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모든 것이 가치를 전부 상실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토마토가 찾은 현장 - 도시와 지구를 구하는 대전 쓰레기展
글 양지연 사진 양지연, 강철규, 이정성, 여상희, 박종욱 제공
3월, 대전광역시 사회혁신센터는 ‘도시와 지구를 구하는 대전 쓰레기 展’ 사업을 진행했다.
시민이 교육을 듣고 직접 활동에 참여하며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자 ‘도시와 지구를 구하는 쓰레기 학교’를 열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소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쓰레기 더미를 예술가의 눈으로 진단하고 도시생태환경을 위해서 함께 무엇을 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리도 만들었다.
쓰레기를 진단하다?
대전세종연구원 건물 1층에서 진행한 ‘도시와 지구를 구하는 대전 쓰레기 展 : ABANDONED’ 전시에는 강철규 작가, 이정성 작가, 여상희 작가, 박종욱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전시 준비를 위해 두 달간 대전 내 재개발 지역을 찾아다니며 그곳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직접 수집했다.
이정성 작가 "버려지는 모든 것이 결코 쓰임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치를 다한 것일까 등을 생각했어요. 쓰레기라고 말하는 순간, 죽은 물건으로 판단하지만, 정말 기능을 상실하여 버려진 물건들인지 ‘우리가 버리는 것이 예술로도 환원될 수 있다.’라는 의미 그 이상으로 예술가의 관점에서 진단하고 싶었어요."
이정성 작가의 작품 <무지의 실험실>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장난감으로 보던 유년 시절의 기억과 닿아 있었다. 어릴 적 동생과 모래 위에서 여러 사물을 갖고 소꿉놀이를 하던 것을 떠올리면 여전히 모든 것이 창작의 근원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쓰레기라고 할지라도 놀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성 작가의 전시 작품을 보며 세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이 작가가 표현한 모래밭에는 그저 쓰레기로만 보일 법한 사물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중 목장갑이 눈에 띄었다. 어린이들이 뛰어놀아야 할 공간이 어른들의 욕심으로 오염되고 망가진 것을 이야기하려 한 것으로 추측했다.
이정성 작가 "이 전시와 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건드리고자 했어요.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일까?’라는 의문을 가졌어요. 어린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장난감이었던 것처럼요. 우리가 안다고 확신해버리는 것들은 그 순간 미래가 닫히고 마침표가 되듯이 모든 사물도 쓰레기라고 불리는 순간, 그 쓰임을 다한 것처럼 버려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물건들을 주워오면서 의도와 그 쓰임을 확실히 모르는 재료를 많이 가져와서 작품을 설치하는 동안 실험하고 노는 기분으로 임했어요."
이 작가의 작품을 보고 미리 추측했던 작가의 의도와 거리가 있는 설명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질문도 이어갔다.
“여기 아크릴 박스에 들어 있는 수많은 공에 적힌 단어는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요. (가족공동체 등의 단어가 공마다 적혀 있었다.) 그리고 노란 오리 두 마리와 노란 알은 뭐예요? 한 마리는 일부러 뉘어 놓으신 거죠? 이 오리가 누워 있어서 더 눈이 가요.”
이정성 작가 "공들도 역시 이전의 쓰임을 모르고 그대로 가져온 거예요. 적혀 있는 단어들로 봐서 아마도 어느 교육 기관에서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노란 오리 두 마리와 비비탄 총알이 떠 있는 아크릴 박스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해요. 색감도 딱이죠. 옆으로 누운 한 마리의 오리는 의도하지 않았어요. 저절로 옆으로 눕던데요. 의도한 건 아닌데 괜찮죠? 놀이하는 마음으로 작품 위치도 조금씩 바꿔보고 있어요. 가끔 전시를 보러 오는 아이들이 위치를 바꿔두기도 해요."
담담하고 묵묵하게
이정성 작가의 작품 <무지의 실험실> 옆으로 박종욱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박종욱 작가는 당일에 자리를 비워 만날 수 없었지만, 그의 동료 작가들은 그를 수집과 채집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작가라고 표현했다. 그중에서도 작품 <담담 묶음>은 버려진 대나무 돗자리를 칼로 한 갈래씩 해체하여 또다시 하나로 묶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천장에 매달린 작품은 대나무 살과 버려진 촛대를 활용해 만든 작품이었다. 또한 오래된 건물을 허물면서 존재하던 모양 그대로 나온 대나무 살도 전시되어 있었다. 요즘 건물로 따지면 철골이었다. 나무를 엇갈려 만든 뼈대에 흙을 발라 벽을 세웠고 그 집들이 철거되며 쓰레기로 나온 것이다.
생명에 관심을 둔 작가
강철규 작가 "저는 사물보다 생명에 관심이 있어요. 대전에서 재개발되던 천동에 갔는데 유기견, 유기묘가 너무 많아요. 거의 100마리의 유기견을 봤어요. 사람들이 키우던 개나 고양이를 버리고 동네를 떠나게 된 거예요. <먹, 버려진 액자 및 창문>은 전시를 준비하며 탐방한 장소에서 보고 느낀 것을 리포트 형식으로 나타냈어요."
강철규 작가가 벽에 먹을 이용해 그려낸 그림과 글에는 버려진 생명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림 속 할머님 인상이 너무 강렬해요. 좀 무서운데요.”
강철규 작가 "실제로 저런 인상을 갖고 계신 분이었어요. 폐지를 주우면서 혼자 살고 계신 할머님인데 보조금의 대부분을 유기 동물을 위한 사료를 사는 데에 쓰신다고 해요. 건물 하나에 수십 마리 유기 동물이 지내니까 관리는 전혀 안 된 상태였어요."
“개인적으로 강 작가님 작품에서 이 부분이 인상적이에요. 창문과 창문 속에 비춰진 듯한 고양이 그림.”
강철규 작가 "창문도 모두 있던 그대로 주워온 거고, 묻어 있던 먼지를 닦아낸 거예요. 안에 있는 고양이가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전시를 관람하다 보니, 강 작가가 텍스트로 적은 대로 문제는 쓰레기보다 쓰레기를 버리는 방법인 듯했다. 한 생명조차 이기적인 인간이 소유했다고 여겼으니 버릴 결정을 할 수도 있었을 테다. 역시나 이번 전시는 쓰레기를 예술품으로 재탄생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육중한 건물이 하루 만에 무너지고 순식간에 먼지가 되듯이
여상희 작가 "집이 무너지고 나면 집에 있던 이 모든 게 어디로 갈까? 싶었어요. 신문지 작업을 하며 느낀 건, 신문이 읽히고 하루 만에 쓰임을 다하여 버려지듯이 도시 개발도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았어요. 이전에 부산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했을 때 신문지로 집을 만들었는데 어차피 쓰레기로 남을 테니까 그때 재료로 사용했던 신문지를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다 부수어서 먼지로 재사용했어요."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작품이 여상희 작가의 <버려진 방>이었다.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방의 모습으로, 버려진 가구와 물건들 위에 신문지로 만든 먼지가 인상적이다. 본래 서양화를 전공했다는 여 작가는 유화를 그린 캔버스와 시멘트를 이용한 설치 미술도 결국엔 환경에 해로운 쓰레기가 되는 걸 보면서, 신문지를 재료로 삼아 작품을 제작했는데 신문지만으로도 훌륭한 설치 미술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 작가의 <버려진 방>은 재개발을 거치며 철거되는 집에서 나온 쓰레기로 이루어졌다. 목동에서 모두 철거되고 하나 남았던 어느 아주머니의 집에서 샹들리에를 그리고 유리창 파편을, 용문동 어느 집에서도 조명 하나를, 선화동에서는 사라진 집 마당에서 자라던 나무 옆에 떨어진 백로 깃털을 주웠다. 아직 쓰임을 다하지 않은 컵, 그릇, 스탠드, 대문과 신발장 손잡이, 담금주를 담은 병, 벽지까지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은 쓰레기였고 여 작가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여상희 작가 "폐기가 되고 누군가 그 가치를 다시 알아봐 쓰임을 찾게 되는, 그 타이밍을 놓치면 정말 쓰레기가 되고 폐기물로 사라지는 거거든요. 창호지를 바른 문이 있는 집이 재개발 되면서 헐리면 그 집의 특색이었던 그 문도 그냥 사라지는 거예요. 그렇게 나오는 쓰레기가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삶이고 기록인데, 철거 다음날은 그 동네의 공기가 달라요. 하나하나 아깝고 살던 곳을 버리고 쫓기듯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삶에 눈물 나죠. 재개발 지역에서 1년 정도 머무르면서 밤마다 고양이 60마리 정도를 구조한 적이 있어요. 잘 살던 때의 모습을 보면 정말 파라다이스인데 재개발 이후에 동네에서 제일 컸던 나무가 잘려서 트럭에 실려 나가고. 철거되는 집 마당에서는 그래도 꽃만은 예쁘게 자라더라고요."
여 작가가 주워온 물건 중에서 앨범 하나가 인상적이었다. 여 작가는 미처 챙겨 나가지 못한 사진 앨범을 주인에게 찾아주고자 수소문하여 사진 속 주인 할아버지와 연락이 닿았고 전시장에 방문하시면 앨범을 드릴 예정이라고 했다. 사진 속에는 현재 선화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곳의 옛날 모습이 들어 있고, 그 시절 사람들의 모습이 찍혔다. 재개발된 지역에 살던 사람이 쓰레기전에 사용된 물건의 진짜 주인이었다. 전시에 초대했지만 차마 보러 오지 못하겠다고 한 사람도 있다고 여 작가는 전했다.
“사람이 떠난 곳에 가서 버려진 것들을 보면, 사람이 보이고 삶이 보여요.”
인간에게서 버려진 모든 것이 가치를 전부 상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전시는 3월 31일이면 끝이 난다. 사람의 손을 떠나는 물건은 앞으로도 계속 넘쳐날 것이기에 전시가 끝난 이후에도 많은 사람이 네 작가가 던진 의문이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바란다.
[20201년 4월호 월간 토마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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