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의 '기본소득'
본문 바로가기
토마토 관심

코로나19 시대의 '기본소득'

by 토마토쥔장 2021. 4. 30.
728x90
반응형

코로나19 시대의 '기본소득'

진행 이용원 정리·사진 이지선

참여 이경자(기본소득대전네트워크 운영위원)/송석호(기본소득대전네트워크 회원)/김재섭[(가칭)대전복지공감 간사]

 

출처 : 픽사베이

 

‘기본소득’은 재산,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을 의미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필요성을 꾸준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개념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경제적 피해가 심각해지면서 기본소득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다. 더불어 정부에서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예상보다 빨리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한시적 지원 제도다. 소득이나 재산에 상관없이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지급한다.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까지 여러 논쟁이 있었다. 기본소득, 재난지원금, 재난기본소득 등의 단어가 등장했고 여러 매체에서 적극적으로 기본소득을 소개하며 지원금과 차이를 알리기도 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완전한 기본소득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기본소득이라는 인식을 확산하는 데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코로나19는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안겨 주었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시대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기본소득이 과연 새로운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관한 의문을 안은 채 집담회를 시작했다. 완전 고용 시대는 끝났다, 라는 선언과 노동 개념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라는 주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는 일찌감치 이루어졌고,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라는 단체가 활동 중인 것으로 압니다. 먼저 이 단체에 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경자 : 1986년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를 시작으로 기본소득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2004년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로 확장했습니다. 현재는 스물아홉 개 나라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 가입했고, 한국은 2010년에 열일곱 번째 가입국으로 승인받았습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기본소득을 한국 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활동을 하는 곳’입니다. 한국네트워크는 현재 대략 580여 명의 회원과 여덟 곳의 단체 회원, 일곱 개의 지역네트워크가 있습니다.

기본소득이 한국 사회에서 대중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2007년 대통령 선거입니다. 당시 금민 한국사회당 후보의 핵심 공약이 기본소득이었어요. 기본소득이 새로운 사회로 가는 하나의 징검다리라고 생각했던 정치 운동, 학술 운동의 흐름이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창립으로 이어졌습니다. 2016년에는 전 세계 연구자와 활동가가 모여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국제대회가 서울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기본소득대전네트워크는 2013년에 발족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경자 참여자

 

기본소득대전네트워크는 한국네트워크의 지부 개념인가요?

 

김재섭 :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자체가 수직계열화 구조는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대전네트워크는 하나의 독립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네트워크와 대전네트워크가 함께 활동도 하지만, 지역 지부의 개념보다는 병렬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사회공동체를 구성하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특성으로 일부에서는 기본소득을 국가가 아니라, 공동체 단위에서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합니다.

 

기본소득의 개념을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김재섭 : 보통 은유적으로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 줘라’라고 하잖아요? 기본소득은 ‘그냥 물고기를 줘라’라고 표현합니다.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죠. 이외에도 기본소득을 ‘인류 역사상 첫 번째 혁명이 노예제를 폐지하는 노예혁명이었다면, 두 번째는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는 시민혁명이었고 세 번째는 경제적 시민권을 모두에게 보장하는 기본소득혁명일 것이다’, ‘기본소득은 좌도 우도 아니고, 전진이다’ 등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경자 : 기본소득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5대 원칙입니다. 5대 원칙은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 현금성, 정기성으로 이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서 합의한 내용입니다. 기본소득은 자산 심사나 노동의 요구 없이 보장(무조건성)되어야 하며 누구에게나 지급(보편성)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에게 현금으로 지급(개별성, 현금성)해야 하고, 매월이나 매년 정기적으로 지급(정기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중에서도 무조건성과 보편성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재섭 : 여기에 충분성이 추가됩니다. 충분성은 지난 2016년 기본소득 한국총회에서 나온 이야기인데요. 기본소득의 금액이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할 정도로 충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을 포함한 몇몇 급진적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그룹에서 충분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통과되지는 않았습니다. 

김재섭 참여자

 

통과하지 못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경자 : 우선 나라마다 경제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50만 원과 한국의 50만 원이 같은 것이냐의 문제가 제기되는 거죠. 또한 충분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본소득을 도입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니면 금액이 적더라도 일단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지에 관한 논쟁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충분성을 기본 원칙에 포함하는 안은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경자 : 대표적으로 핀란드에서 실험을 진행했고, 아프리카 나미비아 일부 마을에서도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미국 알래스카주에서는 석유 수입으로 일종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도 하고요. 생각보다 현실 정치에서 기본소득을 실험하는 나라가 많진 않습니다. 

 

김재섭 : 역사적으로 많은 실험이 있었어요. 미국은 물론이고, 캐나다에서도 주 단위나 시 단위에서 시도가 있었지만 지속하진 못했습니다. 대다수 실험은 마을이나 작은 공동체,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핀란드 실험도 기본소득 실험으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한 논쟁이 있습니다. 핀란드는 실업급여 대상자라는 명확한 지급대상이 있었는데요. 실업급여 대상자에게 구직활동 없이 기본소득을 지급했을 때 노동 의욕이 저하되느냐, 아니냐를 실험하기 위한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무조건성과 보편성을 실험하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현금성 복지 제도와 무조건성 또는 보편성을 결합해 실험합니다. 기본소득 실험이라고 지칭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성의 결합 여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와 시도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진행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재섭 : 민간 단위에서 실험은 이벤트성으로 있었습니다. 대전에서는 ‘띄어쓰기 프로젝트’가 있었고, 전북, 춘천, 한겨레신문사 등에서도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사실 실험이라기보다는 인식 확산을 위한 프로젝트에 가까웠고요. 실험이라고 하면 성남시 청년배당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송석호 농민기본소득도 있지 않나요?

 

이경자 : 농민기본소득은 최근에 많이 늘어났습니다. 기본소득이 아니라, 수당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요. 최근 농민기본소득 추진본부가 발족하면서 농촌기본소득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농촌 구성원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줘야 한다는 거죠. 농촌의 범위를 어떻게 할지는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농민기본소득은 1년에 60만 원이지만, 현재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재섭 : 사실 농민들에게는 현금성 지원이 익숙한 제도예요. 직불금 제도가 사실 이전부터 있었잖아요. 이미 직불금이 있는데, 뭐 하러 또 하냐는 입장도 있어요.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는 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전부터 우리나라는 기본소득 논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도 되겠네요.

 

김재섭 : 최근 우리나라 기본소득 기본 원칙 중에서 현금성이 많이 진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역화폐 등으로 시도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현금성도 굉장히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반면에 보편성이나 무조건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진전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기본소득 지지자 중에서도 현재 일하는 사람이나 부자들에게도 기본소득을 줘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 편입니다. 그렇게 봤을 때 우리나라는 기본소득이 특정 분야는 진전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논의가 멈춰 있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기본소득 논의가 사회 전체로 확대되지 못하고 특정 계층이나 지역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는데요. 이런 계층적 시도가 많아질수록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에 대한 합의를 보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경자 : 청년배당, 농민수당과 같은 특정 인구 집단에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범주형기본소득’이라고 합니다. 범주형기본소득은 사회적, 계층적 반발을 무마시키기에 좀 더 편하기 때문에 도입하기 쉬운 측면이 있습니다. 이때 구분이 가장 쉬운 것이 바로 연령입니다. 연령으로 구분 짓는 이유는 노동윤리 문제도 있지만 재정 규모에 대한 지적 때문입니다. 이러한 범주형기본소득이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의미의 기본소득 도입에 어떤 역할을 할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개인적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재섭 : 저는 보편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증세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야 할 거 같은데요. 기본소득네트워크가 공격적으로 증세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방자치제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조세권이 없기 때문에 지역 차원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기본소득네트워크는 원칙적인 기본소득을 계속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만약 기본소득네트워크가 지속적이고 강력한 주장을 해 왔다면, 코로나19 상황에서 좀 더 공격적으로 증세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송석호 : 범주형기본소득이 기본소득 논의 촉발을 저해한다는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운동적인 측면에서 보면 범주형기본소득은 불가피할뿐더러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728x90

 

팬데믹 이후에 재난기본소득 혹은 긴급재난지원금 등 이름이 붙으면서 역사 이래 최초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재정 지원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본소득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을까요?

 

송석호 : 저는 이번에 정부가 시행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본소득 실험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우리가 얘기하는 기본소득 5대 원칙에 거의 해당하지 않아요. 

 

 

김재섭 : 저는 오히려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시민이 강제한 것이죠. 단순히 구호금과 같은 수당이었는데 이것을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하면서 다른 장이 열렸다고 생각해요. 긴급재난지원금은 개별성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무조건성과 보편성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긴급재난지원금이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러면서 정기성의 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충분히 실험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경자 : 현금성에 대한 논란도 있었죠. 긴급재난지원금은 3개월 안에 다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부분에도 의문이 들어요. 사용처나 기간을 제한하는 건 통제잖아요. 기본소득 원칙에 어긋나죠. 

 

송석호 : 정부를 포함해서 이 사회가 기본소득이나 긴급재난지원금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코로나19와 함께 총선을 치르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어느 날은 온라인 장터에 ‘재난기본소득은 이 안에서 거래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이 적힌 팝업창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이렇게 빨리 생활 전반에서 기본소득이라고는 단어를 볼 수 있게 될지는 몰랐거든요.

 

이경자 : 긴급재난지원금이 기본소득의 원칙과 얼마나 부합하는지와는 무관하게 기본소득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부터 나름의 운동력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지난 2~3월에는 9시 뉴스에서 앵커가 기본소득을 설명해 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배당, 수당, 지원금 등 다 다른 명칭으로 불렸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코로나19 이후에 자연스럽게 기본소득을 습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졌죠.

 

 

김재섭 : 이번 코로나19는 그동안 기본소득 운동가들이 주장했던 정치적 힘이 발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긴급재난지원금 역시 기본소득 운동에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죠. 청년배당이나 농민수당 등과는 다르게 소득 하위 70% 가구에 지급한다고 하니 국민 대다수가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고, 국민적 관심이 자연스럽게 힘으로 이어지면서 100% 지급이라는 결과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불투명한 미래, 변화된 미래에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사회 시스템 유지를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기본소득이라는 생각도 했는데요. 정부도 이러한 고민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을 끌어낸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경자 : 고용보험 문제는 논의를 후퇴시키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지금 비극적인 상황이잖아요. 저는 ‘코로나19 이후’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코로나19 이후는 코로나19가 정리된다는 것을 전제한 표현이잖아요. 하지만 정리되지 않죠. 정리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상황은 반복될 것이라고 봐요. 사람들이 강제로 집에 갇히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나도 돈만 있으면 일주일 내내 쉬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여기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얼마나 극적으로 밀고 나갈 것이냐가 문제죠. 지금 정부가 문제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그린뉴딜정책 등은 다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이거든요. 코로나19의 교훈은 ‘그렇게 일하지 마, 완전 고용 시대는 끝났어’라는 거예요. 노동이라는 패러다임도 달라졌죠. 정기적인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와 고용 관계가 아니어도 된다는 거죠. 여기에 디지털 자본주의가 등장했어요. 직접 노동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데이터를 사용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돈을 벌어 주는 구조가 이미 만들어졌다는 거죠. 그러면 그것을 새로운 사회라고 전제했을 때 그 사회에 어떤 식으로 대비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지금까지 기본소득이 주장해 왔던 증세 등의 이야기를 더 해야죠. 

 

 

정부가 지금 전 국민 고용보험을 이야기하는 것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세요?

 

김재섭 : 기본소득 운동의 관점에서는 문제예요. 고용보험 자체는 완전 고용을 전제하고 여전히 모든 인간은 노동해야 한다는 전제 속에서 출발하는 개념이기 때문이죠. 사회안전망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에게 도움이 될 일이죠. 그런데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바는 지속 가능한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실업급여 최다 수급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있고요. 이런 측면에서 고용보험이 아니라 기본소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는 거죠. 

 

 

송석호 : 왜 전 국민이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하는지 거꾸로 물어보고 싶어요. 국민연금도 이해가 되고, 의료보험도 필요하죠.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고용보험은 필요해요. 그런데 왜 고용보험을 전 국민이 가입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김재섭 : 전 그게 우리 사회가 현재 가지고 있는 강력한 노동 윤리라고 생각해요. 이전부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 노동 윤리가 외국에서도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영국인 기본소득 활동가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영국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산업화를 길게 겪은 영향도 있고요. 한국 사회도 대통령부터 지자체 시의원, 구의원, 공무원, 시민단체나 노동조합까지도 노동 윤리가 굉장히 강해요. 근로 계약을 맺고 하는 것이 노동이라는 전통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로 그런 노동 윤리가 구시대적 유물이라는 판단을 하게끔 어떤 임팩트가 있었을까요? 지금 20대 취업준비생들에게 절망감도 상당하던데요.

 

 

이경자 : 절망감도 있지만, 확실히 10대, 20대가 돈을 영위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 거 같아요. 지금 10대, 20대는 이제 계층 상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체득했잖아요. 이게 절망감하고도 연결될 수 있고, 현재를 즐기자는 마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죠.

 

 

코로나19가 노동에 관해 기존 방식의 논쟁이나 담론으로는 해결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걸 최소한 인지하게 해 주진 않았나요?

 

 

김재섭 : 저는 그게 복잡하다고 봐요. 하지만 한국 사회에 매우 전통적인 노동 윤리는 무너지고 있어요. 코로나19로 재택근무의 가능성을 봤잖아요. 많은 사람이 돈을 적게 벌더라도 다른 삶의 방식을 취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은 생겼지만, 여전히 기초소득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의 문제는 남아 있죠. 만약 기본소득이 충분성을 보장한다고 하면 이제까지 상상해 왔던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가 변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직은 그런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일자리는 중요한 문제라고 봐요.

 

 

지난해 LAB2050이 기본소득을 제안하며 발표한 자료를 굉장히 꼼꼼하게 봤어요. 현재 대한민국의 다양한 예산 집행 흐름을 봤을 때, 특별한 증세가 없더라도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경자 : 그렇죠. 20~30만 원 규모의 기본소득은 증세 없이도 가능하다고 다들 이야기해요. 그런데 기본소득이 의미를 가지려면 최소 60만 원 이상이어야 하고, 이것을 안정적으로 지급하기 위해선 증세가 꼭 필요한 부분인 거죠. 

 

 

송석호 : 우리 사회에서 증세의 여력은 많아요. 증세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증세를 하겠다는 의지와 사회적 합의가 아직 부족하다고 봅니다. 

 

 

이경자 : 이번 긴급재난지원금 같은 경우도 보면 그래요. 사실 많은 금액을 주는 건 아닌데, 어르신들은 나라가 망했다고 느끼고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김재섭 : 사실, 그런 인식을 정부가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쓰라고 주는 돈이거든요. 이번 긴급재난지원금은 기부를 할 수 있게 했잖아요. 사실은 기부를 이야기할 돈이 아니죠. 지원금을 받아서 더 활발하게 돈을 쓰라고 권장하는 것이 맞다고 봐요. 

 

 

송석호 : 한국은 국가적인 위기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국민에게 손을 벌렸어요. 캠페인처럼 전 국민이 나서서 국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힘썼죠. 그런데 이번 코로나19는 국민에게 돈을 지급하잖아요. 대한민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죠. 코로나19로 인해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지만, 이 사태가 끝난다면 기본소득도 아마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김재섭 : 제 주변 20~30대의 반응을 보면, 코로나19로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으면서 국가가 나를 국민으로 인정했다고 느끼는 거 같아요. 사실 20~30대는 세금을 낸 경험이 별로 없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돈을 지급받으면서 처음으로 구성원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 거 같아요. 뭔가 묘한 감각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코로나19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체감 정도도 다르다고 느껴요.

 

 

그렇다면, 20대를 중심으로 기본소득 논의가 촉발될 가능성은 없을까요?

 

김재섭 : 그러기 위해선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데이터 자본에 과세를 하고, 적더라도 그 금액을 분배하는 등의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논의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선 긴급재난지원금을 한 차례 더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러면서 증세를 하는 등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도를 함께해야죠. 지금과 같이 어려운 상황은 쉽게 끝나지 않을 거예요. 계속된 주장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두 번 이상 주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정기성이 확보될 것이고, 5대 원칙을 갖춘 기본소득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경자 : 현재 국민 모두에게 100만 원을 지급할 때 드는 비용이 51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2조를 탈세하고, 9조를 횡령했어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의하면 5배 벌금을 내야 하는데 그게 총 91조예요. 이것만 제대로 환수하면 국민들에게 두 번 100만 원을 지급할 수 있어요. 이렇게 찾아보면, 긴급재난지원금을 한 번 더 시도할 재원은 없지 않다는 거죠.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사회에 노동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고 봅니다. 정규직·비정규직 논쟁, 주 42시간, 최저 시급 등 자본주의 시스템이 양산해 낸 논쟁의 현재 중심 축을 흔들었다고 보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송석호 : 솔직히, 지금 우리 사회 현실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이나 9 to 6 등의 논쟁은 너무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죠. 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느낌이에요.

 

 

이경자 : 그래서 각자의 영역에서 떠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죄를 지은 사람에겐 벌금을 부과하는 등 정의를 실현하라고 이야기해야 하고, 잘못된 조세 제도도 손을 보자고 주장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이 기본소득에 관한 국민들의 공감대를 끌어내기에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김재섭 : 제가 생각하기에 국민의 공감대라는 건 추상적이고 의미 없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무엇에 관한 공감대인지 설명되지 않고 있잖아요. 그리고 사회 모든 영역에서 논의와 담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실력과 정치적 영향력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후에 기본소득대전네트워크에서 포럼이나 논의를 일으키면 이전보다는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송석호 : 그렇죠. 과거에는 기본소득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맨땅에 헤딩하듯이 다가갔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기본소득에 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생겼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큰 호응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재섭 : 이전부터 꾸준히 이야기했지만 실행하지 못한 일인데요. 모든 시민단체의 핵심 요구에서 두 번째나 세 번째 요구를 기본소득으로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이 전술은 지금 상황에서 굉장히 유효한 전술이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는 시대입니다. 저는 어떤 논의가 촉발되든 새로운 시대의 논의 시작 지점에는 기본소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송석호 : 저 역시 동의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훨씬 넓어진 것은 사실이에요. 이것이 기본소득과 연결될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는 도달했다고 봅니다.

 

 

이경자 : 이제 완전 고용의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재난은 계속될 것이고, 국가적 방어는 큰 의미가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의 공동체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방역을 잘한 것은 사실이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 권력이 방역을 위해 개인 생활을 통제했어요. 양면성이 여실히 드러난 거죠. 기본소득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소득이 자본주의적 소비를 증진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도 있어요.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이 될 것이라는 신호는 위험합니다. 국가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서비스를 다시 손을 볼 필요가 있어요. 기본소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좋은 소비가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정상적인 국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증세, 과세 비율, 누진세 등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또한 기본소득을 밀고 가는 운동과 함께 또 하나의 담론은 우리가 살고 싶은 삶과 사회는 무엇일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논의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기본소득 지지자로서 이번 현상을 보며 어떤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마무리 발언을 겸해 한마디씩 해 주시죠. 

 

송석호 : 제가 기본소득을 받지 못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는 국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최근 청년들은 대학을 다녀도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를 포기하고, 사회에 나가선 등록금 대출을 해결하기 위해 고생하며 내 집 마련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이 모든 사회 문제를 기본소득이 해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지를 고민할 여력을 줄 순 있다고 봅니다. 저와는 무관하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송석호 참여자

 

김재섭 : 기본소득 지지자로서 앞으로 기본소득의 지지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설명해 왔던 문제들을 설명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나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긴급재난지원금 역시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용하는 건 기본소득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거죠. 시민이나 최근 기본소득을 지지한 사람들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이경자 : 집담회 요청을 받고 여러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코로나19 이후는 가능할까 등의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기본소득 운동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시대는 이미 바뀌었고,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 사회의 부를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 부가 일정한 사람에게 편중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는 당연히 우리의 몫이 있고, 기본소득은 그 몫을 찾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여러 담론과 논쟁이 있을 것입니다. 시민들과 이러한 공감을 나누는 것이 새로운 사회로 가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입니다. 지금 사회는 왜 살고 싶지 않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를 고민해야 하죠. 더불어 기본소득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오늘 집담회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귀한 자리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년 155호 월간 토마토 中]

 

728x90
반응형

댓글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