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삶의 모호한 경계가 사라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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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

노동과 삶의 모호한 경계가 사라진 시대

by 토마토쥔장 2021.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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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삶의 모호한 경계가 사라진 시대

오시내

 

이중사고라는 단어는 한국어보다 영어일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Double think[이중사고]는 모순되는 두가지 생각을 동시에 갖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사람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멋진 옷을 차려입고 비싼 차를 모든 행동이 바로 이중사고다. 이런 사고는 대부분 사회적 통념이라는 말로 포장되곤 한다. 이중사고는 노동에도 적용된다. 일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하지만, 분명 우리 사회에서는 직업카스트가 존재한다. 연봉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더 좋은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10대와 20대의 대부분을 소모하고, 하고 싶은 일 보다는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배운다. 30대에 들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수군거리기도 한다. 노동을 취재하며 나는 노동을 했다. 지인을 만나 노동에 대해 물었고, 거리를 걸으며 만나는 모든 사람이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지 관찰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하면 좋은 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전부터 농업 IT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한 A씨는 직업 선택에서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 로봇공학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로봇 기술로 세상을 조금은 더 살기 좋게 만들고 싶었다. 여러 기업을 알아보던 중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를 알게 됐다. 작은 농업 도시에서 로봇 기술을 이용애 친환경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고, 이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어 가는 노인 농업인들을 채용하는 회사였다. 로봇을 이용한 농업 시스템이 성공한다면 건강한 먹거리가 사라져 가고 인구의 정반 이상이 굶어 죽어 가는 현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A씨를 말렸다. 선배의 추천으로 안정적인 연구소 면접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정년이 보장되고 업무 강도도 비교적 낮으며, 연봉은 높은 자리였다. 가족들은 모두 안정적인 연구소를 추천했다. 선배도,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좋은 자리가 난 건 흔치 않은 일이라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다고 그를 설득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일과 하면 좋은 일 중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과적으로 A씨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현재 그는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 자진해서 야근하고 지인을 만나도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닌다.

 

한 번쯤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과 하면 좋은 일 사이에서 고민한다. 운 좋게도 A씨는 하고 싶은 일에서 행복을 찾았지만, 그 반대의 결과를 맞는 사람도 있다. 하고 싶은 일과 하면 좋은 일. 이 두 가지를 가르는 건 대부분 안정적인 삶이다. 사회는 돈과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을 좋은 직업이라 말한다. 좋은 직업에 대한 신념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부모는 자녀가 상대적으로 좋은 직업,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학벌카스트 우위에 있는 일류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 우리 아이만큼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모라도 아이의 성적표 앞에서는 걱정이 앞서곤 한다. 돈이 되지 않는 하고 싶은 일보다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결정이라는 신념은 학교에서도 반복된다.

 

 

좋은 노동과 나쁜 노동, 그리고 더 나쁜 노동

그렇다면 좋은 노동과 나쁜 노동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를 말한다. 이 중 우리 사회가 말해 온 좋은 노동은 대부분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일이었으며, 나쁜 노동은 육체적 노력을 들이는 일이었다. 이런 통념은 신분제도가 존재하던 시절부터 이어졌다. 신분제도가 존재하던 과거, 지배계층인 양반은 관리가 되어 나랏일에 참여하는 계층이었다. 땅과 노비를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땅을 소작농에게 빌려주며 부를 축적했다. 양반 남자의 노동은 과거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었으며, 여자 양반의 일은 글 공부를 해 자녀를 올바로 기르는 일이었다. 그다음 계층은 중인이다. 양반 아래에 있는 계층으로 양반을 도와 관청에서 의관이나 통역관으로 일하는 전문직이었다. 아래 계층인 상민보다 높은 계층이긴 했으나 양반처럼 높은 관직에 오르지는 못했다. 다음 계층인 상민은 농업, 어업, 수공업, 상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수익 일부를 세금이나 땅 사용료로 내곤 했다. 가장 하층에 있는 천민은 사람으로 취급되기보다는 나라와 개인의 재산으로 여겨졌다.

 

과거의 신분제도에 따른 직업 분포도는 지금 우리 사회가 말하는 좋은 노동, 나쁜 노동과 매우 닮아 보인다. 물론 양반과 중인의 계층이 사라졌지만, 상민과 천민의 계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과거의 기준으로 현재의 직업군을 본다면 대부분이 상민과 천민에 해당할 것이다. 하늘이 정해 준 신분이 사라진 근대에 들어서도 직업에 따른 신분은 개선되지 못했다. 물론, 새로운 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그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최근에는 나쁜 노동과 더 나쁜 노동까지 생겼다. 나쁜 노동은 한 회사에 소속되어 정년을 보장받으며 명확한 연봉 테이블로 연차에 따라 급여가 올라가는 직업이며, 더 나쁜 노동은 비정규직으로 정년을 보장받을 수 없으며, 심지어 근로의 기간도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직업을 말한다. 이 더 나쁜 직업은 연차에 따른 급여 인상도 기대할 수 없다.

 

 

삶의 일부인 노동, 노동의 일부인 삶

상대적으로 괜찮은 나쁜 노동에 종사하던 B씨는 몇 해 전 직장을 그만뒀다. 건축업에 종사하던 두 아이의 아버지 B씨는 반복되는 직장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대학 시절, 자유롭게 생각을 논의하고 오토바이를 타며 이곳저곳을 마음껏 떠날 수 있던 때가 그리워졌다. 일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다. 무슨 용기였는지,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뒀다. 하지만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기에 아내와 작은 가게를 차려 생활을 유지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덕에 사업은 괜찮게 유지됐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네 식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나름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외부에서 발생했다. 주변 사람들은 B씨를 보며 철이 없다고 수군거렸다. 가장으로서 아내를 위해 다시 직장을 찾아보라고 권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변의 시선은 생각보다 날카롭게 B씨에게 꽃혔다. B씨는 여전히 작은 가게를 운영하지만 휴대폰 전화번호부에서 지인 몇몇을 지워야 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은 개인의 삶과 명확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농업시대에는 일상과 일의 경계가 모호했지만, 정해진 시간 동안 사람이 부품처럼 돌아가야 했던 산업시대에 들어서면서 명확한 근로시간 개념이 생겼다. '시간이 금이다'라는 말도 바로 이 시기에 등장한다. 현재 우리가 지키고 있는 근로기준법도 산업시대에 일어난 수많은 문제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 환경에 노출됐다. 시간이 금이니 어떡해서든 많은 시간 노동에 시달려 건강을 잃어갔다. 르네상스로 인간 중심 사상이 퍼졌지만 노동자의 삶은 인간적이지 않았다. 그 결과 국가는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법을 발의하고 꾸준히 개정한다.

 

 

한국에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을 따라야 한다. 제43조에 따르면 임금은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날짜에 지급해야 하며, 제50조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또한 제53조에 따라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제54조에 명시되어 있다. 산업시대의 악행을 막고자 상당히 세세한 부분까지 법으로 명시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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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노동의 경계는 존재하는가

4차 산업시대가 도래했다. 산업혁명 이후의 2차 산업을 넘어 다양한 기술이 융복합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시대다. 제조업처럼 시간을 투자한 만큼 가시적인 결과물을 도출할 가능성이 명확하지 않은 시대가 바로 4차 산업시대다. 과거에는 일과 삶을 구분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명시했지만, 근로시간이 업무성과를 대변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오히려 삶과 노동의 경계가 다시 모호해지고 있다. 굳이 4차 산업을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이 삶과 노동의 경계 없이 살아가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 C씨는 연년생인 두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업에 뛰어들었다. 돈도 돈이지만 육아를 하며 잊어버렸던 자신의 삶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동네에 작은 옷가게를 차렸다. 일주일에 많게는 두세 번씩 지하철로 집이 있는 인천에서 서울 동대문으로 가 옷을 둘러본다. 마음에 드는 옷을 주문한 후 남편의 도움을 받거나 택배를 이용해 가게로 옷을 가져온다. 최근에는 주 거래처가 생겨 사진을 보고 옷을 주문한다. 아이가 하원하면 남편이 육아를 담당하거나, 종종 남편이 늦을 때는 가게 안에 마련한 놀이방에서 아이를 돌보며 일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오픈빨로 사업 초반에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대 모은 돈으로 조금씩 사업을 익히며 영역을 넓힐 구상이다.

 

 

C씨는 삶과 노동의 경계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옷가게로 재화를 버는 노동과 아이를 돌보는 육아 노동이 그녀의 삶을 꽉 채우고 있다. 몸은 고되지만 그녀는 자신의 선택으로 일을 유지하고 있다. 자영업자 대부분이 C씨와 비슷하게 삶과 노동의 경계가 모호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밥을 먹으면서도 요즘 트렌드를 분석하고, 어떤 옷을 어떻게 코디해 전시할지 구상한다.

 

이는 엔지니어로 일하는 A씨도 마찬가지다. A씨는 더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자진해서 야근하며 해외에 있는 타기업의 사례를 조사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상한다. 최근에는 미주권에서 농업IT가 얼마나 경쟁력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상으로는 명확히 명시할 수 없는 노동의 형태다.

 

 

 

퇴근 후 카톡금지법, 냉혹한 업무 평가

삶과 노동의 경계가 모호한 일상은 나에게도 반복된다. 노동을 취재하기 위해 나는 친구들과 나눈 사소한 대화에서도 기사에 넣을 만한 내용을 빠르게 스캔했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친구와 오랜만에 대화하면서 친구가 하는 노동을 조사했다. 물론, 대화의 절반은 아이가 얼마나 잘 크고 있는지였고, 나머지 절반은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를 비록한 많은 이의 일상에서 노동과 삶의 경계가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무실 외에서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업무를 처리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 중 70.3%가 업무 외 시간에 스마트기기를 사용해 업무를 처리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평균 시간은 11시간이 넘는다. <쉼 업는 노동 - 디지털시대의 그림자>(김기선,<월간복지동향> 2017.7,22~27)에서는 이를 "현행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의 개념이 정의되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은 노동자가 퇴근 후 시간과 주말에 이메일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협약을 맺었다. 한편, 구글에서 상무로 재직하며 다수의 한국 방송에 출연한 미키김 씨는 JTBC 방송<비정상회담>에 출연해 구글의 사내 분위기를 '일과를 터치하지 않지만 그 이면에는 냉혹한 업무 평가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가족과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 일찍 퇴근해도, 다시 일을 꺼내 들곤 한다고 했다.

 

 

지난해 노동과 삶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퇴근 후 카톡금지법'이 발의됐다. 노동이 삶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안이다. 만일 퇴근 후 카톡금지법이 통과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폴크스바겐처럼 퇴근 후 울리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잃어버렸던 싦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소프트웨어 기업인 구글의 사례처럼 냉혹한 업무 평가를 위해 일과 후 노트북을 꺼내 들게 될까?

변화하는 산업구조와 점점 옅어지는 노동과 삶의 경계, 우리는 이 중간 즈음에서 노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어쩌면 작년 유행처럼 번졌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은 이미 구시대적인 단어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월간 토마토 130호 기획기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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