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노동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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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관심

낯선 노동을 이야기하다

by 토마토쥔장 2021.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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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노동을 이야기하다

이용원 사진 이주연

 

(좌측부터/당시 2018년) 비영리단체 혁신청 사무국장 김영진(29)/ (주)해본사람들 이사 권성대(33) / 페토사회적협동조합 대표 신택연(29) / (주)열린책장 대표 강화평(34)           

 

                                                                                   

[비가 내리는 저녁이었다. 이들을 만난 건 사실 '혁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월간 토마토 아이템은 아니었다. 식사를 함께하고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눈 후 붙들어 앉혔다. 이번에는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며. 혁신과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한자리에서 나누었다. 일부러 그렇게 모은 건 아니지만, 이들 중 피고용인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20~30대 청년이다. 그들 중 몇은 고용인이다. 어지럽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애초에 사장 뒷담화를 까려고 모인 자리가 아니니 좀 더 논의가 깊어야 했는데, 그 역시 쉽지는 않았다. 좌담이라기보다는 수다에 가까웠다···.]

 

1. 

노동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야기를 이어 가려면 필요하다. 그렇게 정의한 노동에 관한 개념은 더 큰 혼란의 구덩이를 팠다. 합의 볼 수준의 명쾌함을 애초에 기대한 것이 욕심이었다. 

"남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것, 그걸 돈으로 만드는 과정이 노동이다."

"나에게 노동은 재미있는 일이다. 내가 지금 기획하고 청소년을 만나는 일이 그렇다. 제일 힘든 일은 공공기관 관계자를 만나고 선생님들에게 돈 얘기하는 것이지만, 이것도 재미있는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결국, 재미있는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노동이다."

"노동은 사회의 필요를 충족하는 일이다. 전체 사회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이웃이 될 수도 있다. '필요'라는 것에 관한 정의는 개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자립을 위한 활동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획득하는 일이 노동이다. 노동은 공동체성이 필요하다. 내가 다 해도 되는데, 누군가에게 맡기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는 역할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정의 중에 '필요'라는 말이 도드라졌다. 남, 이웃, 사회에 필요한 일, 다른 사람에게 암묵적으로 대신할 것을 위임받은 일. 그리고 그 일이 즐겁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노동이다. 한동안 사회에서 월간 토마토를 발행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이 세상에 가장 의미있는 일은 '1차 산업'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류가 겸손하지 못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우리 입에 들어가고 몸에 걸치고 추위와 어둠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집을 우리가 직접 마련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사람들 사이에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낮아졌다.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는 '밥 남기지 말아라, 농사짓는 분들의 피땀이 무시되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 부모님 세대는 '너 공부 안 하면 저런 일 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몸을 쓰는 노동을 값어치 없게 받아들이는 그 시점 즈음에 우리는 기고만장한 건지도 모른다.

 

 

 

2.

하고 싶은 일, 혹은 해야 한다고 동의한 일을 선택한 사람에게 고용인인지 피고용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고 싶거나 해야 할 당위가 있는 일을 하는 과정은 내가 가진 육체적 힘, 시간, 지식 등을 어쩔 수 없이 화폐로 환원하는 것과는 분명 달랐다.

"2년간 직장인으로 있을 때나 단독으로 활동하는 지금이나,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활동 과정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노동이라 생각할 수 있나? 삶이지 않은가?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스트레스도 안 받는다. 일 자체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편하게 받아들이는가가 노동과 삶의 경계를 가른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잘하는가. 하고 싶은 일인가, 일 자체가 내 삶에 닿아 있는가가 핵심이다."

"직장인으로서 노동과 회사 대표를 맡은 지금의 노동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일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자, 라는 철학에서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직장 생활도 했지만 궁극에는 돌아서 가지 않고 직접 가기로 했다. 도움을 줄 사람을 구체적으로 찾았고 그 과정에서 청각장애인을 만났다."

"억지로 하면 부정적 노동, 하고 싶어 하면 긍정적 노동, 업무의 양이 납득할 수 있으면 긍정적 노동, 업무의 양이 납득할 수 없으면 부정적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직원도 의미 부여를 하면 대표처럼 일을 하지만, 원하지 않는 일들을 떠맡다가는 지속하지 못하고 터져 나간다."

"하고 싶은 노동, 누구나 꿈꿀 수 있다. 하지만 선택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한다.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을 못 찾은 사람은 돈만 주는 곳에 가서 시키는 일만 주구장창 해야 한다."

"나도 하고 싶은 일은 여행 다니며 한량처럼 사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사회의 필요를 매칭 시켜야 한다. 내가 하는 일 자체가 누군가의 필요를 어떤 방식으로든 충족시켜야 한다. "

"노동과 취미를 구분해야 한다. 가령 나는 한때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다. 막상 프로게이머가 되니 노동 생산성이 떨어졌다. 시장이 너무 작다. 취미로 할 때는 가끔 돈이 생겨서 즐거웠는데, 밥 먹고 게임만 해야 하는 일이 되니 너무 힘들었다."

"나는 고용주, 아빠, 남편이다.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수익보다 필요한 일을 더 만들고 싶은데 그런 일을 만드는 과정에 통장 잔고가 보이니 원하지 않는 일도 받아서 해야 하고, 이런 일이 많아지면 내가 이렇게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

 

 

워라밸, 일과 삶의 밸런스는 모순 투성이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연장하기 위해 만들어 낸 허구일 수도 있다. 삶과 노동의 밸런스라는 말에는 이미 '삶을 잠식한 노동'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현재의 노동 형태에 동의함을 의미한다.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워라밸'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이 과정에서 하고 싶은 일은 대부분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노동과 취미를 구분해야 한다는 일갈도 어쩌면 이런 측면에서 제기된다. 이것은 개인이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비즈니스모델로 풀어내지 못하는 개인 탓일 수도 있지만 사회 구조나 시스템 문제일 수도 있다. 이 정도 논의가 가능한 것은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잉여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노동을 준비해야 한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개인별 기숙사를 지정해 주는 마법 모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사회가 제시하는 기성복 같은 프로세스 위에 그냥 얹혀 가는 것이 아닌 내 몸에 꼭 맞는 맞춤복과 같은 노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이 자리에 모인 청년들이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사회에 필요한' '생활할 수 있는' 나만의 노동이다.

 

 

3.

"실제로 조직 안에서 일을 다같이 많이 하고 성과를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적절하게 나눈다면 갈등 요소가 해소된다고 보는데, 전체 파이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파이가 주어지니까 불만이 생긴다. 활동도 마찬가지다. 돈을 어떻게 나누냐도 중요하지만 인정 욕구를 일하는 사람이 모두의 성과로 가져가느냐의 문제에서 갈등이 생긴다. 물질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배분의 문제는 중요하다."

"작년에 의문점이 많이 들었다. 시작할 때는 이렇게 커질지 모르고 그냥 소소하게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주변에서 다양한 요구가 몰아치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내 안에서 충돌이 많이 일어났다. 그래도 여전히 신기하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

"청년의 일과 관련한 문제에서는 사회에서 필요한 수준과 나의 필요 수준을 맞춰야 하는데, 노력을 통해 내가 충족시켜야 하느냐, 생태계, 사회가 합의하면서 함께 맞춰가야 하느냐가 중요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불행한 사람도 많이 보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건 생각해 볼 문제다."

"결국, 납득의 문제다. 내가 자기착취를 할 건데, 이유를 하나 찾는 것이 중요하다. 간혹 여기까지 일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새로운 지혜와 지식이 생기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플러스가 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다."

"일단, 신기루를 쫒게 만드는 중독은 변화다. 사회가 바뀌거나 누군가 변한다는 것이 내게는 신기루다. 직원하고 얘기해 보면, 직원은 변화라는 신기루를 못 느끼고 진짜 노동으로만 받아들인다. 요즘 이런 변화를 더 크게 만들면서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정치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물불 가리고 일을 하게 만드는가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과도한 노동으로 몸이 망가지고 소진 상태에 이르렀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괜찮아"는 또 다른 문제다. 몇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지만, 일반적이고 범용적인 프로세스에서 벗어난 비즈니스에서 부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투입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유용한 자원은 '자신'이다. 기존 자본주의 시장에서 벌어지는 괸용적 행태들 속에서 이외의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안다. 그 안에 공정함과 정당함, 도의와 상식 따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미 있지만 돈이 되지 않는 일은 모두 공적 영역에서 책임지어야 한다는 논리는 적절하지 않다. 권력을 더욱 강화하고 시민의 종속성을 심화시킬 뿐이다. 

 

 

 

4.

"청년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를 짜내는 듯하다. 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이것이 일자리다. 일자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결국 학습이나 교육을 통해 이런 일자리를 찾아가는 센스를 길러 주는 것도 필요하다. 관행적 일자리는 산소호흡기를 씌어 놓은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알아채게 해주는 센스를 교육하고 해결하고 싶은 욕구나 의지를 같이 붙어 가야 한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만들어 가는 과정은 국가가 당연하게 지원하는 일이어야 한다. 다만, 청년의 선택 문제다. 청년이 창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실패할 때 리스크가 너무 크다. 사회적 인식도 창업을 한다고 하면 많이 주변에서 말린다. 오히려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본다. 일자리는 일자리대로 늘리고 창업관련 생태계를 바꿔 주어야 한다."

"청년 노동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변 사람이다. 주변 사람이나 드라마 책에서도 "그거 해서 먹고 살 수 있어? 네가 거길 어떻게 들어갔는데, 왜 포기해?" 같은 대사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묻고 싶다. "너는 네 삶의 기준점을 가지고 너의 시선으로 살고 있느냐?" 아직 정리는 안되었지만, 대안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안전망을 만들어 주어서 실패해도 괜찮도록 만들어 주지 않으면 무섭고 두려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다."

"청년 노동 관련한 문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기업의 부조리로 나뉜다고 보는데, 과다한 업무와 상사의 심리적 갑질이 문제라고 하면 그걸 자기만의 문제라고 받아들이지 말고 함께 겪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적으로 해결하려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 모순이 있는 거라고 본다.그런데 스스로 노조 활동을 어려워하고 노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나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활동하는 거다. 최소한의 연대의식을 더 고민해야 한다."

눈치 챘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따옴표 안에 모든 문장은 '청년'이라는 낱말로 시작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청년 일자리나 노동 관련 문제에 관한 해결점은 그리 지지받지 못했다.

변화하는 흐름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진지한 접근 태도로 보이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먄 광고판에서 흔히 마주치는 대학교 취업률만큼이나 현실감이 없다. 몇몇 수치를 늘어놓고 그 수치에 변화를 주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는 적절치 못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제기 앞에 우리는 놓여 있다. 삶 전체를 규정하는 노동은 그 안에서 숙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정책적인 숙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이 먼저 질문을 던지고 함께 답을 찾아가며 사회 전체로 합의과정을 넓혀 가야 할 시점이다. 

[월간 토마토 130호 청년 좌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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