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보아야 더 예쁘다 - 빛을 담은 한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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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밤에 보아야 더 예쁘다 - 빛을 담은 한국화

by 토마토쥔장 2021.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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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보아야 더 예쁘다 - 빛을 담은 한국화

염주희 사진 민보라 제공

<담(淡)한 매력에 사로잡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2월 14일까지 청년작가전을 연다. <넥스트코드 2020>에서 작가 여섯 명의 작품을 관람하다 보면, 전시실 안쪽에서 아늑한 공간을 만난다. 유럽의 수도원에 온 듯한 어둑한 직사각의 방, 그 공가을 채운 노란빛, 가운데에 놓인 나무 벤치가 보는 이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킨다. 의자에 앉아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관객들은 화폭에 담긴 야경에 물들어 밤의 시간으로 이동한다. 민보라 작가의 작품은 조명이 필요없다. 한지에 먹으로 그린 작품 밑에 LED를 설치해 그 자체가 빛을 발한다.

 

 "오후 3~4시쯤 집에 햇살이 들어올 때 보면, 빛이 투명한 게 아니라 주광빛의 따뜻한 색채를 머금고 있잖아요.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동양화에서 쓰는 한지는 투명하니까 빛을 결합했을 때 특별하게 쓰일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처음 LED를 사용했을 때는 서양화과 교수님께 묻고 서울 을지로에 있는 조명, 전자파 거리를 헤매면서 발로 뛰어다녔어요."

 

 먹과 LED를 접목한 표현법은 민보라 작가가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전시 때부터 선보인 방식이다. 작가로서는 이른 나이에 표현 기법과 작업 방식에 대한 자기화를 달성한 경우다. 

 

"먹이라는 게 고리타분하다, 다루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동양화과에서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먹이 가진 멋을 알게 되었어요. 굉장히 담(淡)하다고 할까요? 먹을 사용해서 종이 위에 얇고 맑은 표현을 할 수 있고, 그런 옅은 것들이 여러 겹 쌓여 형성되는 작품만의 매력이 있어요.

<밤에 보아야 더 예쁘다>

 민 작가에게 LED의 불을 끌 수 있는지 물었다.

"보통 낮에는 불을 끄고 밤에는 켜 두어요. 밤에 보면 더 예쁘거든요. 밤에 굳이 등을 켜지 않아도 충분히 밝을 정도예요. 가정에서 인테리어 용도로 주광 LED로 분위기를 내기도 하잖아요? 제 작품의 빛이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순수회화이지만 LED와 결합한 장르인 만큼 실용성이나 내구성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계속된다. 그림에는 전선 코드가 달려 있는데, 콘센트에 끼웠다 뺐다 하는 부분이 불편하여 최근 작품에는 전원을 차단할 수 있는 스위치를 만들었다. 설명을 듣고 작품을 다시 살펴보니 하단부에 빨간 버튼이 숨어 있다. 작품을 소장한 사람들이 수리 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는지 궁금해진다.

 

 "아직은 없었는데 LED라는 게 자체 수명이 있으니까 그럴 일이 생기겠지요? 등을 교체하려면 운송비와 재료비가 드는데, 제 작품에 빛은 필수적인 요소니까 유지 보수를 하면서 작업을 진행하는 게 맞다고 봐요. 설치할 때 LED가 액자 속 어느 위치에 놓이는지 그 높낮이 조절에 따라서 빛이 진해지거나 연해지거나 하는 거라서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이 손을 대야지요. 운송비와 재료비를 받고 제가 다시 해 드리는 게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요. 나중에 전업 작가로 자리를 잡아서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LED 작업은 어시스턴트를 두고 일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민보라 작가는 작품에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태양 전지를 이용한 적도 있고, 향후 작품에는 전기가 아닌 햇빛을 그림 속으로 들여올 수 있도록 새로운 방식을 구상 중이다. 작품 소장자의 편리함을 추구하고, 재료의 내구성을 따져 보고, 전기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기까지 민 작가의 관심 영역은 다양하다. 이를 반영한 그녀의 작품은 현재 진행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시 전경

 

 <밤, 풍경, 빛, 세월>

 민 작가의 작품은 활동 초창기부터 아트페어에서 꾸준히 팔렸고, 지방자치단체 의뢰로 대형 작품 제작이 이루어지기도 하며 상업성과 희소성을 갖춘 작가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먹과 LED의 만남이라는 독창적인 표현법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작가 자신에게는 화폭에 어떤 내용을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탐색의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 답을 찾고자 그녀는 2016년 독일로 떠났다.

 

 "내가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뭘까? 독일에서 혼자 작업하며 많이 걷고, 자연과 시간을 보냈어요. 제게 영감을 준 노란빛이 가득한 리스본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지요. 모든 면에서 해 볼 수 있는 만큼 해 봐야지 했어요. 정말로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찾으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지요. 그곳에서 제 작업의 이야기를 찾긴 찾았어요."

<하늘보다 세월, 그리고 노랑빛> 앞에 선 민보라 작가

 민보라의 작품에는 밤 풍경과 빛이 있다. 도시의 모습이나 건물의 외벽 같은 작가의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 세월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시각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2018년 작품 소재와 방향성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독일에서 돌아온 그녀는 다시 출발선에 섰다. 귀국 이후 개인전, 갤러리 초대전을 열었고, 미술관 전시에 참여했으며, GS칼텍스 예울마루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창작활동에 필요한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2020년에는 작품 <청량한 호스(Howth)길 위에서>가 정부 미술은행에 소장되었다.

정부 미술은행이 소장 중인 <청량한 호스 (Howth) 길 위에서>

 

 청년작가 민보라는 젊은 미술가들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작업에 필요한 비용을 준비하기까지 짊어져야 할 무게가 과중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 길은,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해 보는 방법, 하나뿐인 것 같다는 말도 하였다. <넥스트코드 2020: 내일의 세계를 마주하다>에서 만난 민보라 작가는 자신만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빛나는 작가였다.

 

[2021년 2월호 월간토마토 기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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