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모일 것이다 글은 계속 이어지고, 책은 쌓일 것이다 그렇게 지켜 나갈 것이다
본문 바로가기
토마토 관심

우리는 다시 모일 것이다 글은 계속 이어지고, 책은 쌓일 것이다 그렇게 지켜 나갈 것이다

by 토마토쥔장 2021. 12. 15.
728x90
반응형

우리는 다시 모일 것이다

글은 계속 이어지고, 책은 쌓일 것이다

그렇게 지켜 나갈 것이다

특집

2021 춘천 한국지역도서전


·사진 황훈주

월간토마토 vol. 173.


한국지역도서전. 이번엔 춘천에서 

“춘천은 어쩌면 느낌을 받으러 오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문화의 발자취, 사람이 만들어 온 숨결, 이런 것들이 이곳 춘천에 있습니다." 

2021 춘천 한국지역도서전 개막식, 이재수 춘천 시장의 인사말이다. 춘천 한국지역도서전 개막식이 열린 공지천 조각공원엔 청오 차상찬 선생 동상이 있다. 1920년 창간한 《개벽》의 창간 동인으로 활동했고 《신여성》, 《학생》, 《별건곤》 등 10여 종의 잡지를 발행했다. 김유정 소설가 또한 고향이 춘천이다. 춘천 시장이 말한 ‘느낌’이란 그런 것이다. 문학 DNA가 살아 있는 곳. 

유진규 씨 마임공연

개막식 축하 공연으론 1세대 마임이스트이자 1989년부터 2013년까지 25년간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을 맡았던 유진규 씨 마임 공연이 있었다. 하얀 방역복을 입고 나타난 그는 청소하는 시늉을 한다. 즐겁게 청소하는 그에게 걸려 오는 전화 한 통. 하지만 무슨 일인지 그는 전화를 받을 수도, 전화를 끌 수도 없다. 청소기 소음과 전화벨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곧 소음으로 바뀐다. 그는 청소기를 끌 수도, 전화를 받을 수도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 여러 상황 속에서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다. 그의 앞에 떨어진 책 한 권. 그는 그 책을 들여다보고, 책을 읽고, 마스크를 벗고, 방역복을 벗는다. 소음은 어느새 줄어들고, 오직 책 읽는 소리만 들린다. 그렇게 마임은 끝났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19.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혼란 속에도 우리는 이야기를 계속 써왔고, 그 이야기는 누군가에 닿아 조용한 위로를 주었다. 지금 이 시대, 책의 가치를 몸으로 표현한 그의 마임이 좋았다.

한국지역도서전 개막식

개막식은 축하 발표와 천인독자상 수상 그리고 춘천 선언문과 차기 도시 선포식 순으로 이어졌다. 차기 한국지역도서전은 광주에서 열린다. 차기 도시 선포식 이후 광주 이임택 동구청장은 출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이번 개최한 한국지역도서전을 잘 이어받겠다 했다. 

 

 

 

 

천인독자상 수상. 지역출판의 의미 

지역출판인을 위한 천인독자상은 1천 명의 독자가 1만 원씩 후원해 시상하는 의미 있는 상이다. 한국지역출판연대에서 매년 우수한 지역출판 책을 선정하고 있다. 올해 천인독자상은 대상엔 제주 한그루출판사의 『제주 아름다움 너머』를, 공로상엔 영남대학교 출판부의 『음악창의도시 대구』와 수원 더페이퍼의 『이제 안녕, 도룡마을』을 선정했다.

한그루출판사 김영훈 대표는 “제주는 지역과 공간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관심의 흔적이 때론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라며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 군 복무 외엔 떠나 본 적 없는 고향입니다. 그 고향의 풍경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자주 봅니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넘어 제주인의 삶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상 소감을 밝혔다. 저자 강정효 작가도 “제주에 대한 책 80~90%가 요즘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만든 책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본 모습이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왜곡된 이야기를 사실인 양 전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관광과 소비의 대상으로 제주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제주도 안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썼습니다”라며 집필 의도를 발표했다. 

『음악창의도시 대구』는 대구 음악에 관한 이야기와 예술인 인터뷰가 담겼다. 한 지역의 음악사에 대해 정리한 것이 인상 깊었다. 이번에 대구 음악사에 대한 연구 내용은 대부분 새롭게 연구한 것이라 한다. 『이제 안녕, 도룡마을』은 2018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500년간 이어져 온 도룡마을이 2018년에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도룡마을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책이다. 

지역에 사는 사람이 그 지역에 관해 쓴 글은 남다르다. 외지인은 공간을 어떻게 소비하여 되팔지를 고민하지만, 거주민은 지역이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콘텐츠는 소비자에게 대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관점을 제시한다. 지역에서 출판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아직도 김영훈 대표의 마지막 대상 소감이 기억에 남는다. 

“제주는 풍경이 아니라 집입니다.” 

 

 

 

 

지역에서 출판으로

먹고살 있나

개막식 이후 춘천세종호텔로 장소를 이동해 지역출판인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는 백종운 잡지협회장, 이번 한국지역도서전 기념 책 『지역출판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저자 김주완 기자, 부길만 교수, 김상진 용학도서관장 순으로 발표가 이어졌다. 

백종훈 잡지협회장

백종운 잡지협회장은 “이전에 프랑크푸르크 도서전에도 다녀왔지만, 그때보다 춘천 한국지역도서전이 더 감흥이 깊고 오기 전부터 설렜다”라고 하며 “지역에서 지역적 기반을 통해 역사를 담아낼 때 경쟁력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참여를 계기로 잡지협회장이 지역 도서, 지역 잡지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하였다. 

김주완 기자

김주완 기자는 이번 『지역출판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를 펴기까지 전국 16개 출판사를 방문했다. 그는 “책을 쓰기 전에 먼저 전국 지역출판에서 나온 책을 받아 보며 과연 이 출판사들은 어떻게 먹고살고 있을지 개인적으로도 궁금했다. 이 책을 쓰면서 궁금증을 해결할 기회였고, 한국지역출판연대에서 기회를 줘 영광이었다”며 이와 함께 취재에 응해준 16개 출판사에 감사 인사를 보냈다. 그는 어떻게 지역출판으로 먹고살 수 있는지 각 출판사에 물었고 그들이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생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출판이 어렵다 해도 뜻이 있다면 삶은 계속된다. 

부길만 교수

부길만 교수는 현재 지역문화 정책의 현실을 말하며 지역출판인이 어디로 나가면 좋을지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제 선진국이라 하지만 아직 교육 핵심인 콘텐츠에 약하다. 지역에서 지역 문화를 활성화해야 한다”라며 말을 시작한 그는 ‘지역 문화 진흥 조례’가 있음을 말했다. 이제 각 지역은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조례를 만들고 5년마다 기획, 실행해야 하는 시대라며 지역 문화를 본격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는 시대임을 밝혔다. 이와 함께 현재 지역 문화 정책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밝혔다. “현재 문체부는 ‘제2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을 통해 2024년에는 지역 문화 재정을 전체의 1.6%(3조7000억 원)에서 1.8%(5조9000억 원)로 증가시키겠다고 했다. 지역 문화를 발전시킨다면서 5년 동안 고작 0.2%를 높인다는 것이 지금 정책의 현실이다. 이제는 지역 문화인들이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라며 지역 문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정치인들에게 지역 문화 진흥을 위해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확인하며 정책으로 지역 문화 생산을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작년 한국지역도서전에서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김상진 용학도서관장은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 행보가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며 작년 대구에서 한국지역도서전을 열 때 느낀 생각들을 풀어냈다. “한국지역출판연대가 전국 조직이니 각 지역 아젠다를 발굴하고 유권자인 시민과 공유하며 지역출판 문화 산업을 살리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 지역 가치를 살리자는 취지는 충분히 공개적으로 질의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현 상황 속에서 지역출판 문화 산업을 위한 정책 실현을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시민과 연대하며 지역출판을 위한 정책 마련 필요성을 공론화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책은 사람을 만나며 완성된다 

이번 2021 춘천 한국지역도서전은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시민과 책이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공지천 조각공원 일대엔 각 지역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들을 전시했다. 춘천의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주말 간 수많은 시민이 조각공원을 오가며 책을 들춰 봤다. 카메라를 잠시 놓고 책을 펼쳐 보는 사람,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부모, 걷다 쉬다 잠시 앉았다 가며 천천히 책을 보는 할머니 등 많은 장면이 공지천 조각공원에서 오갔다. 책은 사람을 만나며 완성된다. 이야기는 상대에게 닿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간담회 이후 골목잡지 사이다 팀과 간단히 술잔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29살. 김태연 기자는 이번 천인독자상 공로상을 받은 『이제 안녕, 도룡마을』 취재와 사진 촬영 작업에 참여했다.

“500년 된 마을을 취재했죠. 마을 이장님이 많이 도와주셨는데 촬영 마지막 날에 이렇게 마을을 찾아주고 다뤄 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때 저도 이 기록 작업에 자부심과 가치를 느꼈어요.”

출판인들이 모여 술잔을 나누면 8할이 고생한 이야기다. 마감은 언제나 쪼들리고, 현장은 어렵고, 글 쓰다 밤 지새우는 건 기본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문득 빛이 나는 순간을 만난다. 그것이 나를 다시 깨우고 움직이게 한다. 책은 사람을 만나며 완성된다. 아직 알 수 없는 그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읽어 주길 바라는 마음엔 오직 정성과 진심만이 담긴다.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다. 이 진심이 또 누군가에 닿아 감동을 준다면 그것으로 지역출판은 계속될 힘을 얻을 것이다. 한국지역도서전은 내년 광주에서 열린다. 우리는 다시 모일 것이다. 글은 계속 이어지고, 책은 쌓일 것이다. 그렇게 지켜 나갈 것이다.


글•사진 황훈주

월간토마토 vol. 173.


월간토마토 구독하기

https://tomatoin.com/app/request/index?md_id=request

 

토마토

 

tomatoin.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