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꽉 막힌 언로(言路)를 뚫어야 할 때입니다”

“도시에 꽉 막힌 언로(言路)를 뚫어야 할 때입니다”

월간 토마토 편집장 편지

 

 

1.

상황이 어떻든 봄은 찾아왔습니다. 이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예상한 시간에 낮과 밤이 있으며 계절이 바뀌는 모든 자연 현상이 당연해 보이지 않습니다. 갑자기 낮과 밤이 바뀌거나 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고 해도 아주 당혹스럽지는 않을 듯합니다. 막상 그런 현실에 놓이면, ‘올 것이 왔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인터스텔라(2014년 작_크리스토퍼 놀런)에 그런 대사가 나옵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몇 번을 읽어도 좋은 대사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가 그리 가볍지 않다는 사실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종종 인용합니다. ‘인류가 결국은 답을 찾아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막연한 메시지는 이 시대 큰 위안입니다.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이마에 시원하게 젖은 수건을 올려주며 ‘금방 나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할머니 음성처럼 포근합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문제이지만 이외에도 심각한 기후 위기나 에너지 문제, 인종과 종교 갈등, 영토 문제, 빈곤 등 인류 전체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이런 문제에 조예가 깊지는 않습니다. 전통 언론을 비롯해 뉴미디어 영역에 포함하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들으며 문제라 인식하는 것뿐입니다. 인류가 겪는 문제는 대부분 이렇게 인식합니다. 동의할 수 있는 깊은 인식을 기반으로 행동 방식이나 삶의 양태가 달라집니다. 

 

인류가 처한 이런 문제를 생각하다가 내 삶에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대전이라는 도시 안에서 우리는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문제를 찾는 과정이 명확하려면 우리 도시는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미래를 기대하는가에 관한 부분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수많은 가지로 뻗어갈 가능성을 가진 미래를 앞에 두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적절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선택에 따라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별할 수 있을 겁니다. 애써 지역 의제를 설정하고 의견을 모으지 않으면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고 지속하는 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도시에서 ‘기후 위기’나 ‘코로나19’만큼 시민이 관심을 기울이며 함께 지혜를 모으는 중요한 ‘지역 의제’가 있을까요? 단언컨대 없습니다. 각 부문이 모두 제구실을 잘해주어서 시민이 지혜를 모아야 할 필요가 굳이 없기 때문일까요? 태평성대인 건가요?

 

 

 

 

2.

사회는 초정밀 기계만큼이나 다양한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복잡한 조직체입니다. 어떤 부분이 문제를 일으킬 때 당장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꾸역꾸역 돌아가다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대전이라는 도시에서 ‘소통 영역’이 재앙을 예고하며 문제를 키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 안에 ‘언로(言路)’가 꽉 막혔습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처럼 언론을 통제하거나 자치단체장 등 중요 정책 결정 기구 수장이 시민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아예 운동을 멈춰 소화를 전혀 하지 못하는 위장처럼 우리 도시에  ‘소통 기능’이 멈춘 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우리 도시에 그런 게 있기는 했나 싶습니다.

 

 

내일 당장 계절이 뒤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만치 지구는 심각하면서도 다양한 위기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혁신’이 필요한 시대라 역설합니다. 이는 지구나 국가에서 관심을 기울이며 해결 의지를 갖춰야지만 결국 실천은 도시든 마을이든 학교든 기업이든 실질적인 삶 단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각 단위에서 혁신이 가능하게 하려면 현실을 드러내고 문제를 정의하며 대안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혁신을 꾀해야 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몇몇 엘리트나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집단만이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방식은 수십 년 전 펼쳤던 ‘새마을 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전 새마을 운동 때, “마을 안길을 넓힐 테니 집마다 한 명씩 삽과 곡괭이 등을 가지고 나오시오!”라고 했다면 지금은, “마을 안길을 넓히는 사업을 진행할 테니, 희망하는 마을은 주민이 모여 어떻게 마을 안길을 넓힐지 결정해서 계획서를 만들어 제출하시오! 그러면 돈을 주겠소!”라고 바뀐 듯합니다.

 

 

참, 대단한 발전입니다. 단순하고 무식했던 착취와 수탈 방식이 조금 더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변화한 정도 아닐까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말입니다. 도시가 제대로 ‘소통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어떤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부분입니다.

 

 

새마을운동 시절이나 네오-새마을운동 시절이나 그 과정과 결과에 책임을 통감해야 할 핵심 기관 중 하나는 ‘언론’입니다. 소통은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언론’이 담당했던 영역입니다. 공공에 기반한 ‘의제 설정 기능’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와 함께 ‘제4부’라 불렀던 시절도 있을 만큼 그 영향력은 막강했습니다.

 

 

 

 

3.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등장을 비롯한 여러 변화로 올드 미디어가 과거처럼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세상입니다. ‘SNS’로 대표하는 뉴미디어가 점점 영향력을 확장하며 중요한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언론’이 가진 ‘본래 기능’을 효용성 없음이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사설 학원에서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니 공교육기관인 학교는 필요 없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학교가 사설학원을 따라하며 경쟁력을 갖추려 노력하는 것이 우매한 짓인 것처럼 언론 또한 새롭게 등장한 SNS를 따라가며 경쟁력을 갖추려 하는 것 역시 쓸데 없습니다.

 

 

필요한 건, 제 본래 구실이 무엇인지 잘 생각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겁니다. 그 변화의 방향은 본질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언론도 학교와 마찬가지로 본래 기능으로 돌아가는 것이 차별성을 분명하게 두며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이 사회 구성 요소로서, 마땅히 해야 할 구실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공공에 기반을 두고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 질서 안에 편입한 단순 기업이 아니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준 공공기관으로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기관으로서 ‘언론’이 이 모든 ‘소통 문제’를 해결할 거라는 것 역시 환상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실행하며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을 고민해야 합니다. 도시 하수관을 설계하듯 이제 언로(言路)를 설계해야 합니다. 언론 역시 이 설계 과정에서 빠져선 안 될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 도시에 꽉 막힌 언로(言路)를 뚫고 구체적인 의제를 설정하며 시민이 지혜를 모으고 실천하는 일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입니다.

 

- 월간토마토 편집장 이용원 -