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있지만, 미래는 없는 것처럼 - 한량 꿈나무 윤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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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있지만, 미래는 없는 것처럼 - 한량 꿈나무 윤명석

by 토마토쥔장 2021.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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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있지만, 미래는 없는 것처럼

한량 꿈나무 윤명석

글·사진 이주연

 

윤명석 씨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했던 말이다. 그저 생각 없이 탱자탱자 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난히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늘 드는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명석이를 보면 그 의구심이 깨지곤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을 지향하고 그저 자기 살 정도로만 벌면서 노는 베짱이다. 그를 보면 ‘그래, 저렇게 사는 게 진짜 노는 인생이지 뭐’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 당일에 만난 명석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저녁은 있지만, 미래는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신나게 웃어 재낀다. 올해로 대학 생활 10주년을 맞이하는 명석이는 올해도 졸업할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다.

 

명석이는 건축과를 다니다 우리 과로 전과한 선배다. 우리끼리는 그냥 편하게 이름을 부르는데 나는 종종 ‘엄마’라고도 부른다. 요리를 잘해 명석이네 집에서 그가 만들어 준 안주와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고 음식을 챙겨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 가을, 명석이를 대학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첫인상이 딱 한량 같았는데, 스스로도 자신을 한량이라 말한다. 그다지 친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와 마신 술이 몇 짝은 될 만큼 진탕 마시며 대학교 마지막을 불태웠다. ‘인생은 재미있게 놀고 보자’라는 인생 신조를 가지고, 거짓말처럼 자유롭고 철딱서니 없이 산 것 같은 명석이는 입시 당시 대학을 고르는 기준도 참 남달랐다.

 

“수능 끝나고 공주대랑 우송대, 한남대 중에 대학을 고르려고 돌아다녀 봤지. 처음에 공주대를 갔는데 놀 데가 없는 거야. 그래서 가볍게 패스하고 우송대를 갔더니 우송대도 실전 사거리라고 대학로가 있긴 한데, 별로 놀만 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지. 실전 사거리가 아니면 대흥동까지 나와야 하는데, 좀 멀기도 해서 여기도 패스. 마지막으로 한남대를 갔더니 ‘여기구나’ 했지.”

 

 

그렇다. 명석이는 순전히 놀 궁리를 하며 ‘대학로가 얼마나 잘 되어 있나’를 봤다. 인터뷰 시작부터 숨이 넘어가게 웃어댔다. 노는 걸 징글맞게도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명석이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놀 궁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생각보다 수능을 잘 봐, 입학 당시에 장학금을 받으며 들어왔다. 첫 학기만 해도 성적도 괜찮았단다. 문제는 입대를 앞두고 명석이의 한량 기질이 1차 폭발한 것이다. 꽤 성실히 학교에 다니던 명석이는 입대 전에 더 잘 놀아 보자고 생각해 1학년 2학기에 학고를 먹었다.

 

“토네이도라는 힙합 동아리에 들어가서 동아리 형들하고 엄청 놀았어. 거의 동아리방에서 살다시피 했지. 출석만 하고 몰래 나가서 놀았어. 한 번은 설계 수업 시간이었는데 건축물을 만드는 수업이었지. 2층 건물을 막 만들다가 2층으로 가는 계단이랑 기둥이 부서진 거야. 화가 나서 만들던 걸 부쉈는데, 나가신 줄 알았던 교수님이 뒤에 있었던 거야. 난 진짜 나가신 줄 알았어. 그래서 그때 그 교수님한테 D-를 받았어.”

 

교수가 학생에게 D-를 주는 것은 다시는 내 수업을 듣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이다. 그래서 명석이는 쿨하게 그 수업을 다시 듣지 않았다. 전공 수업이었는데도 말이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이미 전과할 생각이라 필요 없었다고 한다. 완전 똥배짱이다. 그렇게 명석이는 입대했고,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군 생활을 즐긴 후 복학했다. 그리고 한량 기질 2차 폭발과 함께 두 번째 학고를 먹었다. 군대를 갔다 왔으니 대차게 놀아야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학고를 두 번 먹고 든 생각이 ‘다음은 없다’였어. 그래서 ‘제적당하지 않을 만큼만 하자’ 생각해 모든 수업은 교양만 들었어. 수학, 역학 같은 전공 수업은 2년 동안 공부를 안 했으니 따라갈 수가 없지. 군대에서 공부를 어떻게 해. 책만 펴도 난린데. 어차피 전과할 거니까 죄다 교양만 들었고, 다음 학기에 성적 향상 장학금을 받았어. 학고 당할 정도로 성적이 바닥이었으니 당연히 성적이 오를 수밖에 없지. 그래서 그때 받은 장학금으로 수프림을 샀어.”

 

 

장학금으로 힙스터들의 로망인 그 비싼 수프림을 사 입은 명석이는 복학 일 년 만에 돌연 휴학했다. 그것도 휴학 가능 기간인 3년을 꽉 채워서 말이다. 휴학은 워킹홀리데이를 위해서였다. 알바하면서 워홀을 준비했지만, 부모님의 계속된 반대에 포기하고 그냥 알바하며 3년을 놀았다고 한다. 낮에는 알바하고 주말 밤이면 클럽을 쏘다녔다. 가만 보니 그가 추구하는 삶은 먹고 살만큼이 아니라 놀고 살만큼인 것 같다.

 

 

어쨌든 3년 뒤에 다시 복학해 바로 예술문화학과로 전과했다. 두 번의 학고 전력이 있었지만, 학과장에게 음악 한다고 말했더니 슈퍼패스로 통과했단다. 과에 아는 사람도 많았던 명석이가 학과장은 꽤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건축과보다는 수업도 훨씬 잘 맞고,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 입학했을 때처럼 학교도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물론 나는 금시초문이다.

 

 

“새벽까지 술 마시고 아침밥까지 먹고 1교시를 들었다니까? 진도 따라가려고 수업시간에 한번 자지도 않고 필기도 열심히 했어. 근데 4학년 때 재학생 대표를 맡으면서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시키는 것도 많아서 힘들어졌지. 나는 잠을 충분히 자야 하는데, 2~3시간밖에 못 자니까 사람 몰골이 아니더라고. 진짜 노는 것 빼고는 다 지치더라. 원래는 졸업할 생각이었는데 이제 그냥 다 놨어. 지금은 그냥 이 생활을 어떻게 연명하며 재밌게 살까 방법을 찾고 있지.”

 

 

사실 명석이는 졸업할 여건은 다 만들어 놨다. 논문도 거의 완성했고, 자격증도 다량 보유 중이며 토익 시험도 쳤다. 문제는 학점이 부족해 올해도 졸업을 못 한다. 애초에 올해 졸업할 마음도 없단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 잘 챙기는데, 학점은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나 보다. 명석이에게 ‘엄마는 시간을 돌려서 다시 1학년 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래?’라는 고리타분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돌아온 답은 ‘나? 더 재밌게 놀아야지’였다. 이만큼 놀아 보니 더 재밌게 노는 방법을 안 단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면 더 신나게 놀아 재낄 요령이다.

 

 

“난 그냥 돈은 덜 벌어도 좋아. 돈보다는 내 시간이 더 중요하거든. 사실 내가 만족하면 그만인 거잖아. 내 친구가 잘살게 되면 그건 그만큼 걔가 열심히 했으니까 잘사는 거야. 나는 걔만큼 열심히 안 한 게 사실이니까 질투할 것도 없지. 야, 그리고 나 정도면 순탄한 인생 아니냐? 민폐 안 끼치고 살았으면 열심히 산 거지.”

 

 

남들이 보면 생각 없이 놀기만 한다고 혀를 끌끌 찰 테지만, 그래도 그만큼 놀아서인지 명석이 주변엔 사람이 많다. 명석이도 살면서 좋은 사람을 제일 많이 얻었다고 말한다. 그래, 뭐 하나라도 얻고 만족하면 그만이다. 남이 대신 살아 줄 인생도 아닌데, 자기 몸 하나 건사하면서 만족하며 살면 되는 거지.

 

명석이는 종종 멕시코에 가서 식당을 차릴 거라 이야기하곤 했다. 처음엔 그냥 하는 소린 줄 알았는데, 스페인어도 꾸준히 공부하면서 무언가 계속 차곡차곡 준비 중인 것 같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과달라하라’라는 도시인데, 거기가 테킬라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거든. 식당도 식당이지만 본토에서 주조업을 배워보고 싶어. 멕시코 문화에 관심도 많지만, 무엇보다 거기 사람들은 여유가 넘치잖아. 거기서 그렇게 여유롭고 재밌게 살면 얼마나 좋으냐?”

 

 

요즘 보이스 피싱 전화에 대고 실실대며 훈계질을 한다는 명석이가 어서 빨리 멕시코에 식당을 차렸으면 좋겠다. 그가 만든 요리와 데킬라를 마시러 가방 하나 짊어지고 가면 딱이겠다.

 

 


“We’re just having fun/We don’t care who sees/So what we go out?/That’s how its supposed to be/Living young and wild and free”


영화 <Mac And Devin Go To High School>의 OST <Young, Wild&Free>의 한 구절이다. 가사가 명석이와 찰떡이다.

 

 

[2019년 1월호 월간 토마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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