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효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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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

코로나 시대의 효도법

by 토마토쥔장 2021.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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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효도법

글·사진 염주희

 

부모님 생신이 다가오면, 자녀들은 고민에 빠진다. 가족끼리 식사하고 케이크의 촛불을 끄며 모임 사진을 남기는 것까지는 수월하다. 문제는 선물이다. 오랜 세월 근사한 것, 신기한 것 두루 경험하신 부모님께 어떤 걸 드려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올해 어머니의 고희(古稀)를 앞두고 우리 형제들은 머리를 맞대었다.

평소 같으면 식사+케이크+사진의 삼박자로 준비할 텐데, 코로나19로 일상이 바뀐 2021년에는 평소다움이 귀했다. 오인 이상 집합금지가 기본이라 식당에서 가족끼리 식사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바이러스에 특별히 취약한 어르신은 공항 근처에도 가지 않는 시대에 해외여행을 보내드리는 것도 적절한 선물이 아니었다. 파티의 기본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인데, 큰 제약이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우리는 고민을 거듭하다 함께 있지 않아도 축하할 방법을 고안했다. 방구석에서 즐길 수 있고,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으며, 돈으로 살 수 없는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칠십 개의 손글씨 카드>

어머니의 칠순을 앞두고 칠십 명의 사람에게 축하 카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부모님은 네 명의 자녀를 길렀고, 이들이 결혼하여 총 아홉 명의 손주를 낳았다. 당사자를 제외하더라도 열여덟 장의 카드를 확보한 셈이었다. 칠 형제의 막내인 어머니의 언니, 오빠, 조카들도 있었다. 절반은 가족들에게, 나머지 절반은 어머니의 지인과 어머니를 아는 나의 친구와 이웃에게 도움을 청했다.

 

생신 두 달 전부터 부지런히 카드를 모았다. 우편으로 받은 카드, 해외에서 보내온 카드,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주어 대필한 카드, 글자를 모르는 다섯 살 손자가 그림으로 장식한 카드, 시를 지어 보내준 카드, 현금을 넣어 보내준 카드까지 다 모으니 한명 한명의 사랑과 진심이 담긴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모을지 염려하던 시간은 지나고 생일이 다가와 어머니께 선물을 드렸다. 상자를 개봉한 어머니는 이렇게나 많은 카드를 보내준 천사들의 마음에 감동하고, 하나하나 읽어보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 집 둘째는 깜짝 선물 프로젝트의 일등 공신은 자신이라며, 자신이 할아버지께 부탁해서 카드를 모았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카드를 개봉한 후 우리도 옆에서 읽어보는 즐거움을 느꼈다. 어머니의 여고 시절 친구분은 교복 입고 즐겁게 춤추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칠십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이십 대 초반을 회상하는 편지도 있었다. 입대하는 남자친구(지금 나의 아버지)와 이별하던 날 서울역에서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 옆에서 손수건을 건네주었던 이분은 지난 50년 우정처럼 앞으로도 즐겁게 지내자고 하였다.

 

어머니는 도대체 이 카드를 어떻게 모았는지 믿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선물을 준비하는 동안 나의 형제들은 문자로 진행 상황을 주고받으며 누적 개수를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사람들이 귀찮아하지 않을까 망설였던 것은 기우였다. 많은 이가 흔쾌히 축하의 말을 적어 보내주었고, 칠십 명의 소중한 인연에 뽑힌 것이 행복하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지인들은 요즘같이 사람 만나기 어렵고, 만난다 해도 모임의 여운이 쉽게 휘발되어버리는 시대에 손글씨 카드는 어머니가 최고로 좋아할 선물이라며 나와 형제들에게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IT 효도가 필요해>

깜짝 선물 증정식이 끝나고 나는 사진과 영상을 모아 블로그에 글을 썼다. 어머니는 내 글을 읽고 비로소 그 과정을 이해했다며 또 한 번 감동하셨다. 어머니는 카드를 보내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감사전화를 한 후, 자신이 얼마나 놀랐고 얼마나 기뻤는지는 둘째 딸이 쓴 블로그 글에 생생히 담겨있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지인들은 링크로 건네받은 영상을 보며 눈물짓기도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우리가 모은 카드는 칠십여 개였지만, 어머니가 보내준 글을 읽고 축하의 문자를 보내준 이는 수백 명이었다.

 

어머니는 말로 하는 것이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렇게 글로 남아있으니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였다. 어쩌면 어머니가 좋아한 것은 당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깜짝 선물 프로젝트 후기 글이었는지도 모른다. IT 효도란 이런 것일까? 이 시대의 자녀들은 저예산 고품질 파티를 기획하느라 분주하다. 어머니도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선물을 소중하게 받았을 것이다.

 

시 이인종 작

 

칠십 개의 손글씨 카드 프로젝트 진행 방법은 아래의 글 참고

https://m.blog.naver.com/joohee_yum/222275702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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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호 월간 토마토 칼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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