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능정이 부루어리 - 김지훈 양조사
기억에 남는 술이 있으신가요?
네, 저는 있습니다!
글·사진 정현구
2017년, 무심코 찾은 축제에서 마음에 쏙 드는 와인을 찾았다. 묘사하자면 복숭아 향이 나고, 단맛이 그 뒤를 따른다. 마치 과일 젤리를 먹는 듯, 화사한 향이 입을 가득 채운다. 포도라는 본질을 잊지 않게 하려는 듯, 화사한 향이 걷혀갈 때 즈음 혓바닥 위엔 옅은 포도 향이 머문다. 묵직한 향과 깊은 감칠맛은 부족하지만 분명 사랑스러운 와인이다.
매년 말, 대전컨벤션센터에서 ‘대전국제와인페스티벌’이 열린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 많은 나라가 출품한 와인과 맥주 등 다양한 술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행사다. 2017년 처음 찾은 뒤, 좋아하는 축제를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와인페스티벌을 꼽는다. 두발로 걸어 들어갔다 네발로 기어 나오는 축제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인 말을 덧붙이며 꼭 한 번 가보라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술의 맛을 알아가며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술이라고 나에게 말하던 어른의 말에 반박하기 시작했다. 술, 맛있어서 마신다.
술이 맛있다는 의견은 나만의 의견이 아니다. 적어도 으능정이 부루어리의 공동 창업자 4명은 동의할 게 분명하다.
-브루어리? 부루어리!-
처음 인터뷰 요청을 할 때 제일 신경 썼던 것은 ‘부루어리’를 ‘브루어리’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었다. 토씨 하나 차이로 큰 실례를 범할 것 같아 문자를 보내기 전, 꼭 두 번씩 확인하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돌다리를 두들기며 만난 김지훈 양조사에게 제일 먼저 물은 것도 ‘부루어리’에 관한 질문이다. 김지훈 양조사는 그 이름엔 사연이 있다고 답했다.
“처음 대전에서 나는 것으로 술을 만들자 해서 성심당 빵을 이용한 맥주를 만들었어요.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을 브루어리라고 하거든요. 자연스레 부루어리가 되었어요. 와인을 만들었다면 와이너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부루어리에 대해선 저희도 내부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대중적인 브루어리로 갈지, 발음하는 대로 부루어리로 갈지 많은 고민 끝에 브루어리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담당 공무원분이 잘못 알아들으셔서 부루어리가 되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이건 하늘의 뜻이다, 생각하고 그냥 사용하기로 했어요. 실제 얻은 득도 있어요! 부루어리라고 검색하면 저희밖에 나오지 않거든요. 검색어 선점 효과를 누렸달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검색해보니 정말, 부루어리는 으능정이 부루어리 뿐이다.
-술자리가 술을 만들다-
으능정이 부루어리의 시작은 대학교 선/후배의 술자리였다. 평소 각자 좋아하는 것을 바탕으로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자 했던 그들이 함께 술을 마시다 술자리 농담처럼 직접 만들어보자는 말이 오갔다.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술을 만들고 있었다고.
“모두의 공통 관심사가 술이었어요. 잘 안되면 우리가 마시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소박했던 처음에서 하나씩 일을 벌이다 보니 꽤 규모가 커졌다. 술을 팔고자 하니 사업자를 내고, 술을 제대로 만들어 보자니 양조장을 얻게 되는 식의 확장이었다. 맛있는 술을 만들자는 목표를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올해 초엔 판매를 위해 주류 면허를 신청해 놓은 상태이다. 올해 주류 면허가 발급되면 판매를 계획한다. 판매할 수 없는데, 많은 관심을 주시는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일도 늘 어려움은 따르더라-
양조장을 시작할 때, 은행동 상인회의 지하에서 시작하려고 했다. 직접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목공을 했다. 하나씩 준비하던 와중 큰 문제가 생겨 방향을 급선회했다.
“직접 시공을 하고 입주하려고 보니까, 정말 큰 문제가 있는 거예요. 물이 새더라고요. 그리고 지하에서 양조하려면 환기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고장이었고요.”
이후 상인회 회장과 공공 지원사업 등 도움을 받으며 양조장과 사무실을 마련했다. 드디어 순탄하게 흘러가나 싶었더니 이번엔 발효조가 문제였다. 김지훈 양조사는 그 당시를 회고하며 진저리를 쳤다.
“제한된 예산으로 발효조를 얻으려고 하니 많은 고생을 했어요, 수소문 끝에 제작했는데, 두께가 너무 얇아서 운반 중 구멍이 난 거예요. 이후 수리받긴 했는데, 안에 술을 넣었을 때, 불안 요소가 많아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역시 싼 게 비지떡인가 봐요.”
사용하지 못하는 발효조는 사무실 한쪽에 둔 채로 사비로 구매했던 작은 크기의 발효조를 이용해 술을 만들고 있다.
어려움을 겪은 으능정이 부루어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이유는 많은 도움 덕분이다. 스쿨비즈 사업으로 새로운 양조장을 얻고, 멘토링을 받는 등 다양한 지원을 받으며 걸어왔다. 으능정이 부루어리는 받은 도움을 하나씩 돌려주려고 한다.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좋은 선례로 남아 새로 시작하는 청년에겐 힘이 되고, 공동화가 진행 중인 은행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고 하였다. 자연에서 받은 물건으로 술을 만들기에 업사이클링과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 판매 방식을 고민하며 지속 가능한 양조를 꿈꿨다. 마지막으로, 자생할 수 있게 성장하여 국가에 세금을 열심히 내며 환원하고 싶다고 농담처럼 덧붙였다.
-도전하는 술을 만드는 것-
으능정이 부루어리는 전통적인 조주방식을 따라 술을 만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기도 한다. 으능정이 부루어리가 만드는 술은 도전적인 것이 많다. 김지훈 양조사는 탁주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희는 술을 만드는 것을 넘어 문화를 만든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요. 예를 들면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보존하는 일이에요. 저희가 흔히 마시는 막걸리는 한번 발효하는 일양주거든요. 그걸 덧술을 넣어 여러 번 발효하면 오양주, 육양주가 돼요. 고급화하는 거죠. 문헌에 따르면 임금에겐 십양주가 진상되었다고 해요. 그것을 복원하고 나아가 덧술을 더해 십오양주를 만들어 보는 것도 해봤어요. 반응은 정말 좋았는데, 손이 참 많이 갔어요. 한번 실수하면 모든 게 날아가요. 발효 기간이 아니라 주조 기간만 6개월이 걸려 만드는 동안 어디 나가지도 못했고요. 하지만 분명 재미있었어요.”
-좋아하는 술을 만드는 것-
으능정이 부루어리는 성심당 빵을 이용한 맥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만들지 않는다. 양조사들이 각자 좋아하는 술을 만들다 보니 현재는 전통주와 지역 특산주라는 틀 안에서 탁주, 증류주 등 각 양조사가 좋아하는 분야를 나누어 술을 빚는다. 이번에 같이 인터뷰를 진행한 김지훈 양조사는 벌꿀로 만드는 미드(Mead)를 만든다. 김지훈 양조사가 처음 미드와 만난 것은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게임 엘더스크롤이라고 한다. 맛있게 마시는 게임 속 인물을 보고 궁금증이 생겨, 처음 미드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김지훈 양조사는 내게 두 종류의 미드 시음을 권하며 말했다.
“처음 미드를 만들어서 술 모임에 가지고 나갔어요.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나중에 지나고 보니 그분들 입맛이 후한 걸 알았지만요.”
김지훈 양조사가 건넨 두 잔의 미드는 전혀 다른 술처럼 보였다. 한 잔은 맑은 호박처럼 투명했고, 다른 한 잔은 바나나 막걸리처럼 탁했다. 막걸리와 미드를 내어준 줄 알고 탁한 것이 막걸리냐고 묻는 나에게 둘 다 미드라고 답했다. 탁한 미드는 사과향 사이다를 마신 듯 가득한 청량감으로 입을 씻어줬고, 맑은 미드는 위스키의 묵직한 오크 향이 비강을 가득 채우고, 유자청의 산뜻한 신맛과 단맛으로 마무리되는 듯하다, 본인이 포도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듯, 목청에서 청포도 향이 올라왔다. 연신 맛있다고 연발하는 나에게 김지훈 양조사는 두 미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어떤 방식을 사용했고,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이며, 의도한 방향과 앞으로 만들고 싶은 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분명 마스크를 쓰고 있었음에도, 김지훈 양조사의 행복한 얼굴이 그려졌다.
-대전과 술-
으능정이 부루어리는 술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문화를 만들려고 한다. 직접 만드는 술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직접 찾아오시는 손님에겐 새로운 술을 선보이며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고 했고, 나아가 본인들을 기점으로 양조 골목이 형성되어 도시재생의 도화선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대전은 우리나라 근대 와인 양산의 시초로 알려졌다. 일본 산토리는 한국의 농어촌개발공사와 합작해 1968년에 월평동에 포도주 공장을 세우고 1969년 동구 산내 인근의 포도를 이용해 최초로 선리 포트와인을 만들었다. 현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대전의 상징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술을 앞에 두고 김지훈 양조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니, 내일의 대전이 호박빛으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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