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기록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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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마을을 기록하는 사람들

by 토마토쥔장 202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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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기록하는 사람들

글·사진 박미가

 

관저마을역사관

 

마을박물관 이야기

전통적으로 박물관은 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의 교육과 연구를 위한 이야기를 담는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 박물관에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전시된다면 어떨까. 선사 시대 고고학 유물 전시가 아닌 가족과 이웃의 삶이, 내 마을의 이야기가 담긴 박물관이라면 말이다. 누구나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간직하고 싶은 기억들. 그것들이 빛바랜 시간의 냄새가 되어 박물관에 담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박물관은 고고학 박물관과는 조금 다르다. 오래되어 버려질 만한 손가방과 낡은 재봉틀 기계도 마을박물관에서는 소중한 전시품이다. 이곳은 마을의 지난 역사와 주민의 이야기가 한 곳에 고스란히 담긴 사랑방이자 마을 주민이 직접 물건을 기증하고 운영하는 ‘메모리 존’과 같은 공간이다.

 

 

‘마을‘은 지역사회를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공동체다. 마을 주민은 특수한 문화적 정체성과 마을의 발전을 위한 목표 의식을 공유한다. 급속한 도시화와 장소의 보편화는 이러한 마을공동체의 개념을 점차 사라지게 했는데, 마을박물관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 지역 살리기 운동과 마을 재생 사업 등이 추진되면서 등장했다. 이후 마을박물관은 사라져 가는 지역 정체성을 재생산하고 보존하는 특별한 장소로써 활용되기 시작했다. 주민은 마을 역사를 직접 발굴하고, 자발적으로 박물관 운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과 문화 정체성을 재확립할 수 있다. 또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문화 체험 공간의 역할도 한다.

 

 

지나간 시간, 공간이 되다.

관저마을역사관은 지난해 12월 8일 개관한 대전 최초 마을역사박물관이다. 이곳은 지역 주민이 직접 발굴하고 수집하거나 자신들의 물건을 기증하여 전시한다. 현재 22명의 마을 주민 자원봉사자가 하루에 4명씩 짝을 지어 큐레이터 역할도 수행한다. 관저마을역사관은 사회적 기업 <모두의책협동조합>이 기획하면서 시작되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보존과 기록의 가치를 책이 아닌 공간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모두의책협동조합> 김진호 대표의 이야기다.

 

관저마을역사관은 이러한 김진호 대표의 생각과 초대 관장인 정재홍 씨가 무료로 제공한 공간이 만나 탄생했다.

 

평일 오후 3시 관저마을역사관 전면 유리창에 따뜻한 봄 햇살이 널어져 들어왔다. 박물관보다는 새로 오픈한 모던 카페 건물의 분위기다. 열린 유리문을 지나 작은 단층 공간으로 들어서면 그제야 그곳이 지난 세월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임을 알 수 있다. 세련된 거리의 모던 카페 건물과 오래된 유물의 조화는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전시관은 입구에 서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모든 공간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다. 하지만 문명의 거대한 역사를 전시해 놓은 박물관과 비교하자면 한 마을의 역사가 들어 있는 이 공간은 결코 작은 크기가 아니다. 관저 마을 주민의 지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농기계와 재봉틀, 타자기, 각종 잡동사니가 바닥 가장자리와 중앙의 단상 위를 장식했다. 마치 남의 집 사랑방을 훔쳐보는 것 같았다. 각각의 전시품이 모두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특하며 재치 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물관 안쪽에서 정재홍 초대 관장을 만날 수 있었다. 정재홍 관장은 마을 토박이 주민이자 대부분의 박물관 전시품을 제공한 기증자이다. 처음 관저마을역사관을 만들고 자리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재홍 관장이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기는 했지만, 전시할 자료를 구하는 것이 문제였다. 관저동은 지난 수십 년간 빠르게 변화했고, 더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높은 아파트와 상가가 줄지어 있는 이런 곳에 역사박물관이 만들어질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저는 평소에 옛것을 안 버리는 습관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받은 모든 학교 자료를 모아뒀었죠. 1998년 학업 차 방문한 캐나다에서 본 마을박물관이 인상 깊었어요. 마을의 역사와 기록물을 특별하게 여기고 보존하고 있었죠. 마을의 역사를 보존하고 기억하는 것이 참 좋았어요. 그 캐나다 마을박물관에서 자원봉사 활동도 했죠. 한국에 돌아와 그런 것들에 관한 생각이 깊어지던 차, <모두의책협동조합> 김진호 대표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김진호 대표의 마을박물관에 대한 계획을 듣고 제가 사용하던 건물의 1층을 박물관 공간으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그 이후에 전시할 유물을 구해야 했는데, 마을 주민에게 기증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마을 신문에 공모도 해 보았지만, 옛것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죠. 마침 제가 가지고 있던 옛 물건과 사진, 기록을 전시하면 좋을 것 같아 전시하게 되었어요. 제 아내도 가지고 있는 것이 많아서 저와 아내가 기증한 물건을 많이 가져다 박물관을 채우게 되었습니다.”

 

정재홍 초대관장(우), 그의 아내 김순진 씨(좌)

 

마을을 기록하고 전승한다는 것

<모두의책협동조합>은 지난 2015년 설립한 소셜리싱 출판사이다. 이곳 대표 김진호 대표는 평소 마을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매력적이었다. 관저마을역사관의 설립은 이러한 김진호 씨의 작은 관심이 정재홍 관장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작은 것에 관심이 가서요. 소소한 것들이요. 처음에는 마을 사람 자서전을 만들다가 마을 이야기를 수집해서 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항상 책은 한번 읽으면 끝이더라고요. 이야기가 어딘가 한곳에 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박물관이라고 하면 뭔가 화려하고 대단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처음에는 생각했는데 다른 지역 마을박물관을 몇 군데 다녀 보니 소소하더라고요. 한번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박물관을 만들 마땅한 공간이 없어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차에 지금의 정재홍 관장님을 만나게 되었죠. 제가 처음에 의도했던 모든 것이 박물관에 반영되지는 않았어요.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아요. 저는 남은 몫을 앞으로 마을 주민과 함께 채워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관저동 주민도 아닌데 왜 관저동을 선택한 건지 궁금했다.

 

“관저마을신문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저는 관저동 주민도 아닌데 관저동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이곳 신도시에서 건질 것도 없고 자료 찾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제가 제일 잘 아는 동네가 관저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동네이기도 했고요”

우리에게는 기억이 아닌 기록으로 남겨야 할 중요한 것들이 있다. 가령 고대 유물과 같이 많은 사람이 알고 싶어하고 이 시대에 배움이 되는 것들 말이다. 이러한 것들이 책이나 박물관에 보존되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을박물관’은 조금 다르다. 자신이 마을 주민이거나 아는 사람의 (그것도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관심을 가지기가 힘든 기록이다. 더구나 특정 지역 유물 전시라는 하나의 콘텐츠만으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기는 어렵다. 궁금해졌다. 지나간 마을에 관한 이야기가 공간으로 남겨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지역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 관저마을의 역사와 현재의 보존, 그리고 지역 사회의 미래상을 함께 바라보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또한 동시에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해요. 단순히 박물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속해서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요. 지금은 역사관 큐레이터 봉사자분들의 교육 등 기초적인 작업이 더 필요하기도 하고요. 마을 주민의 지속적인 자료 수집과 참여가 중요해요. 그런 다음에는 지역 주민과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과거의 유물 전시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과 같은 특별한 프로그램 말이에요.”

 

 

미래에 띄울 구름을 만드는 일

모든 장소는 역사가 있고 모든 인간은 과거가 있다. 하지만 아무나 그것을 기록하고 보존하지는 못한다. 지워지는 시간의 흔적을 아쉬워하는 사람. 과거의 물방울과 같이 작은 조각을 미래에 띄울 구름의 한 조각으로 여기는 사람. 과거를 보존하고 발굴하여 후대에 남기는 것은 이런 사람일 것이다. 구름이 어떤 형태이든지는 상관없다. 먹구름은 우리에게 비 소식을 알려주고 뭉게구름은 맑고 깨끗한 여름날이 올 것을 알게 해준다. 이런 사람이 있기에 지나가면 그만인 우리의 과거와 마을의 역사가 하나의 공간이 되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구름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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