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세입자였던 걸까? - 향나무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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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세입자였던 걸까? - 향나무 게이트

by 토마토쥔장 2021.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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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세입자였던 걸까? - 향나무 게이트

글·사진 이용원

 

옛 충남도청 활용은 문체부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가

이제, 나무를 왜 잘랐는지도 물어야 할 텐데….

 

 

프레임’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바꾸면 ‘틀’이다. 미국 미디어 연구자인 토드 기틀린은 이 개념을 매스미디어에 적용해 이런 주장을 펼쳤다. “매스미디어 보도가 프레임에 갇혀 있으며 바로 그러한 ‘프레임’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본다.”

‘프레임’에 빠지기는 쉽고 한 번 빠진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낱말 중 ‘리터러시’라는 말도 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뜻하는 영어 literacy다. 이 낱말을 미디어에 붙여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을 만들었다. 최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활발하다. 개인적으로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숨어 있는 프레임을 파악하는 부분이다.

 

 

언론이 제시하는 프레임은 의도를 갖는 고도의 공작일 수도 있고,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언론사 혹은 기자가 가진 기본 생각을 강하게 반영하며 나타날 수도 있다. 프레임은 언제든 어디든 존재한다. 때론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도 활용한다.

 

 

 

 

1.

2021년 3월, 옛 충남도청 부속 건물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대전시는 자체 감사를 진행하고 강한 징계 의지를 밝혔다. 2019년 행안부가 공모사업을 통해 선정한 대전시 ‘소통협력공간 조성 사업’이 문제였다.

 

논란을 촉발한 건, 옛 충남도청 부속 건물 옆을 둘러싼 향나무 등 수목 제거였다. 감사 내용을 보면 경계 수목으로 썼던 향나무 173주 중 100주를 베어내고 73주는 금고동 양묘장으로 이식했다. 깊은 역사를 지닌 향나무를 베었다는 것이 문제로 제기됐다. 일단, 우리 도시 언론과 국민의 힘 등 정치권이 자연 혹은 생명에 관한 감수성이 이리도 높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척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지구 위에 인류와 함께 사는 나무를 비롯한 모든 생명 혹은 돌멩이처럼 생명이 없는 존재, 그 어떤 것이라도 허투루 여길 것은 없다. 이런 생명 존중 감수성을 잃지 말고 앞으로 우리 도시에서 펼치는 토목∙건설사업 등 모든 행위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를 바랄 뿐이다.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대전시가 부속 건물 세 개 동에서 진행한 리모델링 공사가 가진 위법성도 문제였다. 감사 결과를 보면, 문체부와 네 차례 방문 협의 등을 진행했을 뿐 ‘공문’을 통한 공식 협의를 마무리하지 않은 채 옛 충남도청 부속 건물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했다. 수목 제거도 마찬가지다. 흔히 행정 행위 본질이라고 얘기하는 형식을 갖춘 공문을 통해 공식적인 승인을 받지 않은 채 사업을 진행한 것이 문제라면,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충남도청이 이전하고 남은 청사와 터에 관한 소유권 변경이 수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중이었고, 대전시는 공간 실사용자였다. 각 주체 사이에 협의와 결정이 물흐르듯 원활하게 흐르기엔 각자 이해 관계가 좀 복잡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그렇더라도 행정 행위 과정에서 자체 규칙이나 법 등을 위배한 사실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사실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이번 기회에 개방형 임기제 공무원이든 기존 공무원이든, 몇몇의 일탈이나 행정 미숙 정도로 꼬리 자르기 하지 말고 이런 일이 벌어진 대전시 안에 행정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문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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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창업허브

 

 

2.

이번 사안을 접하며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공사를 진행하며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허락도 받지 않았다’는 논리는 무척 불편하다. ‘집주인과 세입자’ 논란은 특정한 프레임을 씌운다. 공공 재산은 기본적으로 공공의 것이다. 기관은 집주인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거나 관리를 위임받은 주체일 뿐이다. 매입비용 지급과 임대비용 지급 등도 예산 운용을 위한 방편일 뿐 이를 개인이 재산권을 취득하기 위해 돈을 주고받는 행위와 동일시하는 것에도 역시 동의할 수 없다. 소유권이라는 표현은 행정 편의적일 뿐이다. 민간 영역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건 문제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불편한 프레임은 옛 충남도청 활용과 관련해 대전시가 무척 수세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대전시 서철모 행정부시장이 3월 18일 감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문체부가 의회동(대전세종연구원) 3, 4층에 사이버안전센터를 유치한다고 하고, 2층에는 34명 정도가 근무하는 문화체육관광기술진흥센터를 입주시킬 계획이라고 통보했다.”라고 말했다. 또 서철모 부시장은 “문체부가 3억 원을 들여 옛 충남도청사 활용을 위한 용역을 추진할 계획인데, 그 결과에 따라 (소통협력공간 조성사업도) 재조정이 이뤄질 것이고 현재로선 축소가 불가피하다.”라고 설명했다._디트news24(http://www.dtnews24.com)

 

옛 충남도청 활용과 관련해 대전시는 완전히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사용 계획을 통보하는 문체부의 오만함은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 대전시가 스스로 결정해 추진하던 주요 사업을 문체부 결정에 따라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무기력한 태도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문체부의 오만함과 대전시의 무기력함에 대전시민으로서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

 

이와 관련해 먼저 「도청이전을 위한 도시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도청이전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법 31조의 2, 제2항에는 “국가는 제1항에 따라 매입한 종전 도의 청사 및 부지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국유재산법」에도 불구하고 해당 부동산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광역지방자치단체에 무상으로 양여하거나 대부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이어 같은 조 제3항에는 “국가는 제2항에 따라 종전 도의 청사 및 부지를 무상으로 대부하는 경우 「국유재산법」 제18조 제1항 및 제46조 제1항에도 불구하고 해당 부동산의 대부 기간을 50년 이내로 할 수 있으며, 영구시설물을 축조하게 할 수 있다.”라고 명시했다.

 

이 조항은 모두 2016년 신설한 조항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도청이전법 개정안은 2016년 2월 26일 법사위를 통과했고 같은 달 2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이 법 조항을 만든 배경은 관련 기사 등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기존법이 도청 이전에 따른 종전 도청사 및 터를 국가가 매입하도록 했지만, 활용 주체에 대한 규정이 분명하지 않고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고 있으면서 실질적인 활용 주체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로 이원화된 것을 문제로 인식했다. 법 개정을 추진한 이유다. 종전 도청 소재지 관할 광역자치단에체 무상 양여 혹은 무상 대부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건 이런 이원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해당 자치단체 활용에 초점을 둔 법 개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도청이전법 개정이 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건 2014년이었다. 당시 개정안의 핵심은 도청 소재지와 관할 구역의 불일치로 도청을 이전하면 종전 도청사 및 터를 국가가 매입하도록 했다. 이 법에 관해 당시 지자체는 자체 예산을 들이지 않고 도청을 이전하고 남은 기존 도청사와 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이유로 해당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관련법 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개정안은 당시 대전에 연고를 둔 강창희 국회의장과 이장우 의원이 주도해 해당 상임위 통과를 이끌고 당시 법사위 위원장이었던 이상민 의원이 직권으로 뒷순위 처리 안건이었던 이 법안을 첫 안건으로 상정해 처리했던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결국 2014년 12월에는 도청이전법 개정에 이바지한 공로로 이장우 의원이 대전시와 충청남도, 대구시와 경상북도 4개 시도에서 감사장까지 받았다._대전일보 2014년 12월 30일. 당시 이 법과 관련한 대전과 대구, 충청남도와 경상북도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참고로, 대구에 있던 경북도청은 2016년 안동-예천 신도시로 이전했다.

 

2014년과 2016년에 걸쳐 힘들게 도청이 이전한 후 기존에 남은 도청사와 터를 국가가 매입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광역자치단체가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무상 양여∙무상 대부와 관련한 법을 만든 취지를 잘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이런 법까지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옛 충남도청 터 활용과 관련해 문체부 눈치만 보아야 하는 지금 상황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보여주는 문체부 태도는 대전시는 물론이고 대전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 도청이 떠나고 남은 지역이 겪는 경제적∙정서적 공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양이다. ‘세입자와 집주인’ 프레임 속에서 정말 집주인 행세를 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3.

이번 사안이 행정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무능력한 공무원이 저지른 실수라면, 감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밝히고 징계 등 적절한 후속 조치를 통해 깔끔하게 마무리하면 그만이다. 근데, 그렇게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없는 건, 이번 사안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 우리 시 행정의 난맥상이다.

 

옛 충남도청 활용 방안 마련과 관련한 이런 난맥은 2019년에 이미 드러났다. 당시 대전시 안에 다양한 부처가 옛 충남도청 공간을 사용하겠다고 나섰다. 정부 사업비를 받고 대전시가 매칭 예산을 세운 다양한 사업이 옛 충남도청 안에서 충돌했다. 결국, 이에 대한 조정 기능을 부여한 태스크 포스 팀을 만들고 이 팀을 민선 7기와 함께 출범한 ‘새로운대전위원회’ 산하에 두었다. 태스크 포스 팀 운영은 기획조정실에서 소관 업무로 받았다. 옛 충남도청사 부속 건물에 들어선 대전창업허브나 조성 사업을 진행하다가 논란의 중심에 선 소통협력공간, 대전평생학습관 등이 활용할 공간을 이때 조정했다. 태스크 포스 팀이 한 일은 옛 충남도청사와 터가 대전 원도심에서 지닌 역사성과 장소성을 명확하게 분석하고 큰 그림 안에서 어떤 기능을 부여하며 활용할 것인지에 관한 부분은 아니었다. 당장 필요한 공간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수준이었다. 그 결과, 우리 시는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 이해 차이에 따라 불거질 수 있는 문제를 예측하지 못하는 순수함을 가졌고 이를 해결할 설득 논리나 조율 역량은 물론이고 정치력도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꼴이 되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우리 시가 옛 충남도청사와 부속건물, 터를 놓고 그 활용방안을 논의한 시간은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다. 여전히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우리는 결정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 소식은 2020년 상반기에 국립현대미술관 대전 분관 유치를 건의했다는 것 정도였다. 창업 허브와 소통협력공간, 국립현대미술관 대전 분관까지, 옛 충남도청 울타리 안에서 어떤 맥락으로 연결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국립현대미술관 대전 분관은 제안한 지 이제 1년여가 넘었지만, 아직 폐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올해 문체부가 진행하겠다는 용역에 아마 관련 내용을 포함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문체부 자체 계획이 아니고 강한 시민 여론을 형성한 것도 아니다. 이러면 계획이 아무리 구체적이어도 아이디어 차원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제안을 문체부가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사실상 어렵다.

 

우리 시가 이렇듯 설득력있게 졸가리 있는 활용 방안을 세우거나 시민 의견을 모으고 여론을 형성하지 못한 반면, 문체부는 다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이 아들 기우처럼 말이다. ’세입자, 집주인’ 논란이 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옛 충남도의회동 3, 4층에 사이버안전센터를 유치하고, 2층에는 문화체육관광기술진흥센터를 집어넣겠다는 계획을 통보한 걸 보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시는 옛 충남도청 의회동에 2, 3, 4층을 내어주고 벌써 3년 차 사업에 접어든 ‘소통협력공간사업’을 축소하며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프레임’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세금 폭탄’이라는 말이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하는 것처럼, 우리 시는 어쩌다 ‘경우도 모르는 못된 세입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도덕하고 못된 세입자는 옴짝달싹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 10년간, 다양한 논의가 오갔지만, 그 과정에서 나름 수렴한 부분은 ‘옛 충남도청과 부속건물 주차장 등 터’를 시민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수목이 울창한 공원을 만들든, 도서관을 만들든, 시민에게 열린 공간을 희망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소통협력공간’사업의 핵심은 시민이 들락거리며 도시를 바꿀 혁신적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시민이 편하고 쉽게 들락거리며 혁신에 관한 영감을 얻고 다양한 소통과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조성 과정에서 행정 절차상 문제가 드러났다.

수목 제거와 건물 리모델링 과정에 저지른 행정 절차상 문제도 중요하지만 정작 우리가 반드시 물어야 할 건, 왜 자르고 왜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는지다. 대전시도 이 대목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정작 궁금해야 할 것을 묻지 않고 설명하지 않으면 본질은 사라진 채 엉뚱한 문제에 관심이 쏠리는 우를 범한다.

 

소통협력공간 안에 어떤 내용을 채워야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소통협력공간 사업을 축소할지 원안대로 갈지 확대할지를 시민이 참여해 논의하고 이 과정을 옛 충남도청 공간과 터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 그동안 논의 진행 방식과 의견 수렴 방식에 문제를 평가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시민이 옛 충남도청 활용 방안 모색 과정을 지원할 한시적 특별 기구를 대전시가 나서 설치하며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성과가 있든 없든 옛 충남도청 활용방안은 도청이 떠난 빈 자리에서 십 년이 넘게 우리 시가 모색한 부분이다. 이제라도 옛 충남도청 본관과 부속건물을 비롯해 그 터를 활용하는 방안에 관한 논의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 대전시가 해야 할 일이다. 올해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이번 논란을 긍정적으로 본다면,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 도시가 지닌 역량은 어떤 수준인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참고로, 대구시 북구 침산동에 있는 옛 경북도청 터는 지난해 2020년 국토부가 공모를 통해 ‘도심 융합특구 선도 사업지’로 선정했다. 광주 상무지구와 함께다. 도심융합특구는 국토교통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대도시 도심에 기업과 인재가 모일 수 있도록 산업∙주거∙문화 등 복합 인프라를 갖춘 혁신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 위 글은 2021년 4월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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