 짐승과 그것을 통제하려는 힘 사이에서 발버둥 치는 것을 추상적으로 그린 그림이에요."

 

 

우리는 모두 자유와 통제 사이에 서 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막막하지만 자유로운 삶 또는 안정적이지만 통제되는 삶. 그의 작업실은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단 말이다. 자유로운 공간에서 만든 작품을 가지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는 최근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등 철물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골동품과 같은 느낌을 이런 철물, 재활용품을 통해 낼 수 있을지 여러 시도 중이라고 한다. 그는 현재 자유롭게 비행 중이다.

 

[월간토마토 163호 기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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