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 숙의민주주의 실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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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숙의민주주의 실현, 가능할까?

by 토마토쥔장 2021.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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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숙의민주주의 실현, 가능할까?

글 사진 이용원

 

옛 성산교회 건물

 

1.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정말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니었다.

지난 2020년 8월, ‘옛 성산교회 활용 추진위원회(대표 김소현)’는 양지근린공원 안에 있는 ‘옛 성산교회 활용 공론화’를 대전시에 요구했다. 대전시가 제정한 ‘대전광역시 숙의민주주의 실현 조례’에 근거한 요구였다.

 

이 요구에 대한 심의 결과는 ‘안건 상정 불가’였다. 대전시는 공론화를 요구한 ‘옛 성산교회 활용 추진위원회’ 측에 지난 1월 12일 공문을 통해 답변을 보냈다. 지난 8월 안건을 제안했으니, 짧지 않은 시간을 끌다 내린 결론이었다. 공문에서 설명한 ‘이유’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전시에서 밝힌 내용은 이러했다.

 

현재, 양지근린공원은 사업부서에서 관련 예산을 편성하여 ‘공원조성계획(변경) 용역’을 추진 중에 있으며, 향후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16조의2(공원조성계획의 결정)의 규정에 따라 옛 성산교회 건물의 활용 여부가 결정 및 고시될 예정입니다. 또한, 행정안전부의 질의 결과 “법률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라면, 별도 조례에 따른 심의 결과에 구속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그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에 우리시는 법률 절차에 따른 일관된 시정 운영과 실효성 있는 숙의제도 운영을 위해 금번 ‘옛 성산교회 활용 공론화 요구’건을 ‘대전시민숙의제도 추진위원회’에 상정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음을 알려드리오니,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시 주요 정책 및 현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 형성을 위해 숙의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보완하여 운영해 나아갈 계획입니다. 끝.

 

가장 먼저 제시한 이유는 대전시 관련부서가 공원조성계획 변경 용역을 추진 중이고 향후에 이 결과에 따라 옛 성산교회 건물 활용 여부가 결정 및 고시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계획을 수립하는 용역이 끝난 것도 아니고 계획을 결정해 고시한 건 더더욱 아니다. 당연히 계획을 수립하는데 시민 숙의 과정을 거치는 건 중요한 문제다.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이는 ‘시민이 활용 방안을 논의 하자!’라는 제안을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 이유지 거부 사유로는 논리적 근거가 없다.

 

논거가 약하다는 걸 알았는지, 대전시는 행정안전부에 이 사항을 질의 했다. 행안부는 대전시가 제정한 조례에 근거해 진행한 숙의 결과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과정을 통해 결정한 사안을 뒤집을 만큼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시민이 숙의의제로 제안한 안건을 상정해 논의할 수 없는 이유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2019년 12월 27일 시행에 들어간 <대전광역시 숙의민주주의 실현 조례> 제정 목적을 보면 ‘이 조례는 대전광역시의 주요 정책 및 현안에 대하여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사회적 협의와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숙의민주주의 실현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했다. 이 조례 제정에 핵심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사회적 협의와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시민이 숙의를 통해 결정한 사항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이 조례 제16조(결과환류)를 보면 ‘시장은 숙의제도를 통해 도출된 결과에 대해 시정 반영 여부를 결정하고, 정책 반영 시 추진상황에 대해서도 시민에게 공개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했을 뿐이다. 

 

행정안전부에 핵심 요지를 벗어나 질의하고 저런 답변을 숙의의제 상정 거부 이유로 시민에게 제시한 건 한없이 비겁하다. 책임을 행정안전부에 전가하려는 의도로 밖에는 볼 수 없다.

 

또 사대주의에 빠져 백성을 나몰라라 한, 조선시대 위정자들을 보는 듯하다. 처음 이 조례를 보았을 때, 분권과 자치 정신으로 무척 혁신적인 조례를 만든듯 해 시민으로서 내심 뿌듯했다. 그런데, 대전시가 보여준 이번 행자부 질의 과정은 이런 분권과 자치성을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었다.

 

행자부에 질의는 필요조차 없는 사안이다. 어린아이가 궁색하게 핑곗거리를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조례는 이미 숙의의제로 제안할 수 없는 사항을 제11조(숙의의제 제안)에서 적시했다.

 

1. 법령이나 조례에 위반되는 사항, 2. 수사나 재판 중에 있거나 행정심판 등 다른 법률에 따라 불복구제 절차가 진행 중인 사항, 3. 감사기관에서 감사 중인 사항, 4. 사업계획 및 예산이 확정되어 추진 중에 있거나 처리가 이미 종료된 사업, 이다. 

옛 성산교회 활용 추진위원회가 제안한 숙의의제는 각 항에 저촉되지 않는다. 이는 대전시도 잘 안다. 대전시의회 오광영 의원 측을 통해 확보한 대전시의 '옛 성산교회 활용 시민청구 검토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이 문서에서 대전시는 청구인 485명 중 311명이 유효해 청구인 요건을 충족했고 시설물 리모델링 및 철거 측면 모두 사업계획은 수립되었으나, 예산은 확정되지 않은 사항으로 제외 규정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어 숙의제도 추진위원회의 ‘숙의의제 선정 심의’ 안건으로 상정하는 것이 타당하나, 문제점이 예상 된다고 덧붙였다.

대전시 검토 결과에 나타나듯 상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조례’는 자치법규다. 문제점이 예상 된다고 조례에 전혀 문제가 없는 시민 제안 숙의의제를 상정하지 않는 건, 위법하다. 사안의 심각함은 여기에 있다.

옛 성산교회 지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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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전시가 검토결과에서 밝힌 예상문제는 모두 네 가지다.

첫 번째로 내세운 것이 ‘시의회 의결 내용과 상충된 결과 도출 시 代議(대의)민주주의(시의회) 권위 위축’이다.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시민 숙의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예단했을 뿐만 아니라 ‘시의회 권위’가 ‘시민 논의 과정과 그 결과’에 우선한다는 사고 태도를 보여준다. 숙의민주주의 관련 조례를 제정한 건, 시의회 권위를 훼손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 대의민주주의와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기존 시스템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보완책이다. 이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내세운 문제는, ‘도시공원위원회’ 심의결정(고시)에 따른 절차 이행으로 ‘숙의제도 운영 무용화’다.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지만 원문이 그렇다.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지만, 맥락을 놓고 보면 숙의를 통해 옛 성산교회 건물을 철거하지 말고 활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것으로 본 듯하다. 그럼에도 결국 도시공원위원회가 철거하는 것으로 심의, 결정, 고시했을 때 벌어질 ‘숙의제도 무용론’을 우려한 내용이다. 흥미롭다. 분명 진행 중인 사안인데,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된 듯한 태도다.

 

나머지 두 개 문제 중 하나는 방침 번복 가능성으로 행정의 일관성신뢰성 저해와 예산 미확정 사업에 대한 공론화 사례로 주민 갈등과 대립의 도구 선례화를 들었다. 행정의 ‘일관성신뢰성’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옛 성산교회 활용 여부에 관해 행정이 보여준 모습은 신뢰를 잃었다. ‘숙의의제 안건’으로 관련 사안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만이 활용이든 철거든,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마지막에 제시한 문제는 더 이해할 수 없다. 예산을 확정하지 않은 사업을 공론화 해서 주민 갈등과 대립의 도구로 숙의민주주의가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로 보인다. 본래 숙의의제는 예산을 확정하지 않은 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이 조례 제11조에서 ‘4. 사업계획 및 예산이 확정되어 추진 중에 있거나 처리가 이미 종료된 사업’은 숙의안건으로 제안할 수 없다. ‘숙의민주주의’에서 ‘숙의(熟議)’는 여러 사람이 특정 문제에 관해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는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과정이지 이를 유발하는 과정이 아니다.

 

만일 ‘옛 성산교회 활용 공론화’요구를 안건으로 상정했다면, 대전시가 <대전광역시 숙의민주주의 실현 조례>를 제정한 후 첫 번째 사례일 뻔했다. 안타깝게도 일련의 과정과 결과만 놓고 보면, 대전광역시는 숙의민주주의를 실행할 준비와 태도, 역량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조례 하나를 제정했을 뿐이다.   

                                                        

옛 성산교회 내부 모습

 

3.

대전시는 양지근린공원 안에 있는 옛 성산교회 처분과 관련한 공식적이고도 구체적인 계획을 2016년 11월, 처음 발표했다. 당시 이 건물에 부여한 기능은 ‘복합커뮤니티 공간’이었다. 시는 “옛 성산교회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개발 사업 등으로 인해 단절된 지역 안 주민간 소통의 장으로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시, 건물 지하층은 공연, 회의, 체육시설 등 확장이 가능한 자율형 모듈 공간으로 조성하고 1층은 주 차장과 인포메이션 공간, 2층은 마을도서관, 커뮤니티룸 등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3층은 시민, 청년예술가의 창작 공간으로 계획하고 4층은 관리사무 공간, 옥상은 별빛공원으로 조성하여 주민쉼터와 전망대를 설치한다는 기본 그림을 그렸다. 리모델링 예산 10억 원도 이때 수립했다. 2017년에는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필요 시설에 관한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이때 설문조사 결과 주민 선호도는 도서관이 가장 높았다. 바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사이에 2018년 9월, 용두동과 은행선화동 자생단체가 주민 설문조사를 벌여 이 결과를 토대로 철거요청 의견을 대전시에 접수한다.

 

1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후 2019년 7월, 대전시는 양지근린공원 3,373 세대를 대상으로 우편 설문조사를 벌인다. 1,268세대가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 84.78%가 철거 지지 의견을 밝혔다. 이 조사 후 대전시는 철거 예산 1억 9천만 원을 편성해 의회에 제출한다. 이 예산을 대전시의회가 전액 삭감하면서 논란의 불씨가 타올랐다. 2019년 9월 대전시의회는 245회 임시회에서 옛 성산교회 리모델링 예산 10억 원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같은 건물 철거 예산을 올린 것을 문제 삼았다.

 

이후 2020년 8월, 중구 선화용두동 주민은 몇 차례 만남을 통해 이 문제와 관련한 논의를 벌인 끝에 ‘옛 성산교회 활용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전광역시 숙의민주주의 실현 조례>에 근거한 숙의의제 제안을 위해 주민 485명의 서명을 받아 8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런 의견 수렴 방식은 한계가 있다.”라면서 "이에 추진위는 대전시가 제정한 숙의민주주의 조례에 근거해 건물 활용에 대해 찬성하는 485명의 주민 서명을 받아 이를 제출하고, 공론화를 요구한다.”라고 밝혔다. 

 

대전시가 ‘철거’로 정책 방향을 결정한 설문 조사 방식에 관한 문제제기는 ‘옛 성산교회 활용 추진위원회’말고도 여러 곳에서 있었다. 대전시의회 오광영 의원도 당시 “오랫동안 비어 둔 건물을 놓고 건물 활용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철거와 존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면, 철거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18일, 231회 중구의회 제2차 정례회 본회의에서 안형진 의원이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옛 성산교회 문제’를 거론했다.

안 의원은 “실질적으로 구 성산교회라는 명칭이 아닌 시에서 매입한 성산교회의 건물로 명시를 해서 지역 주민들에게 고지의 의무를 해야 마땅했다.”라며 이를 정확하게 알리지 않고 진행한 의견 수렴은 정당히 않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안 의원은 이어 대흥동 주민자치센터와 한 건물을 사용해 많은 불편을 겪는 중구종합문화복지센터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근린공원 안에 있는 옛 성산교회 활용을 제안했다.

최근에는 대전 중구가 서대전공원 야외음악당 자리에 지속적으로 건립을 요구하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 ‘복합커뮤니티센터’를 옛 성산교회에  설치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도 지역 언론을 통해 나오는 상황이다.

옛 성산교회 활용 여부(방안)에 관한 이런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이 나오는 상황에서, 시민이 충분히 논의하고 토론하며 '숙의민주주의'를 경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주민참여예산제와 주민자치회 운영, 주민 공동체 활성화 등 다양한 '주민자치'를 향한 실험을 진행하는 현재 상황에서 우리시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진입할 수도 있었다. 이번에 대전시 시민이 제안한 숙의의제 안건 상정을 거부한 결정이 더욱 가슴아픈 이유다.

 

1월 25일부터 2월 5일까지는 대전광역시의회 제256회 임시회 기간이다. 이 기간에 이 사안과 관련한 논의가 있을지도 궁금하다. 대의민주주의 꽃이라는 ‘의회의 권위’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2021년 2월호 월간 토마토 기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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