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육체와 정신을 위해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 김지호 대표
글·사진 김서현
파쿠르[Parkour], ‘장애물이 곧 길이다’
잘 닦인 길을 두고 장애물로 향하는 사람들, 이들은 길이 험난하거나 끊길 것을 두려워 않는다. 만들어내기에 실재하는 길은 곧 삶의 길로 이어지기 마련이라 이들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계속해서 부닥치는 두려움에 맞서는 것으로 자기 길을 개척하는 파쿠르[Parkour] 수련자들. 파쿠르란 프랑스어로 길이라는 뜻이고 한자로는 도[道]가 되겠다.
항상 똑같은 일상, 거기에서 오는 매너리즘과 지침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나 파쿠르를 하는 순간 모든 단조로웠던 일상은 새로운 세계로 변화한다. 그런 세계 속 한 사람, 파쿠르제너레이션즈코리아의 김지호 대표를 만났고, 잠깐의 인터뷰로 그 세계를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파쿠르[Parkour]는 1980년대 프랑스의 9명의 청년들로부터 시작돼 도시와 자연 환경에 존재하는 다양한 지형지물들을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극복해내는 하나의 움직임의 예술로 시작됐다. 어떤 도구나 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맨손맨몸으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지형지물을 극복하며 개개인의 자율성과 이타주의 정신으로 자가 수련하는 운동이다.]
“사람들이 파쿠르를 보면 저 사람들은 왜 도시에서 점프를 하는지, 저 사람들은 왜 여기 온전하게 나 있는 길을 두고 굳이 돌아가거나 어려운 길, 혹은 위험한 길로 가려고 하는지를 많이 물어봐요. 사실 파쿠르는 그렇게 도시에서 보이는 대로 점프하고 위험하게 건물을 타고,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 게 다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는 가장 중요한 ‘자유’라는 가치가 있어요. 자유라는 것은 위험을 감수했을 때만이 누릴 수 있는 거예요. 자유는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기준, 규칙, 언어들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갔을 때만이 누릴 수 있는 힘이에요. 다시 말해 위험이 없는 자유는 거짓된, 포장된 자유입니다.”
‘자유’라는 말은 일상에서 말 그대로 자유롭게 쓰이고 있다. 그런 자유의 개념에 파쿠르는 한층 더 원초적으로 다가가 내면을 마주하고 자유의지를 실천하게끔 하며 그로서 성장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파쿠르는 파쿠르를 창시했던 창시자들, 도시를 자유롭게 누비는 많은 파쿠르 수련자들이 자신의 자유를 찾고자 몸부림치는 하나의 몸의 예술이자 창조적인 파괴 행위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일상의 많은 기준과 규칙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파쿠르를 하면서 알게 되는데, 저도 처음 시작하기 전에는 스스로 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처음 학교에 있는 구령대를 넘었을 때 처음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동시에 제 자신이 해방되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도시에 정해진 이런 기능과 역할을 제가 뛰어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제도화되고 필요에 의해 기능을 입힌 모든 사물과 존재하는 것들은 이미 정해놓은 개념을 위해 사용된다. 그 쓰임 외에 다른 행동을 하면 세간의 시선을 받고 중심사회로부터 질타받기 쉽다. 창조적 파괴 행위를 통해 자신이 갈 길을 재구성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제 삶에 주도권을 갖는다는 말이다.
“저도 그렇게 살아왔었어요. 그렇지만 파쿠르를 시작하고 연습하며 도시에 미세하게 입힌 언어들과 기능들을 제가 새롭게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을 때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어요. 이미 정해져있던 규칙과 언어, 기준들은 모든 사람들 개개인의 잠재력과 자유를 억압해요. 더더욱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던져졌는데 그러한 기준과 규칙들을 자라며 내면화한 거죠. 자기 자신에게 계속 껍데기를 입힌 거예요. 파쿠르는 그 껍데기를 하나씩 없애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랬을 때 물론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비난을 받거나 위험하다 등 여러 편견을 가질 수 있어요. 기존의 도덕과 윤리도 남들이 착하다, 옳다고 했기 때문에 따라서 했을 뿐 제가 그걸 만든 게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진짜 도덕적인, 윤리적인 사람은 스스로 윤리와 도덕의 입법자가 됐을 때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윤리나 도덕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창조했을 때 진정한 윤리적인 사람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사실 파쿠르했을 때도 마찬가지고, (살아갈 때) 가장 큰 의미인 것 같아요. 자유도 마찬가지고요. 남들이 말하는 자유가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자유를 정의하고, 창조적 파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만드는 거죠.”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파쿠르는 굉장히 지난한 수련 과정을 마주한다. 먼저 짚고 넘어갈 파쿠르의 정신이 있다. 경쟁 대신 이타주의; “유용해지기 위해 강해져라(Be strong to be useful)”. 유용해지는 것과 강함, 이타주의는 어떻게 연결됐을까.
1900년대 초 조르주 에베르라는 프랑스 해군장교는 성 피에르 마르티니크 섬에서 화산폭발을 겪는다. 이때 주민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데, 이런 재난과 위험한 환경 속에서 강인한 체력과 정신은 용기뿐만 아니라 이타심이 있어야만 발휘될 수 있다는 것. 급박한 상황에서 이기적인 집단과 이타적인 집단의 양상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거기 투입된 수많은 소방대원과 군인들도 강인한 정신과 육체를 지니지 않았던 이들은 섣불리 그 재난의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고, 오직 강인한 존재만이 타인을 위해 용기를 내서 구조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단 것. 그렇게 이타주의는 이후 파쿠르의 정신이 됐다.
“이타주의라는 건 실제 오늘날 파쿠르 커뮤니티와 교육현장에서 크게 두 가지 맥락으로 활용돼요. 1.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고 두려움에 직면하게 됐을 때 나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나와 같이 움직이는 동료들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나의 한계를 계속해서 극복하는 동시에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도약으로 삼는 것. 2. 경쟁은 모더니즘시대에서 인간을 가장 빨리 성장시킬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삼아왔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공교육, 공장 체계도 경쟁시스템이고요. 그러나 그 경쟁의 폐해는 승자독식이라는 것, 패배자는 철저히 배제된다는 것, 희생되고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있어요. 경쟁을 하려면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하고, 기준을 만든다는 건 곧 배타성을 가진다는 거예요. 자기정체성을 가지려고 한다는 건 그만큼이나 다른 것들로부터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게 경쟁입니다. 계속해서 경쟁, 경쟁. 파쿠르는 자유로운 움직임을 중시하기 때문에 경쟁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면 발전의 원동력이 무엇이냐, 그래서 이타주의를 채택한 거죠.”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에서 생존으로부터 생긴 파쿠르는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구축하기 쉽지 않았다. 교육은 어떻게 하고 무엇에 강점을 두는지 궁금했다.
“오늘날의 많은 파쿠르 아카데미와 체육관, 여러 교육 비즈니스 모델들이 많은데 또 국가나 그 나라의 문화마다 파쿠르의 형태가 굉장히 달라요. 왜냐하면 파쿠르라는 게 도시나 자연의 지형지물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타나는 움직임이잖아요. 그래서 그 나라와 도시에 장애물이 어떻게 되어 있고, 법이 어떻게 제정되어 있고, 사람들이 그런 야외활동이나 움직임, 몸에 대한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파쿠르 교육은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제가 프랑스에서 경험했던 파쿠르는 굉장히 야생적이었어요. 거의 도시의 무법자. 자연의 야인들처럼 때로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어요. 전사 정신을 가지고 자신을 극한의 한계까지 몰아붙이기도 하고 그걸 뛰어넘으면서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이라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수많은 감정과 그런 경험들이 엮인 현장이었어요.
또 동시에 프랑스에서 경험했던 것 하나는 그걸 개인 혼자 영웅이 되는 게 아니라 그런 영웅이 된 사람들끼리의 강력한 유대감과 이타주의 정신이었어요. 경쟁을 하지 않는, 스포츠화하지 않는 강한 신념이 있었어요. 또 도시 장애물이나 지붕을 건너뛰고, 이런 것들이 사실 불법일지라도 그들에게는 하나의 놀이가 되는, 그리고 금지 사인과 팻말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인식하는 그런 가능성들을 봤어요. 굉장히 위험해 보이지만 또 거기 안에서 예술가 기질이 많은 파쿠르 수련자들도 많이 만났고요. 한국에서와는 사뭇 달라요. 프랑스처럼 파쿠르를 도입하거나 제가 한국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바로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싹의 뿌리까지 뽑아내려는 그런 현장을 경험해요. 그래서 나라의 문화와 같이 호흡하며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김지호 대표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2018년 초 서울혁신파크 내 크리킨디 센터에 정착했다. 파쿠르의 교육 모델을 대안학교, 청소년 교육, 그리고 시민교육의 모델로서 보급하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안체육적인 파쿠르 수업 현장을 구성하고 있다. 경쟁이 없고 자유로운 파쿠르의 교육이 궁금했고, 획일적 교육 과정이 아닌 개개인의 속도에 맞추는 교육 방식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다.
“자격증 코스나 파쿠르 코치의 교육 스타일도 워낙 다양하고 자유분방하지만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 중 하나는 참가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거예요. 저희도 항상 이렇게 말해요. 파쿠르 코치와 아카데미의 존재 이유는 우리를 찾는 사람들을 결국 독학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다. 다시 말해 파쿠르의 모든 동작들은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아이가 네발 딛기를 하고 걸어가거나 뛰듯,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움직임이예요.
안타까운 건 도시 환경에 오래 시간을 보내면서 그런 움직임의 환경이 사라져 버린 거죠. 돈을 주고 배워야 하는 것으로 변해버렸어요. 그래서 저와 파쿠르 코치들이 그걸 회복시켜주는 책임을 안고 계속 교육의 장을 여는 겁니다. 그래서 파쿠르를 조금만 배워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의 움직임, 그리고 원래 사람으로서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걷기, 뛰기, 달리기, 구르기, 매달리기 등을 다시 회복하고 스스로 어느 환경이든, 어느 지형이든 운동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줍니다.
커뮤니티나 교육현장에 자유로운 여러 몸들이 와요. 때문에 현장에서 오늘은 균형 잘 잡는 사람만 승자입니다, 가 아니라 각자가 잘하는 분야를 서로 나누고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서로 연결되고 각자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거죠. 함께 성장하는 거예요. 저는 결국 이게 수많은 다름이 존재하는 이 사회에 핵심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너무나도 다른, 또 여러 소수자들, 그리고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생기는데 그들을 다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결국 자유로운 이타주의 정신 외에는 남는 게 없는 것 같아요. 경쟁과 기준의 구도로는 계속해서 소수자 폭력을 낳는 거죠.”
사람들은 안전을 중시한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고, 안전을 위해 꿈과 행복을 포기하기도 한다. 파쿠르처럼 위험한 운동을 왜 하느냐 질문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질문들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테다.
“대부분의 사고와 부상은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요. 특히 파쿠르는 아무런 도구와 장비 없이 맨손맨몸으로 하기 때문에 어떤 불확실성이 다른 스포츠보다는 낮은 편이에요. 그러나 맨손맨몸이기에 더 자기가 결정하고 행동하는 대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해요. 제가 13발밖에 못 뛰는데 건물 사이의 17발 거리를 수많은 의지와 열정으로 점프하면 당연히 떨어지겠죠.
어느 정도 자기 신체적 한계에 대해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바탕을 인지하고 있어야 해요. 두 번째로 중요한 건 주변 지형지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끄러운지, 접질리기 좋은지, 견고한지 약한지, 주변에 보행자나 차가 있는지 등 수많은 위험 요소를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되지 않아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것도 결코 하루아침에 되지 않아요. 그리고 겸손해야합니다. 그리고 장애물들이 모두를 겸손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파쿠르에서 말하는 건 명확합니다. 자기가 수용할 수 있는 위험을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감수함으로써 실제 위급한 상황에 닥쳤을 때 능동적으로 그걸 대처하고 감수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게 진정한 안전입니다. 왜냐하면 실제 삶이라는 건 위험의 연속이거든요. 그래서 장애물이 길인 거죠.”
성취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스스로 장애물을 만들어 계속해서 극복, 실천을 반복한다. 그럼으로써 나답게 살아간다.
“진짜 김지호의 삶을 살 수 있게. 또 제가 세운 돌탑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아닌 지금 여기 나답게 존재하기 위해 파쿠르를 합니다.”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는 삶 - 강래설 씨 (30) | 2021.04.27 |
---|---|
'희망'을 노래하다 - 45RPM 故이현배 씨 (5) | 2021.04.23 |
우리 함께 쓰레기를 주워유~ (55) | 2021.04.14 |
약손 마사지 안태준 씨 (8) | 2021.04.12 |
매년 우리가 감탄하는 꽃에는 그녀의 손길이 닿아 있다 (33) | 2021.04.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