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립과 자유로운 삶, 과연 가능할까 - 프리터족으로 산다는 것
본문 바로가기
토마토 관심

경제적 자립과 자유로운 삶, 과연 가능할까 - 프리터족으로 산다는 것

by 토마토쥔장 2021. 6. 11.
728x90
반응형

경제적 자립과 자유로운 삶, 과연 가능할까

프리터족으로 산다는 것

 이주연

 

출처 : pixabay

 

<YES, 프리터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는 일도 많았고, 업무적 부담과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일 말고 다른 생활이 없었죠. 새로운 걸 해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어요.”

 

지난 2017년, 김미영(33세·가명) 씨는 7년 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업무적인 부담과 스트레스가 퇴사의 결정적 이유였다.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하며 새로운 걸 해 보고 싶어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후 미영 씨가 세운 규칙이 딱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취직하지 않는 것이다. 일을 많이 하지 않는 것 또한 사절이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는 절대 일하지 않았고, 누군가 요청할 때만 일을 해 돈을 벌었다. 그렇다 보니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건 둘째 치고 지난 몇 개월은 아예 수입이 없었다. 그러니 저축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지출을 아예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는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최소한의 지출만 했어요. 옷을 사지 않는 건 당연하고, 책도 동네 근처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죠. 최근에 들어 온 일이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거라 오랜만에 옷을 샀어요. 지금은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 도서관에도 잘 못 가고 있지만, 원래 주기적으로 신간 도서 신청도 했을 만큼 애용했죠. 식비도 마찬가지로 거의 집에서 해결하면서 최대한으로 줄였어요.”

 

미영 씨는 줄일 수 있는 것들을 최대로 줄이고, 배움에 대한 지출 폭은 넓혔다. 바쁜 직장 생활로 인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서 했다. 판화 수업을 듣기도 했고,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가 글쓰기 강연을 듣는다. 퇴사 이후에는 대부분 무언가를 배우거나 소설을 쓰고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바쁘게 지낼 수 있었다.

 

비록 일정한 수입도 없고 남들이 보기에 불안정하고 비정상적인 생활이지만 미영 씨는 자신의 생활에 전반적으로 만족한다. 물론 지금은 자신이 세운 원칙과 달리 일이 많아 불만족스럽다고 한다.

 

“지금은 일이 많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내 시간이 많아진 점은 좋아요. 반면에 단점도 많죠. 클라이언트에 맞춰 일해야 하기 때문에 쉬는 날이 자유롭지 않고,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나를 대신해 줄 사람도 없어요. 온전히 나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도 취업할 생각은 없어요. 적은 돈이라도 시간제 일이 주어진다면 할 생각은 있지만요.”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사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나 하나만 지탱할 경우엔 이러한 삶이 지속가능하겠지만, 결혼을 한다거나, 혹시라도 큰 지출이 필요한 문제가 생기거나 또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다시 취직을 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자신에게 시간을 쏟고 도전하며 소설가가 되기 위한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보수적인 부모님 아래서 자라왔기에 항상 그 틀 안에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직업이 없으면 큰일 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또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막상 어떻게 되지 않았죠. 지금은 그냥 이런 생활이 좋아요. 내 주도성도 많이 생겼고, 꿈도 있고, 돈이야 내가 언제든 벌려고 하면 벌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러지 않을 뿐이죠. 불안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은 그 크기가 덜하죠. 다른 것에 도전하고 있다는 생각과 내가 잘 하면 언제든 나에게 다른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 것 같아요. 그저 소설가로서 글을 쓸 수 있는 것,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 열정을 유지하는 것이 현재 목표예요.”

 


 

<NOT BAD, 프리터족으로 살아갈 예정입니다>

강은구(28세) 씨는 현재 다니는 직장이 첫 직장이다. 지역에서 활발히 청년활동을 하며 지역 문제, 청년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두다가 지금은 대전광역시가 지원하는 공간인 청춘두두두에서 일한다. 은구 씨는 지금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도를 200%라 답할 정도로 직장생활에 만족한다.

 

“지금 하는 일은 일종에 사명감 같은 거예요. 원래 취직을 목표로 했던 것도 아니고, 기회가 생겨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전에 활동을 하면서 당시 제가 필요로 했던 것들을 이곳에서 일하며 다른 청년에게 지원해 줄 수 있어 좋고,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껴요.”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온 청년들을 위해 지원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는 직장생활에 보람을 느낀다. 그간 자신이 해 왔고 관심 가져 왔던 일이기에 그 만족도는 상당하다. 하지만 은구 씨는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더 다양한 일을 하고 싶어 퇴사를 결심했다. 아무래도 조직 안에서는 자신이 꿈꾸는 일을 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많은 돈이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굳이 월급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프리터족 전환을 생각 중이다.

 

“이미 취업 이전에 프리랜서로 살면서 경험했던 일이기에 프리터족으로 사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죠.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아요. 그래서 이전에도 취업하지 않았던 거고요. 여자친구도 과거에 몇 번 취업했던 적이 있는데, 문서 작성, 회계 같은 전반적인 사무 스킬을 배우기 위함이었어요. 저희 둘 다 취업 자체가 목표였다기보다는 각자의 성장과 가치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죠.”

 

은구 씨는 현재 결혼을 준비 중이다. 올해까지만 직장을 다닌 뒤 다시 프리랜서로 활동할 예정이다. 그의 여자친구 역시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더 경제적 부담이 크겠지만, 불필요한 지출을 줄인다면 가능할 거라는 계산을 끝냈기에 나름 자신도 있다.

 

“저희 둘 다 평소 지출이 크지 않아요. 옷도 몇 벌을 가지고 돌려 입고, 데이트도 주로 산책을 하거나 대화 나누는 게 전부예요. 맛있는 거 덜 먹고, 소소한 것들은 작은 텃밭을 가꿔 해결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월평동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주민 분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어 프리터족으로서의 삶에 희망을 본 것도 있어요. 서로 챙기고 주고받는 문화가 깊이 깔려 있기 때문에 마을 안에서 함께 더불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NO, 사회적 안정이 필요합니다>

이하늘(25세) 씨는 올해 6월, 한 공공기관에 6개월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예술을 전공한 하늘 씨는 전공을 살려 취업하고 싶은 마음에 졸업을 앞둔 지난해 12월 말부터 취업의 문을 두드렸다. 미술관, 박물관, 문화재단 등 총 여덟 군데에 지원했지만 그 중 다섯 군데만 연락이 와 면접을 봤다. 하지만 그나마도 ‘다음 기회에’라는 답변을 들었다.

 

취업이 잘 되지 않자, 고향으로 내려가 스펙을 쌓기 위해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했다. 부모님과 함께 지냈기에 별다른 생활비는 필요 없었지만, 최소한 용돈은 벌기위해 취업 준비를 하며 화장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최저임금 8,350원을 받으며 3일 4시간씩 총 일주일에 12시간만 일하고, 남은 시간은 취업 준비를 하는 데 썼다. 그렇게 받은 월급은 평균 40만 원 안팎으로, 종종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 밥 한 끼 하는 정도의 생활은 가능한 수준이었다. 수입이 많지 않으니, 타지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급이 오르긴 했지만 그만큼 인건비가 부담스러웠는지 근무시간이 짧았어요.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도 아르바이트생 한 명, 매니저 한 명이 끝이었어요. 물론 동네 매장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주로 매니저 없이 저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아 버거웠죠. 하지만 아르바이트 자리도 많이 없어, 어렵게 구한 자리였기에 힘들어도 다시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그냥 했던 거죠. 그때 아르바이트만 하며 살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울 거라 생각한 하늘 씨는 취업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근무시간이 긴 아르바이트를 구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고,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하늘 씨에게 아르바이트는 취직하기 전,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을 정도의 벌이를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원래는 지방 쪽으로만 지원서를 넣었는데 너무 취직이 안 되니까, 서울로 눈을 돌릴까도 잠시 생각했어요. 서울에서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고민해 볼 수밖에 없었죠. 대학 동기 중에 제가 가장 늦게 취업했는데, 그래서 더 조바심이 났어요. 부모님도 자주 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압력은 있었죠. 제 전공이 취직이 잘 안 되는 것 같으니 다른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죠.”

 

취업 준비를 하며 종종 친구들을 만났다. 그때마다 하늘 씨는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친구들과 자신의 벌이가 다르니 씀씀이도 달랐고, 사회초년생들에게 있어 가장 큰 대화 주제는 회사 이야기였다. 그 안에서 하늘 씨는 공통된 주제가 없어, 빨리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고정적인 수입이 있고, 안정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취업을 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소속감 때문이었어요.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 봤지만, 그 일이 저에게 소속감을 주지는 않았죠. 흔히 애사심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게 없었어요. 그저 주어진 시간 안에서 일하고 정해진 돈을 받는, 수많은 프랜차이즈를 가진 대기업 안에 작은 부품 같은 느낌이었죠.”

 

비록 6개월 계약직이지만, 내 뒤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 소속감을 느끼는 지금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때보다 훨씬 만족스럽다고 하늘 씨는 말한다. 학교 졸업과 동시에 울타리 밖으로 떠밀린 기분에 불안했지만, 직장을 다니며 다시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 온 것 같아 그간의 조바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프리터족, 알바도 직업인가요>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1991년부터 경기 침체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잃어버린 시간은 또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바로 ‘프리터족’이다. 프리(Free)와 아르바이트(Arbeiter)가 합쳐진 단어로,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여전히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처음 프리터족은 자유로움 속에서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사람을 말했지만, 경기침체와 청년 실업 문제가 이어지면서 취직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의미를 퇴색한 프리터족은 점점 늘어났고, 이 현상은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에도 나타났다. 당시 일본과 유사한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어쩌면 우리나라 역시 ‘잃어버린 10년’의 수순을 밟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르바이트 포털 사이트 알바몬이 올해 기준 아르바이트 경험자 1,34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 중 40%가 스스로를 프리터족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아르바이트 경험자 6,926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보다 11.4%p 상승했다. 또한 자신을 프리터족이라 답한 응답자 중 42.1%는 본인이 원해서 프리터족으로 생활하는 ‘자발적 프리터족’이며,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프리터족으로 지내는 ‘비자발적 프리터족’은 57.9%로 나타났다.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 취업난으로 인해 ‘아르바이트라도 하자’라는 생각을 가진 비자발적 프리터족이 더 많은 셈이다.

 

프리터족으로 생활하는 이유(복수응답)로는 취업 전까지 생계비 마련(67.3%)’이 가장 많았다. 또한 ‘정규직 취업 포기(29.7%)’ ‘조직에 얽매이기 싫음(23.9%)’ ‘매일 출근ㆍ하루 8시간 근무 불가능(23.7%)’ ‘취업 불필요(7.6%)’ 등의 이유도 있었다.

 

무엇보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프리터족으로 살아가는 이들 중 56.6%로 과반수 이상이 ‘현재 프리터족 생활에 만족한다’라는 답변을 내놨다. 이유는 ‘개인적 시간이 많기 때문’이 55.4%로 가장 높았다. 이밖에도 ‘다양한 일을 해 볼 수 있다(39.3%)’, ‘일을 하고 싶을 때만 할 수 있다(28.2%)’, ‘알바 일(직무)이 재미있다(26.2%)’, ‘알바 수입에 만족한다(21.6%)’ 순으로 나타났다.

 

해를 거듭할수록 프리터족은 유행처럼 번진 일시적 현상이 아닌, 일하며 살아가는 하나의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앞두고 일부 사람들은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아르바이트만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사회·경제 영역 전문가들은 프리터족의 양산이 고용시장 뿐만 아니라 경제에 큰 악영향을 끼칠 거라며 우려를 내비친다. 또한 누군가는 직업과 직장을 갖지 않았다고 해서 프리터족을 그저 취준생, 놀고먹는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알바도 직업이다’라고 말하는 지금, 프리터족을 단순히 취준생, 백수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프리터족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프리터족과 전환을 계획 중인 사람, 프리터족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 다양한 이들의 입을 빌려 봤다. 과연 우리는 프리터족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2019년도 149호 월간 토마토 中]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