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의 '공동체'
본문 바로가기
토마토 관심

코로나19 시대의 '공동체'

by 토마토쥔장 2021. 4. 26.
728x90
반응형

코로나19 시대의 '공동체'

진행 이용원 / 정리·사진 이주연

참여 황유미(대전 동구 공동체지원센터 팀장)/문성남(대전광역시사회적자본지원센터 팀원)/석은자(대전 대덕구 덕암동 자치지원관)

 

[소통, 신뢰, 연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공동체 영역코로나19는 중요한 과제를 던져 줬다. 전염성 높은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은 마스크를 끼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과 함께 이전보다 삭막한 분위기에서 2020년을 보낸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공동체 영역 역시 변화의 시기에 놓여 있다. ‘함께할 때 가치 있음’을 보여 주던 공동체 영역은 과연 위기 앞에서 계속해서 연대할 수 있을까? 위기 속에 공동체는 어떤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집담회를 통해 밭에서 호미질을 하는 것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큰 수확이었다. 인민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창의적이다. 창의적 상상을 가로막는 모든 구태의연한 시스템과 권력을 제거하는 것이 어쩌면 이번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던진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과제를 해결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가 더욱 강하게 실행해야 할 것은 공동체 복원이었다. 교육, 기본소득, 분권과 자치 등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강하게 살아 있는 공동체(의식)가 필요했다.]

 

코로나19 상황이 벌어지기 전,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으로 설정한 영역은 분명 공동체 복원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다고 보는데요. 우리나라가 이처럼 공동체 복원, 혹은 회복을 중요한 화두로 삼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석은자 :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걸 우리가 인지하고 행한 것을, 국가가 정책이나 예산 반영을 통해 방향을 찾은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그 시작점이 마을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밑에서부터 시작했던 것들이 정책에도 영향을 끼쳐서 다시 밑으로 내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죠. 정부가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던 공동체 복원에 대한 움직임을 간파하고, 지금은 이를 적재적소에 적용하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 해요.

 

황유미 : 나라에서 분권에 관한 이야기를 몇십 년째 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실제로 이뤄 내기가 쉽지 않죠. 그 어려운 과정 속에서 시민을 대변하는 영역에서는 지방분권이나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시민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던 시기에 IMF 같은 경제 위기를 겪으며 삶의 양극화가 심해졌잖아요. 돈 있는 사람들이야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해결할 방법이 연대하는 거였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시대적 상황이 마을공동체의 필요성을 조금씩 키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것들이 요즘 들어 더 맞물려 오는 것 같아요.

 

문성남 : 공동체를 이야기했을 때 국가와 공동체라는 개념 두 가지를 생각해 보고 우선은 국가 자체도 국가 공동체로 바라볼 수 있는 입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자그마한 공동체들이 공감대나 의식 속에서 국가를 구성했다고 보면 국가도 또 하나의 공동체로 바라볼 수 있는 거죠. 또 우리가 서로를 남이라고만 생각했을 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과잉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와 관련 없는 남이라고 생각해서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가 결국에는 공동체 의식 결여로부터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사회 안에는 법이 존재하지만 그 테두리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영역이나 문제를 공동체가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 공동체 역할이 사회적으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방법론으로 공동체 복원, 혹은 회복 활동이 유효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주로 벌어졌던 공동체활동을 굵직하게 묶어서 제시한다면 어떤 활동이 있었고 그것이 이루어 낸 성과는 무엇이라고 평가하시는지요?

 

황유미 : 경험에 비추어 보면, 2007년도에 마을어린도서관 만들기사업을 하면서 마을공동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어요. 그전에는 그런 것을 경험해 보지도 못했죠. 마을에 도서관을 만들며 실제로 마을활동을 직접 해 보고 그로 인해 더 성장하는 엄마들을 봤어요. 지금까지도 그 도서관들이 운영되고, 엄마들이 마을활동가로 성장하고 있다는 게 제가 알고 있는 사례인 거죠. 대전에서 도서관 만들기사업을 시작으로 마을활동으로까지 확대됐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중간지원조직이라는 단위도 만들어지고, 도서관 활동과 마을활동을 지원하는 단위들이 그때부터 대전에 생겨나지 않았나 싶어요. 그때 마을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졌다고 생각해요. 

 

석은자 : 저도 마을어린이도서관이 설립되던 때가 기억에 남아요. 2006년엔가 유모차를 끌고 공원을 지나다 한 사람을 만났어요. 관저동에 마을어린이도서관이 없어 만들려고 하는데, 설문조사에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이걸 왜 아주머니가 만들어요? 나라에서 만들어야지”하고 노골적인 질문을 했어요(웃음). 당시에 도서관을 만드는 건 공적 영역이고 우리가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반신반의하면서도 이상하게 끌렸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디디니까 어느새 깊이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저처럼 마을공동체활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마을어린이도서관에 드나들던 아이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석은자 : 아이들이 마을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생각해요. 옆에서 보면 아이들이 우리 마을, 우리 도서관, 우리 미용실처럼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우리라는 단어에는 끈끈함이 있어요. ‘마을어린이도서관에서 놀던 아이들이 마을 안에 녹아들어,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NGO적인 활동을 펼치지 않을까?, 혹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활동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해요.

 

문성남 : 제 경우에는 공동체 복원을 일상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보편화되어야 하는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특수 영역처럼 느끼는 게 지금의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마을공동체나 마을활동은 마을 전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확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다른 마을활동가분들에 비해 최근에 마을활동을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공동체 복원을 일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많지 않았죠. 공동체활동을 경험했던 건 국가적 차원에서, 국가공동체로서 경험했던 것이 더 많았어요. 10대 때 금모으기 운동이나 태안기름유출사고 때 온 국민이 나서서 움직였던 활동에 참여한 게 전부죠. 공동체 복원, 회복은 아직 부족하다 느껴요. 아직 손꼽을 수 있을 만한 사례를 찾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공동체활동이 훼손됐을 때 나타나는 문제가 크기 때문에 복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앞선 사례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라고 하기에 아직은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이전부터 계속 활동해 온 마을활동가분들은 체감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시민이 과연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싶어요. 월평동에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공모사업이나 마을활동 취지를 설명했을 때 계속 이 사업에 대해서 공감하는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비율이 높지만, 월평동 주민 전체 중 전반적으로 얼마나 공감하느냐에 있어서는 숙제거든요.

 

 

 

그럼 성과는 차치해 두고, 공모사업을 얘기하셨는데 공동체 회복 내지는 복원활동들이 나타나는 모습을 봤을 때 공모라는 방법을 차용해서 구현해 내려는 영역은 어떤 건가요? 

 

문성남 : 공모사업을 통해서 공동체가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경험치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히려 시민분들은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해요. 구청에서도 노인 일자리를 제공할 때 공동체사업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시민분들 입장에서는 공동체사업이 ‘나의 일자리도 해결해 주는 사업’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공동체라는 단어가 활용되는 범위가 너무 넓다 보니까 서로 이해하는 지점이 다르더라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두 분은 하실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지금 정책적으로 지지하는 공동체활동의 꼴이 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나나요? 

 

황유미 : 문성남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공모사업이 공동체활동 영역에 주민이 들어오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에 동의해요. 하는 사람만 하고 아는 사람만 알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인 거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공모사업은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어 두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한 번의 경험이 중요하죠. 마을에서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활동을 해 보는 것이 지속적인 공동체활동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동네 안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우거나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거죠. 이런 활동을 통해 마을 안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계속 만들어 가는 과정, 연결 고리를 만드는 시작이 중요하지 않을까 해요. 마을 안에는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장이 많이 없거든요. 그런 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정말 중요한 거죠. 개인적인 예를 들자면, 작년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엄마들과 삼삼오오 모여 마을공동체 활성화 공모사업 중 씨앗사업을 시작했어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아파트 안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방법을 모색하는 장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커뮤니티의 가입자 수가 계속해서 늘더니 아파트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공간으로 확장됐어요. 생각이 있었고, 고민이 있고 불만이 있었지만 이야기할 통로가 없었던 차에 저희 공동체 커뮤니티가 소통의 장 역할을 하게 된 거죠. 이런 긍정적인 과정이 생기는 걸 보면서 작지만 시작할 수 있는 기회, 참여할 수 있는 장이 곳곳에 만들어지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황유미 참여자

이처럼 관계와 연대, 기회가 중요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럼 나아가서 코로나19가 발생하고 공동체 복원 혹은 회복활동이 펼쳐지던 마을혹은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어떤 변화를 촉발했는지 궁금합니다.

 

문성 : 공모사업 신청을 받고 있는데, 이미 공동체활동 경험이 있던 분들은 걱정이 없지만, 처음 해 보는 분들은 ‘이런 시국에 모일 수 있느냐’라며 걱정하세요. 물론 안전 의식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공모사업 경험이 있는 분들과 없는 분들 사이에는 모임을 갖는 것부터 부담의 정도가 다르죠. 이전에 경험이 있던 분들은 코로나19가 크게 문제 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함께해 왔던 사람들이기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는 거죠. 그런데 처음 하시는 분들은 낯선 사람들과 만나서 관계와 신뢰를 쌓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적 분위기의 중압감 때문에 포기하는 분들도 있고요.

 

석은자 : 주민자치회에서 체력단련실을 위탁 운영 중인데 2월 말 정도에 코로나19가 크게 확산이 됐을 때, 이를 폐쇄해야 하지 않느냐는 전화가 쇄도했어요. 그때 한편으론 소통의 문턱이 낮아졌다고 생각해 기뻤어요. 주민들이 마을 일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는 느낌이었죠. 또 코로나19로 만남의 시간은 줄었지만, 소통하는 것이 꼭 만나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오히려 단체 카톡으로 문안 인사를 하며 소통의 시간이 늘었거든요. 서로 소식과 안부를 묻는 게 일상이 된 거죠. 반면에 코로나19로 인해 쌓아 왔던 신뢰가 급속도로 깨지는 순간도 목격했어요. 신천지 문제가 한창이었을 때, 면마스크 교환 행사가 있었는데 그날 신천지 신도로 활동 중인 분도 마스크 교환 행사에 참여한 걸 뒤에 알게 됐어요. 혹시라도 그분이 가져온 마스크를 쓰고 감염이 되었을 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느라 밤새 잠을 못 이뤘죠. 그분이 감염자도 아닌데, 당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접촉해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모두가 기피하고 의심했어요.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신뢰가 급속도로 무너지니까 ‘진짜 위기 앞에서 우리는 과연 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문성남 : 그런 부분에서 주민자치회 조성 기반이 공동체로부터 시작했는지를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주민자치회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시스템이잖아요. 공동체적 경험보다는 6시간 교육을 받고 의사가 있을 때 하나의 시스템에 참여하는 식의 공적인 툴이라, 거기서 말하는 신뢰가 공동체에서 말하는 신뢰와 같은 것인가를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겪어 보진 않았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함께 고민하지 않을까 싶어요. 

 

황유미 : 이번에 공모사업을 하면서 만나 본 팀들 사례를 보니까 구성원들과의 관계성이 얼마나 단단하고 끈끈한지가 다른 것 같아요. 2~3년 차들을 보면 코로나19 때문에 모임을 미룬 사례도 있거든요. 그래서 문성남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구성원들 간에 관계성이 얼마나 끈끈한지가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코로나19를 통해 공동체 구성원 간의 관계, 신뢰도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해 기관이 폐쇄되자 공동육아공동체를 결성한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코로나19가 관계를 잇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 거죠. 필요성이나 관계성에 따라서 미치는 영향의 정도나 방향성은 달라진다고도 생각해요. 

 

석은자 : 코로나19가 퍼지며 지역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걸 확인했어요. 벚꽃이 만개할 때였는데, 주민분들이 ‘우리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계속 봐 왔던 사람들이니까 괜찮지만, 다른 마을 사람들은 안 된다. 그러니까 벚꽃을 보러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라며 외부인 통제를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주말마다 출근해 외부인들의 통행을 단속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주민 사이에서 ‘우리 마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외부인은 되도록 들어올 수 없게 하고 출장 다녀온 주민은 자가격리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주민이 서로 도왔어요. 자연스럽게 마을 안에 결속력이 높아졌죠. 

 

728x90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지금껏 펼쳐 왔던 공동체활동을 퇴보시키거나, 그동안 축적한 성과를 축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문성남 : 시험대이긴 한 것 같아요. 코로나19라는 이슈가 왔을 때 이슈에 대응하는 공동체의 방향에 따라서 연결성이 낮은 공동체는 이참에 모이기를 포기하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를 고민해요. 코로나19는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이 구분이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공동체가 이슈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줄 수 있는 하나의 시험이라고 생각해요.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만나지 않고서 어떻게 공동체활동을 이어 가야 하고, 어떠한 형태로 변화해야 하는가를 고민해 보는 거죠. 

 

석은자 : 우리가 메르스를 겪었을 때는 피할 새도 없이 그대로 맞닥뜨렸는데 지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그때의 대처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정부와 국민, 의료기관을 비롯해 많은 곳이 연대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그럼 공동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됐어요. 관과 주민이 어떻게 서로 협력해야 하는지, 서로 어떻게 정보를 나누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더 깊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 더욱 뚜렷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거죠. 

 

네, 그럼 코로나19가 공동체의 성과를 축냈다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하는 거네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는 코로나19 상황을 맞이하며 자국 이기주의가 심해지고 인종 차별 등 몹쓸 현상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공동체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황유미 :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비대면 활동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게 과연 마을공동체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여기서 세대가 나뉘죠. 젊은 세대는 인터넷, 전자기기와 가깝지만 어르신들은 활용이 어려워요. 거기서 오는 소외 때문에 더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동구에서 활동하다 보니 연세 있는 분이 많은데, ‘비대면 교육을 진행하면 어르신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걱정과 고민이 있는 거죠. 모임이나 학습을 진행하는 형태와 같이 다양한 방면에서 고민을 해 나가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비대면으로 문화예술을 공급하고 ‘인터넷 기반 웹’을 활동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등 대체 방식을 찾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마을, 공동체활동에서도 적극적인 면대면 접촉 외에 다른 대안을 모색해 활동한 사례가 있나요?

 

문성남 : 중간지원조직은 화상이 가능한 시스템을 이용해 비대면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어요. 사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굳이 테스트해 보지 않았겠죠. 하지만 이제는 시대적 상황으로 당면하니까 대응하기 위해 시작한 거예요. 월평동은 이전까지 사업설명회를 열 때 영상을 만들 필요를 못 느꼈었는데, 이번에는 대면 진행 자체가 어려워 영상으로 대체해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전송했어요. 이런 부분은 기관뿐만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도 메신저로 회의가 가능해서 수월하게 적응하고 진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말씀하신 문화소외계층이나 디지털소외계층에게는 조금 어렵고, 지금 현 상황이 더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석은자 : 저희는 코로나19 덕분에 텃밭을 얻었어요. 주민 사이에 ‘바이러스가 퍼지지만 자연은 괜찮다’라는 인식이 있어요. 그래서 서로 직접 얼굴 보고 만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 왔다 간 흔적을 보면서 관계를 쌓는 걸 생각하던 중에 호미질을 떠올렸어요. 동사무소 앞에 100평짜리 공터가 있는데 도로 밑에 있어서 거의 황무지에 가깝게 방치되었죠. 어느 날 이곳에 무언가를 심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누군가가 했고, 동사무소 관할의 공유지여서 텃밭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하며 마을 사람들이 일구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명씩 와서 호미질을 하고 가는 거죠. 누군가 왔다 가면 밭을 일군 흔적이 확연히 남으니 새로운 소통의 창이 열린 거예요.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오가다 만나더라도 멀리서 ‘그쪽 밭은 괜찮아?’라고 한마디 건네면서 소통을 이어 갈 수 있었죠. 대부분 텃밭에 오시는 분들이 카톡이나 밴드에 익숙하지 않으세요. 대덕구 덕암동은 평균 연령대도 높은 편이고요. 매일매일 조금씩 나눠 텃밭을 가꾸며 자산이 생기기도 했고,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생활 속에서 안정감과 여유를 얻기도 했죠.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마을에서 다 같이 비빔밥을 해 먹자, 고기를 구워 먹자’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또 하나의 공동체를 꾸린 거예요. 코로나19로 인해 불안하고 두렵지만, 무언가 해야 하는 상황, 무언가 했으면 하는 상황이 맞물리지 않았나 싶어요. 그 안에서 공동체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석은자 참여자

나름 성공적 대처로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공동체의 힘을 느끼신 계기나 사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지역 사례나 아니면 언론에서 접한 특정 사례를 통해 유추해 보실 수 있었던 경우도 상관없습니다.

 

황유미 : 대체적인 사례로는 마스크 제작인 것 같아요.

 

석은자 : 동의해요.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사람과 돈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그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였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이런 일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걸 보면서 놀라웠어요. 우리 마을에 대한 애착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우리 마을에 필요한 일이기에 주변에 있는 자생단체도 전부 일어나서 움직인 거죠. 그러니까 일이 착착 진행됐고요. 

 

황유미 : 축적된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시기적절하게 사람과 자본이 모인 것 같아요. 대구에서 대규모 감염이 있었을 때 전 지역이 마스크를 제작해 대구로 가장 많은 마스크를 보냈잖아요. 그렇게 도울 수 있었던 것, 그것이 공동체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문성남 : 일상 속에서는 공동체의 역할이 드러나기 쉽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는 공동체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 활용도가 높아진 거죠. 대전 안에서 마스크가 확산될 수 있었던 건, 제도적으로 받쳐진 시스템이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 간의 네트워크와 친밀감이 이전부터 있어 왔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만약 신뢰도가 없었다면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는 것에 있어서 거리감을 느꼈을 테니까요.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이 이어질 거라는 예측이 있습니다. 이런 예측 상황에서 공동체의 역할은 어떤 것들로 잡아 두어야 할까요?

 

황유미 : ‘앞으로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고 예측할 때 마을공동체활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것들을 고민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마을활동가분들은 행정에서 보지 못하고, 접근하지 못하는 주민과 밀접하게 활동하잖아요. 그런 마을공동체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지금부터 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걱정도 있어요. 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게 없는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마을활동을 하는 분들이 돈이 많은 분들도 아니고요. 이번 코로나19를 통해서도 가장 약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인데, 그들이 재난 상황으로 인해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 과연 마을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석은자 : 지진이 빈번한 일본에 지진 대응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마을에도 위기관리 능력이 있어야 해요. 우리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당황할 수는 있지만, 대응할 수 있는 기본적 환경과 능력을 만들어야 하죠. 분과별로 대응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학습회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차근차근 주민과 소통하면서 자기 마을만의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죠.

 

 

 

코로나19가 던진 문제 제기 중에는 인류가 만들어 낸 ‘도시’라는 문화유산이 지닌 ‘밀집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활동의 ‘기본 단위’를 물리적으로 가늠하고 설정하는 것이 자칫 위험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공동체 기본 단위’를 고려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과거 공동체성이 살아 있던 ‘마을’의 기본 단위는 대략 50호 내외였던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를 고려하면 흔히 ‘행정 동 단위’가 이제 너무 넓은 거 아닐까요

 

석은자 : 실제로 마을 안에서는 통장님들이 대략 20호씩을 관리하는데, 마을 주민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할 단위로 통 단위가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문성남 : 제가 아파트 살며 느끼는 통의 개념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아파트에 살면서 통장님이 우리 집에 대해 얼마나 잘 알까 하는 의문을 가지거든요. 제 생각에는 통보다 반 수준의 인원이 적당한 것 같아요.

 

 

지금은 공동체가 마을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모이거나 이슈로 모이는데, 생활 단위의 일상생활 속에서의 공동체활동이나 운동이 벌어지려면 그것이 10분 거리이건, 4~50호 이내건 이런 식으로 전략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지 않을까 고민을 했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성남 : 주민자치만 보더라도 관저2동은 제가 알기로 한 개 동이 5만 명인 곳이 있고 월평동은 1동이 만 명대 초반이거든요. 외부적으로 보면 동 대 동이지만 각 동이 가진 인구적 특성으로는 접근방식부터가 다른데, 그렇다고 해서 관저동에 주민자치회를 몇 개나 만들 건 아니잖아요. 주민자치회가 생겨도 하나씩만 생길 건데 과연 그것이 동의 특성을 반영한 자치의 형태가 나올지 모르겠어요. 마을공동체에 대한 제도가 생기더라도 동마다 각각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제도적 한계가 있다고 봐요. 이 부분은 주민이 더 고민하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석은자 : 지역적으로 특성이 다 다른 건 맞아요. 대덕구 안에 12개 동이 있고 그중에 덕암동이 있는데, 농사짓는 분도 많고 주민도 많고 공장단지도 많아서 도농공복합도시의 한 예라고 생각해요. 그 특성에 맞게끔 움직여야 하는 거죠. 왜 마을로 가야 하고 왜 더 작은 단위로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해요. 너무도 다양한데 일괄적인 제도로 묶을 수는 없기 때문에 점점 더 지방으로, 마을로 들어오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이걸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것을 고민했을 때, 그 지역의 특성을 잘 알고 그 안에서 우리가 연대해 내는 것이 중요하죠. 각 마을에 맞는 주민자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면 시범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해요. 그 마을만의 공동체, 마을 자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동체 복원과 완전 무관하지 않은 영역이 ‘분권과 자치’라고 생각합니다. 벌어진 사회 문제를 주체가 직접 해결하고 무엇보다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작은 단위로 쪼개진 상황에서 ‘분권과 자치’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이번 코로나19가 던진 질문이라고 봅니다. 그에 걸맞은 시스템 개선과 예산 확충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공동체 구성원의 ‘자치역량’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한 고려가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황유미 : 자치역량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마을공동체라고 해서 결정 권한이 있는 단위는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필요해서 목소리를 내더라도 반영이 안 되기도 하죠. 예를 들어 저희 아파트의 경우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결정을 다 해요. 결정 권한이 동대표에게 있는 거죠. 그분들이 주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느냐 안 하느냐를 결정하는 거예요. 지금은 전혀 반영이 안 되는 상황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그냥 그분들 마음대로 결정하고 진행해요. 낮은 단위의 마을조차도 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이 어떤 마인드와 태도를 가졌느냐에 따라 주민 목소리 반영 여부가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 저희가 아파트 일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아파트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민 목소리를 들으라고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입주자 대표회의에서는 만들지 않겠다며 끝내 버렸죠. 전혀 반영이 안 되는 구조인 거예요. 이 구조를 바꾸려면 결정 권한을 가져야만 가능한 거죠. 마을공동체에서만 한다고 해서 자치가 되느냐 하는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황유미 : 팀장님의 고민 자체가 자치역량이라고 봐요. 이런 문제 의식과 고민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자치역량이 올라갔다는 것인데, 이것을 공동체 전반에 걸쳐서 자치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문성남 : 주민과 국가가 할 수 있는 노력이 나뉠 것 같아요. 저도 주민을 만나 일하는 입장이지만, 정주여건에 대한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자치역량은 과연 올라갈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내가 과연 이 마을에 몇 년이나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내가 사는 마을에 마음을 얼마나 쏟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맞닿아 있는 거죠. 하다못해 아파트만 하더라도 전세 세입자와 자가 입주자하고는 아파트에 대한 소유권하고 참여권의 입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만약 ‘너네는 왜 마을에 관심을 안 가져?’라고 했을 때, ‘내가 이 마을에 얼마나 살 수 있겠어요?’라고 되묻는다면, 과연 이 사회 기반이 주민들에게 뭐라고 대답해 줄 수 있을까요? 주민자치회만 보더라도 원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주민자치회와 전세세입자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이나 관심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주를 막고 정주여건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있어야 자치역량도 따라올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을 이웃 간에 친밀도나 신뢰도, 관계성으로 극복할 수도 있지만, 결국엔 그것도 이사를 하면 사라지는 것들이잖아요. 관심이 있어서 그 마을에 들어와 활동할 수는 있지만 주거 영역에서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이 있기 때문에 같이 고민되어야 해요. 

 

황유미 :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요. 저희 아파트도 세입자가 많아요. 그러니까 아파트에 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거예요. 나에게 닥치지 않는 한 어떤 문제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죠. 제도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집주인들에게 결정 권한이 있는 거지 사실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결정 권한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부분이 제도상으로 고민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 전반에 걸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시는 거네요. 문성남 님이 얘기하신 정주권에 관한 얘기에 동의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더 자치역량이 고도화된다면, 그것과 상관없이 내가 어디에 가서 살더라도 자치민주주의가 계속 왕성하게 일어나서 그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황유미 : 만약 그 자치권이 있다면 내가 세입자든 아니든 간에 내가 사는 동네를 좀 더 살기 좋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활동을 사람들이 더 해내지 않을까요?

 

 

이러한 역량을 끌어내고 촉진하기 위해서 공동체활동과 이쪽 영역에서 담당하고 해야 할 역할이 있지 않을까요?

 

문성남 : 그렇죠. 국가가 조성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마을 안에서 관에 요구를 하고 제안을 하는 수준까지가 공동체 역할이 아닐까요? 그게 마을의 문제잖아요. 그 문제를 주민이 인식할 수 있게 하고, 그것에 대해 다음 선거에 어필을 하는 등의 적극적 행동이 필요할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물리적 거리두기 말고도, ‘배려와 살핌이 없는 거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인 거 같더라고요. 현 상황을 극복하고 물리적 거리를 지킨다는 선에서 공동체 스타일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해석 혹은 해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된다는 전제하에 다가올 미래에는 공동체활동을 어떻게 펼쳐야 할까요? 그 과정에서 공동체적 언어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새롭게 해석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황유미 : 자급자족.

 

자급자족, 굉장히 심각하게 느껴지네요. 실제로 제가 일본에서 만난 사람 중에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시골로 들어가 공동체를 꾸린 사람이 있었어요. 당시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고 시골로 들어간 사람들이 많아졌대요. 나사에 취직을 앞뒀던 항공우주학자가 후쿠시마 원전 터지는 걸 보고 모든 것에 덧없음을 느껴 히로시마 산골로 들어가 공동체활동을 시작했어요. 그 안에서 나무꾼에게 나무 베는 법을 배우고 다양한 식물을 익히고 농사를 직접 짓고, 사냥꾼에게 멧돼지 잡는 법과 발골하는 법을 배우더라고요.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인류의 문제는 닭 잡는 것을 남의 손에 맡기면서부터 시작했다. 자기가 먹을 것을 왜 남에게 맡겼던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사고의 깊이가 그곳까지 간 거죠.

 

석은자 : 물론 사람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도 있겠지만 자연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늘에 비행기가 멈추고 바다에 배가 멈추고 기차와 차가 이동이 적어졌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터전을 우리가 허락받지 않고 계속해서 사용하고 훼손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우리도 두려움은 있지만 결국 어떤 일이 펼쳐질지에 대한 것은 모르고 있었던 거죠. 그래도 지금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조금의 희망을 느낀 건 우리가 멈춤을 했을 때 복원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시금 살아나지 않을까? 그럼 우리가 좀 더 자연을 보살피고 배려하는 희망을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나 생활 속 거리두기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회귀를 이야기했는데, 회귀할 수 있는 공간이 아예 사라지기 전에 미리 보존할 수 있는 기회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황유미 :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각하면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비행기가 멈추고 배가 멈추면서 생기는 타격이 있잖아요. 수입·수출이 안 되니까 우리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고 처리하는 것까지 지역에서 해야 하는 거죠. 자급자족을 생각했던 것은, 이런 상황이 오니까 제가 무언가 생산해 낼 능력이 되지 않아 불안하더라고요. 아무리 공동체가 있다고 해도 내가 뭘 생산해야 다른 사람한테 줄 수 있고 상대와 교환할 수 있어야 나의 불안함이 줄어드는데 그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농사라도 지어야 하나, 텃밭이라도 가꿔야 하나’ 하는 걱정이 드는 거죠. 작게는 동네에서 서로 교환하면서 나의 불안을 줄일 수 있는 그런 관계들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거리로 좁혀 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문성남 : 사회적 거리두기를 했을 때 취한 정책을 보면 대규모의 행사나 활동에 대한 제한이었어요. 그런데 공동체활동이 크게 보여질 필요는 없거든요. 하지만 그동안에는 공동체활동을 이슈화 시키거나 보여주려면 항상 많은 인원이 모여서 목소리를 냈었는데 오히려 적게 모여도 자주 만남으로써 목소리를 키워 갈 수 있는 방식을 공동체 내부에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그동안 공동체가 양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바라봤다면 이제는 질적으로 전문화하거나 자기 분야에 대해서 특수성을 가질 수 있는 공동체들이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해요.

정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공동체 모습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자연스럽게 공모사업에 의존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공모사업을 통해 발을 디딘 공동체가 자기 역량을 가지고 성장해, 자신들 앞에 닥친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 줘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그러지 않으면 여전히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에 의존하는 공동체가 양산될 것이고, 그 공동체들에게도 실적이나 정량적인 평가가 가능한 결과를 요구한다면 질적인 공동체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고 봐요. 공동체가 만능은 아니에요. 공동체는 사회 요소에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고 공동체 차원에서 다른 부분과 연계해서 같이 해결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기본소득과 연결이 되어야 하고, 도시재생과 연결되어야 하는 거죠. 다른 분야와 연대하고 공동체 스스로가 공공성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해요.

 

문성남 참여자

 

 

728x90
반응형

댓글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