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섬유 역사를 체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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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섬유 역사를 체험하다

by 토마토쥔장 2021.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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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섬유 역사를 체험하다

 

 

글·사진 염주희

 

유구에 가면 역사가 보인다.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서 섬유의 역사는 80년이다. 그동안 두 번의 큰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유구에 정착하면서, 고향에서 배운 직물 기술을 전파하였다. 왜 유구에 피난민이 모여들었을까? 그 이유는 이 고장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논밭이 있으며, 유구천이 흐른다는 지형적 특징 때문이다. 작자미상으로 알려진 조선 시대 책 <정감록>에는 전쟁 시 피난하기 좋은 지역 열 곳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 십승지지(十勝之地)에 지금의 유구읍도 포함했다.

 

 

 

유구에 가면 먹고살 수 있다.

베틀에 앉아 날실과 씨실을 이용해 천을 짜던 유구 직조의 시작이 전쟁에 몸을 피한 실향민에 의한 것이었다면, 섬유산업이 흥하던 시기에는 전국에서 사람이 모여들었다.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이었던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에는 유구에 가면 일을 할 수 있다라 는 이야기가 돌았기에, 젊은이들이 취직을 위해 유구를 찾았다. 직조기 하나를 가지고 세 명이 교대로 일해서 24시간 동안 섬유를 만들기도 했다. 천을 짜는 일은 주로 여성의 영역이어서 당시 유구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았다고 한다.

 

1980년까지 국내 직물 산업을 이끌었던 유구는 이후 섬유제조업이 해외로 이주하는 시기와 맞물려 쇠퇴하기 시작했다. 직물산업 호황기에는 유구에 150개 이상의 섬유공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규모가 1/4로 축소되었다. 이러한 유구의 직물산업 변천사와 특징을 알리고자 2017년 유구섬유역사전시관을 열었다.

 

 

 

유구섬유역사전시관

자동차로 유구읍 시장길 50에 위치한 유구섬유역사전시관을 향하면 제일 먼저 섬유공장 벽면을 따라 그려진 벽화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수묵화처럼 담백하게 그린 유구의 옛 모습이다. 기계 앞에서 실을 손질하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 기술자, 한가득 쌓여있는 실, 유구의 상징인 비둘기가 베틀 앞에 앉아있는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차도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인도에서 바라보면 벽화를 온전히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알록달록 화려하게 치장한 벽화가 아니라 작업 중인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사진 같은 그림이다.

 

곧이어 만나는 유구 전통시장에 주차를 하고 전시관까지 걸어간다. 이번엔 타일을 하나하나 붙여 만든 벽화가 펼쳐진다. 유구를 보존하고 알리고자 하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몇 해 전부터 추진해온 사업의 결실이다.

 

유구섬유역사전시관은 겸손하다. 입장료가 없고 그 이름도 박물관이 아닌 전시관이다. 단층으로 지은 벽돌 건물은 깔끔하고 단정하다. 상설전시와 특별전시가 있고, 현재는 섬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형, 실제기구, 영상을 통해 상설전시한다.

 

매년 6월에는 유구읍 전체가 하나가 되어 섬유 축제를 여는데, 이에 맞물려 전시관에도 많은 인파가 몰린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잠정 중단되었지만, 미니 베틀로 소품을 만드는 초등학교 체험 활동과 인근 섬유산업체와 연구소를 방문하는 중학교 자유학기제 연계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꾸리깍지, 작태기, 자카드 직기

전시실 내부에는 직물과 관련된 다양한 도구를 전시한다. 꾸리깍지는 달랭이라고도 하는데 고장 난 자전거 바퀴를 업사이클링해서 만든 실 감는 기계다. 섬유 공장을 하는 집마다 가지고 있던 필수품이었다. 작태기는 감겨있는 실을 얼레에 옮겨 감는 기계로 1980년대 직물공장에서는 여기에 모터를 달아서 사용했다. 자카드 직기는 다양한 무늬의 형태로 직물을 짜내는 기구로 자카드(Jacquard)라는 프랑스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기계는 종이로 된 펀치카드를 사용하는데, 화려하고 섬세한 문양을 표현할 수 있어 자카드로 짠 직물을 직물의 꽃이라고 부른다. 펀치카드만 보았을 때는 어떤 무늬의 천이 만들어질지 상상할 수 없다. 구멍이 많은 것은 정교한 무늬가, 구멍이 적은 것은 성긴 무늬가 그려질 것이라고 가늠할 수 있는 정도다. 유구에는 자카드 직물 특화생산지역답게 섬유역사전시관외에도 한국자카드섬유연구소와 자카드섬유마케팅센터가 있다.

 

전시관의 규모는 아담하지만, 곳곳에서 유구 섬유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전시품 중에는 현재도 영업 중인 황금직물에서 50여 년 전 사용하던 취업규칙서 원본이나, 유구주민인 기증자 이름이 적혀있는 기구까지 있어서 섬유산업을 토대로 성장해온 유구의 역사를 가늠할수 있다.

 

 

섬유를 통해 역사를 보다.

섬유산업 불황과 IMF를 겪으며 침체되었던 유구의 직조산업은 생산 품목을 고급화하고 수출의 길을 여는 등 재도약을 꾀하고 있다. 현재는 한복, 스카프, 넥타이 등에 쓰이는 패션 원단뿐만 아니라, 커튼, 가구 커버 등의 인테리어 원단과 온열매트, 모기장 같은 산업용 원단까지 생산한다. 전쟁과 피난, 의복의 현대화와 노동력의 변천사, 소비자 취향의 변화까지를 담은 유구섬유역사전시관은 섬유산업의 변천사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따뜻한 봄날 유구 전통시장에서 식사를 하고 벽화마을을 거닐다가 유구섬유역사전시관을 둘러보는 반나절 나들이를 추천한다. 한 고장의 직물 산업을 보존하여 역사적 보고로 재탄생시킨 사람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2021년 3월 월간토마토 기사 中]

 

 

홈페이지 www.againyugu.kr  

 

유구섬유역사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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